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2000년작 영화를 찾는다면 플란다스의 개 항목으로 갈 것.
목차
1 개요
원제 A Dog of Flanders 영국의 소설가 위다가 쓴 꿈도 희망도 안 보이는 아동문학. 플랑드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작가인 위다는 영국인이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도 생전에 여러번 베스트셀러작을 내놓았지만 그다지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고 늘그막에는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며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작은 1872년 영국 Lippincot 's Magazine 에 발표되었으며, 단행본은 A Dog of Flanders and Other stories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지지리도 가난한 주인공 네로[1]와 그의 충견 파트라슈의 이야기. 플랜더스는 현 벨기에 플란데런[2] 지방의 영어명이다.
두 살때 고아가 되었고, 우유팔이로 연명하는 가난한 소년 네로가 동네 교회에서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그린 성화[3]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걸 꿈꾸지만, 가난과 편견 때문에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얼어 죽어었다는 줄거리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빈부격차의 괴로움과 배고픈 아이들의 실상을 여실히 알려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판으로 먼저 들어오면서 주인공 넬로등을 비롯한 등장인물 전원이 일본어화된 표기로 수입되었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2 배경
19세기 벨기에 북부의 플란데런 지방 현재의 안트베르펀에 인접한 호보켄(Hoboken)을 모델로 보고 있다. 위다는 이 작품을 쓰기 전년에 이 마을을 여행한 적이 있다고 하며, 여러 조사 결과 풍차나 아로아의 모델로 보이는 12세 소녀 등이 있었던 것도 밝혀지고 있다.
3 줄거리
안트베르펀 교외의 작은 농촌 변두리에 사는 15세 소년 네로(Nello)는 정직한 할아버지[4] 예한 다스(Jehan Daas)와 충직한 늙은 개 파트라슈(Patrasche)와 살고 있었다. 파트라슈는 천하의 개쌍놈[5] 철물점 상인에게 혹사당한 끝에 버려진 것을 예한 다스와 어린 네로가 거두어 길렀다.
네로는 우유 배달 일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화가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었으며, 안트워프 중앙의 두 개의 제단을 보고 싶어했다. 17세기의 화가 루벤스가 그린 성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비싼 관람료 때문에 네로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로의 유일한 친구는 풍차 오두막 집의 외동딸인 12세 소녀 아로아(Alois)지만, 아로아의 아버지 바스 코제츠(Baas Cogez)는 집이 가난한 네로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로는 도시에서 열리는 회화 콩쿨에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쓰러진 나무에 앉아 있는 미셸(Michel) 할아버지를 그린다. 그러나 도화지를 살 수 없어 널판지에 목탄으로 그렸다.
네로의 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새로운 우유 업자에게 일을 빼앗기고, 풍차 오두막의 외부와 곡물 창고가 전소되는 화재가 발생해서 방화 누명도 쓰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할아버지도 사망하고, 크리스마스 전날 집세가 체납되어 욕심이 많은 집주인한테 오두막에서도 쫓겨나버린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그런건 없다
마침 크리스마스 전날은 도시에서 열린 회화 콩쿨의 발표가 있었다. 네로는 여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6], 결과는 낙선이었다.[7] 마을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지만 다들 매몰차게 네로와 파트라슈를 외면한다.
상심한 나머지 눈보라 길을 걷던 네로는 파트라슈가 지갑을 발견한 것을 본다. 지갑에는 많은 돈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아로아의 아버지 코제츠의 것이었다. 문득 돈을 보게되면 욕심이 생길수도 있었지만, 그는 풍차 방앗간에 지갑을 전해주고, 다시 눈보라 속으로 떠난다. 코제츠는 지갑을 찾지 못해서 크게 상심했다가 귀가해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저지른 심한 처사를 크게 후회하여 네로를 찾아 맡아 기를 결심을 하게 된다.
네로는 지갑과 함께 파트라슈를 풍차 방앗간에 맡기고 떠난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진 네로는 크리스마스에만 특별히 공개되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려고 성당으로 갔지만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마침 구름 사이에서 한 줄기 달빛이 제단을 비춰서 네로의 염원은 실현되었다. 네로는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한편 파트라슈는 풍차 방앗간에서 뛰쳐나와 네로를 찾기 위해서 성당으로 달려가 네로와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 둘은 크리스마스 추위 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로 얼어 죽는다.
크리스마스가 된 이튿날 아침,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있는 네로의 시체가 발견된다. 코제츠는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고 마을 사람들은 후회하면서 교회의 특별한 허가를 받아 제단 아래 개와 함께 네로를 장사지낸다. 또 다음날, 콩쿠르에서 네로의 재능을 인정한 저명한 화가가 그를 데려다 제자로 삼아서 키우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는 것까지 밝혀진다.[8]
4 1975년 후지TV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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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쿠로다 요시오. 일본에서는 1975년 1월 5일부터 12월 28일까지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의 하나로 방송되었다. 여러 플란더스의 개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실제로 이 작품이 방송된 이후에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 나온 상당수의 플랜더스의 개 관련 미디어물들의 삽화 등이 이 작품에 나온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기본 모델로 두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스토리 작가가 네로와 파트라슈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지, 대단히 비극적인 인생으로 끝낸다. 보통 동화가 애니메이션화 되면 비극이라고 해도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것이 보통인데(예: 월트 디즈니社의 인어공주 등) 플란다스의 개는 주인공에게 몹시 잔인하다. 실제로 플랜더스의 개가 방영할 당시, 일본 전역에서 네로와 파트라슈를 살려달라는 어린이들의 편지가 빗발쳤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은......
