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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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종결 이후 산 스테파노 조약의 체결로 인해 형성된 강대국 간의 대립을 조정하고자 같은 해 베를린에서 열린 열강 간 조정회의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식민지 분할을 놓고 열린 베를린 회담과는 전혀 다르니 주의하자.

2 배경

19세기 중반 이후로 발칸반도는 유럽 열강 사이의 각축장이었다.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기치로 발칸반도에 거주 중인 슬라브족들을 규합해 남하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영국프랑스는 이것을 막고자했다. 이러한 대립으로 생긴 가장 대표적인 사태가 크림전쟁. 이런 상황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기독교도들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오스만 제국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대응한다. 이에 러시아는 형제 슬라브족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은 러시아의 압승으로 끝났고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맺어진 산 스테파노 조약의 결과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세르비아가 독립국으로 인정된 것은 물론이고 불가리아 역시 러시아의 위성국가이자 사실상의 독립국이 된다. 이러한 러시아의 남진은 기존 유럽의 강대국들에게는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영국프랑스는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침해할까봐 두려웠으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역시 자신들의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권을 침해받는다고 여겼기에 매우 불편해했다. 이에 독일 제국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주도 하에 베를린 회의를 개최하게 된다.

3 왜 비스마르크는 베를린 회의를 개최하였는가?

독일 제국은 발칸반도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외교적 중재를 개최한 것은 유럽에서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독일 제국에게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보불전쟁 이후 독일의 외교정책을 요약하자면 '프랑스 왕따시키기'였다. 이 중에서도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맺은 3제 동맹이 핵심이었다. 문제는, 유럽 내에서 분쟁이 생기면서 전쟁과 같은 혼란이 생기면 프랑스에게 우방국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것. 이는 비스마르크에게 최악의 상황이었으므로 이를 막고자 베를린 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또한 독일은 발칸반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중재자로 활동하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독일', '영토욕심이 없는 독일'과 같은 이미지를 각국에 심어줄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실제로 비스마르크는 베를린 회의 개최 연설에서 "우리 독일은 이 위기상황을 통해 어떤 이득도 얻으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헨리 키신저는 이 시기 독일이 고립주의를 채택하기에는 너무나 강대국이 되었기 때문에, 최대한 잠재적으로 적국이 될 수 있는 국가들과 관계를 만들어놓고자 베를린 회의를 개최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4 결과

5 여파

비스마르크 외교의 정수이자 한계

무려 300년에 걸쳐 지리한 전쟁을 펼친 끝에 드디어 대승을 거두고 막대한 전리품을 얻는다는 기대에 러시아는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얻은 것은 백러시아 하나 뿐이고 가장 노른자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은 오스트리아에게 넘겨주며 자신들은 또다시 서유럽 국가들에 의해 남방 진출을 봉쇄당했으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 밖에. 베를린 회의에 참가한 러시아 외무장관 알렉산드르 고르차코프는 베를린 회의를 자신의 외교관 경력상 최악의 날이었다고 회상했고, 러시아 전역이 서유럽에 대한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박살난 3제 동맹. 이렇게 보면 비스마르크 역시 낭패를 본 것이 아닐까 싶지만, 노련한 비스마르크는 러시아가 순간 분노에 차서 3제 동맹을 탈퇴하더라도 다른 유럽 국가중에 그들의 우방이 되어줄 국가가 없기에 러시아가 다시 3제 동맹으로 복귀할 수 밖에 없을거라는 것까지 감안하고 회의를 진행한 것이다. 실제로 3제 동맹은 1881년에 복구된다. 즉, 비스마르크는 3제 동맹과 유럽 내 강대국 간 균형 유지라는 양대목표를 동시에 성취한 셈. 흠좀무.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 때 차지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두고두고 골치를 앓다가 결국 황태자가 암살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그리고 전 유럽이 전쟁으로... 그리고 오스만 제국은 여전히 자신의 영토를 지킬 힘이 없는 상태로, 붕괴가 늧춰지기만 했지 일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서, 이 회의는 결국 외교적 미봉책 밖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해결되지 않고 억눌러진 발칸 반도의 민족 분포 및 국경 문제는 발칸 전쟁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을 겪은 끝에야 간신히 해결된다. 그것도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생각해보면 해결이 아니었다. 결국은 지금처럼 다 따로따로 독립하는 거 말곤 답이 없어요.
  1. 여기서 루마니아는 추가적으로 도브루자 지역을 얻는 대신 크림 전쟁에서 얻은 남부 베사라비아 지역을 러시아에게 돌려주게 된다.
  2. 이후 190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합병된다.
  3. 이후 1914년에 영국에게 합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