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와 잇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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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을 들고.

佐川一政
1949년 6월 11일 ~

1 개요

일본유명한 작가이자 무죄로 풀려난 살인마. 피해자에 대한 사죄는커녕 자신의 살인행위를 책으로 써 막대한 돈을 벌고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저지른 범죄 자체는 국제적으로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1], 진짜 미친 건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과 그 후 인기인처럼 다뤄졌다는 것.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때,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던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후 소총으로 쏴서 살해하고 그 시체를 먹었다. 더군다나 다 먹은 후 남은 그녀의 머리에다 대고 "당신 참 맛있었어"라고 했다는 걸로 보아 진짜 심각한 시체기호증이었던 듯하다. 뒷이야기를 하자면, 여자의 유해(...)를 암매장하러 가는 도중 근처를 지나가던 시민의 신고로 인해 시체의 존재가 발견되었다, 그 사건이 프랑스 전역의 이슈가 되자 일본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틀 뒤 경찰에 체포되었고, 자신이 한 모든 범행 내용을 자백했다고 한다. 정신분석을 위해 병원으로 보내졌지만, 의사는 그가 1살 때 앓은 장염을 뇌염으로 오인해 심신상실이라는 판정을 내려 불구속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심신상실로 그는 무죄가 선고되고, 교도소가 아닌 앙리 코란 정신 병원에 무기한 입원 조치되었으나, 14개월 후 국외추방 조치를 받았다. 일본 경찰은 귀국한 그를 체포해 재판에 회부하여 처벌할 방침이었지만, 프랑스 경찰 측은 불기소처분된 사람의 수사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며 수사 자료의 인도를 거부하여 결국 처벌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꽤나 영향력이 있던 그의 가족이 백방으로 손을 썼다는 얘기도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피해자 르네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아는 학교친구 정도였다. 기껏해야 잇세이 쪽에서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정도였다. 자신이 148cm 정도에 36kg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178cm나 되는 큰 키에 아름다웠던 르네에게 병적으로 집착했다고 한다.[2] 르네가 잇세이의 집에 왔던 이유는 잇세이가 독일 시 해석을 도와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르네를 사가와 잇세이의 여자 친구라고 부르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중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한때 일본의 인기인 중 하나가 되었다.

2 행적 및 만행

사가와 잇세이는 1949년 고베에서 태어났고, 와코대학교 문학과를 졸업 후 간사이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비교문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는데, 1981년 6월 11일, 학급 동료였던 네덜란드 여성 유학생 르네 하르테벨트(Renée Hartevelt)를 집으로 불러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여기까지야 큰 문제는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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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사진.

이후 살해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가 시를 읽고 있는 도중에 등 뒤에서 목에 소총을 쏴서 죽여버렸다. 그 뒤 시간(屍姦), 즉 시체를 강간했고, 시신을 훼손한 뒤 사진을 촬영하고 사체의 일부를 프라이팬으로 요리하여 먹었다.[3] 6월 13일, 남은 시체를 여행 가방에 담아 불로뉴의 숲의 연못에 유기하려다 목격자에게 발각되자 도주하였다. 시체를 발견한 목격자에 의해 수사가 진행되자, 다급해진 그는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고 일본으로 도주를 시도하였지만, 이틀 후인 6월 15일에 체포되었다.

그는 범행을 자백하였고, 정신감정을 위해 병원으로 보내졌지만, 의사가 그가 1살 때 앓은 장염을 뇌염으로 오인해 심신상실이라는 판정을 내려 불구속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1살 때 뇌염을 앓아서 심신상실인 사람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프랑스경찰 심신상실로 그는 무죄가 선고되고, 교도소가 아닌 앙리 코란 정신 병원에 무기한 입원 조치되었으며, 14개월 후 국외 추방되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도쿄 도립 마츠자와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1년 후인 1985년 8월에 퇴원하였다.

일본 경찰은 귀국한 그를 체포해 재판에 회부하여 처벌할 방침이었지만, 프랑스 경찰 측은 불기소처분된 사람의 수사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며 수사자료의 인도를 거부하여 결국 처벌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는 범행 이전부터 일반적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적 도착증을 종종 드러내곤 하였으며, 고교시절에는 정신과 의사에게 인육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자주 의논했지만, 의사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와코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인근에 사는 중년의 독일인 여성을 먹을 목적으로 자택에 침입하였다가 체포되었으며, 당시 구리타 공업의 사장이었던 그의 아버지, 사가와 아키라가 지불한 합의금에 고소가 취하된 적도 있을 정도.

하여튼 이 식인 살인마가 전 세계에 끼친 여파는 엄청나서, 당시 김성환 화백은 고바우 영감에서 일본인을 보고 기겁하는 외국인을 그리기도 했고, 이탈리아 여성과 결혼한 어느 한국 사업가가 쓴 책을 보면, 90년 초반에 아내와 결혼을 허락받고자 아내의 처가로 갔더니, 아내의 할머니는 자신을 무섭게 쳐다보더니 하는 말이 "자네... 설마하니 우리 손녀 잡아먹지 않을 거지?"(…) 대체 무슨 말인가 했더니만 바로 사가와 잇세이 사건이 이탈리아에서 충공깽으로 다뤄지면서, 동아시아 남성이 백인 여성을 잡아먹는다는 인식이 이탈리아 시골마을에까지 자리 잡았던 것이었다.