굉장한 인기를 누린 작품이 되어서[9], 배경이 된 안트베르펀 대성당은 로렐라이와 함께 80년대 동양(주로 일본) 관광객이 특히 많이 가는 관광지로 유명했다. 정작 작품의 배경이 된 벨기에 내에서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었는데, 일본인들이 관광을 오면서 그 동네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고 할 정도. 그래서 성당 앞에는 일본어로 된 안내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만 이곳에 있는 루벤스의 그림은 네로가 보려 했던 그 그림과는 다르다.
다음은 TV판 애니메이션의 주요 성우진.(국내판 성우는 맨 앞이 KBS, 나중이 EBS 재더빙판)
네로 - 키타 미치에 / 김순원 /강미형(처음), 이선호(나중)/ SBS에서는 최수민.
제한 다스 - 故 오이카와 히로오/임종국/황원
알로아 - 카츠라 레이코(단 1.2화는 이치류사이 하루미, 12화는 마츠오 요시코) / 송도영 / 성유진[10]
코제츠 - 오오키 타미오
알로아 엄마 - 나카니시 타에코
한스 - 무라마츠 야스오/설영범
노엘 - 故 나가이 이치로
누레뜨 - 故 엔도 하루
미셸 - 故 아메노모리 마사시
철물상 - 이이즈카 쇼조
조르쥬 - 駒村クリ子
폴 - 스가야 마사코
안드레 - 故 시라카와 스미코
핸드릭 레이 - 故 카유미 이에마사
내레이션 - 故 무토 레이코/ 이나미(EBS)
그밖에 EBS 국내 성우진- 기영도, 장영주, 안소연, 목춘수, 김무규, 이의선, 김미정, 박인선, 이원상, 최윤태, 김호정 등
이후 1997년에는 원작과 TV판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각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개봉했고,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2011년에 재능 TV에서 더빙되어 방송되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주요 성우진은 다음과 같다.
네로 - 츠무라 마코토/정혜옥[11]
제한 다스 - 야기 코세이/장승길
아로아 - 탄게 사쿠라(아역)/스즈키 호나미(성인)/이지영
코제츠 - 야마모토 케이/정재헌
아로아 엄마 - 오카에 쿠미코/윤여진
한스 - 히라노 마사토/홍범기
조르쥬 - 카메이 요시코(아역)/모리카와 토시유키(성인)
폴 - 후치자키 유리코(아역)/토리우미 카츠미(성인)
4.1 각색
애니메이션판은 상당히 각색이 많이 된 작품이다. 일단 원작은 60페이지 정도의 단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52화나 되는 애니메이션의 분량을 다 채울 수 없었으므로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오리지널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네로의 연령을 8살 정도로 많이 내렸으며, 원작에는 없는 스토리나 등장인물과 등장인물의 역할 추가 등으로 스토리의 설득력은 더 강화되었다. 그리고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기아에 저체온증이 겹친 상황이 되었고, 네로가 코제츠 사장의 편견과 권력에 비위를 맞추는 대다수의 비겁하고 양심없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12] 그 죽음을 결과적으로는 강제로 강요당한 느낌마저 강하게 주는데, 이는 원작보다 훨씬 낮아진 네로의 나이와 맞물리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원작과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코제츠 집안의 설정이 다르다.
- 코제츠는 원작에서는 그냥 생업으로 방앗간을 경영하던 풍차 주인일 뿐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마을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는 지주이자 사업가로 대폭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리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고학을 하면서도 재산을 쌓아올린 노력가라는 설정으로, 악인은 아니지만 딸이 네로를 사귀는 것을 바람직하게 보지 않고 네로에게는 "바보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게으름뱅이"라며 차갑게 대했다.
- 원작의 풍차 방아간은 코제츠의 집에 부속되어 있는 것이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마을의 공유 재산이라는 설정이다. 화재 사건 역시 원작에서는 중반에 일어나 헛간과 밀이 불탔을 뿐, 풍차 자체는 무사했으며, 밀에는 보험이 들어 있어서 손해는 전무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마을의 공유 재산이고 보험 같은 거 없으므로(…) 전체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 때문에 방화범의 누명을 쓴 네로는 코제츠의 편견적인 선동으로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아로아와 아로아의 엄마, 마을의 어린이 친구들만 제외하고 말이다.
- 네로가 콩쿨에 응모한 그림은 원작에서는 나무꾼 미셸 할아버지, 애니메이션에서는 예한과 파트라슈를 그린 것이다.
- 등장 인물의 나이가 다르다. 원작에서 네로는 15세, 아로아는 12세였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네로가 10세, 아로아가 8세이다. 이것이 작품 감상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상 차이를 일으킨다.
