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君主
군주의 치세에 따른 호칭 분류 | ||||
암군 | 성군 | 명군 | ||
↑ (선) | ||||
← (무능) | 군주 | → (유능) | ||
↓ (악) | ||||
폭군 |
"백성은 곧 나를 일컬음이라." - 조지 5세
수문제.
전 세계의 군주들.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찍은 사진. 가운데가 엘리자베스 2세다.
- 순우리말 : 나랏님, 임금
- 한자 : 君主
- 영어 : Lord[1], Monarch
한 나라를 다스리는 세습제 최고 통치자. 일반적으로 왕이라고도 하지만 그럴 경우 황제이거나 공국의 대공인 경우 등을 포괄하지 못하여 본 항목으로 이관하였다.
황궁 혹은 왕궁에서 살며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리는 정점의 지위란 것이 일반적인 이미지. 예부터 수많은 권력자들과 야심가들의 궁극적인 목표였으며, 이 자리에 오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무한한 도취감과 희열을 안겨주는 그야말로 마성의 매력을 가진 직책이다. 주로 왕관, 옥좌, 옥새 등으로 상징된다. 순우리말 표기는 임금.
군주라는 것 자체가 특정 무리들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집단에서 이 국가를 이끌어 나가며 구성원인 국민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고 국가의 보호하에 편안하게 살도록 노력하는 직업이며 그 대가로 해당국가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군주는 해당국가에서 최고로 화려하게 지어진 건축물인 궁궐에서 살며 음식, 옷, 수입 등등 그 어떤 것도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최고가 아닌 게 없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강력한 군주권을 구축한 군주는 드물었다. 왜냐하면 군주는 한명인데 신하는 여럿이니까. 국가 수뇌부에서 다수를 차지한 관료, 귀족들이 연계해서 군주를 견제하면 왕권은 놀라울 정도로 무력해진다. 이를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 친위세력을 양성하고 종교, 학문 등의 힘을 빌려 시스템을 강화하지만 결국 머릿수 앞에서는 답이 없다. 조금만 삐끗하면 신하들의 견제를 받아 권위가 약화되고 심할 경우 허수아비로 전락한다던가 아예 퇴위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대부분의 군주는 재위기간 동안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지키는 데에만 급급해진다. 따라서 민생안정이나 부국강병 따위는 꿈도 못꾸고 죽은 군주가 한 가득, 애초에 자리보전하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위대한 업적을 남긴 훌륭한 군주도 존재하지만 이건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더해 체계화된 국가 시스템이 존재하고 여기에 시대의 필요가 결부되어 이루어진 결과다.
그래도 권력의 중추에 있는 자리이니만큼 국가정책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힘이 약해진다고 해도 그건 신권 전체와 비교한 상대적인 의미이지 절대적인 기준으로 한 개인에게 집중된 힘으로는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군주권이 아무리 약해져도 아예 막장이 되지 않는 한 신하 한명 한명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을 갖는다.[2] 따라서 군주의 판단에 국가의 명운이 갈리고 심지어 국가 막장 테크를 타기도 한다. 어찌보면 한명의 개인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군주제 자체의 구조적인 결함.
백성들의 지지를 얻을 경우 힘이 강해진다. 어차피 신권과는 어느 한 쪽이 강해지면 다른 쪽이 약해지는 구조로 죽을 때까지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데 백성들의 지지가 있으면 바로 이 신권을 견제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따라서 관료들의 장막을 뚫고 민생을 어루만져줄 능력이 되는 군주는 신하들과의 파워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그리고 신권이라는 게 여러 신하들에게 나뉘어져 있다 보니 오히려 신하들이 적절히 분열되면 서로 군주에 대한 충성 경쟁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서로가 정적이고 나눠먹기 힘든 이권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군주가 어지간히 막장이 아닌 이상 신하들이 죄다 단결해서 군주에 대항하는 구도 자체가 보기 힘든 것.
서구의 역사에서는 비교적 강한 군주권이 구축되었던 16~18세기를 절대왕정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의 군주들은 중상주의, 상비군, 왕권신수설을 무기로 군주권 강화에 성공하여 중앙집권 시스템을 마련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크게 서구사회가 중세의 잔재에서 벗어나 근대사회로 발전하는 과도기적 시기로본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얼굴마담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놀고 먹는 것만 같아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놀고 먹기만 하다 제 명줄에 못 간 군주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일종의 예외 상황, 그러니까 군주가 또라이라서 그런거고…
제대로 된 왕의 일과는 거의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사실상 숨은 3D 직종.
