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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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구 샤이닝 로어

2002년 판타그램에서 제작한 한국3D MMORPG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명작으로 처음 나왔을때 와 더불어 리니지를 제압할 것이라 예견되던 4대 타이틀중 하나였으며, 첫 등장당시 여러가지 진보된 시스템으로 한국 MMORPG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인기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어 멀쩡한 리니지 유저들까지 빼올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판타그램 측에서 흥보했던 "동접자 3만/가입자 30만"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전성기에도 구 샤이닝 로어의 서버수는 단 3개(루나,이니그마,시에나)에 불과했는데, 이 때의 기술로 한 개의 서버가 처리할 수 있는 동접자 수는 2000명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샤이닝 로어의 동접자는 많아봐야 6000명 정도였을 것이다.#

당시 샤이닝 로어의 '리니지식' 노가다 게임들과 차이점이라면

  • '구체적인 스토리'가 있었다. 이는 콘솔에서 MMORPG로 전향한만큼 당연한 일
  • 평생무료 선언
  • 커뮤니티 공간을 따로 마련
  • 생존 시스템. 예를들면 살기위해 매일 음식을 먹어야 한다거나...
  • 음식 만드는 요리사나 기계 제작하는 엔지니어 같은 신선했던 직업들. 차후 조합사와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추가될 예정이었다
  • 보조작업을 통한 경험치 획득. 요리사는 요리를 해서 경험치를 얻고 엔지니어는 무기제조를 해서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 게임 내에 존재하는 미니게임
  • 교환사기 방지 시스템
  • 자유전직 시스템.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아무때고 원하는 대로 전직시킬 수 있었다.

대충 이정도 들 수 있었다. 사실 게임 플레이 자체는 단순한 몹 때려잡기 위주였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지만, 레벨업 속도가 빨라서 당시 게임들에 비해 캐주얼한 느낌을 주었고, 당시 흔치 않았던 아기자기한 3D 그래픽이였으며 최적화가 잘 되어 있었던 점도 포인트. 라그나로크와 함께 한국 캐주얼 온라인 게임의 개척자라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저런 요소가 100% 잘 구현되어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그래서 발매 당시에는 소프트맥스따라하냐며 나름 욕도 먹었다. 특히 예정되어있던 하우징과 나왔던 제작/생존 시스템 등은 생각보다 완성도가 부실했다. 즉 시도는 좋았으나 결과물이 그렇게 신통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분명 기본적인 틀은 그당시 유행했던 몹을 때려잡는 재미에 중점을 두고 나머지 시스템은 보조격으로 당시의 게임틀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나진 못했었다.

하지만 당시에 캐쉬템이란 개념 자체를 생각할 수가 없어서 기껏 게임 잘 만들어놓고 무료봉사하는 꼴이 되었고 돈이 없어서 자금부족으로 인해 상당한 고충을 겪다가, 결국 자금 압박으로 판권을 엔씨소프트에게 팔아버리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이 시점 이전의 샤로를 구샤, NC가 내놓은 샤이닝로어2를 신샤라고 부른다.

1.2 신 샤이닝 로어

샤이닝로어 업데이트를 한답시고 멀쩡한 게임을 5개월이나 서비스중단시켰다. 몇개월 후 샤이닝로어2로 업데이트를 진행하며 그래픽이 깔끔해지고 최적화가 잘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리니지를 견제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위해 게임 시스템을 거지같이(샤이닝 리니지라고도 부른다)만들어 놓았다.

일부 샤이닝로어빠들은 그것도 좋다고 히히덕거렸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게다가 당시 온라인 게임 사전 심의제로 '12세 이용가' 판정을 받으며 수많은 만 12세 미만 유저들까지 떨어져나가 3개월도 못넘어 거의 대부분 유저가 전멸. 서버당 동접자수가 20명도 안되는 게임으로 몰락했다.

그렇게 악재를 겪다가 결국 서비스 중단. 그리고 NC가 샤이닝로어의 서비스를 중단하며 유저들에게 준 것은 리니지 7일 무료이용권이었다. 그냥 닥치고 리니지나 하라는 소리다.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NC를 깔 때 에버퀘스트 강제 서비스 중단과 함께 유효한 양대 떡밥 중 하나다.

이를 본 일부 오베족들은 NC가 리니지를 띄우기 위해 판타그램에게 재정압박 시스템으로 판타그램을 삼켜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

2 멸망

NC는 샤로2를 말아먹은 이후 판권을 포기했고, 일부 구 유저들에 의해 프리서버가 생겼다.

현재 "샤이닝 로어를 이을 작품" 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대개 별볼일이 없어보인다.

