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베르펀 대성당

네덜란드어 : Onze-Lieve-Vrouwekathedraal
영어 : Cathedral of Our Lady
프랑스어 : Cathédrale Notre-Dame d'Anvers
독일어 : Liebfrauenkathedrale
스페인어 : Catedral de Amberes

kvefl3183s.jpg

  • 착공 : 1352년
  • 완공 : 1521년

공식 사이트

1 개요

벨기에 플란데런 안트베르펀 구시가지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주교좌 성당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으며,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플랜더스의 개에서 네로가 보고 싶어한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성화가 걸려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2 역사

원래 이곳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작은 성당이 있었지만 12세기에 들어와 건물이 낡아서 개축할 필요성이 제기되자 길이 80m, 너비 42m 규모의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 지어졌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1352년, 얀 아펠만스(Jan Appelmans, 1352~1411)와 피터 아펠만스(Pieter Appelmans, 1373~1434.5.16) 부자가 기존의 로마네스크 양식에 고딕 양식을 가미한 설계도를 작성해 공사에 들어갔다.

설계도 원안에서는 성당 정면의 높이 123m 짜리 탑 두 개를 포함해 모두 다섯 개의 탑을 세우려고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1518년에 완성된 정면의 북쪽탑 하나 뿐이었다. 비록 하나만 완성되었지만 이는 당시 플랑드르 지방에서 가장 높은 첨탑이었으며, 중세 때는 '사탄이 안트베르펀을 지나가다 대성당의 첨탑에 긁혔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우아하고 날렵한 외관을 자랑한다.

착공 170여년만인 1521년에 완성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533년에 화재로 건물 일부가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해 재건하기도 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이미 측랑 7개를 갖춰서 그러잖아도 충분히 거대했던 안트베르펀 대성당에 측랑 2개를 추가시켜 더욱 크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고자 몸소 주춧돌까지 놓았지만 황제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16세기 중반에는 성당을 장식하던 그림과 조각상들이 종교개혁 와중에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었고, 1794년에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전 유럽을 뒤흔들 때 내부에 있던 귀중한 예술품과 장식들이 약탈당하는 수난을 당했다. 신고딕 양식으로 진행된 복원은 19세기부터 시작되어 마무리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도 무사히 살아남았다.

3 루벤스의 걸작들

중세 시대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한 안트베르펀은 16세기에 경제적으로 쇠퇴했다가 17세기에 이르러 바로크 양식이 성행하는 문화적인 부흥기를 맞이했다. 이때 안트베르펀 대성당 내부에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들이 걸렸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였다. 그의 역동적인 묘사와 화려한 색채는 많은 사람의 경탄을 자아냈는데, 뒷날 이곳을 점령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루벤스의 그림에 매혹되어 프랑스로 강탈해가기까지 했다. 프랑스로 옮겨졌던 그림 3점은 다행히 20년만에 안트베르펀으로 돌아왔는데, 반환되던 날 도시 전체가 축포를 쏘고 종을 울리면서 축하했다고 한다.

십자가에서 내림(Descent from the Cross)
십자가를 올림(The Raising of the Cross)성모 승천(The Assumption of the Virgin)

플랜더스의 개에서는 '십자가에서 내림'을 본 네로가 화가의 꿈을 키우지만 결국 가난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성화 앞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얼어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