온갖 교육, 결제, 면담 등등은 기본이고 국가의 일을 대부분 혼자 관리 책임하는 자리라 업무량이 장난이 아니며, 당연히 과로사한 군주의 숫자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윗자리에서 온갖 막장 상황을 다 겪다보니 정신이 피폐해지고 홧병으로 죽어나가는 군주도 수두룩하다. 뭐 절대적인 왕권을 누리는 국가라면 이론상으로는 놀고 먹는 것도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랬던 왕도 있기야 있지만) 실제로는 일국의 수장이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라지게 되니, 그 댓가를 고스란히 치르게 되는 셈. 독재자 역시 마찬가지.
옛 중국에서는 전국시대까지 군주들을 왕이라 불렀으며 덕치를 중요시한다고 하지만 개소리. 패도를 중시하는 패왕이 대세였다.
군주는 문관의 업무와 무관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신분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하기도 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군주로서 전쟁터를 누빈 대표적인 인물. 때문에 군주는 의복도 여러가지다. 평상복과 무도회에 참여하기 위한 파티복에 심지어는 전술한 바와 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터를 누벼야 하기 때문에 갑옷도 존재한다. 때문에 왕은 문무를 겸비한 능력이 요구된다. 다만 머리는 좋은데 체력이 약한 군주는 행정쪽에서 수완을 할휘하고 반대로 머리는 그다지 좋지 않은데 체력이 좋은 군주는 전투쪽에서 수완을 발휘한다.[4] 후자의 경우는 주변국들을 점령해서 자국의 영토를 넓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선택 하나에 수많은 국민들 운명이 왔다갔다 하므로 책임감과 의무감, 도덕심은 군주에게 있으면 좋은 덕목이다. 책임감과 의무감, 도덕심 등 규범적인 측면에서의 덕목을 갖추었다고 해서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 오히려 카리스마나 재력, 인맥 등의 기량을 갖추는 것이 군주로서 요구되는 덕목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고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과 인망이다.
참고로 '20세기는 왕들의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 20세기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 중국 등을 비롯한 웬만한 국가의 왕조들이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 세계대전에 앞서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무너졌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오스만투르크의 황제들이 죄다 퇴출당했고[5][6]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등 동부 유럽의 왕들이 집단 퇴장당했다. 5~60년대를 지나면서는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계 왕들이 쿠데타로 줄줄이 쫓겨났고 1973년에 아프가니스탄, 1974년에 에티오피아, 1979년에 이란에서 왕정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전세계의 왕정들은 그야말로 도미노처럼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중동부 유럽, 중동의 왕조들이나 동아시아 본토의 왕조들은 거의 다 전멸해버렸다.[7][8]
지고한 신분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서브컬쳐 등에서는 역으로 신분 차이를 통한 스토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예, 거지, 떠돌이, 부랑자 같은 최하위 신분과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리니지의 반왕 켄 라우헬. '천한 노예로서 태어나 왕으로서 죽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캐릭터이며, 농노에서 왕으로 순식간에 신분 업그레이드를 했기 때문인지 작중에서 표현되는 왕위에 대한 집착과 권력욕은 실로 무서울 정도.[9]
1.1 책임의 자리인가? 권위의 자리인가?
