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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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濤
(205 ~ 283)

서진의 인물. 자는 거원(巨源). 산요[1]의 아들. 죽림칠현의 한 사람.

하내 회현 사람으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어려서부터 기량이 뛰어나 명망있는 선비들은 산도를 업신여기지 못했다. 221년에 어떤 친족이 사마의에게 산도를 사마사, 사마소와 함께 천하를 잘 통치할 인물이라고 했다.

노자, 장자 등을 좋아하고 혜강과 친하게 지냈으며, 하내종사를 역임하고 석감과 함께 역사에서 숙박하다가 산도가 밤에 일어나 석감을 밟으면서 지금이 어떤 떄인데 잠을 자는 것이냐면서 태부(사마의)가 병상에 누운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냐고 말했다. 석감은 재상이 3일 동안 조회에 참여하지 못하면 조서를 내려 사저로 돌아가 요양해야 하는데, 무엇을 걱정하냐고 묻자 산도는 말발굽 사이에서 무사할 것 같냐고 하면서 부절을 내던지고 떠났는데, 산도가 우려한 대로 고평릉 사변이 일어났다.

산도는 은둔해서 세상의 일과 관계를 끊었지만, 원래 사마씨 집안과 먼 친척뻘[2]이었기 때문에 사마소에게 발탁되어서 관직에 올랐다. 상당히 일을 잘했는지 이부상서를 했으며, 명망이 없는 자는 길을 막았고 인제를 선발한 것이 거의 백여 관직으로 대부분은 자신이 뽑았는데, 육량은 조서를 통해 등용한 것으로 육량은 산도와 뜻이 달라 논쟁을 벌였다. 산도는 육량이 좌승상은 될 수 있어도 관리의 재목은 아니라고 했고 결국 육량은 뇌물수수로 면직되었다.

격의 현령 원의가 뇌물로 실 1백 근을 바치자 산도는 받았다가 들보 위에 얹었는데, 원의의 일이 드러나자 산도는 그 실을 꺼내 관리에게 줬다. 몇 년이 지나 실이 먼지가 껴 검고 누렇게 되었어도 봉인된 것은 그대로였다.

죽림칠현 중에서 부마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제거된 혜강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대부분 산도를 통해서 관직에 오르게 되고, 심지어 혜강의 아들인 혜소를 비서승으로 천거하기까지 했다.이후 좌복야, 태자소부, 사도 등을 지냈으며, 나이 70세가 넘어서도 조정의 중책을 맡았다. 화교, 배해, 왕제 등에게 추앙받았으며, 79세에 사망해 시호를 강후(康候)라 했다.

네이버 웹툰 삼국전투기에서는 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촉촉한 초코칩으로 패러디되었던 초촉에 이어 크라운산도(...)로 패러디됐다. 가충, 순욱 일당의 오정벌 반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밖이 조용해지면 안이 시끄러워진다며, 이들의 오 정벌 반대의 이유가 없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출연
  1. 山曜, 원구의 현령을 지냈다.
  2. 사마의의 부인인 장춘화가 산도의 아버지와 고종사촌간이다. 즉, 사마의는 산도에게 오촌 당고모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