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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삼프도리아 No. 99 | |
안토니오 카사노 (Antonio Cassano) | |
생년월일 | 1982년 7월 12일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바리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신체 조건 | 175cm, 78kg |
주로 쓰는 발 | 오른발 |
등 번호 | 국가대표 - 10번 UC 삼프도리아 - 99번 |
소속 팀 | AS 바리 (1999~2001) AS 로마 (2001~2005) 레알 마드리드 CF (2005~2008) UC 삼프도리아 (임대) (2007~2008) UC 삼프도리아 (2008~2011) AC 밀란 (2011~201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2~2013) 파르마 FC (2013~2015) UC 삼프도리아 (2015~) |
국가 대표 | 35경기 10골 |
악마의 재능
강산호
목차
1 소개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악마의 재능, 판타지스타, 이탈리아 축구계의 미래, 강산호[1], 돼지[2] 등 수많은 별명을 달고 다닐 정도의 천재성을 보유했던 선수로, 이탈리아에서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 평가받았던 인물이었다.
2 경력
2.1 AS 바리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난한 생활을 해 오던 카사노는 AS 바리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아 입단한다.
그리고 1999/2000 시즌, 18세의 나이로 성인 팀에 입단하여 당시 인테르와의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 2명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이탈리아 축구계의 주목을 받았다.[3]
그 이후로 엄청난 활약을 통하여 수많은 빅 클럽의 러브 콜을 받았고, 결국 2001년 AS 로마에 입단한다.
2.2 AS 로마
프란체스코 토티와 카사노의 콤비는 정말 역대 베스트에 들어갈정도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둘의 환상적인 활약에 힘입어 AS 로마는 01/02 시즌, 03/04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의 위업을 달성한다. 아쉽게도 우승을 못했으니 콩라인
하지만 플레이에서만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다른 외적은 모습에서도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파일:U6CcVwW.jpg
골 넣을 때마다 항상 이 짓거리를 했다. 개울에서 목욕하는 여인?
그가 경기 외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들은 거의 아드리아누에 필적했는데, 돌아온 탕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면 말 다할 정도로 별의별 웃기지도 않는 사건사고를 다 달고 다녔다. 문란한 여자관계는 물론, 평생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폭식을 비롯해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클래스에 비해 주급이 적다고 생각했는지 구단주에게 돈 더 달라고 징징대다가 결국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었고 이 일로 인해 토티와의 관계도 소원해졌다.[4]
보통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알고 있으나 사실은... 카사노는 토티와 함께 리그를 정복하는 활약을 하고 있었는데 AS 로마의 전 구단주 로젤라 센시는 재계약 협상에서 그런 카사노에게 연봉 동결을 제시한다. 카사노는 연봉 0.4M(한화 약 7억)을 인상한 금액을 끝까지 요구했으나 센시의 제의는 동결or 인상하고 2년이었다. 2년 계약은 그냥 자유계약 내주지 않고 비싸게 팔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마지막 협상까지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연봉 7억을 올려주지 못한 센시는 카사노를 5.5M(한화 약 90억)의 이적료에 팔아야 했다. 사올 때는 25M 이상에다 가에타노 다고스티노까지 얹어준 선수를 말이다.[5][6]
2.3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활약은 좋지 못했다. 일단 카사노 본인의 똘끼(...)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카사노를 어쩌지 못하던 레알은 카사노의 은사인 파비오 카펠로가 레알에 부임하게 되며 은근히 카사노 제어도 좀 잘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카펠로마저도 카사노와 다퉜다. 카사노는 카펠로에게 개기다가 징계를 받기도 하고 카펠로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면서 뒷담을 까는 장면이 방송국에 찍히는 등 갖은 추태를 부리다 체중증가량당 벌금이라는 굴욕적 조치마저 당하게 된다. 이 와중에 카사노는 다시 로마와 토티에게 징징 잉잉 불쌍한 척을 했으나 로마와 토티는 본 척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여러 모로 구단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짓만 하다가 시즌 도중 삼프도리아로 임대를 가게 되고 결국 2008년 삼프도리아에 정식으로 이적하게 된다.
