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케베츠 불곰 사건

三毛別羆事件

파일:Attachment/산케베츠 불곰 사건/sankebets.jpg
이 사진은 합성 의혹이 있다. 몸집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곰보다도 더 커보이니...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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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2월 9일부터 12월 14일까지 일본 홋카이도의 산케베츠 로쿠센사와 지역에서 벌어진, 일본 역사상 단일 개체에 의한 최악의 동물 재해 사건.[1] 홋카이도 불곰에게 6명이 죽고 3명이 부상당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지명을 딴 '로쿠센사와 사건', 혹은 당시 불곰에게 붙여준 이름을 따서 '쿠마아라시(羆嵐) 사건'으로도 불린다.

2 사건

19세기 말부터 일본은 미개발지가 많은 홋카이도를 개척하기 위해 이주-개척 정책을 추진하였고, 이전까지는 아이누 족을 제외하면미개척지로 남아 있던 지역에 이주민들이 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동물들의 서식지와 인간들의 거주지가 겹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동물들이 농작물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해치기도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이 산케베츠 곰 사건은 그 피해 규모와 잔혹성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최악의 동물 재해로 꼽힌다.

불곰의 습격은 11월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케다 가의 말 한 필이 놀라 도망치는 데에 그쳤고 이후 다시 마을에 내려온 곰은 마을 장정들의 공격을 받고 도망친다. 이때까지는 아직 인명피해가 없었고 사람들도 더 이상 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했으나...

12월 9~10일 이틀 동안 불곰은 다시 마을로 내려와 두 차례에 걸쳐 오타 가와 메이케이 가를 습격해 여자와 어린이 등 6명을 죽이고 일부는 먹어치웠다. 특히 두번째 습격의 피해가 심했는데 메이케이, 사이토 등 여러 집들의 여성, 노인, 어린이들이 여기에 피신해서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해자 중에는 임산부도 있었는데 곰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태아가 있는 배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물론 곰이 그 말을 들을 리는 없었다. 결국 몸이 찢겨져 태아가 튀어나왔고, 이 태아는 1시간 뒤 사망했다.

이 사람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퍼진 뒤 경찰과 인근 마을 청년단 등으로 구성된 토벌대가 12월 12일 현장에 파견되었다. 첫음에는 곰이 인육을 먹으러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두번째로 피해를 입은 집에 남은 사망자들의 시신을 미끼로 이용해[2] 곰을 유인해 보려 하였다. 하지만 곰은 시신이 있는 집 근처에 나타났다가 경계심을 가졌는지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사람이 없는 다른 집들을 습격하여 겨울 양식을 먹어치웠다. 다음날인 13일 밤에는 마을로 들어오는 다리 입구에 매복하던 토벌대원들이 곰을 발견하고 사격을 가했으나 도망쳤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아사히카와에 위치한 일본 육군 7사단 28연대에서 병력을 차출해 파견하였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이들은 사건이 끝날 때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12월 14일 토벌대는 부상을 입은 곰을 추적하였는데 이 중 야마모토 헤이키치란 포수가 곰을 먼저 발견하여서 머리에 소총을 쏘아서 죽였다. 죽인 곰을 해부해 분석한 결과, 몸 길이 2.7m에 몸무게는 340㎏에 달했다. 또한 내장에서 옷 조각 등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도 이미 사람을 잡아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가 나왔다. 곰의 사체는 가죽을 벗긴 뒤 고기는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를 위해 가족들이 나눠 먹었으며 가죽과 간은 매각한 뒤 토벌대가 유가족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건넸다.

최종 피해는 사망자 6명(+1명)[3], 중상자 3명. 중상자 중 1명(태어난지 1년 남짓한 영아였음)은 이때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2년 8개월 뒤 사망했다.

3 사건 이후

사건 이후 현장인 로쿠센사와 마을에는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모형과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있다.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당시의 마을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타지로 이주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곰을 사살한 직후 토벌대가 사체를 운반하려 하자 이전까지 맑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고 눈보라가 몰아쳤다고 한다. 이를 두고 주민들은 '쿠마아라시(羆嵐. 곰 폭풍)'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고. 곰 때문에 가진 공포심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쿠센사와 근처를 지나는 도로는 '베어 로드'라 하여 귀여운 모습의 엄마곰과 아기곰 그림(...)이 있는 등 곰을 주제로 한 관광 도로로 지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로쿠센사와에서 곰으로 인한 참상을 알게 된 방문객은 이 도로를 지나며 묘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이후 1970년 같은 홋카이도의 히다카 산맥에서 대학생 3명이 불곰의 습격에 참혹하게 살해당한 후쿠오카 대학 반더포겔부 불곰 습격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아키타현에서도 식인 반달가슴곰 사건이 발생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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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무라 아키라(吉村昭)가 쓴 1982년에 출간된 공포 스릴러 소설 쿠마아라시(羆嵐)가 이 사건을 다룬 첫번째 창작물이다. 본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한 논픽션은 아니고 어느 정도 작가의 상상과 각색이 들어가 있는데, 그 때문에 안 그래도 무서운 사건이 더욱 무섭게 묘사된다.(...) 어릴 때 이 소설을 읽고는 밤에 화장실을 못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정도로 묘사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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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낚시왕[4]으로 유명한 야구치 타카오가 그리고, 나오키 상을 수상한 도가와 유키오가 글을 쓴 '야성전설 쿠마카제'가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명견 실버에서 이 사건처럼 홋카이도에서 개척하고 살고있는 마을에 곰들이 사람들을 습격한다.

애니메이션 '유리쿠마 아라시'가 해당 사건과 1982년 소설 원작에서 제목과 모티브를 따왔다는 얘기가 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곰'인데다 '식인'이라는 요소까지 들어갔으니... 해당 지자체에서 소송 안 거나? 무엇보다 제목을 직역하면 "백합곰 폭풍"이란 뜻으로, 문제의 곰에 붙여진 이름과 매우 비슷하다. 사실 이 항목도 이 애니메이션 덕분에 생겼다(...).

아라카와 히로무의 만화 백성귀족에서는 작가와 가족들이 TV를 보다가 곰이 을 2마리나 물고 갔다는 말에 이 사건의 곰과 같은 괴물붉은곰?이 나타났다며 공포에 떤다. 그나마 다행히(?) 그 물고 갔다는 말은 일반적인 크기의 말이 아니라 사람도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작은 포니[5].
  1. 피해 규모는 람리섬 전투가 넘사벽이지만 단일 개체에 의해서 일어난 일도 아니거니와 일본 본토에서 일어난 사건도 아니다.
  2. 고인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으나 상황이 급박해서 유가족들도 이에 동의했다.
  3. 위에 언급한 태아를 '피해자'로 꼽을 경우
  4. 원제 낚시왕 산페이
  5. 미니어처 호스라고 흔히 불리는데, 대형견 정도 사이즈라서 '개만한 말'로 인터넷에 알려졌다. 일반적인 미취학 아동이라면 잠깐 탈 수 있는 크기라서, 동물 체험장소에도 인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