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植民地(한자) / colony(영어)

1 개요

본국 밖에 있으면서 본국의 통치를 받는 지역. 영어 스펠링은 건덕후라면 누구나 알 법한 콜로니.[1] 성큰 콜로니

현재는 대부분 없어졌으며[2] 독립시키지 않은 식민지는 모두 자국 영토로 편입됐고 주민들 역시 공식적으로는 자국의 국민이다.

원래는 고대 그리스의 해외개척처럼 민간 자발적으로, 또는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처럼 정부 주도하에 의해, 국민의 일부가 나라 밖의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거주지를 개척하는 것을 뜻했다.[3] 독일의 도시 쾰른도 어원은 식민지이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서 건설된 이 도시는 라틴어로 Colonia Agrippina라고 명명되었다가 Colonia가 독일식 철자인 Köln으로 굳었다. 영어로 Cologne라고 쓰는 것은 라틴어 표기의 프랑스식 오철이 그대로 영어에 편입된 것이다. [4]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제국주의의 발달과 함께 점점 주로 다른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을 침략해 종속시킨 후 착취를 하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해서 전 세계로 퍼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역사 기록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사람 살만한 땅에는 벌써 다 살았다. 당장 사람 살 만한 지역 중 유럽인이 도착할 때까지 사람이 안 살았던 지역은 모리셔스세이셸 처럼 대양 한가운데 고도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폴리네시아를 참고하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고도도 이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자의 의미로 식민을 하는 것도 먼저 살던 놈들은 다 쳐죽이고 입 씻거나 보호구역이란 이름으로 한 구석에 몰아놓고 모른 척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릭 이런 뜻의 식민지도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여러 남아메리카 공화국들이 원주민을 학살하며 계속 건설하였으나 앞 문단에서 말했듯 식민지의 주요 뜻이 바뀌면서 이 나라들은 식민주의란 비난을 다른 의미로 벗어나게 되었다. 원주민을 인종청소하고 땅을 빼앗는 게 목표지 그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


2 이득

식민지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점은 바로 해당 식민지의 자원과 교역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근세 이후 유럽 열강들이 처음 식민지를 건설한 이유 역시 동양과의 향신료 무역과 아프리카아메리카의 자원을 독점하기 위한 것이었다.[5]

노예무역 역시 식민지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매우 주요한 원인이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로 인해 유럽의 열강들은 헐값에 가까운 수준의 대량의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고, 당시에는 노예무역 자체가 큰 이득을 남기는 사업이었다.[6]

다만 아메리카 노예들은 역병에 시달린데다가 지구력도 아프리카 노예들에 비해 떨어져 금방 대체되었고, 아프리카 노예들은 쓸만 했으나 얘들의 거래 형태는 식민지로 정복하는 형태가 아니라 현지인들과 교역 내지는 납치하는 등의 형태였다. 심지어 19세기까지도 유럽인들 외에도 아랍인들도 노예무역의 주요 수요층이었으며 더 결정적으로 아프리카가 식민지 정복에 시달리는 19세기에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노예제를 금지했다. 특히 아메리카 식민지의 이주민들은 현지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대량으로 구입했으며 기타 노예가 필요한 국가들과 교역을 하기도 했다.

식민지 현지에서 유럽에서 인기있는 작물들을 대량으로 경작하기도 했는데 커피설탕, 각종 향신료 등이 당시 유럽에서 큰 인기 품종이었으며 이러한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이런 품목들이 해당 국가의 유명한 수출 품목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 제국사탕수수를 들 수 있는데, 당시 영국은 한해 설탕 소비량이 무려 7만톤에 달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에서 대량의 사탕수수를 재배하였고, 대중국 무역에서 차수입으로 적자를 보자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의 밀수출과 아삼 지역의 재배로 이를 대체하였다. 또한 현지민들을 농노로 부려먹거나 금광을 채취하게 강요하기도 했으며, 식량자원을 수탈하기도 하는 등 그 유형도 다양했다.

이렇게 열강들이 식민지로부터 얻은 이득은 그야말로 막대하였다. 실제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같은 경우는 동양과의 향신료 무역과 아메리카에서 나는 풍부한 자원[7][8]으로 순식간에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9]

영국의 경우 역시 식민지에서 재배한 설탕과 향신료의 무역으로 큰 이득을 보았으며, 이를 발판으로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10] 이외에도 중국과의 무역에 적자를 보자 식민지인 인도 제국에서 아편을 재배해서 중국에 팔아 대중국무역에서 큰 흑자를 보았다고 한다(…). 이후 홍콩을 식민지로 삼아 동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도 했다.[11] 또한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영국은 식민지 덕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지 않았다. 되려 영국과 교역을 하지 못하게 된 러시아가 심각한 경제난을 견디다 못해 대륙봉쇄령에 불응하여 교역을 다시 재개했고 나폴레옹은 이를 응징하러 러시아에 쳐들어가지만(…)