판타그램은 샤이닝 로어 이후로는 콘솔쪽으로 관심을 돌렸으며,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작품을 내지 못하는 상태. 일부 소문으로는 현재 샤이닝로어에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거의 다 퇴사하고 각종 다른회사로 편입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그리고 샤로 제작진이 다시 모인 엔플레버라는 회사에서 이그니스 로어라는 게임을 제작중이다. 분위기는 얼추 비슷한 것 같다. 개발 중 제목을 이그니스 로어에서 아이엘로 바꿨고 서비스 중이었으나 결국 서비스를 종료하고 이터널 블레이드라는 이름으로 리뉴얼하여 운영중이다. 문제는 이그니스 로어의 완성도가... 샤로만 못하다.

게임119에 샤이닝로어 부활 서명을 하는 부속 사이트에서 서명을 전달하러 간 적이 있었으나[2] 별 소득없이 돌아왔다. 이 사이트에서는 프리서버가 샤로 부활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프리서버를 근절하자는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프리서버 운영자와 다른 유저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흔히 샤로온이라 불리던 샤이닝로어 부활운동 본부는 초기엔 꽤 제대로 된 서명운동을 벌였지만, 말년에는 5~6명 뿐인 회원들의 친목장소화 되었다.[3]

3 뒷이야기

3.1 판권분쟁

판타그램이 엔씨소프트에 판권을 넘길 때, 다른 업체에 이중으로 넘긴 탓에 법정분쟁이 있었다.#

3.2 콘솔판 샤이닝 로어

구 샤이닝로어보다 훨씬 이전, 원래는 드림캐스트 및 PC게임으로 발매예정이었으며 그래픽도 2D인 싱글 온라인 RPG였다. 룬 오하라 라는 파란머리소년의 바다를 찾아 여행하는 이야기로 구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질뻔한 게임이었으나. 당시 성행하던 불법복제 밎 온라인이라는 컨텐츠 유행의 흐름에따라서 어느순간 소식이 두절되더니 갑자기 온라인게임으로 변경되어 등장했다. 이 콘솔판 샤이닝로어가 사실상 프로토타입인셈. 옛날 게임잡지를 보면 드림캐스트로 개발중이던 샤이닝 로어에 관한 글과 그림을 가끔 볼 수 있다. 제작팀장은 월간 플레이스테이션(나중에 게이머즈로 이름이 달라질때도 연재했다.)에서 '신훈의 멋대로 게임기행'을 연재했고 채널 어니언이라는 만화책도 냈었던 신훈.

콘솔게임으로 개발당시 일러스트레이션 및 캐릭터 디자인은 일본만화가 '무라마사 미카도'[4]를 기용해서 꽤나 의욕적으로 도전하는듯 했으나, 영 좋지 않은 타이밍에 드림캐스트의 몰락과 당시 휘몰아친 온라인 열풍에 장르가 변경된 듯.덕분에 미카도의 디자인은 묻혀져버렸다.[5]

여담으로 처음 기획당시 뿌렸던 자료들과 온라인게임으로 나왔을 때를 비교해보면 그나마 원형이 남아있는것은 풍차뿐으로, 원래대로라면 집집마다 지붕위에 풍차를 돌리고있는 그러한 시대를 배경으로하는 장황한 스토리를 기획했던것 같다. 샤이닝 로어라는 제목이 저 풍차의 이미지를 따왔다는 듯.

하지만 샤이닝 로어 온라인의 스토리가 애초에 기획되었던 RPG 샤이닝 로어의 엔딩 이후를 다루는 걸로 보아서, 당시에는 싱글의 제작에 미련이 남아 있었던듯 하다.

막 온라인으로 변경 된 후 일러스트레이션에는 스퀘어의 '듀프리즘' 원화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를 기용했으나 이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떠한 사정으로 달랑 3개만 그려주고 잠수타고 그만둬 버렸다. 이후 신훈이 직접 코미케까지 쳐들어 갔으나 끝내 놓쳤다고 한다.[6]

그래서 아예 팀장인 신훈씨가 일러스트레이션도 맡다가 다른 사람을 썼는데,그때 기용한게 김안나라는 사람이다. 신훈의 멋대로 게임기행에서 신훈에게 태클걸던 안경 쓴 여자 캐릭터가 이 사람.이 둘은 샤이닝 로어 몰락후 함께 요구르팅을 제작했다.

안나는 요구르팅 오픈 후 다른 제작사로 이적,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정작 본인은 뭐로 밥 벌어먹고 사는지 모르지만.

안나 외 샤이닝로어 개발진 다수(?)가 아이엘:소울 브링거 제작에 참여 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이엘 참조.

