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항목 : 성동구
성동구의 법정동 | |||||
상왕십리동 | 하왕십리동 | 홍익동 | 도선동 | 마장동 | 용답동 |
금호동2가 | 금호동3가 | 금호동1가 | 행당동 | 사근동 | 송정동 |
옥수동 | 금호동4가 | 응봉동 | 성수동1가 | 성수동2가 | |
밑줄은 구청 소재지. |
사근동 沙斤洞 / Sageun-d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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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기초자치단체 | 성동구 |
관할 행정동 | 사근동 대부분 |
면적 | 1.11km²[1] |
인구 | 11,478명 (남: 6,014명, 여: 5,464명) (2015. 12. 31.)[2] |
세대수 | 6,481가구 (2015. 12. 31.) |
주민센터 | 사근동 주민센터 |
沙斤洞 / Sageun-dong
1 개요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법정동 및 행정동
법정동으로서의 사근동과 행정동으로서의 사근동의 관할구역이 조금 다르다. 법정동으로서의 사근동은 한대부고부터 살곶이다리, 서울사근초등학교까지, 행정동으로서의 사근동은 법정동 관할 구역에서 경원선 선로 동쪽까지 넓힌 지역이다. 한양대학교는 법정동 사근동에는 반만 걸쳐져 있지만 행정동 사근동에는 전체가 다 들어간다. 그러나 보통 사근동이라고 하면 법정동 사근동의 영역만 사근동이라고 하고 그 외의 지역은 왕십리라고 통칭하는 편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래에 나오는 항목 참조.
2 법정동은 행당동, 행정동은 사근동?
지금의 행당1동은 경원선 서부만 관할하지만 1980년 이전에는 경원선 동부도 관할했었다. 왕십리역 6번출구에서 한양대학교 부지 절반 정도되는 땅은 원래 행당1동의 관할이었다. 그러나 1980년 행당3동을 폐지시키고 행당2동에 먹이면서통합시키면서 행당1동이 행당2동의 관할구역 일부를 행당1동의 관할구역으로 먹었는데편입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경원선 동쪽의 관할구역을 사근동에 뱉은할양한 것이다. 그러나 법정동의 경계는 1980년 이전 그대로다. 주소는 법정동의 동명을 쓰기 때문에 이 지역은 행정동으로는 사근동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주소는 행당동이라고 쓴다. 한양대학교도 캠퍼스 부지 전부가 행정동 사근동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정문이 법정동 행당동에 걸쳐있어 주소를 행당동으로 쓴다. 예전에는 한양대학교 축제 이름이 행당축전이기도 했다.
3 타 동과 통합 떡밥
한양대학교가 사근동의 땅들을 야금야금 먹사들이면서 사근동 주민 수도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 30~40대는 사근동에 거의 살지 않으며 한양대학교 재학생들이나 30~40년 된 동네 터줏대감인 노년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구는 더욱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이며[3] 이에 행당동 혹은 마장동으로 편입하자는 말이 나왔다. 행당동으로 통합되면 35년만에 행당3동[4]이 부활하게 되며 마장동으로 통합되면 마장2동 쯤으로 통합될 것이다. 한양대학교 기숙사생들은 상관없다는 여론이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사근동에서 30년 이상 살아왔기 때문에 애향심도 깊어 통합을 반대하는 분위기다. 현재로서는 통합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사근동이 작지만 노년층이 많아 성동구의 표가 갈리는 중요한 곳이므로 구청장도 쉽게 건드리지는 못한다.