일본도 류큐, 대만,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설탕과 쌀 등의 1차 산품 가격을 안정화하는 등의 이익을 보았다. 여기서 쌀 수탈에 관한 문제는 품종 문제도 한몫 했다. 일본은 타 아시아국가에 비해 빨리 산업화 단계를 이룩했고, 이를 통해 탈아입구등의 모토를 내걸고 본격적인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일본의 빠른 산업화의 결과로써 이촌향도, 즉 농촌인구가 도시노동자로 이전하면서 산업시대 필요한 노동자가 확보되고 산업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이미 1800년대 후반에 겪게 된다. 이러한 현상의 결과는 자국내 생산부족. 쌀값이 너무 높아져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걸 막아야했다. 이때 일본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조선의 쌀이 절실했다. 일본국민이 소비하는 자포니카종의 쌀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식민지는 '조선'뿐이었으며, 이러한 식량 자급문제에 있어서, 조선은 일본에 있어 궤를 달리하는 중요한 식민지였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1차 농산물이 존재했기에, 일본의 산업정책육성과 제국주의가 가능했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쌀수탈에 있어 일본은 본국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쌀을 일본에 최대한 가져갈 수 있는 여러 정책과 조치(물론 형식상 상업적 거래를 통해)를 취해 놓은 것이다. 근현대역사를 자세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미 구한말부터 일본은 유독 조선에 '쌀'을 수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일본 자국내 조선쌀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았으나, 자국쌀의 1/3가격으로사서 2/3가격으로 남겨먹는 장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것이다. 또 일본 정부 입장에도 그렇게 조선쌀(대체제)의 유익으로 곡가하락및 인플레를 조정할 수 있는 효과는 탁월했다. 이후 일본은 강제합방후 토지조사사업, 제방저수지시설 전국적인 설치등을 통해 쌀 생산에 최적화된 식민지를 만드는 데 주력하였으며, 이러한 결과로써 전국 각지의 큰 저수지들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조선내의 쌀이 부족해지자, 조선내 쌀가격은 폭등했고(ex 조선쌀 생산 200, 일본쌀 생산 300, 조선쌀가격 10, 일본쌀가격 30 => 조선쌀의 일본 수출 => 조선내쌀 120 조선내 쌀가격 15~20 => 일본내 쌀 380, 일본쌀가격 28, 조선쌀가격 20 =>일본내 곡가안정, 조선내 곡가 폭등), 강점기이후 조선은 만주등지에서 콩 옥수수등을 수입해 대체하게된다. 이당시 일본의 만주로부터 콩과 옥수수등 작물의 수입은 대부분 조선으로 들어가 빠져나간 쌀의 대체제가 된 것이다.

과거에는 주로 향신료나 금, 은 등의 자원들을 얻기 위한 경쟁이 심했지만 세계대전 즈음에 가면 북아프리카나 중동의 석유를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도 했다.[12]

다만, 적어도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들어 식민지로부터 얻는 이득이 그렇게 컸다고 보기는 어렵다. 19세기 중반부터 먹어치운 식민지, 특히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의 경우에는 애초에 돈이 목적이 아니라 국가 위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밑의 부작용 단락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단적으로 말해 식민지의 경제규모에 비해 본토의 경제력이 훨씬 압도적이거나, 식민지와 장사하는 것보다 비슷하거나 자기네들 보다 더한 선진국과 교역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이익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가령, 그나마 식민지와의 교역 비중이 컸다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경우, 4공화국 당시 식민지들과의 무역비중은 전체 교역 비중 중 5위에 불과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서방권과의 교역이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식민지의 경제 사정은 본토의 물건을 사줄 만큼 좋지 못해서 시장으로도 그닥 쓸모가 없었다. 애초에 본국 물건을 대량으로 소비해서 본국에 이득을 줄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었으면 식민지가 안 됐겠지?

식민지의 경영은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가령 영국은 인도와 본토를 연결하기 위해 수에즈 운하를 인수하고[13], 아프리카를 종단으로 개척하기도 했다. 일본 역시 조선을 대륙침략의 기지로 활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식민지 개척을 통한 국수주의적 열망 충족은 당시에 만연한 사회문제로부터 하층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좋은 소재였다. 이 외에도 종교적 열망, 국가적 위신, 군인 등의 일자리 보전 등이 동인으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따져 본다면 고대, 중세의 식민지 개척은 인구 분산이나 거점 확보적 측면이 강했다.[14] 그리고 대항해시대 이래 19세기 초에 들수록 원료 독점과 같은 경제적 목적이 상대적으로 더 강했다. 마지막 19세기 말 이후에 들어서는 애국심 고취, 사회갈등 해소, 군사적 필요 등과 같은 비경제적 목적이 강했다.[15]


3 부작용

식민지는 분명 초중반에는 식민지를 경영하는 국가들에게 물질적ㆍ경제적으로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런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 역시 어느 정도 있다. 사실 영국은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으로 본토의 경제력이 쩔어줬고 물론 식민지 자체는 엘리자베스 1세 시절부터 아메리카 쪽에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질이 좋지는 않았다. 인도아시아, 아프리카 쪽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제대로 먹기 시작했고 그나마도 막대한 인력과 시장을 제공해서 유지하던 인도를 제외하곤 돈은 별로 되지 않았다. 아니, 그 인도조차도 100만 명 이상의 군인을 1차대전에 투입한 것이나[16] 암리차르 학살 사건이나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저항에서 보듯이 억지로 지배하면서 이익까지 보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2차대전 이후 영국의 국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자발적으로 독립을 시켰다.

이미 세계 각국의 동인도 회사는 미국이 독립했을 때인 1776년부터 서서히 맛이 가기 시작하였고, 이익은 커녕 손해가 커서 19세기엔 거의 사라지기에 이른다. 또한, 스페인의 경제 성장은 네덜란드의 덕을 본 것도 있다. 네덜란드 역시 인도네시아를 먹으면서 향료무역을 독점했지만 얘네 역시 이전부터 경제력이 높긴 했다. 포르투갈 역시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대항해시대의 포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국의 국력이 너무 약해 결국 스페인에 합병되었고, 독립한 뒤에도 스페인-프랑스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에 의존하는 등 제대로 굴욕을 겪었다.

