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아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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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노 페스카라 1936 No.20
알베르토 아퀼라니(Alberto Aquilani)
생년월일1984년 7월 7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로마
포지션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186cm
프로입단1999년 AS 로마
청소년 클럽AS 로마 (1999~2002)
소속팀AS 로마 (2002~2009)
트리에스티나 (임대) (2003~2004)
리버풀 FC (2009~2012)
유벤투스 (임대) (2010~2011)
AC 밀란 (임대) (2011~2012)
피오렌티나 (2012~2015)
스포르팅 CP (2015~2016)
델피노 페스카라 1936 (2016~ )
국가대표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38경기 5골 (2006~)

1 소개

AS 로마의 공주님

최악의 유리몸으로 인해 피지 못한 재능

2009-10 시즌 리버풀 FC의 최악의 영입

알베르토 아퀼라니는 이탈리아의 축구선수다. 그는 로마에서 데뷔했고 그곳에서 리그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성장하여 로마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정확한 패스, 정확도 높은 롱슛, 그리고 우아하게 보일 정도로 화려한 개인기까지 보유한 그는 다니엘레 데 로시와 함께 로마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중원을 책임질 핵심요원으로 자리잡는 듯했다. 그러나 지독한 유리몸으로 인해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2009년 여름 리버풀로 이적한 후 먹튀로 전락하여 결국 실패한 선수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나마 이탈리아로 돌아와서는 다시 기량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또다시 부상의 악령에 시달렸고 결국 포르투갈의 축구클럽인 스포트링 CP와 자유계약을 체결하여 현재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티아라의 박지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놈의 유리몸 때문에 장나라와 닮았던 체코의 어느 축구선수처럼 아저씨가 되어 가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AS 로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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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퀼라니는 1999년 15살의 나이에 AS로마의 유스팀에 입단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이에 주목한 첼시와 아스날이 2001년에 그를 영입하려 했지만 로마가 이를 거부했다. 그후 아퀼라니는 2002년 10월 10일 18살의 나이에 토리노와의 리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그날 로마는 3:1로 승리를 거뒀다. 아퀼라니는 2002-03 시즌에서 리그 1경기, 컵대회 1경기만 뛰고 이듬해에 세리에B 소속인 트리에스티나로 임대가서 리그 41경기에 출장하여 4골을 기록했다.

2004년 로마로 돌아온 아퀼라니는 2004-05 시즌에 주전으로서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는 리그 29경기, 컵대회 4경기, 유럽 대회 5경기에 출장하여 총 38경기에 나왔는데, 나올 때마다 자신의 공격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팀의 공격 전개에 발판이 되어줬다. 로마는 그를 오랫동안 잡기 위해 2005년 3월 31일 5년 제계약에 합의했다.

2005-06 시즌, 아퀼라니는 지난 시즌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더비 델라 카피텔라를 상대로 두번째 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이 시전에 리그 24경기 3골, 컵대회 4경기 2골, 유럽대회 8경기 1골을 기록하며 총합 36경기에 6골을 기록했다. 이렇듯 매년 쑥쑥 성장하는 그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그가 팀의 최고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팀 또한 그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2006-07 시즌엔 마테오 페라리의 것이었던 8번을 그의 등번호로 줬다.

그런데 그는 이 시즌부터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퀼라니는 2006년 11월 25일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던 도중에 상대 선수인 로드리고 타데이와 경합을 벌이다가 오른쪽 무릎의 내부측부인대가 끊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바람에 장기간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그는 부상을 당한지 6개월 가까이 지난 2007년 5월에야 그라운드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커리어 내내 부상이라는 악령에 시달리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성공적인 복귀를 한 그가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고 본 이들이 많았다.

팔레르모전 때 기록한 중거리골

시에나전 때 기록한 중거리골

2007-08 시즌, 아퀼라니는 팔레이모와 시에나를 상대로 두 번의 장거리 슛을 날려 득점을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이 시즌에도 부상을 자주당하긴 했지만 복귀 후에도 변함없는 경기력을 보여줘 주전 자리를 잃지 않았다. 그는 이 시즌에 리그 21경기 3골, 컵대회 4경기 1골, 유럽대회 5경기 0골을 기록하며 총 31경기 4골을 기록하며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했던 지난 시즌을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008년 10월 22일, 그는 또다시 부상을 당했고 2009년 1월 11일 AC밀란과의 경기에 복귀했다. 그러나 그는 2월에 또다시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후 2009년 3월 11일에 아스날과의 챔피언스경기 때 교체로 출장한 걸 제외하면 2008-09 시즌의 후반기를 대부분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로마는 2009년 5월 26일 아퀼라니와 계약을 3년 연장하는 재계약에 합의했다. 이로서 아퀼라니는 2013년까지 로마에서 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느닷없이 리버풀로 이적했다.