- 네로가 어려졌기 때문에 네로의 장점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개념있는 모습으로 극대화 되고,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은 어린아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훨씬 더 불쌍해졌다. 원작에서 15살 짜리 소년이 12살 짜리 여자애 밖에 친구가 없다는 건 다른 의미에서 좀 더 불쌍하지만.(…)
- 사실 원작의 네로는 확실히 딸바보인 아버지에게는 경계할 만한 나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원작에서는 아로아 아버지가 네로를 싫어하는 이유로 네로가 대단한 미소년이라 아로아와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아서 라고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고.
- 원작에서 아로아 아버지는 이천 프랑이 돌아와서, 아로아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네로와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에 기뻐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크리스마스 파티에 들떠 있었다. 그러니까 원작에서는 사실 크리스마스 밤에 사람들이 네로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다음날에서야 네로가 죽은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다들 열심히 네로를 찾는다.
- 이것도 기본적으로 연령 설정이 바뀌었으므로 어느 정도 그에 연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15살 짜리니까 하룻밤 정도 머리식히다가 찾으면 나타나겠지 싶었던 것.
- 애니메이션 최종화에서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천사들에게 안겨서 승천하는 이미지를 넣었다. 이 이미지를 만든 것은 당시 스폰서인 칼피스[13]의 사장이었던 도쿠라 후지오였는데
일본에서 보기 드문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개선(凱旋)"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과는 달리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믿음이 없는 일본의 어린이 시청자들이 네로와 파트라슈의 죽음을 보고 슬퍼지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라스트 씬의 나레이션을 직접 쓰기도 했다.
(優しい女の人の声で、静かに、ゆっくり(三○秒位)と感動的に。)ネロとパトラッシュは、お爺さんやお母さんのいる、遠いお國えゆきました。もう、これからは、寒いことも、悲しいことも、お腹のすくこともなく、みんな一緒に、いつまでも、楽しく暮すことでしょう。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로, 조용하게, 천천히(30초 정도) 감동적으로.) 네로와 파트라슈는, 할아버지와 엄마가 있는, 먼 나라로 갔습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추운 일도, 슬픈 일도, 배가 고픈 일도 없이, 모두 함께, 언제까지나, 즐겁게 살아가겠죠.
- 같은 칼피스의 단독 스폰서였던 전작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기독교 문학이면서도 종교성을 배제한 연출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 줄거리가 약간 다르다. 네로 할아버지는 원작에서는 전상이 원인으로 절름발이가 되어서, 류머티즘도 있고 해서 네로가 6살이 될 무렵에 이미 수레를 끌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노쇠 상태에 있다가 사망했다. 이 에피소드가 애니메이션에서는 중간 쯤으로 바뀐다.
- 파트라슈를 주워온 경위는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애니메이션판에서는 네로가 직접 파트라슈를 발견하고 주워왔지만, 원작에서는 네로가 2살 때 파트라슈를 주워왔으므로 사실상 할아버지가 길렀다고 봐도 된다. 파트라슈의 원래 주인인 철물점 상인은 원작에서는 술에 취해 싸움을 했다가 살해당했고, 파트라슈의 값으로 돈을 지불한 적은 없다.
4.2 한국 방영
한국의 경우 70년대 중반에 동양방송, 1981~82년에 KBS, 1994년과 2007년에 EBS에서 방영하였다. 그밖에 SBS에서도 방영했다는 정보도 있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켜 사람들의 눈물을 짤없이 뽑아냈다. 아마 한국에서도 플랜더스의 개 하면 이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작품과 함께 루벤스가 덩달아 국내에서 유명해졌는데, 다른 바로크 시대 화가들은 몰라도 루벤스는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4.3 주제가
본래(=일본판) 오프닝
원곡을 부른 가수는 국내에서는 '도라에몽의 노래'를 부른 것으로 잘 알려진 오오스기 쿠미코. 노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밝지만, 노래 가사와 영상자체(특히 마지막 부분)가 결말에 대한 강한 복선을 담고있다.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는 그저 듣기 좋은 명랑한 노래 정도로 인식하나, 그 결말을 본 후에 다시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프게 된다. 일본판에서는 한국에서 그냥 '랄랄라~'로만 알고 있는 부분이 Zingen Zingen Kleine Vlinders(노래하라 노래하라 작은 나비들아)란 네덜란드어로 되어있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1970년대부터 외국어에 관대했던 일본과 달리 당시 대한민국은 영어조차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시대였으므로 알아듣지도 못할 네덜란드어는 의역 과정에서 통편집 했던 것이다.