일단 19세기 이전의 거점 식민지 형식과 달리 19세기 이후의 땅따먹기식 식민지 경영은 본국의 병력 + 관료 + 유지 관리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영국네덜란드동인도 회사는 이런 문제로 향료 무역의 이익에도 불구하고 유지 비용이 너무 많아서 적자, 부정부패 등에 시달렸다. 네덜란드는 아시아 국가간의 무역이 쇠퇴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여기에 분식회계 문제, 영국 및 아메리카와의 경쟁 문제 등이 겹치면서 영란전쟁 이후로는 세가 축소되었으며, 영국은 국방비를 충당하기 위해 미국에 무리하게 세금을 매기려다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고, 결국, 미국의 독립을 허용하고 말았다. 거기에 식민지 지역 중 상당수가 본국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영 환경이 좋지 않거나, 본국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서, 지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본국민들을 투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나마 19세기 유럽은 프랑스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출산율이 매우 높아서 인구 유출이 심각해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17] 20세기에 이르면서 그 출산율도 떨어지고, 그 상황에서 식민지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인구 유출이 가속되다 보면 오히려 본국의 활력이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기기도 한다. 헬레니즘 제국이 이런 사례이며 마케도니아-그리스의 인구 팽창이 정지하자 다 같이 몰락하고 말았다. 현재 스페인포르투갈도 이 시기의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국가 막장 테크를 밟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있는데 본국의 인력. 그것도 국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엘리트 청년층이 구 식민지로 대량 유출되고 있기 때문. 거기에 식민지의 인력, 자원을 써먹기 위해 인프라부터 재투자를 하느라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이 생겨났고 식민지인들의 경제력이 좋을리도 만무하니 식민지인들이 식민제국의 물건을 사서 손해를 메꿀리도 없다.

또한 식민지 경영에 지나치게 힘을 쏟다보니 자연히 국내 산업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져 결과적으로 본국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단점이 발생하였다. 독일영국, 프랑스 등 기존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2번의 세계 대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식민지 경영을 하는 대신 국내 산업의 육성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스페인포르투갈이 몰락한 것도, 지나치게 해외 식민지에만 집착하다 보니 자연히 본국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은 본디 목축 위주의 산업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양모를 팔아서 돈을 벌고 그걸로 강대한 스페인군을 유지하는 구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신대륙 개척 이후로는 신대륙산 으로 바뀌어 덕분에 스페인은 군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금은으로 인한 인플레[18]로 오히려 타 산업이 붕괴되어 경제구조를 취약화시켰다. 결국 그 군대가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망하으였니 망했어요.[19]

스페인, 포르투갈의 항로 개척 등에서 들 수 있듯이 식민국이 피식민국을 병합하기 이전에는 보통 양자간 교류가 없거나 미미한 경우가 많았다. 어쨌건 이런 접촉을 통해 식민국과 피식민국간 상품 등의 교류가 이뤄지므로 식민지 개척 이전과 비교하면 분명 이건 득을 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양자가 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인 상태에서 무역을 하는 것과 식민지 무역의 손익을 비교하면 통제 비용 등을 고려하면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 그나마 후자가 더 나은 점이라면 식민국이 피식민국의 정책을 통제할 여지나 교류의 안정성 정도를 들 수 있다. 전자의 예시로 미국을 들고 하는데, 미국은 식민지가 손해를 가져다 줄까봐 그런 게 아니고, 남북전쟁을 수습하고 뒤늦게 식민지 쟁탈 경쟁에 뛰어들어들었다는 점, 그리고 미국, 특히 서부를 중심으로 미개발지가 많아서 식민지가 필요 없이 이 쪽을 개발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점 때문에 직접 식민지화를 하는 것을 가급적 피해서 그런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필리핀 정도를 들 수 있다. 나머지는 섬 지역이라 독립 운동을 할 역량이 거의 없기도 하고.

영국프랑스 역시 초중반에는 식민지 경영으로 인해 크나큰 이득을 보았으나, 지나치게 식민지 경영에 힘을 쏟다보니 세계대전이 발생할 즈음에 가면 기술과 산업에 있어서 미국독일에게 완전히 추월을 당하게 된다. 소련, 중국, 일본한테 추월 당한 건 덤이고세계대전이 끝나고 각국의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20세기 후반 이러한 단점들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그나마도 1870년대 이후에 먹은 식민지들에게선 이득 본것도 없이 순전히 자존심 싸움만 했다. 영국의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회사는 주주들에게 투자 배당금도 주지 못해서 쩔쩔 맸고 아프리카 투자 기피 현상까지 벌어졌다.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하부 구조 자체가 없으니 뭐 돈이 벌릴 구석이 있나.

게다가 외국에 정복당한 피지배민들이 100% 적극적으로 본국에 협력했을 리는 없기 때문에[20] 생산성이 떨어졌다[21] 결국 프랑스의 경우에는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 수십만의 젊은이들의 피를 뿌리며 국력이나 소모하게 된다. 베트남은 프랑스인들의 농장이 꽉 들어차 있고 알제리는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일부로 간주돼서 그렇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스페인처럼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엄청난 부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경우 쏟아져 들어오는 보물이 국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각한 인플레이션[22]을 겪고 경제위기를 겪은 사례도 있다.

