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성군

福城君
1509 ~ 1533

조선의 왕족. 본명은 '이미(李嵋)' 이며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서손(庶孫)이자 11대 임금 중종의 서장자(庶子)이다.

중종과 그의 후궁인 숙의 박씨[1]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초명은 학수(鶴壽)였다가 미(嵋)로 개명하고 본래 '서성군(瑞城君)' 에 봉해졌다가 복성군으로 봉해졌다.

중종의 계비이자 윤임의 여동생 그리고 12대 임금 인종의 어머니인 장경왕후가 인종의 출생 직후 사망하였고 후임자인 문정왕후도 오랫동안 왕자를 낳지 못하자 어머니인 경빈 박씨는 복성군을 왕으로 만들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경빈 박씨가 작서의 변에 연루되어 세자를 저주하였다는 누명을 쓰자 그도 작호를 빼앗기고 유배갔으며 김안로의 끈질긴 주청으로 마침내 중종의 어명에 따라 어머니와 함께 본인도 사사되었다. 하지만 훗날 김안로의 아들인 김희가 사건의 진범임이 드러나면서 인종 재위 때 명예회복을 하였다.

그러나 딸 하나 외에는 후계자가 없어서 선조 때 선조의 4남 신성군을 양자로 삼았다. 하지만 신성군이 자식 없이 사망하여 정원군의 3남 능창군을 양자로 삼았고 능창군이 역모에 말려 광해군 때 사사되자 다시 선조의 손자 평운군을 양자로 삼았다.[2]

동생으로 혜순, 혜정옹주가 있으며 이들 역시 복성군이 처형되자 작호가 박탈되어 폐서인이 되었다가 인종 재위 때 복성군과 함께 명예회복을 하였다.

그의 여동생과 어린 딸은 그야말로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후에 인종이 되는 세자가 눈물로 간곡히 용서를 빌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름이 비슷해보이는 봉성군과는 같은 성종의 서손이자 중종의 서자로 어머니가 다르기 때문에 이복형제 지간이다.
  1. 후에 경빈으로 승격되었다.
  2. 선조의 9남 경창군의 3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