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혁

1 북한의 前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이자, 탈북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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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에 성공한, 대한민국인민.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거주 중.

다른 탈북자들과는 달리 수용소에서 태어났고, 한번 들어가면 다시 살아 나올 수 없다는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났고 22년간 살아남았으며 끝끝내 탈출까지 한, 대단하지만 매우 기구한 삶을 산 사람.

1982년 11월 19일 생으로, 평남 개천의 정치범수용소, 그것도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수용소 내에서 일을 잘 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표창결혼'으로 맺어졌다고 한다.

본명은 '신인근'이었으나, 남한으로 탈출 후 개명했다.

탈출 후에는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라는 수기 형식의 책을 집필하였으며, 그 책의 내용이 강철환의 "수용소의 노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신동혁의 삶에 비하면 강철환의 삶은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일 정도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둘 다 참혹하게 수용된 건 똑같다.

자신의 부모가 왜 정치범수용소에, 그것도 완전통제구역에 수감되었는지는 알지 못하며 다만 아버지의 형제 중 탈북자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어머니와 형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혔고 모진 고문 끝에 그가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했다. 본인 또한 연좌제로 수용소 내에 있는 취조실에 끌려 들어가 14살의 나이에 지독한 고문을 당하고 같은 곳에 있던 동료의 조력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본인이 회고하기를 이 때 어머니와 형이 눈 앞에서 죽었는데도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상당수를 강제 노역을 하면서 지내다 보니 감정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으로 탈북 후 검사 결과 특히 긍정적인 감정들(사랑, 우정 등)에 대해서 무엇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흠좀무. 심지어 어머니는 사랑의 대상이 아닌 그저 배급된 음식을 두고 싸우는 경쟁상대에 불과했으며, 이따금 그가 어머니의 점심까지 다 먹어버리면 그녀는 그를 사정없이 때리곤 했었다.

완전통제구역에서의 교육은 노동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매우 기초적인 교육만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실제 그가 출연한 동영상을 보면 간단한 돈계산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2] 신동혁을 검색하면 좌르륵 뜨지만, 그의 세 번째 손가락의 첫마디는 유독 짧은데 이는 피복 공장에서 재봉틀 수리 일을 하던 중 재봉틀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절단당한 것[3].

이렇게 갖은 수모를 당한 신동혁은 세 번의 탈출시도 끝에 2005년 1월 2일, 마음이 맞았던 수용소 동료의 희생[4]으로 전기철조망을 넘어 극적으로 탈출해 성공했다고 한다. 수용소 밖에서 화폐의 가치를 모르다가 한 민가에서 쌀가마니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간식과 담배를 산 뒤, 중국 국경의 비대원에게 뇌물로 주고 북한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후 중국을 떠돌며 노가다를 하다가 상하이의 한 식당에서 만난 기자의 도움으로 주중 한국 대사관에 보호받고 2006년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현재는 오랜 수용소 생활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각종 질환들(육체적, 정신적)에 시달리고 있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모양. 가끔 해외에 가서 특별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강연을 펼치고 있으며 남한 내에서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다.[5] 주로 보수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세간에 밝히고 있으며 구글에서 '신동혁'으로 검색하면 내용이 쭉 뜬다. 인터뷰의 내용은 수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6]

2012년 4월 미국에서 논픽션 장르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Escape From Camp 14>라는 책을 또 냈다. 본인이 쓴 것은 아니고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였던 블레인 하든 씨가 그를 인터뷰하여 책으로 낸 것.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를 블레인 하든씨에게 고백했는데, 어머니와 형의 탈출 시도를 간수에게 밀고한 것은 자신이고 그 때문에 그가 보는 앞에서 각각 교수형과 총살형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2013년 3월 27일 14호 수용소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2013년 8월, 유엔 북한인권조사관 주재로 열린 청문회에서 자신은 어머니와 형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단지 먹을 것을 놓고 경쟁하는 상대로밖에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또한 탈출 논의를 하던 그들을 밀고했을 때가 가장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워낙 수용소 생활이 가혹했기 때문에 가족애나 정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2014년 10월 26일 우리민족끼리가 "거짓과 진실 신동혁은 누구인가"라는 영상을 업로드 했다. 영문자막이 첨부된 이 영상은 신동혁의 수용소 생활 증언이 모두 거짓이며 수용소에 산 적이 없다고 한다. 이를 두고 신동혁 본인은 북한에서 신동혁의 아버지를 인질로 잡고있으며 '독재자가 내 아버지께 무슨 행동을 하든 내 눈을 가릴 수 없고 내 입을 막을 수 없다'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고발을 계속한다는 뜻을 밝혔다. 관련 기사

2015년 4월 6일 미국에서 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1.1 주장해 왔던 내용 번복

2015년 1월 18일 신동혁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서전의 내용 일부가 사실이 아님을 시인하였다관련기사. 신동혁은 기존에 14호 수용소로 알려진 평안남도 개천정치범수용소에서 출생하여 2005년 탈북할 때까지 혹독한 인권 탄압을 받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 왔다. 하지만 신동혁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이틀 전인 미국의 언론인인 하든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18호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고 밝혔다.[7]이는 그가 기존에 주장해 왔던 14호 관리소에 대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동혁은 자신의 글에서 14호 수용소 탈출을 계획했던 어머니와 형을 수용소 당국에 고발하여 어머니와 형이 눈 앞에서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봤다는 취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였다.[8] 또한 13세 때 수용소에서 탈출하려다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였다.