일본판 엔딩
EBS판 엔딩
5 1992년판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 : 나의 파트라슈
- 원제: フランダースの犬 ぼくのパトラッシュ
- 영제: A Dog of Flanders : Boku no Patrasche
- 부제: 플란더즈의 개 | 플란더스의 개
- 감독: 코다마 켄지 (こだま兼嗣)
- 원작: 위다
- 각본: 오키나 타에코 (翁妙子) , 야마자키 하루야 (山崎晴哉), 시마다 미치루 (島田満)
- 제작: TMS 엔터테인먼트 (구 토쿄 무비)
- 음악: 마루타니 하루히코 (丸谷晴彦)
오프닝(해외 수출용 자막이 들어간 오프닝이지만 노래는 일어판)
일어판 오프닝 풀버젼
일어판 엔딩 풀버젼
1992년에 코다마 켄지가 감독한 나의 파트라슈라는 24부작 다른 애니메이션도 있으나 SBS 초창기에 국내에서 방영했으며 투니버스에서도 초기에 방영한 것을 빼곤 거의 재방영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바 있다. 이 애니에선 파트라슈가 원작에 가까운 품종으로 묘사된다. 참고로 74~5년판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파트라슈는 아키다와 여러 품종을 섞어 창조한 존재하지 않은 품종(쿠레나이 코믹스에서 여기 파트라슈와 쏙 닮은 개가 나온다)이다. 투니버스판에서 넬로 성우는 이계윤. 그밖에 온영삼, 여민정, 손종환, 김정은 같은 성우가 참여했다.
6 평가
6.1 드라마 요소
현대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갈등 요소들이 드러나 있다.
- 빈부격차 : 대단히 가난한 네로의 가족과 지주 계급인 아로아의 가족. 그래도 아로아와 아로아 엄마는 정말 착한 사람인데 마을 내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아로아 아빠인 코제츠가 유일하게 문제.
- 빈곤으로 인한 좌절 : 화가로서의 필요한 화구들을 살 수 없어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네로. 그래서 목탄으로 그림을 그렸다. 물론 실제로는 목탄 또한 정식 화구 중 하나로 꼽히긴 하지만, 여기서 네로가 쓴 건 말이 목탄이지 그냥 숯조각 수준이다. 그래도 출품작은 제대로 보고서 평가하는 게 정상인데 1명을 제외한 심사위원들은 위의 이유로 보지도 않고 난로에 태워버리는 엉터리 심사를 하려고 했다. 참고로 이대회에서 1등한 학생이름은 스팬담으로 1등한 이유는 고급종이와 고급물감으로 그림을 제출했고 유명한 화가에게 그림을 개인지도를 받은것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것은 스팬담 부모가 벨기에에서 알아주는 부자였기 때문이다.
- 빈부격차로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 : 엄청나게 가난한 네로를 그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증오하고 싫어하는 아로아의 아빠. 그 밖에 빈부격차 때문에 코제츠의 말만 높은 사람의 말이라고 확인도 안하고 믿으면서 일부는 네로를 믿으면서도 코제트 사장의 비위를 맞추려고 불쌍한 네로를 외면하는 어리석고 비겁한 대다수의 마을 어른들.
- 편견에 의한 대다수의 집단 무시 : 네로는 극중에서 아로아와 마을 아이들, 아로아 엄마 이외에는 친분있는 사람이 없다. 네로가 풍차 방앗간 화재로 누명을 뒤집어쓰고 마을사람들에게 집단따돌림을 당할때도 아로아와 아로아 엄마, 마름의 아들을 포함한 마을 아이들은 가끔씩 네로를 부모님들 몰래 만나서 위로해주고 끝까지 네로의 결백을 믿어주었다.
- 집주인의 횡포 : 네로를 불쌍히 여기면서도 정가보다 집세를 훨씬 비싸게 준다는 친구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비싼 돈을 선택하고 네로를 쫓아냈다. 판본에 따라 그래도 네로가 불쌍했는지 집주인이 오늘밤은 자고 내일 아침이나 점심때까지 떠나달라는 버전도 있다. 그게 그거지만.
사실 암울한 배경에서 아로아의 아빠는 네로가 풍차 방앗간에 아로아에게 길에서 주웠던 인형을 선물로 주러 왔을 때, 풍차에 불이 났을 때도 알리바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난하다는 이유와 근처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성급하게 방화범으로 몰아버린 상황을 보면 처한 환경이 매우 불우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아로아의 아버지가 떨어트린 거액의 돈이 든 지갑을 파트라슈에게 주어 돌려보내는 면을 보면 인격적으론 훌륭한 아이였다는 평이 올바르다.
사실 파국의 결정적 역할을 한 화재 사건은 원작과 애니메이션이 좀 다르다. 화재가 일어났다는 점에서는 위다의 원작과 애니판이 공통적이긴 하지만 위다의 원작에선 그리 큰 사건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원작에서 아로아의 아버지는 보험금까지 받았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어떤 남자들이 담배를 피며 대화하다 담뱃재를 털고 갔는데 그게 불씨가 남아있어 풍차의 나무바닥에 천천히 불이 붙으며 불이 크게 번졌다. 후반부에서는 마을에서 어떤 원로되는 할아버지 한 사람이 나타나서 화재 원인은 풍차의 맷돌끼리 마찰이 일어나 불씨가 붙은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서 그동안 사정을 듣더니 네로에게 무슨 나쁜 짓을 한거냐며 코제츠와 그의 마름을 그들의 앞에서 크게 질책한다.
참고로 그 할아버지도 평소에도 네로에게 호의적인 극소수의 착한 마을 어른들중 한명이었는데 풍차 화재가 날 당시에는 일이 있어 잠시 다른곳에 가있다가 돌아와서 보니 그 사건을 듣고 상황을 조사해보고 오게 된것이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사정을 듣고는 네로가 너무 불쌍하여 코제트 사장과 마름을 크게 질책한것이다.
