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히타

고대 이란·페르시아의 물과 생명의 여신.

아베스타 어의 원래 명칭은 아르드비 수라 아나히타(Arədvī Sūrā Anāhitā)이며, 아르드비는 '물기', 수라는 '강력한', 아나히타는 '순결한'이라는 뜻이다. 원래 수라와 아나히타는 형용사이고 아르드비가 명사였지만 후대에 아나히타라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중세 페르시아어부터는 아나히드(Anahid) 혹은 나히드(Nahid)라고 불린다.

아나히타는 키가 훤칠하고 몸매가 늘씬한 젊고 아름다운 여신으로써 강인하면서도 순결하다. 평소에는 별들 사이에서 살며, 백 개의 별(보석)이 박힌 여덟 가지 광채가 나는 황금관을 쓰고 황금 망토를 둘렀으며 바람, 비, 구름, 눈을 상징하는 4마리의 백마가 모는 전차를 탄다.

물의 여신이자 정결한 물의 수호자, 대지에 있는 모든 물의 근원이기 때문에 자연히 물을 통해 자라는 모든 생명을 관장하는 여신이 되었다. 식물의 생육과 작물의 풍작도 그녀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풍요의 여신으로써 숭배되기도 했으며, 특히 모든 남성들의 정액과 여성들의 자궁·모유를 정결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생장을 돕는다. 이처럼 생명의 수호신인 동시에 강력한 여전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도 그에게 자주 기도를 올리고 제물을 바쳤다. 순결한 물의 여신이기 때문에 그에게 특별히 바치는 제물은 흰색의 어린 암송아지였다.

아베스타가 쓰여지기 훨씬 전, 인도-이란어족이 인도계와 이란계로 분리되기 이전부터 숭배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인도계에서 아나히타에 대응하는 신격으로는 사라스바티가 있다. 셈어족의 여신인 이슈타르의 이미지와 뒤섞이기도 했으며, 그리스인들은 아테나아르테미스와 동일시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 들어서 아후라 마즈다, 미트라와 함께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중요한 신격으로 자리잡아 널리 숭배받았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멸망 후 마즈다 신앙이 쇠퇴했지만 아나히타 숭배는 미트라 숭배와 함께 널리 살아남아 파르티아에서 강성했으며, AD 3~4세기 사산 왕조 시대까지 세력을 유지했다. 특히 사산 왕조를 세운 사산 가문은 원래 파르스 지방에서 아나히타 신전 제사장을 하던 집안이었기 때문에 사산 왕조 초기 아나히타 신전의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조로아스터교 교단 조직이 정비되고 중앙집권화되면서 주신인 오르마즈드(아후라 마즈다)의 위상이 다시 강화되고, 왕중왕의 세속 권력과 성직자들의 종교 권력이 분리되면서 아나히타 숭배는 점차 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