2.2 리버풀 시절 : 리버풀의 잘못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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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5일, 리버풀은 아퀼라니 영입을 공식 선언했다. 리버풀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로마에게 1700만 파운드에 추가 분담금 300만 파운드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아퀼라니는 리버풀에 입단한 뒤 새미 하피야가 가지고 있었던 등번호 4번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아퀼라니는 리버풀 에코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고향 로마를 떠나게 되어 물론 유감스럽다. 그러나 리버풀 이적은 마무리되었고, 제라드나 토레스를 비롯한 훌륭한 선수들과 뛰는 것은 환상적인 일일 것"이라며 리버풀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치고 싶다고 밝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리버풀이 비록 재능은 뛰어났지만 유리몸임이 이미 드러난 그를 거액의 돈을 들여가며 영입한 것은 의아스럽기 짝이 없다. 리버풀 보드진과 당시 리버풀의 감독인 라파 베니테즈는 왜 그를 영입하기로 결정했을까? 이야기는 200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버풀의 감독이었던 베니테즈는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사비 알론소를 팔아치우고 그 자리를 가레스 배리로 대신하려 했다. 그러나 배리의 소속 구단인 아스톤 빌라는 배리를 절대로 보낼 수 없다며 단호히 거부했고 결국 딜은 무위로 그쳤다. 자신을 내보내려 했다는 걸 알게 된 알론소는 깊은 충격에 빠졌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2008-09 시즌 리그는 물론이고 유럽 제일의 중미로 거듭났다. 2009년 여름, 베니테즈는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리버풀에 마음이 떠난 알론소는 레알 마드리드로 홀가분하게 떠났다. 그래도 3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남긴 점은 리버풀에겐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베니테스는 토레스와 함께 공격진을 이끌 인물로 로비 킨을 선택했고 사비 알론소의 대체자로는 가레스 배리를 점찍었다. 보드진은 일단 로비 킨을 2008년 여름 1900만 파운드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배리였다. 당초 2008년 여름에 영입하려고 했지만 보드진이 배리를 1000만 파운드 이상 주고 데려올 이유가 없다며 계속 거부했고 이에 격노한 베니테즈는 노골적으로 로비 킨을 벤치에 박아버리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결국 불쌍한 로비 킨은 어린 시절부터 응원했던 팀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가 2009년 1월에 친정팀으로 도로 복귀했다. (...)

이후 베니테즈는 사비 알론소를 판 돈으로 베리를 영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베니테즈가 너무 공공연하게 배리를 영입하겠다고 언론에 밝히자, 아스톤 빌라 측은 리버풀이 그를 영입하려고 혈안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가격을 계속 올렸다. 게다가 질레트-힉스 리버풀 구단주들은 사비 알론소를 이적시키고 받아낸 3000만 파운드의 상당수를 사적인 이유로 빼돌렸다.(...) 이 바람에 리버풀이 배리 영입에 들일 수 있는 이적료는 한정되었고 어떻게든 가격을 깎기 위해 아스톤 빌라측과 끝없는 협상을 벌여야 했다.

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맨체스터 시티는 얼마 후 120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배리를 영입했다. 이 정도 금액이면 리버풀도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망할 질레트, 힉스 놈들... 그러니 어쩌겠나? 꿩 대신 닭이라고 다른 선수를 찾아보는 수밖에. 그래서 아퀼라니는 배리 대신 리버풀에 입단한 것이다. 그래도 로마에서 보여준 실력을 리버풀에도 해준다면 충분히 알론소를 대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퀼라니는 리버풀에 입단할 때 경기에 뛸 수 없는 몸이었다. (...)

아퀼라니는 2008-09 시즌 때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 때문에 회복까지는 최소 4주에서 8주까지 경기에 뛸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아퀼라니는 데일리 메일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지금에서야 이탈리아의 의료진들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지 못 했다는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지난 시즌 당한 내 무릎 부상에 대해서 로마의 의료진은 아주 작은 부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간과했다. 그래서 나는 경기에 뛰었고 그 결과 부상이 악화돼 수술을 받게 되었다"며 로마 의료진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아무튼 그는 부상을 입은 채로 리버풀에 입단했고 리버풀에서의 데뷔는 시즌이 시작하고 2개월이 지난 10월 29일에야 이뤄졌다. 그는 그날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장하여 15분을 소화했다.