그리고 정작 식민지를 많이 가졌다 해서 모든 국민들의 삶이 부유해지냐면 그렇지도 않아서 영국 같은 경우 하층민들의 노동 조건이 극악하기 그지없었고, 런던에서 조금만 이동해도 법의 보호조차 제대로 못받는 빈민가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득의 분배에 대한 노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인데, 자본가들이 식민지에서 쉽게 이득을 얻는데 익숙해진 나머지 부를 분배하여 하층민들을 부유하게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탓이 크다. 당장 올리버 트위스트레 미제라블, 오싱등의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물론 레오폴드 2세 시대의 벨기에 같은 예외(?)가 있지만 그 벨기에도 식민지에서 들어온 이익의 대부분은 한참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던 왈롱과 브뤼셀 위주로만 돌아갔으며 플란데런 지방은 철저히 국내투자와 개발에서 소외당해 식민지 시대가 완전히 끝난 현재까지도 지역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독일 제2제국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이런 이유로 식민지 정책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처음엔 독일 제국은 식민지를 확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1884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토고, 카메룬 등의 약간 식민지를 얻긴 했지만 그 뿐이었고 금새 그만두었다. 그나마도 경제적인 요인과는 전혀 상관없이 국가 내부의 불만 세력의 이목을 해외로 돌리고 민족주의를 고취하려는 의도였다. 그럼에도 독일은 식민지 보유국들보다 오히려 국력 및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더 앞섰다. 독일 2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전 후 잿더미가 되고 분단까지 된 서독이 불과 20년만에 영국과 프랑스를 앞지른 선진국이 되고 동독도 공산권 국가에서 가장 잘살아는 국가 1위를 유지한것도 비스마르크의 식민지 확장보단 기술양성과 인재육성에 집중한 결과로 오늘날 독일이 선진국이 된 이유도 100년도 넘게 육성된 인재와 기술 덕분이다. 이에비해 식민지 제국을 운영한 프랑스와 영국은 인재육성과 기술 개발에 소홀히한 대가로 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 독립과 기술정체로 인한 국가경쟁력 약화로 미국과 소련에게 초강대국의 지위를 빼기는 수모를 당한다.

반면 야심만 크고 현실에 대한 인식 능력은 떨어지던 빌헬름 2세와 독일 내 식민지 획득파& 국수주의자들은 쓸데없는 식민지 확장에 나섰다가 결국 신나게 얻어 터지고, 기존에 갖고 있던 식민지는 물론 왕조까지 빼앗겼으며,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식민지 획득 겸 제국 건설에 착수했다가 또 한번 제대로 얻어터지고 나서야 그만뒀다. 유사한 생각에서 일본의 이시바시 단잔[23]같은 자유주의 성향의 인사들도 한반도대만을 독립시키고 중국(당시 일본 입장에서는 고갱님) 자극하지 말고 그냥 무역해서 잘 먹고 잘 살자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식민지에 관련해서는 홉슨과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유명한데 홉슨은 보다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레닌은 공산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홉슨의 경우 식민지는 경제적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개척된다고는 하지만 정말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식민지는 그 국가의 경제에 정말로 이바지한다기보다는 소수 재벌들의 압력+국수주의적 열망[24]에 따라 나온 바가 크다. 또 홉슨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국가가 피할 수 있는 비극이라고 봤다. 반면 레닌은 이를 부정했다.

역설적으로 소련도 스탈린 등장을 전후해서 사실상의 팽창주의 정책을 벌이고 자본주의 진영의 식민지 개념이나 다름없는 다수의 위성국과 괴뢰국을 만든 뒤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행태를 벌였는데, 이를 사회제국주의(socio-imperialism)라고 부른다. 해방 직후 한국에서는 적색 제국주의라는 단어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정작 같은 공산권 국가들끼리도 맘에 안들면 서로를 이 단어로 디스했었다(...)


4 종합

식민지는 어떤 지역을 차지했느냐에 따라 (경제적) 순이익 측면에서 강대국에 이득[25]이 될 수도 있었고, 손실이 될 수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는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의 주요 자원, 향신료, 기호품 생산지가 주요 식민 지역이 되었고, 열강은 이러한 생산물을 독점하면서 재미를 보았다. 다만, 여기에는 식민지 경영에 따른 이득 외에도 기존에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제권의 연결에 따른 이득도 포함되어 계산되었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점차 식민지 획득 과정에서 경제보다는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식민사업, 일본의 조선 병합, 스페인의 모로코 병합, 이탈리아의 리비아, 에티오피아 병합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식민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나마 일본의 한반도와 대만 병합의 경우는 중국 및 동남아시아 침략의 전진 군사 기지로 기능했고, 리비아 역시 2차 세계 대전 당시 본토의 방패 노릇이라도 하기라도 했다.

오늘날까지도 유럽과 같은 정치사회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에서도 황금시대이고 천국이자 파라다이스라며 그 시절을 아직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유럽의 경우 경제에 문제가 생길경우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타나며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일들도 있다.

물론 이들은 대단히,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위의 부작용 문단을 다시 거론할 필요 없이 유럽과 일본의 '황금기'는 어찌 보면 노골적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되려 (비록 다른 방법을 통해 계속 착취 대상으로 삼으려 했을지언정) 식민지를 상당수 놔주고 고도경제성장으로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져 중산층이 두터워진 1950~1990년대라 볼 수 있다.


5 식민 지배 이후 사과

한국 정부1965년일본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여 사과와는 무관하지만 독립축하금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청구권을 지불받았다.[#] 이후에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간 담화 등의 공식적인 범죄 인정과 사죄도 있었다.

