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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고 요약도 | |
발생일 | 2010년 4월 10일 |
유형 | CFIT, 조종사 과실 |
발생 위치 | 러시아 |
탑승인원 | 승객 87명, 승무원 9명 |
세스나 탑승객: 2명 | |
사망자 | 탑승자 96명 전원 사망 |
기종 | 투폴레프 Tu-154M |
항공사 | 폴란드 공군 |
기체 등록번호 | 101 |
출발지 |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 |
도착지 | 스몰렌스크 공항[1] |
사고 39시간 전에 촬영된 비행기.
1 사고 과정
당시 폴란드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은 카틴 학살 70주년 추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투폴레프 Tu-154에 탑승했다.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을 떠나 러시아 스몰렌스크로 가는 중이었다. 비행기 내에는 대통령 외에도 영부인과 비서실장,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 폴란드 육군 참모총장, 외무차관, 야당대선후보 2명등 고위관계자 다수가 탑승했다.
비행기는 26년 된 상당히 오래 된 기체로, 2009년 12월 러시아 사마라 주 아비아코르 항공정비공장에서 점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때 비행기 엔진을 수리하고 전자항법장비와 실내 장식을 교체해 더 대통령 전용기다운 모습을 갖추었고, 콜사인은 PLF 101였다.
비행기가 기지에 착륙을 준비할 당시, 주위엔 안개가 자욱해 시야가 500m밖에 안되는 상황이었다. 기지에는 ILS가 없어서 아침부터 폐쇄된 상태였고, 러시아 공군 관계자는 지상관제탑에서 하강속도를 줄이고 모스크바나 민스크로 회항하도록 계속해서 요구했으나 조종사는 무시하고 대통령이라는 높으신 분이 탑승한 만큼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과 책임감[2] 때문에 4번이나 착륙을 억지로 시도했다. 더군다나 카친스키 대통령은 과거 조지아를 방문할 때도 공항의 기상상태가 나쁨에도 착륙명령을 내렸다가 회항한 뒤 자동차로 조지아를 방문했고, 인터뷰 때 은근히 조종사를 까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조종사에게 중압감이 더해졌을 것이다.
관제사가 조종사에게 기상 조건이 나빠서 비행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마지막으로 말했을 때 조종사는 접근 시도 후 기상 조건이 안되면 2번째 선회 비행을 하겠다고 답신했다. 문제는 기상 조건이 굉장히 나쁜 데다가 활주로 주변의 나무가 무선 교신을 방해하고 있었고, 관제사가 비행기가 정상 항로보다 왼쪽으로 125m나 벗어난 상태에서 정상 항로에 있다고 통보했고, 공항 활주로 표시등의 30%가 고장나 있는 등 여러모로 착륙하기엔 힘든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조종사는 지상 접근 경보장치까지 무시해가면서 착륙을 시도했고 15분뒤 오전 10시 56분, 공항으로 부터 1.5km 떨어진 지점에서 날개가 나무와 부딪히면서 왼쪽 날개의 일부가 떨어져나간 뒤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비행기의 마지막 상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블랙박스
2 사고 이후
이 사고로 폴란드에는 1주일간 애도기간이 선포되었다.
또한 이 사고로 폴란드 최고급 수뇌부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셈이 되었다. 당장 폴란드 대통령과 영부인, 폴란드 망명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리샤르트 카초로프스키(Ryszard Kaczorowski), 하원 부(副)대변인 크지쉬토프 푸트라(Krzysztof Putra), 예지 쉬마이진스키(Jerzy Szmajdzinski), 상원 부대변인 크리스티나 보헤네크(Krystyna Bochenek), 전(前) 부수상 프셰미스와프 고시에프스키(Przemysław Gosiewski), 전 하원 의장 마치에이 프와진스키(Maciej Płazynski), 국립기념원[3] 원장 야누쉬 쿠르티카(Janusz Kurtyka), 폴란드 국립은행 총재 스와보미르 스크지펙(Sławomir Skrzypek), 지역개발부 장관 그라지나 겡시츠카(Grazyna Gęsicka), 폴란드군 총참모장 프란치셰크 공고르(Franciszek Gągor), 공군 사령관 안제이 브와시크(Andrzej Błasik), 육군 사령관 타데우쉬 부크(Tadeusz Buk), 해군 사령관 안제이 카르베타(Andrzej Karweta), 국방부 차관 스타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Stanisław Komorowski), 국가보안부[4] 부장 알렉산데르 쉬치그워(Aleksander Szczygło), 폴란드 국내군(Armia Krajowa)[5] 병사협회 회장 체스와프 치빈스키(Czesław Cywinski), 폴란드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피오트르 누로프스키(Piotr Nurowski), 카틴 위원회 의장 스테판 멜라크(Stefan Melak)와 공산 정권 시절 솔리다르노시치 창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직 노동 운동가 안나 발렌티노비츠(Anna Walentynowicz) 등, 그야말로 국가 수뇌부가 이 사고로 한 방에 날아갔다. 특히 폴란드군은 육해군 사령관과 참모총장이 이번 사고로 몰살당하는, 보기 드문 안습 상황을 맞았다.지못미...
공교롭게도 카틴 숲에서 학살당한 폴란드인들도 폴란드의 고급 장교과 부사관, 지식인, 기술자 등 폴란드를 이끄는 엘리트층이었다. 방법과 시기, 규모가 다르지만 카틴의 비극이 70년 후에 그대로 재연되었다는 게 틀린 말이 절대 아니다.
법과정의당(Prawo i Sprawiedliwość)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사망하자 대통령 집행 대행은 당시 최대 야당이자 하원 다수당인 시민강령당(Platforma Obywatelska) 소속의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Bronisław Komorowski) 하원의장이 됐다. 이후 신임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국정을 운영했다.
카틴 학살의 역사적 배경도 그렇고, 러시아가 폴란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손을 썼다는 음모론이 등장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사고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사실 러시아가 북한도 아니고 이렇게 전세계가 주목할법한 방식으로 대놓고 사고를 칠 이유는 없기도 하고 해서 음모론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여담으로 이 사건을 통해 카틴 학살이라는 역사를 처음 안 일반인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