왕의 책임이 이 정도로 부각되는 것은 사실 근대의 지도자상이 덧씌워진 것이다. 고대의 왕은 "지배하는 자"며 "책임지는 자"는 사실 아니다. 근대 이전의 매체에서 왕의 고뇌를 다룬 매체가 있기나 한가. 고로 "책임"이라는 요소로 고대-중세의 왕들을 평가하는 시선은 철저히 현대적인 것으로, 옳다고 보긴 힘들다.[10] 그러니까 한마디로 무조건 왕이 우선이란 소리.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사실 빛좋은 개살구나 마찬가지다. 다만 이것은 군주와 피지배계층 간의 관계이고, 지배계층 사이에서의 군권과 신권의 관계는 조금 달랐다. 왕권이 신권을 제압하지 못할 경우 왕의 권력은 크게 축소되는데, 이 경우 강력해진 신권이 왕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당시의 사회상과 국가 시스템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즉 신권이 강해지면 군주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얘기. 예를 들어 제정분리 이전의 고대 사회에서는 왕이 모든 천재지변의 책임을 지는 인물이었으며,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시 왕을 죽이거나 형벌에 처하는 경우도 많았다. 왕의 권력이 강화될 경우에도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왕권과 신권 사이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늘 존재했다. 군주가 이 균형을 깨려 할 경우 신권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서는 전제왕권이 확립된 시기에도 천재지이가 일어나면 왕이 자신의 부덕함을 하늘에 고한다는 등의 명목으로 하늘에 제를 올리거나 양위를 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11]
제정분리 이후에도 왕권신수설 등으로 왕의 권위를 신과 통하는 수준으로 밀려는 행위는 많았다. 아즈텍의 황제는 이런 부분이 더욱 강해서 왕이 되기 전 7일 동안 굶은 후 신에게 "저는 하찮은 인간일 뿐인데 제가 왕이 되어도 좋겠습니까?"란 내용의 의식을 치른 후 왕에 등극한다고 했다. 물론 7일 동안 굶어 죽은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신도 버린 사람이 되겠지[12] 왕권신수설이 꼭 유럽에서만 나온 개념이라고 보기 힘든 점의 증거로 제시된다. 동아시아에서는 천인감응설을 내세워서 군주와 하늘이 연결되었고 천재지변이나 기후의 변화가 왕의 행동이 하늘을 통해서 반영된다고 보았다.
1.2 군주정 국가들
영연방, 입헌군주국, 전제군주국, 왕국, 여왕국, 제국, 공국 항목을 참조.
1.3 군주정 폐지
- 멕시코 1824년 산타 안나의 쿠데타로 아구스틴 1세 퇴위, 1867년의 막시말리아노 1세가 베니토 후아레즈에게 처형당한 것까지 치자면 1867년.
- 인도 1857년 무굴제국이 영국에 의해 붕괴, 바하두르 샤 2세가 미얀마로 귀양. 인도제국 시기까지 친다면 1947년까지. 하지만 인도의 군주제 자체는 1950년까지 유지되었으나 영연방 가입 조건에서 군주제 유지가 빠지면서 공화정으로 전환한다.
- 프랑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패배로 나폴레옹 3세 퇴위.
- 미얀마 1885년 영국에 의해 꼰바웅 왕조가 함락되고 티바 왕 퇴위.
- 브라질 제국 1889년 내각회의에 따라 페드루 2세 퇴위.
- 하와이 1893년 백인들의 반란으로 릴리우오칼라니 여왕 퇴위.
- 대한제국 1910년 일본에 합병됨으로 순종 퇴위. 일본 제국 산하의 창덕궁 이왕 역시 1945년 신적강하와 함께 폐지.
- 포르투갈 1910년 혁명으로 마누엘 2세 퇴위.
- 청(중국) 1912년 선통제 퇴위. 1917년 복벽운동으로 잠깐 복위하나 의미는 없다.
1915년 위안스카이의 중화제국 선포는 쳐줘야 하나? - 러시아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 퇴위.
- 독일 1918년 킬 항구 수병 반란을 시작으로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 빌헬름 2세 퇴위.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918년 1차 대전 패배로 카를 1세 퇴위.
- 핀란드 1919년에 독일의 지원으로 잠시 왕정이 세워졌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이 패배하면서 곧 붕괴되었다.
- 오스만 투르크 제국 1922년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 제정 폐지, 메흐메트 6세 퇴위. 1924년에는 칼리프 제도도 페지.
- 몽골 1922년 공산화로 복드 칸 퇴위.
- 유고슬라비아 1941년 추축국의 침공으로 페타르 2세 망명, 이후 티토가 권력을 잡으면서 퇴위 확정.
- 아일랜드 1937년 군주정 폐지. 조지 6세는 아일랜드의 국왕 칭호 상실.
- 아이슬란드 1944년 덴마크가 나치에 의해 점령됨에 따라 덴마크와의 동군연합 해체 이후 공화정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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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1945년 푸이에 의해 만주국 해산 - 이탈리아 1946년 국민투표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퇴위.