이후 아퀼라니는 아스날과의 리그컵 4차전에서도 77분경에 교체 투입되었고 2009년 11월 9일에 다시 한번 리그 경기에서 경기 후반에 투입되었다. 그의 첫 선발 출전은 2009년 12월 9일 피오렌티나와의 챔피언스리그 6차전이었다. 당시 리버풀은 2:1로 패배했고 아퀼라니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2009년 12월 26일 울버햄튼 울브스와의 경기에서 비로소 리그 처음으로 선발로 출전했고 이번에는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좋은 경기력을 선보인 뒤 84분경에 교체되었다. 그 후 볼튼과의 경기에서도 역시 선발 출전하여 카윗에게 절묘한 패스를 찔러줘서 골을 만들어내며 콥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절정은 2010년 3월 15일 포츠머스와의 경기였다. 이 날 아퀼라니는 로마에서 보여줬던 경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경기 내내 중원을 씹어먹고 토레스에게 절묘한 패스를 줘서 골을 기록하게 만들었고 본인 또한 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는 이 경기에서 MOM(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아퀼라니는 또한 풀럼과의 홈경기에도 출장하였는데, 비록 팀은 0:0 무승부로 끝났지만 아퀼라니는 이 날에도 대활약하며 역시 MOM에 선정되었다. 며칠 후 번리와의 경기에선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4:0 완승을 견인했다. 2010년 4월 29일에는 유로파 대회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리버풀은 원정 다득점에서 밀리는 바람에 유로파 4강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아퀼라니는 이 경기에서도 MOM에 선정되었다.

아무튼 아퀼라니는 2009-10 시즌 때 전반기는 버렸고(...) 후반기에는 맹활약하며 팀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전반기에 워낙 까먹은 승점이 많았던지라, 리버풀은 7위에 그치고 말았고 시즌이 끝난 뒤 베니테스는 경질되었다. 그 후 아퀼라니는 희대의 먹튀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나올 때마다 준수한 활약을 한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나온 게 고작 9경기였던지라....(...) 결국 부상과 저조한 활약으로 인한 비난에 몸과 마음에 모두 상처를 입은 그는 임대 형식으로 이탈리아에 복귀하기로 결심했다. 베니테즈 경질 이후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한 로이 호지슨은 "우리는 현재 아퀼라니를 이탈리아 클럽으로 임대 이적시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 사실을 인정했다. 결국 2010년 8월 21일, 아퀼라니는 유벤투스와 1년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2.3 유벤투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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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퀼라니는 2010년 9월 12일 삼프도니아와의 경기에서 시오네 페페의 교체 멤버로 출전했다. 이날 유벤투스는 삼프도리아와 3:3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의 첫번째 선발 출전은 9월 26일 칼리아니와의 경기였다. 이날 아퀼라니는 4:2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아퀼라니는 33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며 준수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의 활약상을 지켜본 캐니 달글리시는 그가 여전히 리버풀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퀼라니는 이탈리아에서 뛰는 게 행복하며 계속 세리에A에서 뛰고 싶다고 밝혔다. 유벤투스는 아퀼라니를 임대했을 때 완전 이적료로 1400만 파운드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퀼라니가 시즌 막판에 부진하자, 유벤투스는 생각을 바꿔 완전 이적료를 깎지 않으면 영입은 없다고 선언했다. 결국 아퀼라니는 완전 이적에 실패하고 리버풀로 돌아갔으나 곧바로 AC 밀란으로 임대되었다.

2.4 AC 밀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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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4일, 아퀼라니는 리버풀의 프리 시즌 훈련에 참가했고 아시아 투어에도 로스터에 포함되어 7월 13일 광동과 선레이 케이브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리버풀에서 2011-12 시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1년 8월 25일, 아퀼라니는 한 시즌 동안 밀란에 임대되기로 합의했다. 아시아 투어에서 훌륭한 활약을 보여줘서 팬들이 선정한 베스트 11에도 뽑혔던 그가 느닷없이 AC 밀란으로 임대된 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케니 달글리시 리버풀 감독은 "아퀼라니는 팀의 준비된 포메이션에 적합한 선수가 아니어서 임대보냈다"라고 밝혔다. 하긴 그가 이 시즌에 뻥축 위주의 전술을 사용한 걸 보면 아퀼라니같은 선수는 어울리지 않겠지

아퀼라니는 2011-12 시즌 개막전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했다. 그는 즉각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안토니오 카사노에게 절묘한 패스를 찔러서 그가 골을 기록하게 했고 코너킥을 올려 헤딩골을 이끌어내 이 경기에서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따. 2011년 9월 13일, 아퀼라니는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에서 교체 투입되었고 밀란은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2011년 9월 18일, 아퀼라니는 나폴리를 상대로 리그 첫번째 골을 기록해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후 그는 리그 23경기 1골, 챔피언스리그 7경기 출전 0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후반기에 들어서 또다시 부상에 시달리며 경기에 제대로 출장하지 못했고 결국 밀란은 그를 잡지 않았다.