거기다 코제츠 사장의 관리인이라 할 수있던 마름이 자신도 빈부격차 때문에 평소에 네로를 무시했고 심지어 자신의 아들도 네로와 만날 때마다 가난한 네로와 만나지 말라고 심하게 야단쳤는데 이번 기회에 코제츠 사장의 환심을 사려고 네로가 풍차 방앗간에서 아로아와 만나는 걸 봤으니 네로가 가장 혐의가 확실하다고 불리한 진술을 악의적으로 말해서 네로를 몰아세웠다. 나중에 네로를 찾을때 이 마름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네로를 찾지만 너무 늦었다.
그때 마름의 어린 아들은 네로와 거의 동갑의 친구였는데 왜 죄없는 네로를 모함했냐고 아버지를 탓하며 울면서 네로를 찾아 나선다.[15] 이때 마름은 아들의 질책에 아주 조금은 양심이 있는지 자기 입으로 가난한 아이라서 싫어했고 코제트 사장에게 환심을 더사려고 그랬다고 사실대로는 차마 말못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만 숙인채 있었다. 마름의 아들 이외에 역시 끝까지 네로를 믿어줬던 형제였던 네로의 친구인 아이들이 있었는데 네로를 찾으려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네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며 종을 치던 모습은 이 만화의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
그림 대회에서 네로는 우승하지 못했다. 네로의 그림이 목판에 숯에 가까운 목탄으로 그려졌다는게 가장 큰 이유중 하나였다. 사실 그림 재료에 대한 제한은 없었지만 사실상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무시당한 것이다. 그러나 네로의 그림을 보고 네로의 뒤를 봐주려고 했던 유명 화가 아저씨[16]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네로를 학대하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편견적으로 대했다는 걸 뉘우치고 달려온 아로아의 아버지가 자신이 무조건 진심으로 잘못했다며 네로를 자신이 직접 돌봐주고 성인이 되면 아로아랑 반드시 결혼을 시켜 주겠다고 외치면서 직접 네로를 찾아나서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 때 네로는 저체온증과 굶주림으로 인한 체력저하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견뎌 낼 수 있었더라면 이 뒤로 좋은 인생이 펼쳐질 수 있었을 것 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결말이나 동시에 점점 따라주지 않는 운과 편견과 사회의 잔흑한 현실이 핵탄두나 세균폭탄보다도 개인에게 더 잔흑하고 고통어린 살인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무형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로서 희망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닌 절망이란 이름의 열매가 맺힌 채. 끝을 내버렸다보니 너무 잔인하고 비참하다는 평가는 모면할 수 없을테지만, 이 이야기를 끝까지 보면서 기분이 좋았을 시청자들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모질게 살지 못하면 안된다는 사회의 편견을 더욱 강화하는 느낌을 주는 셈...
그렇다 보니 애니메이션 판을 기준으로 안타깝게 여겨지는 점은 보통 이런 어려운 삶과 환경에 처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이 모든 장벽을 이겨내거나 버텨서 인간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되는데, 네로는 그 어떤 것도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술되었듯 애니메이션에서의 네로는 원작 소설보다도 더 어려진 10대 초반의 어린이다. 시대적으로 복지제도를 말할 수 있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는데다 부모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 몸이 편찮은 할아버지와 함께 겨우 살아가다가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버리게 되어서 홀로 남게 된 어린이가 저런 고난을 한꺼번에 겪는다면 현실적으로 버틸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나마 편견이라도 없었거나 누군가 제대로 도움을 주었더라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네로는 극히 일부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외면당한 상황이었다. 결국 애니메이션은 아무리 잘 표현을 해봐야 극한의 절망이 주어지고 모든 희망을 짓밟힌 채 쓰러져버린 한 어린 아이의 생명을 짓밟은 그런 비참한 이야기일 뿐이다.
참고로 마지막회에서 네로가 루벤스의 그림을 보았을 때 흘러나왔던 곡은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이고, 네로가 천사들에 이끌려 하늘로 올라간 마지막 장면에서 삽입된 곡은 Nearer, My God, to Thee이다. 이 곡은 비록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곡. 영화 타이타닉에서 침몰하는 배에서 현악 4중주로 연주되던 곡도 바로 이 곡이다.
여담으로 한가지 아이러니한 사실. 네로가 그토록 보길 원했던 그 그림을 그린 루벤스 자신은, 네로와는 달리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편히 잘 살았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특촬물이지만 돌아온 울트라맨의 제33화도 편견과 차별이 극에 달하면 어떻게 끔찍한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 이게 진짜 아이들이 보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게만든다.
극장판에서는 TV판에서는 없었던 후일담으로 아로아가 수녀가 되어 고아들을 돌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그 때 네로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듯.[17]
6.2 비판
원작은 유럽에서 꽤 비판을 받는 소설이란 주장이 존재하며, 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다.
- 시바 료타로는 기행 문집 네덜란드 기행에서 플란더스의 개를 언급했다. 이에 따르면 19세기 말에는 연소자의 자립을 재촉하는 분위기가 강했으며, "15살이나 돼서 그냥 침체되어 죽어갈 수 있는가, 왜 용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열려고 하지 않는가?"하는 비판이 강해졌다고 한다.[18] 조혼 또한 "가난한 아이가 죽는 이야기는 당시에는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오사카 부립 국제아동문학관 연구원의 견해를 인용하였다고 한다.
