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分損益法
국악에서 12율의 음높이를 정하는 방법이다. 고대 중국으로부터 사용된 음높이 산출법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전통 음악에서 두루 사용되어 왔다.
먼저 12율 음높이의 척도가 되는 것은 대나무 율관(관)이다. 이때 불어서 황종(黃)음이 나는 율관을 음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것은 마치 서양 음악에서 조율을 할 때 가(A)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삼분손익법은 기본 율관을 삼분손일하는 것과 삼분익일 하는 것을 교대로 반복하여 12율을 산출하는 것을 뜻한다. 삼분손일이란 셋으로 나누어서 하나를 뺀다는 뜻, 즉 관의 길이에 2/3을 곱한다 또는 1/3을 뺀다는 뜻이고, 삼분익일은 반대로 셋으로 나눈 뒤 하나를 더한다는 뜻, 즉 관의 길이에 4/3을 곱한다 또는 1/3을 더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할 때 삼분손일하면 원래 음보다 완전 5도 높은 음이 되고, 삼분익일하면 원래 음보다 완전4도 낮은 음이 된다.
실제로 음을 얻는 과정을 보자면 黃음을 내는 황종관이 황종척으로 9치 길이이므로, 먼저 삼분손일하면 9의 3/1을 빼므로 6치 길이가 된다. 이 6치의 관은 黃보다 완전 5도 높은 林음을 내는 관이 된다. 다시 이 6치 관을 삼분익일하면 6의 1/3을 더하므로 8치 길이가 된다. 이때 이 8치짜리 관은 林보다 완전4도 낮은 太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하면 차례로 12율이 산출된다. 완전 5도 높다는 것은 율로 따지면 8율이 높아지는 것이고, 완전 4도 낮은 것도 옥타브를 올리면 역시 8율이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삼분손익법을 다른 이름으로 '격팔상생법(隔八相生法)이라고 한다.
(↗는 삼분손일, ↘는 삼분익일.)
黃↗林↘太↗南↘姑↗應↘蕤↗大(汏)↘夷↗夾(浹)↘無↗仲(㳞)↘黃(潢)
아래 표도 비교해 보자. 아래쪽의 숫자는 몇 번째 삼분손익인지를 의미한다. 홀수는 삼분손일, 짝수는 삼분익일.
黃 | 大 | 太 | 夾 | 姑 | 仲 | 蕤 | 林 | 夷 | 南 | 無 | 應 | 潢 | 汏 | 汰 | 浹 | 㴌 | 㳞 |
S | . | 2 | . | 4 | . | 6 | 1 | 8 | 3 | 10 | 5 | 12 | 7 | . | 9 | . | 11 |
이렇게 산출된 12율은, 한 옥타브를 12개로 평등하게 나누어 1옥타브 1200센트, 반음 각 100센트로 나눈 평균율이나, 모든 음정이 완전 5도 관계로 산출되는 피타고라스의 순정율과 차이를 보인다. 삼분손익법으로 산출된 12율은 반음이 모두 100센트가 아니라 114센트와 90센트를 기준으로 한 불평균율로 짜여져 있다. 黃이 潢으로 될 때까지 삼분손익을 반복하면 율관의 길이가 어떻게 되느냐를 계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黃의 율관 길이를 α라고 한다면,
α× | 2×4×2×4×2×4×2×4×2×4×2×4 |
3×3×3×3×3×3×3×3×3×3×3×3 |
이게 바로 潢의 율관 길이가 된다. 위의 식을 간단하게 바꾸면 (2×4)/(3×3)가 여섯 번 반복되므로 α×(8/9)6 = α×(262144/531441). 그런데 262144/531441=0.49327018...이므로 潢의 율관 길이는 완전히 黃의 절반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오차가 (1/2)-(262144/531441)=0.00672981572...이므로 거의 절반에 가깝기는 하다.
이렇게 12율을 산출할 때 옛부터 문제가 된 것은 기준음의 음높이를 정하는 방법이었다. 기준음이 되는 黃을 내는 황종관의 길이는 9치였는데, 이 '치'라는 단위가 문제였던 것이다. 검은기장(거서; 秬黍) 1알의 세로 길이가 1푼에 해당하고, 기장 10알을 세로로 쭉 늘어놓은 길이가 10푼, 즉 1치가 되었다. 황종관의 규격은 길이는 9치이고 부피는 기장 1200알의 부피이다.[1]
그런데 당연히 기장 낱알의 길이가 다 같을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그 해가 풍년이냐 흉년이냐에 따라 기장의 크기도 달라진다. 당연히 삼분손익법의 원산지인 중국에서조차 黃의 음높이가 시대마다 달라졌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런 사실을 밝혀낸 것은 세종때의 일로, 박연이 우리나라 황해도 해주에서 나는 기장을 가지고 황종관을 만들어 12율을 산출했더니 중국산 편경과 음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연은 밀랍을 녹여 국산 기장알보다 조금 큰 인조 기장알을 만들어 공식 규격으로 삼아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