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철학

Philosophy of Mathematics

1 개요

수학 자체, 혹은 논리학집합론 등 수학의 개념적 기초에 해당하는 분야에서 촉발되는 철학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철학의 하위 분야. 주된 과제는 수학적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수학은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수학철학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다.

서양 철학에서는 역사적으로 피타고라스 혹은 플라톤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전통적인 분야에 해당한다. 왜냐면 고대부터 수학의 명제들은 다른 학문들의 명제들과는 달리 확실한 지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집합론논리학의 발달에 힘입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발전은 소위 분석철학 전통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2 20세기 수리철학의 역사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으로 '수학은 하나인가, 여럿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되었고 이는 수학 기초론이라는 분야로 이어졌다. 수학자들은 집합론을 바탕으로 공리 체계를 구성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처음에는 수학의 일부로 시작되었던 수학 기초론은 그 속성상 곧 철학적 논의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수학 기초론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철학의 분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러셀화이트헤드가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에서 수학논리학으로 환원시키려고 시도하면서였다.[1] 이 당시 학계에서 주류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형식주의(힐베르트가 대표주자다)였으나 브라우어는 형식주의가 보여주는 무한에 대한 태도를 비판하면서 보다 엄밀하게 구성가능한 것[2]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라우어의 입장은 흔히 직관주의로 불리는데, 이름 때문에 오해를 하기가 쉽다. 주류 형식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꼴통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수학적 엄밀성에 대해 더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 뿐이다. 여기에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논리주의를 포함하면 20세기 초반 수리철학의 3대 조류가 된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냥 역사적 상식이고 20세기 후반 수리철학의 주된 주제는 플라톤주의를 둘러싼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철학자 콰인은 수학의 대상이 되는 수학적 존재에 대해 경험론의 입장에서 그것이 존재한다는 플라톤주의적 태도를 배격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과학분야에서 이미 수학의 개념들을 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으로 대충 봉합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베나세라프가 1960년대에 쓴 논문들로 인해 수학적 대상의 존재론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이 붙게 된다. 중세철학 연구자이지만 논리학과 논리철학, 수리철학에 일가견이 있는 박우석 교수는 20세기 후반 수리철학의 동향을 소개한 논문에서 이 동향을 '수리철학의 백가쟁명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봤자 전 인류의 99.9퍼센트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세계의 일이겠지만, 우리가 확실성의 모범 사례로 생각하는 수학의 명제들이 어떻게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이 수리철학의 논의의 본질이다.

3 수리철학의 주요 주제

수리 철학의 주요한 주제들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선험성: 수학적 지식은 일견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선험적(a priori)인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인간이 선험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수학적 지식은 무엇에 관한 지식인가?
  • 필연성: 수학에서의 논증은 오로지 그 결론의 정당성을 필연적으로 보장하는 연역적으로 타당한 추론에만 의존하며, 수학적 증명은 그 결론(정리)이 필연적 진리임을 확립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수학적 필연성의 본성은 무엇인가? 수학적 필연성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수학적 추론과 증명은 그 결론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증명의 본성은 무엇인가?
  • 적용가능성: 수학은 경험적 전제들에 의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세계에 관한 탐구를 비롯한 우리의 지적 활동에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런가? 수학의 보편적 적용가능성이 어디에 기인하는가?
  • 무한: 많은 수학적 명제는 무한에 관여한다. 경험, 기억, 추론능력이 유한한 우리가 어떻게 무한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무한의 본성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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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셀과 화이트헤드 이전에 프레게가 이미 이러한 시도를 했지만 그의 논리체계가 치명적인 역설을 낳는다는 것을 러셀이 밝혀냈고 결국 프레게는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프레게의 연구가 가지는 중요성을 프레게가 살아있는 동안 간파한 몇안되는 수학자들이었고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아 연구를 계속하게 된다. 프레게는 이들 덕분에 사후 학계에 알려지게 된다.
  2. 거칠게 말해서 배중률을 사용하지 않고 증명된 정리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