- 불가리아 1946년 공산화로 시메온 2세 퇴위.
- 알바니아 1946년 공산화로 조구 1세 퇴위.
- 헝가리 1946년 공산화로 왕정 폐지. 하지만 헝가리는 왕정 수립 이후 왕이 없던 괴이한 나라였다.(...)
- 루마니아 1947년 공산화로 미하이 1세 퇴위.
- 티베트(?) 1950년 중국으로 침공으로 달라이 라마 16세의 실권, 1959년에 인도로 망명.
- 이집트 1952년 나세르의 쿠데타로 파루크 1세 퇴위. 하지만 왕정 자체는 파루크 1세의 아들이 허수아비 국왕으로 즉위함에 따라 1953년까지 존속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철폐되었다.
- 베트남 1955년 쿠데타로 응오딘지엠 정권의 수립으로 바오다이 황제 퇴위.
- 튀니지 1957년 무함마드 8세가 사망함에 따라 왕통이 단절되어 공화정으로 이양.
- 이라크 1958년 바트 당의 쿠데타로 파이살 2세 피살.
- 르완다 1959년 내전 발발로 키겔리 5세가 망명함에 따라 사실상 왕정 붕괴, 1961년에 공화정 선포.
- 예멘 1962년 쿠데타로 무함마드 알 바드르 국왕 퇴위. 하지만 1970년까지 바드르 국왕은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수행했으나 1970년 살레가 왕당파를 완전히 물리침에 따라 예멘은 공화국이 된다. 한편 이집트는 살레의 공화국을 지원했고 덕분에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뒷통수를 맞아 처참하게 패배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일부로 가입하면서 조호르 술탄의 통치를 받았으나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되면서 왕정이 자연스레 폐지되었다.
- 부룬디 1966년 군주정 폐지로 음왐부차 4세 퇴위.
- 리비아 1969년 카다피의 쿠데타로 이드리스 1세 퇴위.
- 아프가니스탄 1973년 무함마드 다우드 칸의 쿠데타로 자히르 샤 국왕 퇴위.
- 그리스 1973년 군사정권에 의해 콘스탄티노스 2세 퇴위. 군사정권 종식 이후의 1974년의 왕정복고 여부 투표에서 왕정복고 부결.
- 에티오피아 1974년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퇴위, 피살.
- 라오스 1975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사방바타나 국왕 퇴위.
- 이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레자 팔레비 국왕 퇴위.
- 중앙아프리카제국 1979년 장 베델 보카사가 프랑스 공수부대에게 체포됨에 따라 제정 폐지.
- 사모아 2007년 사모아의 마지막 왕이 사망한 이후 왕실 혈통이 단절되면서 군주제가 폐지.[13]
- 네팔 2008년 마오이스트들의 권력 장악으로 갸넨드라 국왕 퇴위.
1.4 영연방 소속 국가들의 군주정 폐지
- 아일랜드 1937년 영연방 탈퇴로 군주정 폐지.
- 인도 1950년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파키스탄 1956년 영연방 탈퇴로 군주정 폐지. 사람들이 의외로 여기긴 하지만 인도나 파키스탄이 독립 이후 한동안은 왕정을 유지하고 영국왕을 모셨으나 인도는 헌법 개정으로, 파키스탄은 군사 쿠데타로 군주정을 폐지했다.
- 가나 1960년 7월 1일 국민투표로 군주정 폐지
- 남아프리카 연방 1961년 5월 31일 헨드릭 페르부르트 박사의 주도로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정 폐지.
- 탕가니카 1962년 12월 9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나이지리아 1963년 10월 1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우간다 1963년 10월 9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케냐 1964년 12월 12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말라위 1966년 7월 6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가이아나 1970년 2월 23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로디지아 1970년 3월 2일 백인정권이 군주정을 폐지.(현재의 짐바브웨)
- 감비아 1970년 4월 24일 국민투표로 군주정 폐지.
- 시에라리온 1971년 4월 19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실론(스리랑카) 1972년 5월 22일 헌법 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몰타 1974년 12월 13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트리니다드토바고 1976년 10월 26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피지 1987년 9월 28일 군사쿠데타로 군주정 폐지.