가관인 것은 그는 이 식인살인을 바탕으로 자서전을 냈는데, 이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일본의 정신 나간 방송인과 AV 제작자들은 그를 데려다 천박한 영상물을 찍어 팔았다. 그 중에는 고인능욕 수준의 장면도 있다. 인간 쓰레기들. 2000년대 이후엔 자신의 살인 및 식인 체험담을 여러 매체로 지겹도록 우려먹고도 모자랐는지 직접 만화로까지 그려 팔아먹었다. 혐오주의

사실 식인 살인사건은 세계 곳곳에서 터지지만, 그런 살인마들은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처벌을 받는 게 보통이고, 살인범이 회고록이나 기타 그런 걸 낸다 해도, 판매수익은 죄다 피해자 유족에게 가게 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그때는 시대가 달랐다고는 해도, 살인마, 그것도 식인 살인마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TV에 나오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 웃으며 떠들어대고, 광고에도 나오며 스타처럼 취급받는 경우는 좀처럼 없는 경우라서 더더욱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검경(檢警)에서 정신질환으로 오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책임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해외에선 당연히 아주 신나게 깠고, 일본 내에서도 어째서 그가 처벌받지 않는가, 하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와 같은 미친 살인마가 백주대낮에 당당하게 길을 걸어다닌다는 사실에 일본 국민들은 경악했고, 지금도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또한 이 사건으로 안그래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날이 갈수록 악화되던 네덜란드-일본 간 관계는 훨씬 안 좋아졌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가와 잇세이나 사카기바라와 같은 살인마들이 현재도 무사히 생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살인범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정신이상 판정이 오류임이 판명난 뒤 네덜란드 및 프랑스, 미국에선 입국 금지를 당했는데, 그는 미국에 가고 싶은데 못 간다고 징징거렸다. 참고로 그의 어머니는 자살해버렸고, 아버지는 사업이 몰락하여 폐인상태에서 죽었다. 천하의 불효자식 이젠 일본에서도 거의 잊힌 그는 일간지 칼럼니스트로 먹고 살고 있으며, 자신의 식인을 자랑하듯 쓰는 악의 고백이란 책을 내 팔아먹기도 했다. 지가 악인 줄은 아네 하는 짓을 보면 백번 죽여도 마땅할 인간 말종인데도, 꼴에 자신은 지옥에 있다고 징징거리고 있다. 악의 고백를 한국어로 번역한 수리(예명이다)라는 사람이 일본으로 가서 이 작자를 만났는데, 2000년대 중순에 만나본 그는 그럭저럭 평범한 서민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더란다.

과거 돈 많은 부모 곁에서 호강하던 시절과 달리, 이젠 스스로 벌어먹고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과거에는 돈으로 만난 것이지만) 서민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지옥운운거리니 답이 없다. VICE에서 다큐멘터리로 다룬 바 있는데, 거기 버젓이 나와서 잘난 듯이 인터뷰한 것을 보면, 살인 및 식인에 대해 일절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있다.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추정된다.

참고로 다큐에서 공개된 집 내부를 보면, 방 한쪽에 여자 사진을 도배해놨는데 대부분이 우에토 아야의 사진이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보며 정말 맘에 든다고 몇 번이고 말한다. 물론 그게 무슨 의도로 마음에 든다는 뜻인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현재 그의 소원은 서양 여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라고 한다.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소원을 이루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주길 바란다. 제발

다만 그가 돈으로 정신질환을 위장했다는 주장은 틀렸다. 애당초 장염을 뇌염으로 오진하여 정신이상자로 분류한 의사의 실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일본 측에 관련 정보 제공을 거부한 진짜 이유도 이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진짜 돈으로 해결하려다가 발각되었으면 처벌을 안 했을 리가 없다. 즉 사가와 잇세이가 까이는 진짜 이유는 정신이상을 가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인으로 밝혀진 셈인데도 그의 입장에서는 거의 천운으로 처벌을 면했으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반성하며 속죄하는 태도를 보이며 평생을 살아야 마땅할 터인데,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며 오히려 고인드립까지 쳐 대니 욕먹는 것이다.

이 인물에게서 기인해 도시전설애인을 먹은 여자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남녀가 뒤바뀌긴 했지만... 2012년 11월 한국에서 발표된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살인범이 자서전을 편찬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여론의 주목을 받는 장면의 모티브는 사가와 잇세이의 사례에서 모티브를 딴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잘생긴 사이코패스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팬클럽까지 생긴 장면은 테드 번디의 일화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살인사건은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각각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이쯤되면 왜 싸이코패스 항목에 없는지 의문이다...

3 기타

래퍼 비프리의 앨범 "Korean Dream"의 스킷인 "20130804"와 "20130806"은 각각 차와 사무실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동료들과 하는 내용이다.

구글에 이 자의 이름을 일본어로 검색해보면 피해자의 시신 사진이 나온다. 심약한 자는 검색하지 않기를 바란다.
  1. 미국에서도 제프리 다머 같은 연쇄살인마가 식인을 한 게 드러난 바 있다. 그 밖에 1980년 스웨덴에서도 사소한 싸움 끝에 아내를 죽인 남성이 아내를 영원히 사랑했다며 아내의 시체를 먹은 실화가 있고, 남자는 옥중에서 자살했다.
  2. 네덜란드 사람들은 신장이 크기로 유명하다.
  3. 상세한 내용은 사실 이보다 더 충격적인데, 살해 직후 엉덩이 살을 도려내서 날로(!) 먹은 뒤(매우 맛있다! 고 생각했다고...) 엉덩이와 가슴을 비롯한 여러 신체부위를 요리해서 먹었는데, 피해자의 팬티를 냅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 상태로 시간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