신동혁의 이러한 내용 번복은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기자의 주장과 같이 거짓으로는 악을 이길 수 없다는 식의 원론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일단, 북한에 대한 유엔 인권 결의안의 배경과 논리를 제공한 것이 바로 신동혁의 증언과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즉, 신동혁의 주장의 상당 부분이 거짓이면 그러한 인권 결의안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인권 결의안이 대의원 회의에서 통과되었음에도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는 아예 심의조차 하고 있지 않다.

3월 27일 북한인권 결의안이 채택됐다. 관련 기사
신동혁은 북한인권운동을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신동혁은 3월 6일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것과 탈출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즉 14호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신의 가족등 일부만 남기고 대부분을 강건너로 보냈는데, 원래 있던 쪽을 18호라고 이름을 변경하고 강건너를 14호로 명명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만 변경된 18호에서 생활중 탈출한 후 다시 붙잡혀 14호 수용소로 보내진 후 다시 탈출해 여기로 온 것이라고. 관련 인터뷰
자신의 말로는 18호가 더 힘들어, 14호에 있던 수용자들이 18호로 오기 위해 강을 건너 헤엄치다가 힘이 없어서 빠져 죽기도 했다는데, 이쯤 되면 내가 더 고생했다는 오기로 보인다. 정치범들이 자의적으로 다른 통제구역으로 이동할려고 했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9]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래 14호에 있었는데 수용소가 18호로 이름이 바꼈다거나, 탈출후 잡혀서 14호로 갔다는등 하는 주장은 자사전을 출판할때는 전혀 없던 말이다. 자신이 14호에 있었다는 주장이 거짓이 아니냐고 추궁을 받자 지금와서 등장한 새로운 주장이라, 급하게 날조하였다는 의심은 어쩔수가 없다.
일단 15호 출신인 강철환은 안명철의 주장을 매우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이때문에 강철환이 인터넷에 쓴글마다 보수주의자끼리 격렬한 키베가 일어난다.

한편 신동혁의 거짓 증언을 계기로 탈북자들 사이에서 새로 탈북하는 사람의 주장이나 경력을 검증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 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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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등장인물로 현상태의 친구이다. 우상고에서 피닉스라는 이름으로 밴드부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맡았다. 이후 피닉스가 해체될뻔한 갈등을 겪는다.

싸움실력은 등장인물에 비하면 약한 편이지만 의리는 그 누구 못지 않다. 현상태가 고민할때 항상 정신적인 힘이 되어준다. 마지막화 김대섭의 결혼식에 모습을 비춘다.

3 최고다 이순신의 등장인물

신동혁(최고다 이순신) 항목 참조
  1. 강철환이 수감되었던 혁명화구역의 커리큘럼'만'은 북한의 일반 학교와 비슷한 수준이다.
  2. 한 마디로 이곳에 수감되면 인간 아니 짐승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영원히 나오지 못한 채 죽어가는 운명인 것이다.
  3. 이도 사실이 아님을 시인하였다. 신동혁은 자신의 손가락이 절단 당한 이유로, 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고문을 당하는 도중 심문관이 손가락을 잘라버렸다고 기존의 주장을 번복하였다.
  4. 우연히 평양 출신 태권도 사범 박씨 성의 40대 남성을 수용소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에게서 수용소 바깥의 이야기를 듣는다. 특히 먹을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그것만 생각나서 결국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같이 탈출하려던 태권도 사범은 결국 전기 철조망에 감전되어 죽게 된다.
  5. 이는 북한의 인권 문제가 남한보다는 외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실제 신동혁 본인도 처음에는 남한에 책(세상 밖으로 나오다.)을 내는 등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려는 시도를 했으나, 결과는 꽤 좋지 않았는지 남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6. 다만 이 항목은 신동혁의 인터뷰 내용과 수기의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전제로 작성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탈북 후의 조사에서 수용소 주변의 지형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 하지만 이건 그가 지낸 개천수용소 내에서의 생활이 워낙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수기의 내용은 꽤나 구체적이고, 또한 고문으로 인하여 남은 상처들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하기도 좀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결국 밑에 나온 것처럼 6세때 18호 수용소로 이감되어 살았다는 것이 밝혀져서 이 모순은 풀렸다.
  7. 그러나 그렇다고 '에이~ 그럼 별로 고생 한 것도 아니네?'라고 하지 말길 바란다. 이곳도 14호 관리소보다는 약한 정도지,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이다. 애초에 여기도 정치범수용소다.
  8. 주성하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은 탈출죄가 아닌 살인죄로 사형당한 것이라는 다른 탈북자의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북한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공개한 문헌 자료와 일치하는 것이다.
  9. 기본적으로 정치범들은 거주지 이전의 자유가 없으며, 천국이라고 불리는 18호 수용자들이 지옥이라고 불리는 완전통제구역 14호로 갈려고 했다는게 그동안 탈북자들의 주장과는 너무 배치되어 납득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