3.3 '구샤로는 명작' 떡밥

게임관련 커뮤니티라면 샤로를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기 전엔 절대 없어지지 않을 떡밥. '구샤로는 명작이었다 VS 그렇게 대단한 게임은 아니었다' 라는 떡밥 대결이 한번 터지기만하면 엄청나게 들끓어오르며, 특히 추억이 그렇듯이 적당히 미화되는 작용과 당시 구샤로가 마이너했기 때문에 자료도 부족하고 '그게 뭔 듣보잡이야?' 라는 취급을 하는 샤로를 모르는 자들까지 끼어든다. 여기에 더해 항상 추가되는 떡밥은 '구샤로가 신샤로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다. 결론은 해담선생의 말씀을 떠올려보면 된다.게임에 만약은 없습니다. 만약이란게 있으면 전부 동접 1000만 찍죠

게임의 재미는 둘째치고 수익모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게임디자인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제작사는 물론 한국 게임사 자체가 온라인 게임 개발에 막 뛰어들기 시작한 시기였고,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수익모델은 정액제 외엔 찾아보기 어려웠다. 샤이닝로어의 경우엔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낮은 레벨업 난이도로 유저층을 넓힌 것 자체는 좋았지만, 레벨업 난이도가 너무 낮아 당시 사실상 만렙이었던 104 레벨을 일주일도 안 되어서 찍을 수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정액제로 게임을 운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말하자면 샤이닝 로어는 게임으로서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상품으로서 문제가 있는 물건이었다는 것.

다만 신샤로로 넘어가면서 구샤로에 비해 매력이 부족했고 이미 포화상태인 비슷한 방식의 게임들에 밀려 실패했다고 보는게 옳다. 결국 라그나로크에게 밀려버렸으니.

3.4 구샤로 축구복 이벤트 사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시즌을 맞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샤이닝 로어에서 벌인 이벤트로, 극초반 뉴비용 필드 몹들에게서 국가대표팀 유니폼 아이템을 드롭하게 하여 '모두가 국가대표 축구복을 입고 응원하자'라는 취지는 참 좋았던 이벤트이다. 의도는 좋았다. 의도는...

그러나 사건은 여기에 쓸 데 없는 옵션을 달면서 시작되었다. 그 옵션이란 한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1승을 할 때마다 축구복의 능력치가 2배수로 늘어난다라는 것. 다들 아는 대로 2002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4강이라는 사상초유의 기적을 일구어 냈고, 그 영광은 샤이닝 로어에서만큼은 재앙이 되었다. 축구복은 이미 게임 내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착용 아이템을 뛰어넘는 괴물급 방어구가 되었고 착용 제한마저 없었다. 그로 인해 샤이닝 로어는 1레벨부터 최고레벨 캐릭터까지 너도나도 축구복만 입는 세계최초 축구 MMORPG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게임의 레벨 디자인은 완벽히 붕괴했고 게임 내 시장은 마비됐으며, 죽을 고생을 해 가며 최고급 아이템을 구해왔던 하드 유저들은 괴물 축구복의 등장으로 인해 멘붕허탈해 했다. 이 시기에 상당수의 유저들이 이탈했으며 사실상 신샤로 이전인 이 때부터 게임에 망조가 짙게 드리우게 된다. 무조건 성공 안 될 것이라고만 예상하고 게임경제, 밸런스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자극적인 상품들을 내지르는 이벤트는 매우 잘못된 것이 맞다. 예를 들어 2014년 던전앤파이터 월드컵 이벤트 때도 16강 장비보호권, 8강 100퍼 10강화권, 4강 증폭보호권 등을 걸었다가 대차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이런 식의 이벤트는 실패해서 상품을 안주게 되도 '어차피 안줄려고 생각하고 이런 이벤트 지른다. 우릴 우롱한다'는 식으로 유저들에게 욕을 먹고 원망을 사게 되며, 성공하면 말 그대로 게임이 망하는 이벤트다. 즉 어떤 식으로든 게임 개발자에게 해가 되고 마케팅, 이벤트 부서를 원망하게 되는 이벤트인 것이다. 이런 이벤트가 아무 문제도 없다면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기든 일단 사람 모아야되니 당장 크게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던져대는 모든 텅빈 공(空)약들이 아무 문제 없는 것들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이후 온라인 게임의 기획의 잘못된 사례로 반면교사가 되어 두고두고 회자되게 된다.

4 주제가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한 '신비'라는 그룹이 부른 <Darling>의 PV.

물론 샤이닝로어가 망하면서 이 그룹도 망했고, 지금은 골수 샤이닝로어 유저들 정도만 기억할 추억의 곡.
  1. 혹은 판타그램은 또다른 NC라는 소문도 있었다.
  2. 게임119 운영자 대깡과 부활운동본부의 회원에 가까운운영진, 둘이서 전달했다. 당시 NC는 판권 문제를 들먹이며 속시원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3. 그 대여섯명의 회원들이 전부 운영진 권한을 가졌을 정도. 재밌는 사실은 그중에 성인은 하나도 없이 모두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도 있었다는 것이다.
  4. 국내에 카발리어라는 작품이 하나 소개되었으며 잡지사 기준으로 한국만화로 분류된다. 카발리어 항목 참조.
  5. 여담인데 미카도는 자신이 그렸던 샤이닝 로어의 그 캐릭터들을 가지고 19금 상업지로 그려버렸다(...)
  6. 멋대로 게임기행 단행본에 실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