1950년대 케냐 식민 통치 때 영국은 무장 단체 '마우마우' 조직원들을 비롯해 독립운동을 벌이던 케냐인들을 물고문과 생매장, 성폭행 등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2013년 6월, 영국 정부는 공개 사과와 함께 피해자 5,228명에게 1,990만파운드(약 360억원)를 배상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책으로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윌리엄 헤이그 당시 외무장관의 말에 따라 배상이 즉시 이뤄졌다"고 전했다.

2013년 9월 네덜란드 정부는 인도네시아 점령 통치 시기인 1945~ 1949년에 저지른 대규모 학살에 대해 사과하고, 유족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긴 인도네시아의 피해자 유족과 생존자 등은 1인당 2만유로(약 2,500만 원)의 배상금을 받았다.

2008년에 이탈리아는 1911년부터 30년간 리비아를 식민 지배한 것에 대한 보상 명목으로 리비아에 25년간 50억 달러(약 5조 8,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리비아의 장학금·연금 등에 매년 일정액을 투자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에 비해 132년간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2012년 알제리를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알제리인들에게 끼친 고통을 '인정'한다"면서도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아 프랑스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반감은 여전하다.[#]

2014년 영국 정부는 런던 의회 광장에 마하트마 간디 조각상을 세우기로 했다. [#]

독일 정부는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식민지배중 일어난 학살에 대해서 배상을 거부했으나 사죄하였고,[#] 오는 2019년 재건되는 독일 베를린프로이센 황궁(훔볼트 포룸)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에서 독일이 저질렀던 학살과 과오를 반성하는 전시공간이 들어선다.[#]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들 선례들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식민 지배 전체에 관해 아직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으며, 위에 선례로 든 국가들도 아직 모든 식민지배 행위에 대해 사과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사례들을 들어서 '구 식민제국들은 전부 사과를 했으니 죄가 없다'는 식의 억측은 삼가자.

6 현존하는 식민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주의의 바람이 불고 열강 구조가 개편되며 거의 사라졌다. 역으로 말하면 아직도 남아 있는 식민지가 있다는 소리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영국, 미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같은 서방 세계 국가들이 대서양이나 오세아니아 등지에 소유하고 있는 타히티, 마르티니크, 세인트헬레나, 포클랜드, 버뮤다, 버진아일랜드, 누벨칼레도니, 아루바, 퀴라소, 카나리아, 아소르스, 등 속령 섬들처럼 현재도 존재한다. 또 중국의 지배 하에 있는 티베트, 위구르덴마크, 노르웨이북구 왕국들의 지배하에 있는 그린란드페로 제도, 스발바르 제도북극해 지역 같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서방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러한 속령 섬들의 대부분은 독립의 필요성을 그리 느끼지 못하는데다 독립하여 주권국가를 경영할 의지가 없는 곳들이다. 독립해서 듣보잡 국가 국민으로 사느니 강대국 국민으로 사는 게 해외 나가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대국들도 괜히 챙겨야 할 국민만 늘어나니, 형식적이라도 독립시켜 주고 단물만 빨아먹지 속령을 새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식민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익이 있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예를 들면 누벨칼레도니의 경우 세계 니켈 매장량의 약 20%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니켈 채굴로 인한 막대한 수입이 프랑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경우 프랑스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프랑스는 이 식민지 덕택에 세계 제2위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보유하고 있으며, 알제리독립 이후 알제리사막 지역을 핵실험 장소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 이후 주로 이 지역을 핵실험장소로 사용하여 주민들의 반발이 매우 컸다. 누벨칼레도니의 경우 1980년대 이후 격렬한 독립운동이 벌어져 무력 충돌까지 일어난 일이 있을 정도. 내부적으로 보면 심각한 경제적 격차와 식민지배적 경제구조로 인해 해당 섬의 원주민들은 말이 같은 프랑스 국민이지 사실상 주변인화되는 등 사실상 20세기의 식민지와 다를 바가 없는 착취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우에도 프랑스처럼 떨어진 곳에 섬 영토가 있는데 영국의 경우도 프랑스와 비슷하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전 세계에 미군을 깔아둬야 하는 구조 때문에 거점으로써의 이득을 보는 편이다. 이를테면 괌이라든가. 아예 50번째 주가 된 하와이라던가. 이쪽은 태평양 함대의 최중요 거점이기도 하고.

결국 식민지 문제는 예전에 비해서는 줄어들었지만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런 해외 식민지들이 무조건 독립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26] 홍콩마냥 대접을 잘 받아서 차라리 식민지 시절이 나았다고 추억하는 사례는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주민족들의 입장에서 더욱 심각한 사례는, 식민지 본국에서 건너온 식민자들이 자기들 주도로 본국에서 독립해 버린 경우다.(...) 보통 이런 나라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원래 살던 민족의 수와 영향력을 줄여 소수민족으로 만들어 찍 소리 못하게 함으로써 자국 건국에 얽힌 약탈과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고, 권위주의적인 본국에서 해방되려 투쟁한 자유의 나라들'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라틴아메리카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쿠바등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며 식민지의 원래 뜻에 가장 잘 부합하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신대륙 국가들은 미국/유럽에 짓밟힌 "순수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가장 잘 하는 부류다. 독립하자마자 원주민 땅 뺏어서 유럽인 이주자한테 더 많이 주지 못해 안달한 사람들이 바로 그 독립 지도자들 아니었는가? 독립 이전에는 오히려 가톨릭 교회와 바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 후안 데 미라아나 등의 양심적인 학자들 주도로 원주민과 노예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와 자치를 존중했으며, 북미의 경우도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신대륙 독립운동가들의 대의에는 "원주민 땅 마음대로 못 빼았게 하는 잔소리 시어머니 본국 정부를 엎어 버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뺏어 먹자!"라는 계산이 노골적으로 깔려 있었다. 아이티 등은 예외.