- 모리셔스 1992년 3월 12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2015년 현재 바베이도스의 왕정 폐지가 논의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도 공화파의 득세로 현재 왕정 폐지가 논의되고 있다. 적어도 엘리자베스 2세 사망 이후 영연방 왕국들의 숫자가 크게 줄 것이 자명해보인다.
1.5 군주의 귀환
왕정복고 항목을 참조.
1.6 위기의 군주국들?
군주국의 공화주의 항목을 참조.
1.7 왕 없는 왕국
왕정이 폐지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나 국왕이 존재한 상태에서 또 다른 독재자가 등장한 특이한 케이스에는 국가 정체는 왕국인데 정작 왕이 없는 해괴한 일이 가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붕괴 이후 등장한 헝가리 왕국인데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이 헝가리 왕국의 섭정을 자처했지만 정작 헝가리 왕위를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전 황제인 카를 1세를 추방해버려 함대 없는 제독이 왕 없는 왕국을 통치하는 기괴한 모습을 연출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 지배하의 스페인인데 프랑코는 스페인 왕국의 섭정을 자처했지만 자신의 살아 생전에는 왕을 옹립하지 않았다. 왕위 계승 1순위였던 후안 3세가 자유주의 성향이었던 것과 기타 등등이 겹친 결과였다. 그가 죽은 다음에는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옹립되면서 스페인은 진정한 의미의 왕정복고를 맞이한다.
또 요르요스 파파도풀루스 장군 치하의 그리스 역시 왕없는 왕국이었다. 1967년 파파도풀루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당시 그리스의 국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는 파파도풀루스를 축출하기 위해 역쿠데타를 계획했다가 실패하여 망명한다. 이후 파파도풀루스는 그리스 왕국의 섭정임을 자처하며 한동안 왕없는 왕국의 섭정놀이를 하다가 1973년에는 아예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그는 학생 시위로 인해 곧 퇴진했고 그의 뒤를 이은 페지키스 장군도 키프로스에서 터키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그리스 군사정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1974년 왕정 복고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되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라서 왕정 복고는 무산된다. 애초에 그리스 왕가 자체가 외국인 출신이라 국민들 입장에선 별로 애착이 없던 것이 컸다.
1.8 왕국 없는 왕
대개 이런 사람들은 왕정이 폐지된 공화제 국가에서 자신을 명목상 어느 나라의 국왕으로 자처하며 왕정복고나 왕위계승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루이 20세의 부르봉 왕가와 앙리 7세의 오를레앙 왕가와 보나파르트 황가가 동시에 왕위를 주장하는 난리 굿이고 이미 군주국인 영국에도 스튜어트 왕조를 지지하는 자코바이트란 자들이 있으며 그외에도 온갖 왕위 계승 주장자들이 존재한다. 이란의 팔라비 황가부터 리비아의 엘세누시 왕자에... 가깝게는 한국의 이해원 '옹주'나 이석같은 사람들도... 달라이 라마도 넓은 의미에서 이런 왕위 계승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1.9 관련 항목
- 왕국
- 제국
- 군주의 칭호
- 군주의 통치 형태에 따라 따라오는 이명
- 군주의 호칭
- 군주제의 종류
- 왕실
- 왕조
- 왕족
- 대관식
- 옥좌
- 왕관
- 국성
- 군약신강
- 군주론
- 궁전
- 근위대
- 섭정
- 실제로 장수한 왕들
- 재위기간이 짧은 왕들
- 어린 나이에 즉위한 왕들
- 역적
- 왕권신수설
- 살리카법
- 조선황실복원
- 한국 사극/역대 왕역
- 역사 관련 정보/중국 역대 군주
2 郡主
조선시대 외명부의 직책으로 세자의 적녀[14]를 부르는 호칭으로 정 2품 이었다. 세자의 서녀(후궁이 낳은 딸)는[15] 현주(縣主)라고 하여 종 2품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왕의 유모였던 봉보부인이[16] 종 1품으로 세자의 딸들보다 품계가 높았다.
다만 군주는 정2품 현주는 정3품 이었으나 고종떄 정1품으로 승격되었다[1]
공주나 옹주는 뜻이 좋은 미칭을 붙이지만 군주나 현주의 경우는 앞에 지역 이름을 붙였다. 경혜공주도 문종이 세자일 시절에는 평창군주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가면 역시 미칭을 붙이게 된다.
