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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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하여 만든 생전의 모습이다.


시신 사진.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으니 링크로 대체함.
The "Boy in the Box"
(America's Unknown Child)

1957년 미국 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1 상자의 발견

1957년 2월 25일 펜실베이니아필라델피아 북동부에 위치한 폭스 체이스(Fox Chase)에서 프레데릭이라는 대학생은 우연히 한 골판지 상자를 발견하였다. 그 골판지 상자는 미국의 백화점 체인점인 J.C. 페니에서 당시 판매 중이던 요람의 포장상자였는데 그 안에는 한 소년이 온몸에 멍이 든 채 알몸 상태로 죽어있었다. 하지만 이를 발견한 프레데릭은 당국에 신고하는 것을 망설였는데 왜인고 하니 그가 그 상자를 발견하게 된 동기는 상자가 발견된 장소 근처에 있었던 여학교의 여학생들을 훔쳐보기 위해서였던 것(...). 그래서 프레데릭은 고해성사가톨릭 사제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프레데릭의 고민을 들은 가톨릭 사제가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서[1] 다음날 오전 10시 프레데릭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2 수사

생년은 1950~1953년생으로 당시 4~6세 정도로[2] 추정되는 이 상자 속 소년은 102cm에 13kg로 성장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였고, 백인에 파란 눈을 지니고 성기에 할례의 흔적이 있었다. 손톱과 발톱은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은 금방 잘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몸 전신에서 여러 개의 멍 자국들이 발견되었으며 직접적인 사인은 머리를 강타당해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시신의 상태가 온전하고 주변에 위치한 마을들은 모두 작은 시골마을들이며, 상자 속에는 소년의 것으로 보이는 빵모자와 담요가 남아 있었기에 소년의 신원이 금세 밝혀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소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소년의 시신 사진과, 지문, 할례 흔적 등을 토대로 필라델피아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으나 그들은 소년을 진료한 적이 없었고, 미국 의학 협회의 협조로 전국의 의사들에게 아이의 정보가 전달되었지만, 마찬가지로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상자와 담요, 빵모자의 경우 판매처와 제조사까지 추적했지만 역시 단서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 외에도 경찰은 소년의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영양상태와 얼굴형과 외양으로 보아 1956년 헝가리 혁명 이후 미국으로 대거 흘러왔던 난민 부부 사이의 아이가 아닐까 추정했으나, 이마저도 당시 미국 이민국에서 모든 헝가리 난민들에게 실시했던 예방 접종 자국이 발견되지 않아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리고 고아원 및 아이들을 맡는 기관들에서도 아이의 정체를 알려줄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아이의 모습을 담은 전단지 수십만부가 필라델피아와 펜실베이니아 주는 물론 인근의 뉴저지 주와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 지역까지 배포되었으나 이 아이를 아는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신 부검을 통해 추가로 밝혀진 것으로 소년의 오른손에서는 장시간 수중에 노출될 시 나타나는 손의 주름이 발견되었고. 성적 학대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온 몸에 멍이 들고 머리는 이발이 된 상태였는데. 이발 상태는 대단히 엉성했고 또한 머리에서는 다수의 멍 자국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소년의 머리를 힘으로 고정시킨 채 이발하여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었다.

결국 수사는 미궁에 빠졌고 이 와중에 두가지 가설이 나오는데 하나는 소년이 발견된 장소에서 24km 정도 떨어진 한 보육원의 경영진들과 연관이 있다는 설이었으나 문제는 근거라는 것이 소년의 시신이 발견된 상자에서 나온 담요가 그 보육원 내에 있었다는 것뿐이었고 1998년 DNA 검사를 통해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을 M이라고만 밝힌 한 여성의 가설로써,

그 소년은 1954년 여름에 학대습성이 있던 내 어머니가 소년의 친부모에게 돈을 지불하고 데려온 '조나단'이라는 아이이다. 그 소년은 내 어머니에 의해 2년 반 동안 지속적으로 극도의 신체적,성적 학대를 받아왔다. 소년이 살해된 이유는 욕조에서 구토를 했다는 것에 분노한 내 어머니가 소년을 바닥에 내동댕이쳤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는 소년의 신원을 숨기고자 소년의 길었던 머리를 깎은 뒤 나를 데리고서 당시 인적이 드물던 폭스 체이스의 길거리에 시신을 유기하러 가 현장에 버려져 있던 골판지 상자에 시신을 유기하였다.당시 소년의 시신을 차 트렁크에서 내리려 했을 때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탄 한 남성이 우리가 사고를 당한 것인 줄 오해하고는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오는 일이 있었는데 우리는 차 번호판이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그 남성의 말을 무시했고 결국 그 남성은 자리를 떠났다."

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M의 증언은 소년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와 상당 부분 일치했고 경찰은 그녀의 말이 신빙성이 높다 판단했으나. M은 정신 병력을 갖고 있었으며 당시 M의 집안과 교류가 있던 이웃 주민이 경찰과의 사정 청취에서 M의 집에 소년이 살고 있던 것을 본 적이 없으며 M의 주장 또한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증언했고 그 오토바이를 탄 남자 역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을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건과 관련되어 두 건의 목격담이 확보되었지만 이는 확인할 길이 없었기에 결국 목격담으로만 남게 되었다.

"필라델피아에서 뉴저지 남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소년을 목격했는데 당시 그 아이는 함께 있던 남성의 품에 잠들어 있었고 남자는 자신들이 뉴저지 주 캠던에서 승차했다고 말했어요." - 당시 아마추어 예술가였던 여성
"한 남자가 그 소년의 손을 잡고서 제가 일하는 가게 근처를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 남자는 자신들이 필라델피아행 열차를 타야 한다고 했어요." - 당시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여성

그러나 이 목격담을 마지막으로 경찰은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할 단서를 확보하지 못하였고 수사를 통해 시신이 최초 발견되기 이틀 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이미 목격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수사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학대를 당해 죽은 데다 시신마저 발가벗겨진 채로 길거리에 버려진 이 불쌍한 아이는 끝내 이름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결국 1957년 7월 27일에 가족을 대신한 필라델피아 경찰들의 애도 속에 필라델피아 시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HEAVENLY FATHER BLESS THIS UNKNOWN BOY(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이 이름 모를 소년을 축복하소서.)'라고 쓰여 있다. 이 불쌍한 소년의 정체는 현재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3 같이 보기

  • 타만 슈드 사건 - 사건의 성격 자체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해당 사건처럼 시신의 신원이 끝내 확인되지 못해서 미궁에 빠진 사건이다.
  1. 가톨릭 사제들에게는 자신이 고해성사로 들은 내용을 발설할 수 없는 비밀엄수 조항이 있기에 사제 본인이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었다.
  2. 살아있었다면 2016년 현재 63~66세의 노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