흔히 이런 나라들이 '민주주의의 종주국' 소리를 들으며 프레드릭 잭슨 터너 같은 미국인 역사학자는 이를 프론티어 데모크라시라 하여 아예 식민주의와 민주주의를 깊이 연관지었다.

7 영향

7.1 지배국

독립이 된 이후에도 식민지는 과거 종주국에게 이득이 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종주국의 언어 영향력 확대이다. 과거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독립한 이후에도 대부분 그 종주국의 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라틴아메리카를 정복한 스페인어포르투갈어. 거기다 식민지 시대에 쌓인 학맥과 인맥으로 구 식민지 국가의 지배층과 지식은 구 식민지배국의 대학에서 학문을 수입하거나 유학하여 구 식민지배국의 문화 지배가 계속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종주국들은 인재난이 심한 분야인 건설업과 제조업 등에 언어가 통하는 과거 식민지였던 개도국의 인력들을 충당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경제난을 극복하고 또한 경제를 성장시킨 나라들이 대표적으로 스페인프랑스이다. 물론 스페인은 다시 위태위태해졌지만(...)

다만 이것이 꼭 이익은 아닌 게 본국이 개판이 되고 반대로 식민지가 잘 나가면 본국이 오히려 구 식민지 국가들에게 인재를 제공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 현재 스페인포르투갈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이 자국 청년층 및 엘리트들이 한창 자원 개발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앙골라, 브라질, 칠레 등 과거의 '식민지'로 역관광진출하는 현상이다. 게다가 스페인포르투갈의 경제 위기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부실한 기간산업 및 유로존 체제 등 근본적인 경제 구조 자체의 문제인지라 단기간 내에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7.2 피지배국

식민 지배를 당한 나라는 훗날 독립하더라도 자주적인 국가 운영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를테면 식민지 시절 지배자들의 뒤를 핧으며 거대한 부와 권력을 축적한 매국노들이 독립 후에도 여전히 부와 권력을 쥐어잡고 있고, 아니면 반대로 독재자가 된 영웅 문서에서도 보이듯이 독립 운동 투사가 총 권력을 움켜쥐며 독재자로 변모하기도 한다. 식민지 주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로 인한 각종 부정부패와 경제적 혼란이 만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그 때문에 정부와 지배층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여 공권력 무시도 심하고 치안이 엉망이다. 또한 식민 지배 시절 지배국들이 멋대로-혹은 의도적으로-헤집고 갈라 놓은 그 나라의 민족, 문화, 역사 등의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식민지 시절 본국의 이해관계로 만들어 놓은 경제환경이다. 피지배국의 경제상황과는 무관하게 식민 모국의 분업화 과정에서 플랜테이션 등 특정 산업만을 기형적으로 발전시킨 경우가 많다. 비유하자면 식민 모국이 자동차를 만들면서 A 식민지는 유리창만, B 식민지는 타이어만 만들게 한 것. 그러다 보니 피지배국이 독립했지만 해당국의 산업 구조 자체가 식민 모국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경제적 혼란 및 침체상황이 발생하고 이는 결국 나라만 형식적으로 독립했지 산업 전반은 식민 모국을 본거지로 하는 기업집단에 의해 또다시 지배되어 사실상 식민지 시절이나 다름 없는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게다가 식민지 시절 지배국이 식민지 주민들에 대한 교육 거부 및 축소, 강간 및 강제노역 동원, 차별 등으로 인해 식민국 인구 특성이 변질되어서 생기는 인종 및 민족차별 등의 문제도 있다. 게다가 식민지배자가 물러간 대신 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민족 외에도 이념 차이로 인해 나라가 갈라지기도 한다.

비교적 재출발이 수월했던 필리핀, 네덜란드, 벨기에 등은 꽤 예외적인 경우이다. 필리핀은 섬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외세 침입이 많지 않았으며 네덜란드는 스페인이랑 독립전쟁해서 이겨서 독립했고, 벨기에는 국가들 간의 유대감이 깊은 유럽 쪽 국가였으므로 그나마 평화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27] 게다가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아시아나 아프리카보다 수백년 앞서 독립했으며 석탄이 풍부하고 영국과 가까운 지역적 이점을 살려 유럽 본토에서 거의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난 나라였으며 벨기에의 경우는 유럽 제 2의 항구도시인 안트워프를 보유하여 지정학적 위치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국가들보다 재출발이 아주 쉬웠다.

따라서 진정한 예외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같은 국가들이다.어째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 국가들 뿐이다. 이런 나라들은 하나같이 국가를 세운 주체가 원주민이 아니라 원주민들을 억압하는 유럽 출신 백인 식민주의자들이 본국에서 독립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미국이 남북전쟁 같은 일을 겪었다지만 내전은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에도 있는 일이며, 원주민 말살 정책은 사실 미국 쪽에서 영토 소유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집단을 없애거나 약화한다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좋은 일'아니었는가.[28]

그리고 종교민족주의 문제 특히 열강들에 의해 민족,종교적인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국경이 슥슥 나뉘어진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 쪽이 가장 심각하다...물론 이 쪽 동네들도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가 없었던 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같은 국가들도 내전이 일어났지만(...)[29]

8 식민지였던 국가의 국력이 지배국이였던 국가 이상이 된 경우

피지배국이 지배국보다 국력이 비슷해지거나 우월해진 사례는 매우 희귀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배국이 피지배국을 마구 착취해갔기 때문. 하지만 흔치 않게 피지배국이 지배국보다 앞서거나 비슷하거나 상당히 근접한 예시도 존재한다.