- 실제로 원작의 네로는 16살 정도의 청소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당시 서구 사회에서는 자립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나이였다. 그런데도 젊은이가 절망에 빠진 나머지 사실상의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진취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결말이며, 교훈적이지도 않다.
- 게다가 기독교의 영향으로 자살은 죄악시되어 자살미수자는 공개처형되던 곳이 유럽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한 청년이 목을 찔러 자살을 시도했는데, 사람들에게 곧 발견되어 응급조치를 받아 살아났다. 그러나 그는 자살시도죄로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다. 문제는 그를 교수대에서 떨어뜨리자 목의 상처가 더 크게 찢어지며 기도까지 열려서 폐로 공기가 유입되는 바람에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0분넘게 이 청년이 버둥거리자, 사람들은 이 청년을 내려 목의 상처에 솜을 꾸역꾸역 집어넣고 붕대로 감아서 상처를 통해 폐로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한 뒤에 결국 교수형시켰다. 그 고통이야 필경 가공할만한 것이었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자살 시도는 이 정도 당해도 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탓에 유럽에서는 교육적 차원에서 플란다스의 개는 읽히지 말것을 권하고 있다.
- 벨기에 : 더욱이 플랑드르 지역 벨기에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비정하단 말이냐!"라면서 플란다스의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오히려 하도 일본인들의 유별난 플란다스의 개 사랑을 의아하게 여긴 벨기에 다큐멘터리 감독이 어떻게 이 무명의 이야기가 일본에서 히트쳤나를 파헤친 다큐멘터리 "Patrasche, a Dog of Flanders - Made in Japan"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서 감독은 "유럽의 가치관에서 이 이야기는 약자의 죽음으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라는 설을 들었다. 그리고 주로 일본 관광객이 오니까 당연히 벨기에에선 플란더스의 개 관련 상품이나 건물을 만들기도 했으며, 심지어 네로가 소원하던 그림을 본 후 사망한 장소로 유명한 앤트워프 대성당에서는 네로와 파트라슈 동상을 세우기까지 했다. 다만 이 동상의 경우 현재는 사라진 상태...
- 미국 : 반면에 미국에서는 벨기에와는 다르게 나름대로 인기가 있던 작품이었는지 4차례씩이나 영화로 제작되었다.(1914, 1924, 1935, 1960) 그렇지만 결말이 어린이들이 보기에 너무 암울해서인지 출판사의 의향에 따라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성당에서 죽지 않거나, 네로의 아버지가 나타나는 등의 해피 엔딩으로 수정이 가해졌다고 한다. 지금은 오히려 리버럴리즘의 가호를 받아 사회적 약자에게 북유럽보다 더 냉정한 미국조차도. 대체 그때 당시에는 얼마나 참혹했길래.
- 동양권 : 분명 서양작가가 쓴 소설인데 이상하리만치 동양권의 감수성에 더 맞는다. 마음은 더할 나위없이 착한 주인공이 비정한 세상에서 잘 해보려고 노력하다가 가난과 비천한 신분으로 인해 결국 좌절한다는 줄거리 자체가 동양권에 더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유럽보다 동양쪽에 인기가 훨씬 높은 이유가 이 때문인 듯.
- 주인공인 네로에게도 유럽권에서는 별로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데 그 쪽 평가로는 전형적인 꿈만 많은 소년. 동양에서는 '가난한 선비'라는 인물상이 하나의 이상형이 되어 있어서 네로의 캐릭터가 '가난한 생활환경 밑에서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아이'로 쉽게 받아들여졌지만. 사실 서양쪽에서 유명한 소설의 설정과 동양쪽에서 유명한 애니메이션 판의 설정이 상당히 다르다. 서양 쪽에서도 이제 10살도 안된 어린애가 어른도 견디기 힘든 모진 풍파를 겪다가 얼어죽었다고 한다면 누구나 동정할 것이다.
6.2.1 반론
위의 비판론 떡밥은 인터넷상에서 특정 계기로 유행하게 된 일종의 밈인 면이 크고[19], 실제 유럽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드므로 전적으로 믿지는 말길 바란다. 실제로 위에 제기된 주장들에도 상당히 편파적인 주장들이 많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서양 사람들도 우리 이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누구맘대로 이렇게 분석했냐는 반응들을 보이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애초에 저러한 떡밥 자체가 상술한 일본 애니판의 설정변경[20]을 "서양인들은 동양인들과 아예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을 것"이란 옥시덴탈리즘적 편견에 기반해서 어설프게 해석했기 때문이다.[21]
- 일단 네로의 죽음은 원작 소설에서도 자살이란 언급이 전혀 없다. 서양에서도 자살한 사람이 정말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면 종교 교리와 상관없이 동정해주는 분위기가 당연히 존재했고, 무엇보다 네로의 행동이 의도적으로 자살하려고 한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 어차피 네로는 집에서 쫓겨난데다 방화범으로 몰린 상태라 마을 어디에서도 머물 곳을 구할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코제트의 지갑에서 얼마간 돈을 꺼내 쓴다 해도 방금 전까지 구걸이나 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돈이 생겼는데 의심이나 안받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성당이라도 가면 최소한 눈보라는 피할 수 있고 마침 자기가 보고 싶었던 루벤스의 작품도 전시중이다. 게다가 어차피 추운 날엔 개 끌어안고 자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상이니 네로 입장에선 파트라슈까지 찾아 온 마당에 하룻밤 쯤 때우기에 아주 어려울 것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네로와 파트라슈는 서로 껴안은 채 죽었다. 어쩌면 상기한대로 네로 입장에서도 "에이 뭐, 일도 잘 안풀리고 열받는데 루벤스 그림이라도 보면서 머리나 좀 식히자. 내일은 상황이 좀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영양부족 때문에 운 없이 그대로 가버린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
- 플랜더스의 개 자체는 어디까지나 영국인이 영어로 쓴 소설이었기 때문에 벨기에 사람들이 몰랐던 거지, 의도적으로 싫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에서도 유행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며 딱히 소설 자체가 미국에서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다.
