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idarność (Niezależny Samorządny Związek Zawodowy "Solidarność", NSZZ "Solidarność")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
1 개요
1980년 9월 17일 그단스크의 조선소 노동자였던 레흐 바웬사 주도로 창립된 폴란드 인민 공화국 사상 최초의 비공산계열 자유노조. 1980년대 초 폴란드의 자유화 운동을 이끌면서 공산 정권의 강력한 탄압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고 계속 활동하여 결국 폴란드에 바르샤바 조약기구 소속 국가 중 처음으로 민주 정부를 탄생시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2 배경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한 폴란드 내에서는 지속적으로 공산 정권에 대항한 쟁의들이 빈발했다.
1956년 포즈난 항쟁 이후 민족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던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가 집권하면서 어느정도 자유화가 이루어졌으나 1970년의 권위주의적 통치 및 경제난에 따른 생필품 가격의 기습 인상으로 인해 민심을 잃게 되어 고무우카가 물러나고 에드바르트 기에레크(Edward Gierek)가 집권하게 된다. 기에레크의 외채 도입을 통한 성장으로 한 동안 폴란드의 경제가 나아지는 듯 하였으나 오일쇼크의 여파로 7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폴란드의 경제 상황은 다시 최악의 상황으로 몰린다. 이 경제난으로 인해 폴란드 내부, 특히 노동자의 불만은 더욱더 높아졌으나 공산권의 노동조합은 사실상 당의 어용 단체에 불과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대변할 수 없다는 점에 착안, 1979년 말부터 공산당의 통제에 놓여있지 않은 독립된 노조를 창립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한다.
3 설립
1980년 8월 7일 이러한 움직임의 주동자 중 하나였던 그단스크의 여공 안나 발렌티노비츠 (Anna Walentynowicz)[1] 가 독립 노조 설립 사실이 정부에 의해 발각되어 해고당하면서 그단스크를 중심으로 여기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난 대규모 노동 쟁의가 발생한다. 투쟁이 격화되던 8월 31일 마침내 단결을 뜻하는 솔리다르노시치라는 구호가 시위대 사이에서 등장하면서 이 단어는 곧 폴란드 노동 투쟁의 상징이 된다. 여기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쟁의를 단결시켜 조직화된 단체로 결성시킨 자가 바로 레흐 바웬사였으며 바웬사는 단순 노동 투쟁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가톨릭 교회와 연계해 비폭력 반 소련 운동으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움직임이 대규모로 확산되어 통제 범위를 벗어나자 1980년 9월 기에레크가 사임하고 들어선 새 공산당 지도부는 솔리다르노시치를 인정하고 11월 10일 이를 공식적으로 등록시킨다.
4 탄압
그러나 이러한 자유화 움직임이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폴란드가 공산권에서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브레주네프를 위시한 소련 정부는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1981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폴란드 공산당 내 온건파들이 대거 파면되고 당 서기장 자리에 강경파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이 임명되어 1981년 12월 13일 폴란드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레흐 바웬사를 포함한 솔리다르노시치 지도자들이 대거 체포된다. 계엄령은 1983년까지 지속되었으며 레흐 바웬사는 가택 연금 와중에도 비밀리에 서방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폴란드 내부의 상황을 알린다. 같은해 바웬사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5 재기
1989년 동유럽에 자유화바람이 불면서 야루젤스키 정권도 솔리다르노시치를 계속 탄압할 수 없었고 마침내 솔리다르노시치와의 원탁 회의를 통해 민주화 논의를 시작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1989년 동유럽 혁명 참조. 이를 통해 솔리다르노시치가 상원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서 폴란드는 동구권 최초로 비공산계열 정권을 탄생시킨다.
6 이후
공산주의 붕괴 이후 경제난 속에 솔리다르노시치는 인기가 하락하여 1993년 총선과 1995년 대선에서 잇따라 패배하고 말았다.
1997년에 잠깐 다시 집권한 적이 있었지만 2000년 대통령 선거와 2001년 총선 패배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2005년 총대선으로 사회민주당이 부패 스캔들로 몰락하고 그 자리를 PO와 PIS가 메우면서 보수양당제로 전환되었는데 이 두 정당의 출신기반이 자유노조라는 점에서 영향력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정치적인 위상은 전무에 가깝다. 구호와 투쟁 자체는 폴란드, 나아가 동유럽의 민주화를 상징하며 지금도 폴란드 내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수도 바르샤바의 대통령 궁 앞에는 솔리다르노시치의 엠블럼이 붙어있다.
문명 5에 등장하는 폴란드 문명의 특성 '연대'는 바로 여기서 따 왔다.
- ↑ 1929 ~ 2010, 당시 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었으며 공산 정권 붕괴 이후에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지속했다. 2010년 폴란드 공군 Tu-154 추락사고 당시 정부 고위 인사들과 함께 카틴 학살 추모단에 합류했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