다음은 그런 흔하지 않은 선례들을 거론해본다.
기준은 국력 문서의 초강대국, 강대국, 지역강국, 중간국을 기준으로 하며, 피지배국이었던 국가의 국력이 지배국이었던 국가의 국력과 같은 등급이거나 높은등급일 경우로 한다.

세계 최강대국으로 미국 독립전쟁으로 독립한 후 일개 강대국인 영국을 넘어섰다. 게다가 "주영미군"까지 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지역강국으로 중간국인 포르투갈을 아득히 추월하고 BRICS의 일원이 되었다.
애초에 나라 크기가 포르투갈의 80배가 넘는데다가, 인구도 브라질이 20배 가량 많으며 독립 당시부터 이미 포르투갈은 인구 수로 따돌린 상태였다.[30] 게다가 브라질은 페드루 2세 치하에서 적극적으로 근대화 정책을 펼치고 공화정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이민을 널리 받아들면서 공업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데 반해, 포르투갈은 혼란기를 겪고 살리자르 하에서도 공업화가 더딘 상황이었고, 거기에다가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벌어진 장기간 전쟁으로 발전이 크게 뒤쳐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이 1970년대 오일 쇼크 때부터 90년대까지 경제적으로 막장 테크트리를 타고 반대로, 포르투갈이 70년대 들어 민주화가 정착되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브라질에서 포르투갈로 대대적으로 유입이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가, 2010년대 이후에는 다시 역전되어서 많은 포르투갈인들이 유로존 위기로 인해 미래가 안 보이는 조국을 떠나 브라질 땅에서 새출발을 하고 있으며 이는 포르투갈의 인재 유출을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포르투갈이 포르투갈어의 표준 지위를 포기하는 안습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같은 시기 스페인은 스페인어 문법을 일방적으로 고치고 이대로 쓰라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통보했는데, 그 누구도 스페인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반박하지 못했다.

네덜란드와 같은 지역강국으로 분류된다. 경제력과 군사력 규모에서도 네덜란드를 넘어섰고 영토 면적도 지배국인 네덜란드보다 더 크다. 사실 그건 인구빨이 받아서 그러거고 네덜란드와 달리 정치적으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다. 1인당 소득도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이고.

스웨덴, 덴마크와 같은 중간국으로 분류된다.
덴마크스웨덴의 지배를 겪고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북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국가였으나그래봤자 세계적으로 보면 부자국가 1970년대 북해 바다에서 석유가 나오고 이후 석유 수출을 기반으로 경제 발전, 복지 등에 투자하면서 모든 국력 부문에서 지배국이었던 스웨덴과 덴마크를 역전했다. 오죽하면 옛날엔 노르웨이인들이 스웨덴으로 일하러 가던 게 이젠 반대로 스웨덴인들이 노르웨이로 일하러 오는 신세가 되었을 정도.

17세기 당시에 자신들을 지배했던 스페인 제국을 추월했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로 다시 역전된다.

과거에는 지배국이었던 스페인을 완전히 능가할 정도로 강대국으로 대접 받던 국가 중 하나였으나... 1929년 대공황이후로 망해버렸다.(...)

2016년 현재 gdp에서 스페인(1조 2,423억 달러)이 멕시코(1조 824억 달러)보다 높다. 물론 1인당 gdp는 아직 스페인이 높고, 스페인이 국가위기급 경제위기를 맞은 여파가 있어서 아직은 두고 봐야 한다.

그러고 보니 취소선 쳐져있는 나라들은 셋다 스페인제국의 식민지였다.