아버지인 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으면 딸들 또한 공주와 옹주로 승격하게 되며 품계는 무계가 된다.
2.1 실존인물
왕이 되지 못한 세자의 딸만 기록한다.
3 軍主
신라에서 주(행정구역)의 장관을 군주라고 했다. 현대로 치면 도지사겠지만 전쟁이 잦았던 삼국시대인 만큼 삼국통일 이전에는 행정관이라기보다는 장군의 역할이 컸다. 삼국통일 이후에는 명칭을 총관(摠管), 도독(都督) 등으로 바꿨다.
예를 들면 실직주(삼척시)의 군주로 임명되었던 이사부, 신주(新州)의 초대 군주로 임명된 김무력 등이 있다.
4 軍酒
곧 입대할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 먹이는 술. 입대주라고도 한다.
보통은 입대할 사람들을 맞이해서 평범하게 먹이고 예비군 선배들이 자기 군 생활 이야기를 하면서 군 생활은 이렇게 해야 하니 등등 여러가지 충고를 주는게 목적이다. 다만 술을 생일주와 비슷하게 온갖 술을 섞어서 먹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격려가 주 목적이기 때문에 생일주처럼 별별 불건전한 것은 안타는 편. 그런데 섞든 말든 그걸 군화나 부츠에 따르고 먹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스부츠?
반대말은 제대주. 이때는 곧 전역하거나 막 전역한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 먹인다. 이때는 예외없이 군화도 부츠도 없고 그냥 평범하게 술을 먹이는게 암묵의 룰. 전역주라고 하기도 한다.
- ↑ 다만 이쪽은 '영주'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 ↑ 조선만 해도 한창 막장테크를 타고있던 세도정치말기였던 철종 시기조차도 군주가 제대로 폭발하자 안동김씨의 수장이 벌벌 떨어야했다.
- ↑ 사진은 GARO 불꽃의 각인의 주연인 발리안테 왕국의 왕자 알폰소.
- ↑ 군주의 활동이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지는 시대적 배경이나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지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머리가 좋지 않다고 전투 쪽에서 수완을 발휘한다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나폴레옹은 머리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인가?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전투에서 대업을 이루었던 것이다. 머리가 그다지 좋다고 보기 어려운 영국의 존 왕은 괜히 전쟁한다고 설쳤다가 영토만 잃고 패했다.
- ↑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공화정으로 바뀌었으나 스페인은 프랑코가 왕정을 복고시켰다.
- ↑ 몽골은 운게른의 깽판 이후에 복드 칸이 폐위당하면서 공화정으로 이양했고 조선도 일본에 의해 점령되면서 한국인의 왕조 역사는 끝나게 된다.
- ↑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들의 패도를 걷거나 휘말려서 사라진 군주가 대부분. 결국 패도를 피하라는 맹자말이 맞은 셈이 되어버렸다.
- ↑ 사실 20세기에 탄생한 왕조(대부분 중동지역)도 생각보다 많다. 대부분 단명해서 그렇지.
- ↑ 사실 그것 자체가 이 인물의 매력이다.
- ↑ 물론 신하들이 왕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동서고금에 존재했으나, 혈통으로 지배권을 얻는 시대의 책임은 투표에 의해 지도자를 뽑는 시대의 책임과는 다른 개념이다.
- ↑ 이런 측면을 부각시킨 작품이 눈물을 마시는 새다.
- ↑ 일단 건강한 사람이라면 물이 제공된다는 가정하에 2~3주정도는 밥없이 버틸수있다.
- ↑ 물론 그 이후에는 입헌군주제가 되었지만 이쪽은 왕이 없다. 자세한 것은 사모아 항목을 참조. 다만 사모아 역시 독재자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 ↑ 세자빈이 낳은 딸.
- ↑ 왕과 별도로 세자의 후궁이 따로 있었다. 세종대에 세자가 후사가 없어 고민하다가 세자에게도 후궁을 들일수 있게 했는데, 왕의 후궁 보다는 품계가 낮았다.
- ↑ 출신이 천민이나 노비였다. 하지만 왕들이 생모 이상으로 공경했다..
- ↑ 이외에도 어릴 적 요절한 딸이 2명 더 있었다.
- ↑ 고종 대에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증되면서 공주로 추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