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Romanesque
Roman(로마) + Esque(式). 이름에서처럼 실제로 로마인들이 사용한 양식은 아니다.
로마 시대에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교회로 쓰던 건물의 양식이 바실리카이며, 기독교와 함께 게르만족 등의 이민족등이 로마의 양식을 모방하여 발전시킨 것이 바로 로마네스크이다.
2 바실리카
옛 성 베드로 대성당 단면도, 16세기경 |
Basilica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한 건축 양식으로 그리스 어로 "왕족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후 기원전 2세기인 로마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에 재판소나 집회장, 시장, 관공서, 지붕이 있는 야외극장 등 상업적 용도보다는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된 대규모 건물을 지칭했다. 그러나 점차 장방형의 회당이라는 특정 형태를 취한 건축을 지칭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가운데 마당이 있는 로마시대 건물을 후기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마당을 건물보다 높은 지붕으로 막고 교회로 쓰기 시작한 것.
한국의 바실리카 양식으로는 성공회 강화성당이 있는데 이 경우는 겉은 조선시대 한옥의 양식이나 그 안은 바실리카 양식이라는 매우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비슷한 한옥 바실리카로는 충청도 청주시 수동에 있는 천주교 성당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신전을 로마식으로 발전시킨 형식이며 그리스 신전보다 내부 공간이 넓으며 ㄷ모양의 평면을 가진 건축물의 중앙에 높은 천장[1]을 만들어 개량시킨 바실리카 양식의 건물들을 법정 등으로 사용하였는데, 로마 말기에는 기독교의 교회로써 쓰이며 초기 교회양식의 원형으로 남게 된다.
초기 바실리카의 구조로는 정문에 들어서면 사방을 아치를 기둥 위에 연속하여 가설한 주열랑으로 둘려싼 아트리움이란 중앙홀이 있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앙의 넓은 복도를 열주랑으로 둘러싸고 천장을 높게 해서 창문을 달았고, 개방된 주랑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게 되어 있고 한쪽 끝 혹은 양쪽 끝에는 집정관이나 제정자가 앉을 수 있는 자리에 해당하는 후진이 있고, 그 앞에는 희생단이 놓였다.
이후 성당으로 변형된 바실리카는 위에 언급대로 안쪽의 마당을 높은 벽이 지탱한 지붕으로 막은뒤 양쪽의 측랑 사이에 있었던 옛마당을 복도와 신자들이 앉을 자리인 신랑, 안쪽 중심부에 성직자석과 주제대가 비치된 내진으로 구성 되었고 낮은 천장의 측랑 내에도 기도실과 예비 신자들이 앉을 자리로 구성 되었다.
3 로마네스크로의 변화
이러한 바실리카 양식의 건축물은 북이탈리아 랑고바르드족의 지역과 프랑스 지역에서 다른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 카롤링거 왕조 시기에 들어서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라틴어를 보존하려는 노력등이 잇달으면서 바실리카 양식은 이후 ‘로마답다’라는 뜻을 가진 로마네스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2] 로마네스크 양식은 종래의 바실리카 양식과 달리 중세 성당의 전형적인 십자가 형태의 구조와 지하 무덤이 등장했고, 십자가 형태의 구조로 동향구조와 서향구조가 나타났다. 특히 서향구조는 성당이 커지면서 경당, 부속 제대, 지성소, 통로, 탑, 종루 등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고, 5세기 이후 미사를 동쪽으로 향하여[3][4] 드려왔기 때문이다. 그런 구조로 1층에는 천정이 낮은 현관, 2층에는 남북 또는 서남북쪽에 트리뷴이 달린 측랑을 두르고 신랑을 향해 개방된 넓은 간을 설치함. 넓은 간은 원칙상 제단을 한개 배치한다, 넓은 간 위에는 탑(채광탑 또는 종탑)을 세우나, 그 앞면 양쪽에 계단탑을 설치하여 세개의 탑을 나란히 세우는 수도 있다.
그외에도 목조로 이루어진 박공(ㅅ형의 간단한 지붕)형 지붕을 로마식의 석조천장이었던 볼트(둥근 아치형 천장)로 바꾸게 되며,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외벽에 덧댄 기둥(버트레스)를 설치하고 외관에 더 많은 종교적 장식물을 설치하게 된다.
또한 채광을 위해 아일을 높이고 교차되는 볼트를 도입하여 쏠리는 힘을 중앙으로 모으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덕분에 로마네스크는 성과 같은 위엄있는 모습을 가지게 되었으나 지붕의 무리한 무게로 인하여 좁은 창과 두터운 벽을 가지게 되어 채광과 교회 면적의 확장에 무리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조와 얇은 석재로 이루어진 리브볼트라는 가벼운 천장이 개발되고 이를 통해서 고딕양식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마련된다.
고딕 성당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벽과 창문, 그리고 천장을 보는 것이다. 고딕은 로마네스크에서 더욱 진보되어 큰 면적을 가진 스테인드 글라스와 더 얇은 벽, 그리고 X자의 리브(뼈대)를 가진 천장을 볼 수 있다. 반면 로마네스크는 효율적인 구조를 가지지 못해서 벽이 두껍고, 창이 작으며, 천장도 둥근 볼트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후에도 로마네스크는 서유럽의 교회의 표준 양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점차 발전하기 시작한다. 네이브의 경우 노르망디에서 3단으로 되었고 리브볼트를 지지하는 늑골또한 두쌍의 리브를 겹친 4분인 크로스 리브볼트가 등장했고, 나아가 한쌍의 리브가 더 추가되어 6분 리브가 등장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초기 로마네스트의 형태는 바실리카와 비슷한 구조였다. 허나 점차 프랑스, 영국, 독일 등지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처럼 아트리움을 배제했고 대리석을 이용한 장식주의가 팽배했고 특히 피렌체의 경우 채색 장식주의의 성당이 세워졌다.
한국과는 별 인연이 없어보이지만, 사실 한국에도 덕수궁 옆 서울성공회성당과 천주교 전주교구 전동성당 같은 훌륭한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이 남아있다. 전동성당의 경우에는 전주 항목에서 참고. 그리고 서양과 동양식이 절충된 작은 건물인 덕수궁의 정관헌도 부분적으로는, 특히 기둥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들어갔다.
다만 서울성공회성당의 경우 아일의 아치 등 전체적으로는 로마네스크의 모습이나, 네이브의 천장이 목조로 되어 있는등 바실리카 양식의 요소나 외벽의 한국적인 건축 양식이 들어가 있어서 좀 독특한 편이다. 전주시의 전동성당의 경우처럼 천장이 볼트로 이루어진 모습이 더욱 일반적인 로마네스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