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 수용소

주의. 이곳은 여행금지 국가·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대한민국 여권법에 의한 여행금지 또는 기타 법률에 의해 출입이 금지된 지역입니다.
해외 여행 시 반드시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서 해당 국가 또는 지역에 대해 정보를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안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운영
교화소(1) 개천 교화소(3) 신의주 교화소(4) 강동 교화소(8) 용담 교화소(12) 회령 전거리 수용소
(22) 오로 교화소(25) 청진 교화소(77) 단천 교화소
관리소(14) 개천 수용소(15) 요덕 수용소(16) 화성 수용소(18) 북창 수용소
집결소청진 농포 집결소신의주 집결소무산 집결소혜산 집결소온성 집결소
노동 단련대온성 노동단련대영광 노동단련대
명칭 불명대흥 수용소아오지 탄광철산 탄광
폐지
관리소(11) 경성 수용소(12) 창평 수용소(13) 종성 수용소(18) 북창 수용소(21) 단천 수용소
(22) 회령 수용소(23) 덕성 수용소(24) 동신 수용소(26) 승호 수용소(27) 천마 수용소
북창 수용소
정식 명칭18호 관리소
영문 명칭Pukchang (T'ŭkjang) Internment Camp
관할 집단북한
면적73㎢ (28제곱마일)
위치북한 행정구역상 : 평안남도 북창군 득장로동자구 인근 또는 득장지구
대한민국 행정구역상 : 평안남도 개천군 봉동면 대동강 이남 전역(기양리 일대 제외)
인근 교통편대동강을 따라 대건선이 지나며 봉창역이 설치되어 있으며 득장선 석산역이 동쪽에있으나 이어지지 않음
수용 인원약 15,000명
이명득장 수용소
존속기간~2013년

北倉 收容所 / 北倉 第十八號 管理所

북한정치범수용소.

정식 명칭은 북창 정치범 수용소. 북한 내에서 불리는 정식 명칭은 보안성 제 18호 관리소이다. 참고로 요덕 정치범 수용소의 정식 명칭은 제 15호 관리소. 득장(得場)지역에 있어 득장 수용소라고도한다. 참고로 북창 수용소가 있는 봉창역 바로 옆에는....

이 수용소의 경우 요덕 수용소처럼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이 공존하는지 개천 수용소, 화성 수용소, 회령 수용소 처럼 100% 완전통제구역 인지, 아니면 가능성은 낮지만 철저한 혁명화구역 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석방자가 있는 것을 보면 충격적이게도 완전한 혁명화구역이다![1][2][3]

이 수용소의 특징은 바로 인민보안성, 즉 현재의 인민보안부에서 관리한다는 것이다. [4] 인민보안성은 우리나라의 경찰과 비슷하며 남한의 교도소에 해당하는 교화소"를 운영한다. 즉 인민보안성이 관리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교도소와 정치범수용소의 중간적인 역할은 한다. 따라서 이 수용소는 정치범만 수감하지 않고 경제범 같은 다른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수감대상이 된다.

신동혁이 이 곳 출신인데 완전통제구역인 14호 관리소에서 나왔다고 거짓으로 미국에서 증언을 하고 책을 두권 냈다가 문제가 되었다. 모두 똑같은 인세의 지옥은 많지만 굳이 서열을 매기자면
14호 관리소등 완전 통제구역 일명 지옥 > 15호 관리소(요덕 수용소)등 혁명화 구역 일명 천국 > 18호 관리소(경제범 수용소) 정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동혁이 가장 급이 낮은 18호 출신이면서 14호 출신이라고 거짓 선전을 하여, 15호등 혁명화 구역 출신자들이 그를 비난을 한다.

무용가 최승희안성희 모녀도 이 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승희의 제자로 무용가로 활동하다 탈북한 김영순[5]이 최승희와 그녀의 딸 안성희가 이 곳에 끌려가 죽었다고 증언을 하였다. 안성희가 이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한 쪽 팔을 잃기도 하였다는 확실치 않은 소문도 있는데, 이 수용소에서 1975년부터 2002년까지 수감 되어 있었다는 탈북자 김혜숙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 수용소는 탄광에서 하루 16시간에서 18시간 이상의 혹독한 강제노동을 시킨다고 하며 허술한 안전 관리로 사망 사고나 중상을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는 걸 봐서는 어쩌면 탄광 붕괴 사고나 폭파 사고 등으로 정말로 한 쪽 팔을 잃었을수도 있다

행정구역은 북창군 소속이라고도 하는데 인구조사에서 득장지구라는 것이 등장해있다.

여담으로 이 항목은 현재 북한에 존재하는 관리소 중 가장 늦게 작성되었다. 한편 이 수용소도 회령 수용소처럼 사실상 폐쇄된 상태였다가...[6] 다시 수용소가 재개한 정황이 인공위성을 통해 포착되었다. #

  1. 애초에 이곳이 완전통제구역이란 명백한 증언은 없다. 왜냐면 요덕이야 면적이 상당히 넓어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나눌수 있지만 여기는 그리 넓지 않다.
  2. 탈북자가운데 김혜숙씨나 강명도 는 북한에 있을 때 18호 관리소에 수감되었었다고 증언했다. 혁명화구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석방이 설명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강명도는 북한에 있을 때 권력을 가지고 못된 짓을 일삼아(대외 무역 사업을 하면서 김정일을 사칭해서 막대한 외화를 축적했고 남한으로 탈북할 때도 한 몫 챙겨서 왔다.) 평판이 좋지않았다고 하며, 수감된 기간도 김혜숙씨보다는 훨씬 짧았거니와, 다른 사람들보다는 편한 수감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3. 앞서 말한 것 처럼 석방되었다는 증언이 존재하나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교육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증언이 존재하지 않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완전통제구역에서는 그런 교육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혁명화구역이란 것을 확인하는 기준으로 김씨 일가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가에 대한 것을 알아야한다는 점은 필수사항이다.
  4. 14호 관리소,15호 관리소,16호 관리소,22호 관리소국가안전보위부에서 관리, 통제한다.
  5. 성혜림의 절친한 친구였고 성혜림이 김정일 관저들 중 하나로 갈 때 그 사실을 통보한 유일한 사람(당시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한다.)이였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요덕 수용소에 10년 동안 수감되었다가 운 좋게도 풀려나오는 데 성공했고 수용소에서 겪은 상당한 고생때문에 이미 북한 체제에 대해서 진절머리가 나서 남한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6.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보고로 서울신문에서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