9 문서가 작성된 과거의 식민지 목록

현존하는 식민지는 속령 문서 참조

10 관련 문서

11 인터넷에서의 식민지


정전에 가까운 커뮤니티를 자기들 것으로 점령하는 경우와, 멀쩡한 커뮤니티를 침략자(?)와 비슷한 성향으로 물들게 만들 경우 이를 식민지나 멀티라고 일컫는다. 디시인사이드의 경우 전자에 해당하는 케이스가 많으며, 이는 점령갤 문서를 참고할 것.
  1. 스페이스 콜로니도 일종의 식민지이다. 단 우리가 흔히 아는 식민지와는 전혀 다르다. (후술할 내용 참조)
  2. 현재에도 남아있기는 하다. 프랑스령 기아나, 영국 or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6번 단락 참고.
  3. 고대의 대표적인 식민지 국가로는 로마와 자웅을 겨룬 카르타고가 있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식민지에서 시작했으며 본국 멸망후에도 살아남아 크게 성장한다.
  4. 일례로 스타크래프트크립 콜로니만 해도 크립을 지면에다가 '확장'시키는 것이지 크립으로 지면을 '착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5. 물론 원주민들에 대한 약탈의 목적도 있었다.
  6. 이 시절 아프리카에서 끌려간 노예가 최소 수천만 명에서 최대 억대의 수일 수도 있다고 한다(…)
  7. 오죽하면 스페인은 식민지에서 나는 은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겪을 정도였다.
  8. 아메리카 식민지의 효용성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애초에 자원의 저주가 생긴 이유를 생각해보자.
  9. 정확히 말하자면 스페인은 이전부터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금 조달이 시급했다. 이게 신대륙 개척 이전 레콩키스타를 할 적에는 양모 같은 상품들을 팔아 조달하는 식으로 해결이 되었다. 이 외에도 아라곤은 지중해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신대륙 개척 이후에는 네덜란드 같은 부유한 동네에서 거둔 세금과 귀금속으로 해결이 되었다.
  10. 물론 영국의 모직물 산업 역시 이러한 경제대국의 발판이 된 이유 중 하나였다.
  11. 자세한 것은 아편전쟁 문서 참고
  12. 다만, 이런 향신료, 금 은의 자원으로 직접 혜택을 보는 이들은 재벌같은 이들로 제한되어 있었다.
  13. 물론 수에즈 운하 인수는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이었다.
  14. 사실 이러한 주요 거점의 인구 분산이 원래 그 식민지의 컨셉이다. 식민지의 한자를 풀이하면 나무를 심듯이 사람을 심는 땅이라는 의미이므로. 근대 이후에도 이러한 인구 분산적 경향은 어느 정도 수행된 바 있다. 히키아게샤가 대표적이다.
  15. 19세기 말 이후의 식민지 경영은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비판이 되었는데, 홉슨의 제국주의론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레닌 역시 홉슨의 제국주의론을 발전시켜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 관점에서도 제국주의론을 저술했다. 홉슨의 아이디어는 일본의 이시바시 단잔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16. 이 병사들이 영국군에게 총을 겨눈다고 생각하면 딱 답이 나오는 문제다.
  17. 오히려 자국민 중 사회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되는 인력을 외부로 보내려고 일부러 식민지를 확장한 영국 같은 나라도 있었다.
  18. 물론 종교재판 등의 다른 요소도 있다.
  19. 포르투갈의 경우 분명 인도 무역 자체는 짭잘했지만 결국에는 무역이 낫냐 식민지 정복이 낫냐의 문제. 더 심각한 것은 인도 무역은 이문도 짭잘했지만 리스크도 그만큼 큰 산업이라 선원이나 선박 손실이 심각했다. 특히 선원들은 한 번 잃으면 다시 양성하기 어려워서 망했어요.
  20. 홍콩처럼 현지인에게 선정을 베푸는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처음부터 쥐어짜는게 목적인지라 당연하다.
  21. 물론 역으로 이득을 바라고 잘 협조했던 사람도 있긴 있었다. 이를테면 이완용을 위시한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이 대표적.
  22. 가격혁명
  23. 뒷날 총리대신 역임
  24. 식민지로 가면 보다 고래등같은 집에서 원주민들을 종처럼 부리고 살 수 있다는 열망이 하층민들에게 적지 않게 퍼졌다. 한 몫 잡은 이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고 비교우위 원리에 따라 오히려 식민지인들 때문에 3D산업, 농업(모토야마 히로시의 <나라가 불탄다>라는 만화에서는 조선 등지에서 가져오는 일본 현지 농민들이 착취와 몰락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등지에서 몰락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심지어 식민지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등 사실상 현지와 동화했던 사람도 있었다. 일본의 경우는 나라에서 강요한 구석히키아게샤 참조.
  25. 자원 원산지를 차지하거나 무역하기 좋은 곳을 차지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전자의 사례는 콩고 민주 공화국 후자의 사례는 홍콩
  26. 실제로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가장 안 좋은 경우가 프랑스령 기아나로 배치되는 것이다. 말이 프랑스 땅이지 사실상 식민지로, 현지인들의 민심이 최악이라 근무 환경은 파병지역 못지 않게 안 좋은데 파병 수당도 못 받고 본국 근무와 동일하게 처리되기 때문.
  27. 실제로 네덜란드는 벨기에의 독립을 막으려고 전쟁까지 각오했지만 유럽 국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독립을 허용해야 했다.
  28. 미국 독립 전쟁 발발의 원인 중 하나는, 영국 정부가 북미 원주민과 맺고 식민지인들에게 강제한, 추가적인 서쪽 영토 확장을 금하는 조약이었다.
  29. 라이베리아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서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이력은 없었고 19세기 미국의 해방 흑인 노예들이 미국 정부의 지원을 얻어 아프리카에 땅을 차지하여 국가를 건국하는 등 제2차 대전 후 서구 열강의 식민지에서 독립국으로 독립한 다른 아프리카의 나라들과 달리 처음부터 독립국에서 시작한 나라였으나 국가를 세운 소수의 미국 노예 출신 흑인 기득권 세력들이 국민 다수 아프리카 흑인 토착민들을 차별하고 억압하여 20세기 내내 권력을 독식하는 등 내부 통합에도 실패하여 내전이 터질 위험성이 매우 높았던 국가였다.
  30. 물론 포르투갈의 인구가 더 많았을 때도 있지만 이건 원주민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일시적으로 인구가 격감한 영향이며 포르투갈 현지에서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립되고 노예무역으로 흑인인구도 꽤나 유입되면서 재추월했다. 그리고 독립 이후로도 식민 본국인 포르투갈은 물론 이탈리아, 아랍, 중국, 일본 등지로부터 이민인구를 널리 받아들였고 반대로 포르투갈은 혼란속에서 이민을 받을 여유가 안되었기 때문에 애초에 포르투갈보다 인구가 적을래야 적을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