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문

1 이집트 신화의 신

그림 문자로 묘사된 아문

고대 이집트의 신. 아몬(Amon)이나 아멘(Amen)이라고도 읽는다. 히에로글리프로는 갈대 단음 문자 i와 게임판 복음 문자 mn, 소리 보조 문자 물결 n을 합쳐서 imn이라 표시하였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야마누라고 발음하였으리라 추정한다. 이름의 뜻은 '감추어진 자'로, 본래 공기의 신이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1] 개구리 머리 또는 그냥 개구리로 표현되곤 했으나, 나중에 제대로 된 사람의 머리를 갖추게 되었고, 개구리 속성은 헤케트(Heket) 여신이 가져갔다. 신왕조 말기가 되면 숫 머리를 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늘어나며, 아몬을 제우스와 동일시한 그리스인들에 의해 숫양 이미지가 지중해 세계에 널리 전파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조각상에 숫양 뿔을 단 사례나 암모나이트의 명명 등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다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는 여전히 제우스-아몬 으로서 숭배되기는 하였으나, 아몬 신앙이 네일로스 삼각지대와 하 이집트에서는 그닥 강하지 않은데다가 동물 머리가 헬라인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와서 습합신 세라피스 숭배가 장려되었다.

원래는 테베의 지방신 출신으로, 헤르모폴리스 신화에 등장하며 최초의 8신 중 한명이다. 아몬은 아마우네트와 더불어 공기의 속성을 띄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 고왕국 시대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으나 테베를 수도로 삼은 신왕국이 융성하면서 아몬을 최고신으로 삼으면서 아몬 신앙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주신이 되면서 수많은 파라오들의 노멘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아메넴하트(Amenemhat, 아몬 신 앞에 있는 자), 아멘호테프(Amenhetep, 아몬 신이 만족하는 자) 등의 이름이 그것이며, 그 파라오의 저주로 유명한 투탕카멘(Tutankhamen)도 마찬가지다. 나중에는 태양신 라와 결합해 아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아문은 태양신이 아니며 사실상 별개의 신이다. [2]

그의 대신전은 카르나크에 있다. 최초로 조성한 건 아메넴하트 1세지만 그 뒤를 이은 수많은 파라오들이 미친 듯이 탑 문과 기둥, 그리고 오벨리스크를 경쟁하듯 지어 댔고, 현재는 10개가 넘는 탑 문부터 참로를 따라 늘어선 숫양 스핑크스, 대열주실을 가득 채운 수많은 거대한 기둥들, 하트셉수트 여왕의 것을 비롯한 오벨리스크들 등 중왕국 시대에서 신왕국 시대까지의 이집트 미술의 정수를 모아둔 곳이 되었다. 근처에 부인인 무트(Mut) 여신전과 아들인 달의 매 콘수 신전도 있다.

중세 시대에, 배타적인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그중에서도 가톨릭)가 득세한 후 민간전승에서 기존의 신들은 전부 악마화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과거 유대인들을 위협하던 고대신들이 가장 강력한 악마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덕분에 아몬도 상위 악마에 랭크되었다. 다만 교회 측의 공식적인 교리는 아니고, 그냥 신자들이 만들어낸 동인지.[3]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은 "다른 신들? 그런거 없다."일뿐,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에게 무슨 설정을 붙이든 아오안이다. 구약에보면 "주님께서 이집트 신들을 때려잡았다"는 식의 서술도 있긴 하지만, 초기에 다신교적 영향을 받았던 유대교가 점점 강력한 일신교 신앙을 확립해가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신의 이름이 기독교에서 기도 후 외치는 '아멘'의 어원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학계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아마도 '야마누'라고 하였으리라 추정하기 때문.

마케도니아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후에 스스로 아문의 후예라고 칭했는데, 이 때문에 이집트의 주군을 신격화 하던 이집트의 관례에 들어맞아 파라오로 추대됐다.

1.1 아마르나 혁명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아문-라의 숭배 절정기에는 아문-라 신전의 사제들이 가진 돈과 권력이 너무 강대해져 파라오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당시 파라오였던 아멘호테프는 아문-라 신앙과 모든 다신교 신들을 부정하고 아톤을 유일신으로 삼는 세계 최초의 유일신교를 창제한다.[4] 이때 사제들의 입김이 많이 불던 테베에서 아마르나 라는 신도시로 천도까지 하고 파라오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톤으로 개명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너무나고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데다 일반 백성들의 공감도 거의 못얻어내어 최종적으론 실패한다. 아크나톤의 치세동안에는 그래도 그럭더럭 굴러갔지만, 아크나톤이 죽자 다시 롤백.. 아마르나는 버려지고 수도도 다시 테베로 돌아갔다. 아크나톤의 다음 파라오인 투탕카텐(아텐의 살아있는 상)은 결국 사제들의 압박하에 아크나톤이 했던 모든 개혁을 되돌리고 이름도 다시 투탕카멘(아멘의 살아있는 상)으로 바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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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나 예술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네페르티티의 흉상. 베를린 신박물관에서 전시중. 갓 오브 워 헤라닮았다

그래도 모든것이 헛수고는 아니였던 것이, 유일신 사상은 결국 근동에도 흘러들어갔다는 주장이 있고, 아마르나 혁명시기에 태동했던 아마르나 예술이란 문화적 걸작을 남겨 지중해권 여러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5]
  1. 이 3문자로 표기할 경우 '감춰진' 신이기 때문에 결정 문자를 붙이지 않으며, 라메시드 왕조 즈음 아문 신 자체를 뜻하는 문자가 따로 생긴다.
  2. 라의 경우 아문 뿐만이 아니라 호루스와도 결합하여 라-호라크티라고 불리기도 했다.
  3. 솔로몬의 72악마 등의 이야기는 이런식의 동인지가 굉장히 많다.
  4. 참고로 아멘호테프는 고대이집트어로 아문이 기뻐한다 라는 뜻이다. 본격 신성모독
  5. 기존 이집트 예술은 부조에 있어 상징성과 규범을 우선시했다면 아마르나 예술에선 있는 그대로의 사실성을 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