2.5 피오렌티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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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 시즌, 아퀼라니는 리버풀로 돌아와 프리시즌 트레이닝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리버풀의 북미 투어에 동참했고 토리노 FC오의 친선경기에 출전하여 45분 동안 뛰었다. 그의 에인전트는 아퀼라니가 리버풀에 남는다고 밝혔지만, 리버풀은 2012년 8월 3일 아퀼라니를 피오렌티나로 보내는 데 합의했다. 그것도 자유계약으로. (...) 2000만 파운드를 들여 사놓고 달랑 9경기만 쓰고 자유계약으로 보내다니...

아퀼라니는 2012-13 시즌 피오렌티나에서 리그 25경기 7골에 컵대회 2경기 0골을 기록했다. 특히 2014년 1월 26일 제노아를 상대로 커리어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3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아퀼라니는 2014년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나폴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듬해, 아퀼라니는 31경기 출전 6골, 3경기 출전하여 0골, 유로파 10경기 1골을 기록하며 총합 44경기 7골을 기록하며 팀을 4위에 올렸고 유로파도 4강까지 진출했다. 이후 아퀼라니는 2014-15 시즌에서 리그 25경기, 유럽 대회 7경기 등 총 34경기에 출전했지만 지난 2시즌에 비해 기량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고 또다시 부상에 시달리면서 팀내 입지가 좁아졌다. 결국 시즌이 떠난 뒤, 그는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팀을 떠났다.

2.6 스포르팅 CP 시절

2015년 8월, 아퀼라니는 스포르팅 리스본과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주급은 100만 유로.

2.7 델피노 페스카라 1936 시절

2016년 8월 26일 델피노 페스카라 1936로 이적하며 이탈리아 무대로 복귀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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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시절, 아퀼라니는 2001 U16 축구 챔피언쉽에 참가하여 자신의 재능을 뽐냈다. 이후 그는 U19 축구 챔피언쉽에서도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고 이탈리아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2006 U21 축구 챔피언쉽에서도 참가했지만 결승전은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고 이탈리아는 결승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아퀼라니는 2006년 11월 15일 터키와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로서 데뷔전을 치뤘다. 이날 이탈리아는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는 2007년에도 U21 챔피언쉽에 참가하여 네덜란드를 상대로 2골을 넣는 등 활약했다. 유로 2008에는 23인 로스터에 포함되었고 벤치에 앉아 대기했다. 그는 스페인과의 4강전에서 교체 출전했지만 이탈리아는 0:0 무승부를 거둔 후 승부차기에서 4:2로 패했다.

아퀼라니는 2010 월드컵 지역 예선에도 종종 출전했고 2008년 10월 15일 몬테네그로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로서 첫 골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몬테네그로와의 2차전에서는 2골을 기록했다. 이러한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마르셀로 리피 이탈리아 감독은 2010 월드컵에서 그를 최종 로스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유로 2012 지역 예선에서, 아퀼라니는 슬로베니아와의 에선 1차전에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 또한 그는 에스토니아와의 경기에서도 출전했지만 머리 부상으로 인해 교체되었다. 2011년 8월 10일, 그는 스페인과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기록했다. 아퀼라니는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에 의해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의 로스터에 포함되었고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는 등 좋은 활약을 선보였고 이탈리아는 대회를 3위로 마쳤다. 2013년 10월 11일, 아퀼라니는 덴마크아의 경기에서 인저리 타임에 골을 기록하며 2: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이 골은 그의 국가대표로서 5번째 골이었다. 하지만 그는 2014 월드컵 로스터에서도 또다시 뽑히지 못했다.(...)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비인기팀인 스포르팅으로 이적했으니 국가대표로 뛸 기회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4 플레이 스타일

아퀼라니는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보다는 현대의 다재다능한 플레이메이커에 가깝다. 그는 미드필더로서 많은 역할을 거의 동시에 수행하는 데 능했다. 그의 주요 역할은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로, 후방에서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며 경기를 이끌어가는 데 능하다. 하지만 데뷔했을 때는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그 점을 살려서 트레콰르티스타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진면모는 역시 중앙 미드필더에서 최대한도로 발휘된다. 그는 중원을 씹어먹으면서 공격 전개를 이끌고 수비 가담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윙이나 윙백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경기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 또한 그는 기술, 빠른 패스 및 롱 슛에 능하며 팀워크, 축구지능에서도 탁월하다. 또한 186cm인 큰 키를 활용하여 세트피스에서 헤딩을 따내 골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엄청난 재능은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리면서 사그라들었다.

5 수상

5.1 클럽

로마

코파 이탈리아 : 2006-07 시즌, 2007-08 시즌

수퍼코파 이탈리아 : 2007년

5.2 국가대표

이탈리아 U-19

UEFA U-19 챔피언쉽 우승 : 2003년

이탈리아

FIFA 컴페더네이션스 컵 3위 : 2013년

5.3 개인

유럽 U-19 축구 챔피언쉽 선수상 : 2003년

유럽 U-21 축구 챔피언쉽 베스트 11 : 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