박현승

이름박현승(朴玄升 / Hyen-seong Park)
생년월일1972년 9월 12일
출신지부산광역시 남구
학력대연초 - 부산대천중 - 경남고 - 동아대
포지션내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5년 롯데 자이언츠 2차 1순위 지명
소속팀롯데 자이언츠 (1995~2009)
지도자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10~2012)
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코치 (2013)
롯데 자이언츠 2군 주루코치 (2014)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5)
롯데 자이언츠 역대 주장
강상수
(2002)
박현승
(2003)
김대익
(2004)

1 아마추어 선수 시절

경남고 시절에는 청소년대표, 동아대 시절에는 국가대표를 지낼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으며 아마시절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5년, 1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다.

2 프로 선수 시절

롯데 자이언츠 No.18[1]
박현승(朴玄升)
롯데 자이언츠 No.5[2]
박현승(朴玄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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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 등번호 사용시절 (출처 : 포토로)5번 등번호 사용시절(출처 : 포토로)

입단 당시 박현승이 받은 1억원은 당시 기준으로 야수 최고 계약금에 해당한다. 팀이 그에게 얼마나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하지만, 95 문동환, 96 차명주, 97 손민한 5억 트리오에 비하면.....

하지만 롯데의 2루에는 박정태, 3루에는 공필성이 있었기에 박현승의 자리가 쉽게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해 지명타자이자 선수생활 말년에 접어든 김민호가 부진하면서 김용희 감독은 다음 시즌부터 수비가 불안했던 화약고공필성을 백업 및 지명타자로 돌리고 3루 자리를 박현승에게 주기로 결정한다.

주전으로 시작한 1996 시즌, 개막전부터 8번타자 3루수를 꿰찬 박현승은 그해 .280의 타율과 102개의 안타, 8홈런 51타점 10도루의 좋은 활약을 펼치며 롯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박현승이 자리를 잡으면서 롯데는 박현승(3루수)-김민재(유격수)-박정태(2루수)-마해영(1루수)라는 젊은 내야진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1997 시즌에는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이며 0.301의 타율에 19홈런 63타점 12도루로 맹활약하며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까지 출장한다.

이렇게 최고의 시즌을 보낸 후 박현승은 군에 입대하고, 1999 시즌 중반에야 팀에 다시 합류한다. 하지만 군에 다녀온 후 예전의 날카로운 타격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면서 롯데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2001년 0.288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후에는 계속 신통찮은 성적을 냈고, 특히 2004년 양상문 감독이 부임한 이후엔 아예 전력 외 선수로 취급되기 시작한다. 실력이 모자랐다기보단 양상문이 팀 리빌딩을 명목으로 의도적으로 고참 선수들을 기용하지 않았던 탓.

이대로 잊혀지는 선수가 되는 듯 했던 박현승은 2006년 강병철 감독이 취임한 이후에 다시 기회를 잡는다. 강병철 감독은 경험이 풍부하고 내야 전 포지션을 볼 수 있는 박현승을 중용했다. 그리고 시즌 후 롯데의 주전 2루수 신명철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면서, 박현승은 다시 주전 기회를 잡는다. 2007시즌 박현승은 주전 2루수로 기용되었고, 0.325의 타율과 98안타를 기록하며 극적으로 부활한다. 역대 4위에 해당하는 25경기 연속 안타, 역대 2위에 해당하는 14경기 연속 득점까지 기록한다. 시즌 중 안지만의 공에 팔꿈치를 맞아 부상을 당한 것이 아쉬웠지만, 10년 만에 올스타에 다시 뽑히는 등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리기에는 충분한 시즌이었다.

그리고 2008 시즌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공익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조성환을 2루수로 기용하는 대신 박현승을 주전 1루수 겸 3번 타자로 기용한다. 하지만 박현승은 슬럼프에 빠지고, 타순 조정을 거치다가 끝내 주전에서 밀려난다. 그나마 선구안은 살아있어서 출루율은 괜찮았지만, 심각한 타격 부진을 커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롯데의 호성적에 힘입어 올스타에 뽑혔다.

2009 시즌 개막 이후 줄곧 2군에 머물렀는데, 2군에서 0.362의 좋은 타율을 기록했지만 이미 롯데의 전력 구상에 박현승의 자리는 없었다. 홈런 타자들이 건재한 데다, 1군에서 0.370인 타자의 존재 때문에...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했다. 롯데는 박현승을 2009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고, 박현승은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2군 수비코치로 선임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앞서도 소개됐지만 박현승은 롯데에서는 보기 드문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프로 첫해 2루수를 시작으로, 주전이 되기 위해 3루수로 전업, 이후 다시 2루수, 1루수를 봤다. 유격수로는 그가 뛰던 시절에 김민재박기혁이 버티고 있어 거의 출장하지는 않았다. 야수로서는 평균 이상의 안정된 수비를 보여줬다. 어찌보면 롯데에서 가장 정상급의 수비실력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타자로서는 전형적인 작전형 2번타자, 혹은 6,7번 타자로 나왔다.

응원가는 라 쿠카라차[3]를 개사한 곡으로, 2010년 시즌부터 박종윤에게 물려줬는데.. 그 뒤 박종윤의 응원가가 바뀌었다.

2012년 4월 14일 두산전에서 최기문 배터리 코치와 함께 은퇴식을 가졌다.

3 지도자 시절

3루 주루 코치를 맡으면서 대책없이 주자를 홈까지 돌리는 뇌피어 주루플레이로 수많은 홈 비명횡사를 만들어 내며 선수시절 좋았던 이미지를 홀라당 다 까먹고 있다. 이에 모 팬이 '포인트가 부족했다. 이해해달라.' 라고 드립친것이 흥하면서 현승이라고 까이고 있다.[4]

2014년에는 KBO 퓨처스리그 수비, 주루코치로 내려갔으며, 2015년부터 공필성 수비코치가 불미스러운 일로 사임하면서 공석이 된 1군 수비코치를 맡게 된다.

별로 주목받지 않는 수비코치여서 그냥저냥 넘어가고 있으나 수비코치로서의 능력도 박영태공필성을 능가하는 최악의 수비코치다. 수비코치 부임 후 내야 수비가 전체적으로 더 나빠졌고, 오승택의 심리적인 부담감을 덜어주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욕을 바가지로 먹는 중.
공필성보다 더한 박현승

결국 염종석, 안상준과 같이 강등되었다. (염종석은 3군으로)

2015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4 통산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5롯데 자이언츠4895.22121411812118.316.339
1996108354.288102223851621045.435.367
1997112379.3011141941963531242.522.369
1998군 복무
1999100342.26390212639491247.389.351
2000111344.241831926394023
(5위)
52.360.340
2001123427.288123214
(4위)
553761585.391.404
200294346.2609015093537627.382.310
2003118357.2358411101840722.272.279
200461146.219326011118224.281.327
20052438.21181001315.237.302
2006104298.242729032631537.302.324
200791302.3259814033355143.401.398
200873206.218455112227331.267.317
2009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5시즌)
11673634.265962167186239950398478.372.348
  1. 1995~2004시즌에 사용. 노장진이 트레이드로 오자, 노장진에게 넘겼다.
  2. 2005~2009시즌에 사용
  3. 박현승 안~타 박현승 안~타! 롯데 승리위하여 (x2)
  4.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면... CF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