4 지명 유래 및 전설
4.1 지명 유래
사근(沙斤)이라는 말은 모래가 많다는 뜻인데 사근동이 청계천변의 퇴적된 모래밭으로 형성된 곳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사근동 청계천변에 가보면 모래를 꽤 볼 수 있다.신라 때 지금의 한양대학교 축구장 자리에 세워진 사근사(沙斤寺)라는 절에서 동명을 유래했다고 한다. 너무 오래 되어서 삭은절이라고도 불렀다고(...)그래서 사근동은 삭아서 사근동이라고 불리는거라카더라
4.2 치마바위 전설
일제가 도로를 확장하려고 현 한양대학교 미술대학교 자리에 있던 치마를 두른 모양을 한 치마바위를 폭파하자 붉은 피가 흘렀다는 전설. 몰라 그거 뭐야 무서워
5 지리
마을 밖으로 통하는 도로가 몇 개 없을 정도로 고립되어있다. 서북쪽엔 초록동산이라는 야산이, 남쪽엔 한양대학교 캠퍼스가, 동쪽엔 청계천이 있기 때문. 마을 밖으로 나가려면 사근고개를 넘어가거나, 살곶이로를 통해 마장동이나 한양대역으로 가야한다. 걸어서 용답역으로 가는 인도교 하나가 놓여져 있다. 그래도 마장동과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이 많으니 구로1동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아직 한양대학교 쪽에는 달동네가 존재한다.
무학대사가 지금의 왕십리 일대에 도읍을 하고자 했으나 10리를 더 가서 도읍을 세운 곳이 경복궁이었다는 설화는 유명하다. 사근동 서쪽의 행당산을 북악으로 삼고, 현 한양대 캠퍼스와 살곶이체육공원 쪽에 무학대사가 궁궐을 건설했다면 지금의 광화문 일대 번화가는 사근동에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두 동네의 처지는 극과 극
6 교통
청계천 건너에 2호선 성수지선 용답역이 있고 2호선 본선을 타려면 용답역에서 성수행 열차를 타고 성수역에서 갈아타거나 걸어서 한양대역까지 가기도 하는데 웬만하면 버스를 타고 왕십리역에 가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 개편 전에는 한양여대를 출발해서 사근동길을 통과하여 강남으로 넘어가는 77-1번과 왕십리역까지만 가는 5번 마을버스[5]를 타고 강남으로 가거나 왕십리역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개편 후 77-1번(2411번)은 사근동을 경유하지 않게 되었고 77-2번(2220번)만이 사근동~왕십리역 수송을 담당하였다. 얼마 전 서울 버스 4211로 구 77-1번과 77-2번이 통합되며 다시 사근동에서도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7 기타
사근동이 서울 중심부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고립되어있고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탓에 사근동에 가면 서울이 아닌 어느 시골마을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사근동의 중심도로인 사근동길은 2차선 도로이며 버스를 타고 사근고개를 넘어 사근동에 진입하면 정겨운 느낌까지 든다. 전 지역이 주택가이기 때문에 한적하고 조용하다. 오죽하면 편의점이 작년에 생겼을까.[6]
한양대학교 병원 입구-사근고개 정상-사근삼거리로 연결되는 도로(사근동길)가 사근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상점가가 형성되어 있고, 그 뒤로 주택가가 있다. 이 중심길에 주민센터, 부동산, 세탁소, 식당, 까페, 정육점, 편의점, 문구점 등 동네는 작지만 오밀조밀 없는게 없다. 동네 커뮤니티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닌 동네이다.심지어 서울사근초등학교(또는 한양초)-한양대사대부중-한양대사대부고-한양대(한양여대)-한양대 교직원 테크를 밟으면 진정한 우물 안 개구리로 살 수 있다는 카더라(...)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근동은 판자촌으로 유명했는데 능동 어린이대공원 착공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사근동 쪽을 보고는 "도시미관상 보기 좋지 않으니 철거하고 이주시키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판자촌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그 자리에 뚝방이 세워져 있다. 사근동을 잘 아는 사람들은 살곶이로를 흔히 뚝방길이라고 부르며 판자촌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1990년대 초까지 홍수가 빈번하여 재산피해가 자주 발생했지만 2002년 이후로 홍수가 일어나진 않았다. 뚝방까지 물이 아슬아슬하게 차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