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대형과 사선대형 차이 (빨간색이 정예전력)
1 개요
사선대형은 테베의 에파미논다스가 스파르타의 팔랑크스를 상대로 처음 써먹은 진형이다. 일반적으로 당대 전투에서는 우익에 강한 정예 병력을 배치하고 중앙과 좌익에는 보통 병력을 배치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니까 똑같은 진형을 이룬 양 측이 격돌하면 일반적으로 전장은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했다. 우익의 정예 병력이 좌익의 상대 병력을 밀어붙이는 형세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좌익이 얼마나 적 우익을 잘 묶어두며 버티는지가 승패를 가르는 관건이었다.
그런데 기원전 371년 에파미논다스는 역발상으로 좌익에 주력을 배치하였다. 종심 50열의, 적 우익에 배치된 정예병력의 4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그리고 중앙과 우익은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을 배치하며, 좌익이 적을 완전히 분쇄할 때까지 최대한 교전을 피하기 위해 사선으로 병력을 배치했다. 이것이 사선대형의 기초다.
이후로 응용된 사선대형은 상기 에파미논다스의 사선대형처럼 극단적이지는 않고 중앙과 우익에도 어느 정도 전투가 가능한 정도의 부대를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소한 적의 공격을 견디며 공격을 맡은 축이 적을 분쇄할 시간은 벌어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파미논다스의 사선대형의 경우에 이 역할은 신성부대가 맡았다.
2 실전 사례
상기 에파미논다스가 스파르타 왕 클레옴보로토스를 상대로 벌인 레욱트라 전투에서 처음 등장하여 그 효용성을 증명했다. 테배군 6천 명은 스파르타군 1만 명을 맞아 레욱트라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에파미논다스는 일반적인 병력 배치를 포기하고 종심 50열에 달하는 병력을 적 주력을 맞을 좌익에 배치, 중앙과 우익에는 적은 병력만을 배치했다. 그리고 적을 맞아 적과 서로 마주보며 이동할 때에 중앙과 우익은 의도적으로 좌익보다 행군 속도를 늦추었다. 사선대형은 그렇게 완성됐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적보다 더 적은 병력을 가지고 한 쪽에 병력을 편중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사선대형이 눈속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적이 우익을 돌파하고 포위 기동을 실시하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병력이 과중된 좌익의 기동성은 일반적인 대형보다 더 떨어지기 때문에 우익과 중앙이 당하는 동안 빠르게 대처할 수 없다. 이 전투에서도 스파르타군이 속은 것은 처음 뿐으로 이내 좌익에 편중된 테배군의 의도를 쉽사리 파악했다. 그러나 처음 사선대형을 맞이하는 까닭에 적의 우익을 상대하러 뛰어가던 스파르타군의 좌익이 흐트러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테배의 신성부대 300명이 2천 명에 달하는 스파르타군에게 돌격, 300을 다시 찍으며 시간을 벌었고 그 사이 좌익이 스파르타군의 우익을 완전히 분쇄, 중앙의 클레옴보로토스를 공략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전투를 승리로 장식했다.
이 전투로 클레옴보로토스는 치명상을 입고 얼마 가지 않아 사망하였으며 이 한 번의 전투로 중장보병대에서만 500명이 사망했다. 큰 희생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는 중장보병대에서만 나온 수치로, 스파르타 중장보병대의 25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였다.[1] 주력인 중장보병대에서 저만한 희생이 나온 뒤로 스파르타는 다시는 그리스의 패권을 노리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응용되어 많이들 써먹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사선대형의 응용판을 써먹었다. 좌익과 중앙을 구성한 중장보병대는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버티면서 서서히 뒤로 물러섰고 우익의 기병대가 빠르게 전진하여 사선대형을 구축하고 페르시아 기병대가 빠져나가 비어버린 틈을 파고들어 적의 중앙을 공략, 다리우스를 직접 공격함으로써 적을 분쇄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1757년 로스바흐와 로이텐 전투에서 썼는데 상대적으로 공격력이 취약한 한 축은 서서히 물러나고 공격력을 강화한 한 축이 적을 분쇄하는 식이었다.
나폴레옹은 사선대형을 아예 전술이 아니라 전략의 범위까지 키워버렸다. 1806년 예나 전투에서 한 개의 프랑스 군단이 프로이센 주력 군단을 묶어둔 사이 공격을 맡은 군단이 예나의 프로이센군을 휩쓸었다.
3 서브 컬쳐에서의 등장
창세기전 시리즈의 흑태자가 비슷한 전술을 사용한다. 게임상에서 사선대형이라고 명명된 전술인데 마법사와 기병대 등 공격력과 기동력이 강한 좌익이 적을 밀어붙이고 오크나 중보병대 등 방어력이 강한 우익이 적의 공격을 견디면서 서서히 물러섬으로써 실버애로우를 격파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알렉산더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써먹은 전술을 종족과 구성만 살짝 바꾸어 비튼 느낌이다.- ↑ 스파르타 특유의 엄격한 신분제가 문제였다. 중장보병은 오로지 시민만이 될 수 있었는데, 그 시민이 되려면 부모 모두가 시민으로 인정받는 혈통이어야 했다. 어느 한 쪽이 외국인이나 노예라면 절대 시민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스파르타 말기까지 가면 시민의 숫자가 천 단위까지 떨어지게 되는데, 그래서 500명 사망한 것 만으로 스파르타 중장보병의 25%가 상실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