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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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통악기중 하나로 국악에서도 사용되므로 국악기에 포함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려에서 수입된 아악기로 黃=C인 당악 음정을 따른다. 편종과 쌍을 이루는 악기로 흔히 '종경(鐘磬)'이라고 아울러 부른다.

ㄱ자 모양으로 깎은 16개의 경돌(옥)을 두 단으로 된 나무 틀에 위아래 여덟 개씩 매단 악기다. 나무틀의 발 부분은 기러기(鵝)모양의 받침대에 각각 꽂아 놓는다. 틀 위쪽 양편에는 봉황의 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고, 꼭대기에는 공작 다섯 마리와 깃으로 만든 술로 장식을 한다. 경돌은 ㄱ자 모양에서 세로 획 부분이 긴 모양인데, 세로 획과 가로 획의 비율은 음이 높아짐에 따라 작아진다. 조율할 때는 소리가 높으면 돌을 갈아서 얇게 하고, 소리가 낮으면 세로획 부분을 잘라서 음을 맞춘다. 고로 조율이 무척 어려워서 정확한 음정으로 편경을 조율하기는 매우 힘들다. 하지만 돌로 만들었기 때문에 음정이 온도나 습도에 영향을 덜 받으므로 국악기 조율의 표준이 된다.

참고로 2007년 제작된 국립국악원 편경의 조율 방법은 이렇다. 먼저 조율하기 전 경석을 갈아낼 부분을 감안하여 넉넉한 두께로 재단한 다음, 3차에 걸쳐 연마하며 재단한다. 1차 조율은 대형 그라인더를 동원하여 갈아내는데 이때 마찰열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물을 뿌리면서 습식으로 연마한다. 조율할 때 경돌이 물을 많이 흡수함을 감안하여 음정을 확인한다. 이후 약 보름간 건조하여 튜너로 음을 확인하고, 세로 부분 길이와 경돌의 두께를 조절하며 다시 조율한다. 물론 갈 때 열이 많이 나기 때문에 식혀가면서 조율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3차 조율은 정밀기기를 동원하여 센트 단위까지 정밀조율한 후, 습기를 머금어 음이 변함을 막고자 광택제를 뿌려 마무리한다고 한다.

연주할 때는 뿔로 만든 망치인 각퇴(角槌)로 세로획 부분의 아래 끝부분을 치면서 연주한다.

한국에는 고려 예종대에 나라에서 처음 들어왔고, 공민왕 때와 태종대에도 편종과 함께 수입되었다고 한다.

재료가 인 만큼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조선 세종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수입해다 썼는데, 수입만으로는 수요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궁여지책으로 으로 빚어서 기와처럼 구워 만든 개와경도 만들어 썼다. 당연히 흙은 구울 때 수축하기도 하고 구운 후에 조율할 수도 없어 음정은 정말 개판이었다고 한다. 결국 국내에서 백방으로 경석이 나는 곳을 수소문한 결과 세종 7년(1425년) 남양(南陽; 현재 화성의 일부)에서 좋은 옥이 발견되었다. 세종 9년(1427년)에 처음으로 국산 편경을 제작하였는데, 중국산보다 음색이나 음정이 훨씬 좋았다고 전한다. 이후 현재까지도 편경에 쓰는 옥은 옛 남양인 수원화성 근처 옥 광산에서 캐서 쓴다.

재료가 재료이다보니 악기가 무척 귀해서 편경을 파손시킨 사람은 곤장 백 대에 3년 동안 귀양을 보낸다는 형조가 대전통편에 있다. 그리고 대전통편에는 전란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편경을 숨기라는 내용도 있다.

세종대왕님은 편경소리를 듣고 夷음을 내는 돌이 덜 갈려 음정이 잘못된 점을 정확히 집어내어 절대음감을 보여준 적이 있다.

현재는 종묘제례악문묘제례악, 보허자, 낙양춘에 편성되고 취타를 대편제로 연주할 때도 간혹 편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