- 가난한 예술가 상은 서양에도 존재한다. 배가 고파서 물감을 짜먹었다는 고갱처럼... 고갱 때의 화가들은 그시대 전후의 미켈란젤로나 피카소처럼 고용주들을 호통치면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서 인정 못 받고 가난에 찌들어 사는 안습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 10대 초반 정도면 서구권에서도 완전히 자립하기에는 곤란한 나이로 보았다. 당장 유럽 국가에서 아동복지가 좋아지자 마자 성인의 기준이 18세로 확 올라간 것 자체가 그 증거이다.
무엇보다 서구권에서도 아동복지에 본격적으로신경을 쓴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다.
6.3 패러디
내용이 밝은 듯하면서도 엔딩이 매우 비극적이기 때문에 여러 매체에서 자주 패러디된다. 물론 웃기게도 패러디도 되지만.
- 고병규가 그린 2컷 만화 패러디에서 넬로가 그림을 너무 못 그려서 보고 있던 파트라슈가 울면서 '차라리 내가 그릴테니 너가 수레 끌어!'라고 생각한다....
- 박살천사 도쿠로 애니판 에서는 무지무지 흉악한 동화(?)로 변질되었다. 개가 주인이고 네로가 노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링크(약하지만 후방 주의) 인터넷 짤방으로 쓰이기도 했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아예 루벤스에 대한 퀘스트를 하면서 플랜더스의 개 스토리를 집어넣어 버렸다.
- 이매진 애니메에서는 성당의 그림을 도둑맞아서 그 그림을 찾아 네로와 파트라슈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한다는 내용으로(...) 결말이 뒤집히게 된다.
- 월광조례에서는 겟코의 말에 감명을 받은 네로가 코제츠의 지갑에 있던 돈으로 굶어죽지 않게된다! 그리고 화가로써 살았는지 교회에 그림전시도 하고 그림 심사위원도 되며 해피엔딩.
- 실질객관동화에서는 파트라슈와 네로가 원작처럼 죽기 전에 루벤스의 그림을 보기 위해 커튼을 펼치는데, 때마침 성당에서 루벤스 전시회가 끝나고 르네 마그리트나 피카소, 베이컨 등의 근현대 거장전을 하는 바람에 커튼을 여는 족족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터져나오고, 네로는 나같은 거렁뱅이는 기분 좋게 죽지도 못한다며 파트라슈와 함께 강하게 살자고 외치고 낙농업계의 일인자인 '목장왕'이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 가치무치 팬티 레슬링 버전도 있다... 제목은 마란더즈의 버터개
쓸데없이 고퀄
- 크레용 신짱에서 노하라 신노스케가 시로와 가출을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런데 가출을 했던때가 겨울이었고, 갈곳이 없는 신짱과 시로는 가게앞에 붙어있는 하와이 여행 포스터를 보며 얼어죽는것으로 패러디가 되었다. 사실 얼어죽는건 그저 신짱의 망상이었다...
- 2013년 3월 18일 시작한 SK텔레콤의 LTE 캠페인 TV광고-테트리스 편에서 오프닝 멜로디가 쓰였다.
- 제목학원에서는 네로 짤방만 나오면 할아버지에 대한 패드립 제목들이 나오는 통에 패륜아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7 여담
-
파블로프의 개와는 관련 없다.
- 가난한 화가 지망생 소년이 결국 죽고, 죽은 다음에야 인정받는다라는 줄거리의 대만영화 로빙화와 비슷하다.
- 종종 파트라슈의 개로 나오기도 한다(...).
어떤 위키러는 제목이 플랜더스의 개가 아니라 파트라슈라고 알고 있었다고
- 플란다스의 개에 얽힌 웃을 수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다.[1]
- 파트라슈의 나라 답게 벨기에는 개를 수송용으로 많이 부려먹었다. 1차 세계대전 때도 개들은 당시 무거운 수냉식 기관총의 운송을 맡았다.
