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1 先進

1.어느 한 분야에서 연령, 지위, 기량 따위가 앞섬. 또는 그런 사람.=동의어는 선배
2.문물의 발전 단계나 진보가 앞섬.
<출처> http://krdic.naver.com/search.nhn?kind=all&scBtn=true&query=%EC%84%A0%EC%A7%84

2 先秦

진(秦)천하통일하기 전 즉 춘추시대전국시대를 일컫는 말.

그런데 이런거 적자고 이 항목을 만든 것이 아니다.

3 진(晉)장군

先軫
생년도 미상~기원전 627년 사망.
은 기(祁) 씨는 선(先)이며, 이름은 진(軫)이다. 채읍(采邑) 사람으로 원래는 원진(原軫)이었다. 진나라의 경 중 하나.[1] 기원전 656년 여희가 진헌공의 총애를 받아 후계자 자리를 자신의 아들에게 주려고 온갖 음모를 꾸미면서 상관인 희중이 즉 훗날의 진문공을 죽이려 하자 희중이와 함께 적나라로 갔다.

기원전 636년까지 근 20년 간 진문공을 따라가면서 송나라, 제나라, 초나라, 진나라를 떠돌았다. 그리고 진목공의 후원으로 진문공이 진나라 군주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진문공은 같이 고생한 그는 물론, 조최, 호모, 호언 등과 함께 진문공에게 중용되었다.

기원전 633년 송나라의 군주 송성공초나라의 침략을 받아 구원을 요청하자 진문공은 원병을 보내준다. 진문공의 명을 받들어 조나라를 쳤고, 위나라와 동맹을 맺었다.[2] 그리고 그 공로로 진문공은 진나라 병력을 상, 중, 하 3군으로 나누면서 난지를 하군의 대장으로 삼고 그를 난지의 보좌관으로 삼는다.

기원전 632년 조나라를 쳐서 오록[3]을 차지했다. 2월 진의 중군의 장수 극곡이 죽자 진문공은 선진을 중군의 대장으로 삼는다. 3월에 조나라의 도성을 쳤고, 이때 초나라가 송나라 도성을 포위했다. 송성공이 구원을 요청했다. 진문공은 선진을 보내 초성왕의 군대를 치게하자 초성왕은 진(晉)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성득신은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추격해 90여리를 추격했다.[4] 그리고 성득신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성복에 이르렀는데, 선진은 성복 땅에서 성득신의 병력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고, 결국 성득신은 대노한 초성왕에 의해 자결 명령을 받고 결국 자결하였다.

기원전 628년 진문공이 죽고 그 아들 진양공이 즉위하였는데, 진목공이 패업을 위해 진나라 국경을 넘어 정나라를 급습했다.

기원전 627년 진양공은 진(秦)과 효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해 맹명시[5], 백을병[6], 서걸출을 사로잡았다. 그것을 안 진문공의 부인이자 진목공의 딸인 문영은 그들을 풀어줄 것을 권했고, 진양공은 친모가 아니라고 해도 어머니 뻘 되는 사람의 말이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선진은 크게 노하여 진양공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결국 진양공은 그들을 추격하게 했으나 결국 잡지 못했다. 그리고 적나라에서 진나라를 치자 선진은 그들과 교전을 벌였다. 그리고 그들을 치면서 무쌍을 찍었지만 결국 힘이 다해 죽었다.[7] 진양공은 그 아들 선차거(先且居)를 중군의 대장으로 삼았다.
  1. 참고로 훗날 6경이 되는 선씨들의 조상이 바로 이 양반이다.
  2. 이 조나라는 조최의 후손의 조나라가 아니다.
  3. 바이두 백과에 의하면 이곳이 현재 복양현이라고 한다.
  4. 진문공이 초성왕의 환대에 자신이 군주가 되면 은혜를 갚겠다고 한 것을 그대로 시행한 것이다.
  5. 백리해의 아들
  6. 건숙의 아들
  7. 그 이유는 바로 진양공의 얼굴에 침을 뱉은 무례한 짓을 하였기에 그것에 대한 대가라면서 전장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