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곤

淳于髡(BC 385 ~ BC 305)

중국 전국시대 나라 사람. 직하 학사[1]출신으로, 데릴사위에 작달만한 체격이었지만 달변가였다. 유머러스한 화법을 구사해 상대를 설득하는 데 능숙했다. 그에 얽힌 일화는 재미있는 것이 많다.

제나라 위왕(威王)이 주색잡기에 빠져 나랏일을 돌보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간언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순우곤이 나서서 간언했는데, 목에 핏대를 세우고 '통촉하여 주시옵서서'만 외쳐대는 엑스트라 양산형충신과는 격이 달랐다. 어느날 제위왕을 만난 자리에서 생뚱맞는 퀴즈를 툭 던진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새가 대궐에 앉았는데, 3년 동안 울지를 않습니다. 대체 얘는 뭥미?"
위왕은 몇년새 국정을 등한시한 자신을 비유한 질문임을 깨닫고 대답했다.
"그 새는 일단 한번 날개짓하면 천리를 날아오르고, 한번 울부짖으면 만인이 놀랄 것이다."
그리고는 마음을 다잡고 국정에 전념하니 제나라는 비로소 제대로 다스려졌다.[2]

이후 나라가 제나라로 쳐들어 왔을 때, 위왕은 순우곤을 사신으로 파견해 나라에 원군을 청하려 했다. 그런데 순우곤은 돌연 음홧하하핫!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려 갓끈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벙찐 위왕이 이유를 캐묻자 순우곤이 대답했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요, 왠 농부가 빌더라구요. 족발 하나 쐬주 한잔 놓고서 로또농사가 대박쳐서 부자 되게 해달라고요. 겨우 그걸 받고 어느 정줄 놓은 이 소원을 들어주겠어요?"
그제야 위왕은 원군을 청하면서 터무니없이 적은 예물을 마련했음을 깨닫고서 순우곤에게 막대한 예물을 들고 가게 했다. 과연 순우곤은 조나라 원군을 이끌고 왔으며 초군은 물러났다.

위기를 모면한 위왕은 기뻐서 잔치를 열고 순우곤을 대접했다. 잔치 도중 위왕은 문득 순우곤에게 주량이 얼마인지 물었다. 그러자 순우곤은 생뚱맞는 대답을 들려준다.
"한잔만 마셔도 쑝가고, 한말을 마셔도 까딱 없지요."
이 해괴한 말에 낚인 위왕이 뜻을 캐물으니 순우곤이 답했다.
"높으신 분을 앞에 두고서야 한잔만 마셔도 ㅎㄷㄷ입죠. 친척 어르신을 모시는 자리라면 한병만 마셔도 GG 칩죠. 불알친구랑 노는 자리라면야 대여섯병이 대숩니까.관광나이트 동네 청년 아낙이랑 놀아제끼며 처묵처묵하면 일고여덟 병도 문제 없죠. 뭐 그렇다가 므흣한 분위기[3] 가 조성되면... 열 병도 우습죠." 이렇게 고도의 떡밥을 던진 순우곤은 주색잡기 좋아하는 위왕에게 간언한다. "이처럼 세상 이치가 술을 마시면 반드시 어지러워지고,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오는 법입니다." 위왕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이후 술을 마실 때는 순우곤을 곁에 두었다.

순우곤은 맹자에도 등장한다. 비록 맹자는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을 친숙한 문답이다.
"남자여자는 함부로 만지는 게 아니죠?"
"그것이 예입니다."
"그럼 형수가 물에 빠지면 죽게 내버려두나요?"
"그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남자와 여자가 손을 대지 않는 것은 예의고, 물에 빠진 형수를 건지는 것은 도리입니다."
보통 여기까지 알고 계실 텐데, 사실 이건 다음 한마디를 던지기 위한 떡밥에 불과하다.
"지금 천하가 도탄에 빠졌는데 선생은 왜 건지지 않습니까?"
"물에 빠진 사람은 손으로 건지고, 도탄에 빠진 천하는 도로 건집니다."
단박에 궁지로 몰아넣는 순우곤이나 냉큼 빠져나가는 맹자나 하여간 극강의 이빨들이다(…).

  1. 제나라는 임치성 직문(稷門) 밖에 학당을 세우고 쟁쟁한 학자를 모아서 강론을 벌였다. 일종의 아카데미인 셈인데, 그 유명한 맹자 순자 장자도 이곳을 거쳤다. 직하 학사란 여기서 배출한 인물들을 일컫는다.
  2. 삼년불비불명으로 잘 알려진 이 고사는 초장왕과 신무외가 주고받은 대화로 더 잘 알려져있다. 열국지에는 초장왕+신무외로 되어있고 사기에는 초장왕+오거, 제위왕+순우곤으로 되어있다. 순우곤이 과거의 고사를 다시 인용한 듯하다.
  3. 원문은 '이리에게 깔린 수풀처럼 술잔과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지다'이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배반낭자(盃盤狼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