- 1890년, 개수레에서 우유를 파는 소녀. 벨기에에서는 이전부터 목축견이나 수레를 끄는 등 작업용으로 개를 이용하였다. 애견가인 원작자 위다는 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 원작에 있는 철자(Nello)대로 읽으면 넬로가 맞으나 일본산 애니메이션을 국내 방송사가
원작 한번 안읽어보고번역하면서 영상 매체의 파급력까지 겹쳐 네로로 굳어져 버렸다.하지만 1980년에 나온 국민서관 판, 1991년의 계몽사 판 플란더스의 개에서는 넬로라고 나온 바 있으며, 비교적 근래의 번역본인 비룡소판에서는 원어 발음에 가깝게 넬로로 번역되었다. 넬로는 애칭이며 본명은 니콜라스 또는 니콜라. 네델란드어로는 Nicolaas, Nicolaes 영어, 불어로는 Nicolas. 작중에서는 a little rosy, fairly hair, dark-eyed child( 혈색 좋고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검은색 눈을 가진 아이)로 묘사하고 있다. - ↑ 옛날엔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3국에 걸쳐있는 땅이었다. 플랑드르 항목 참조
- ↑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란 작품이다.죽은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벨기에의 온저 리버 프라우어 교회에 있다.
- ↑ 정확히는 외할아버지다. 파트라슈라는 이름이 원래는 네로의 죽은 엄마, 즉 할아버지의 딸의 미들네임이었다.
- ↑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혹사당하는 파트라슈에게 물을 주는 네로를 발로 걷어차고, 자기가 혹사시키고 버린 파트라슈를 주워다 그렇게 돌봐준 것에 반성은 못할망정 도리어 개값을 뜯어가는 등 빼도박도 못하는 천하의 개쌍놈이자 인간쓰레기다.
- ↑ 1등을 하면 200굴덴이라는 큰돈을 상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 ↑ 조금 다른 바리에이션으로 원래는 네로가 1등이었으나 결과가 와전되어 낙선으로 알려졌다는 내용도 존재한다
- ↑ 발표날 하루 종일 네로를 찾아다녔었다. 하지만 그 때 네로는 집도 없는 상태로 변두리를 헤매고 있었으니..
- ↑ 1975년 12월 28일에 방송된 마지막회는 시청률 30.1%를 기록하며 세계명작동화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고, 이후 방송된 세계명작동화의 그 어떤 작품도 이 기록을 깨지 못했다.
- ↑ 해외 이민간지 거의 10년만에 오랫만에 국내에 와서 재더빙판에서 알로아를 연기했다.
- ↑ 한일 양국의 성우 모두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무무를 맡았다. 아무무라는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생각하면 왠지 절묘하다.
- ↑ 전근대~근대 초기까지는 유럽권도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이쪽도 나름대로 폐쇄적인 공동체적 분위기가 짙은 편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비슷한 예를 찾자면,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도 이런 모습이 잘 나타난다.
- ↑ 다만 회사 자체는 불교 성향이 강하며 창립자도 승려출신이다. '칼피스'란 회사명도 칼슘과 범어의 'Sarpis'란 단어를 합성한 것이다.
- ↑ 일본판 오프닝을 그대로 가지고 왔으면서, 한국인(김용선) 작사/작곡으로 해놓았다. 방영 시기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 한참 이전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이승환의 "프란더스의 개"는 저작권비을 이중으로 내야 했는데, 속은 것에 열받았는지 이후로 이 노래는 안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작곡한 버전이 있긴 하다. 이규영이 노래한, 내 이름은 네로 네로 플란다스 마을에 살아요란 가사로 시작하는 곡. 70-80년대생 중엔 이걸 오프닝 곡으로 기억하시는 분도 있다. 1988년 KBS 방영시 오프닝 곡으로 쓰였다고.
- ↑ 마름의 어린 아들은 네로가 누명을 쓰고 외면당할 때도 네로의 결백을 끝까지 진심으로 믿어준 마을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 ↑ 네로의 그림이 목판에 목탄으로 그려져 심사에도 못나가고 이런게 그림이냐며 무시하는 속좁고 어리석은 대다수 심사위원들에 의해 불태워질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작품을 보고 네로를 내가 키워주겠다며 네로를 찾아나섰다.
- ↑ 아로아는 네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죽을때까지 잊지 못하고 평생동안 다른 남자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이기도 한다.
- ↑ 실제로 이 시대에 15살 정도면 이미 성인으로 봤다. 시대와 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성년이 되는 나이는 보통 10대 중반부터였다. 그예로 소설 보물섬에서 주인공 짐이 내 나이가 13살이라고 하자 실버가 13살이라고? 그쯤되면 충분히 어른이잖아? 이러는 부분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데자키 오사무가 감독한 애니 보물섬에서 짐이 13살임에도 맥주를 실컷 마시고 취하는데 실버가 그 나이라면 마셔도 된다라고 하는게 나왔다...
80년대 국내 방영판에서 미성년이 음주를 하는데도 전혀 문제없이 방영했던 부분 - ↑ 위키백과 등에도 실려 있다.
- ↑ 사실 설정변경 자체도 마개조라 보기는 어렵다.
- ↑ 당장 이 문서의 초창기 버전(리베위키 시절)을 보면 "애니판은 일본 특유의 무라 문화가 반영되었다"는 식의 엉터리 서술이 적혀있었다.
- ↑ 바람이 분다에서 나오코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