결국 호비뉴에게 세레모니를 전수한 정도가 레알 시절 카사노의 눈에 띌 만한 업적.[7][8]
2.4 삼프도리아
우리 카사노가 달라졌어요.
삼프도리아 이적 후 그동안의 여자관계를 청산하고 수구(水球) 선수 출신[9]과 결혼하는데, 그 이후로 사람이 확 달라졌다. 삼프도리아의 공격수 지암파올로 파찌니와의 콤비플레이는 전성기 토티와의 플레이에는 못 미치지만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었고, 카사노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삼프도리아의 플레이 또한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의 클래스를 보여주며 아직 안 죽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거의 개인의 활약으로 삼프도리아를 챔스까지 진출시킨다. 챔스 진출 컷라인인 리그 4위로 리그가 마감되고 나서 삼프도리아 팬들은 챔스 우승한 것마냥 좋아했고 카사노는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잘하면 카사노가 아니지.
삼프도리아에 와서도 그놈의 성격이 어딜 가지 않아, 이번에는 구단주와 큰 불화가 생겨 팀에서 완전히 내쫓길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임신 중인 아내를 데리고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없다면서 카사노는 그동안 그를 알던 팬들이 경악할 만큼 손발 다 들어 빌었다. 주급을 깎아도 된다느니, 원한다면 휘발유도 마시겠다느니... 이게 그 카사노라고?
이번 사태에 대해 여러 네티즌들의 반응은, 물론 카사노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구단주가 쪼잔해서 그렇다는 것이 주된 평. 결국 2011년 1월 2일 밀란으로 이적했다. 호나우지뉴 지못미 또한, 삼프도리아는 카사노와 파치니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팔아버린 대가로 강등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과는 애꿎은 팔럼보가 했다. 팔럼보가 무슨 죄야.
2.5 AC 밀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국 밀란으로 이적이 성사되었다. 밀란 입장에선 계속 폼이 떨어지는 쉐드로프, 호나우지뉴와 점점 늙어가는 피를로를 대신하여 창의적인 플레이를 해줄 수 있는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카사노의 영입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밀란에는 저 셋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볼 배급을 해줄 선수들이 없다. 마시모 암브로시니, 젠나로 가투소, 마티유 플라미니 모두 거의 수미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들이다. 그렇기에 선수 생활의 절정기에 다다른 카사노의 영입은 밀란의 천군만마가 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첫째는 카사노는 이미 삼프도리아 소속으로 챔스를 뛰어서 밀란 소속으로 챔스를 뛰지 못한다는 것이고, 또 둘째는 모두가 다 알다시피 또라이 같은 멘탈(...)이다. 물론 카사노의 멘탈이 전과 달리 매우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 성격이 한순간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기에 이점이 약간 걸리는 점이기도 하다.
이적 후 맞이하는 첫 경기인 칼리아리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된 후 어시스트를 올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후에도 즐라탄과 찰떡 콤비를 보이며 리그에서 총합 40분 뛰었는데 3어시를 찍는 등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일명 갓산호. 특히 카사노와 즐라탄이란 창의력 대장들이 합쳐서 내는 공격진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
그러다, AS 로마전 이후 원인불명으로 쓰려져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받았다. 이에 대해 AC 밀란의 팀 닥터는 "카사노의 상태가 좋지 않다. 말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말하였다고 하면 꽤나 심각해 보인다... 안... 안 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뇌경색이라는 보도도 나왔었지만 AC 밀란 측에서 부정했다.
후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심장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며 이를 위해 수술에 들어간다고 한다. 몇 개월간의 재활이 필요한 상황으로, 시즌아웃될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그래서 AC 밀란은 카사노의 대체자를 급하게 물색하였고, 이 때문에 테베즈 영입설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테베스 영입이 무산된 시점에서 생각보다 회복이 빨라 이내 개인훈련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떴다. 본인은 4월 복귀를 희망하지만, 의사는 6월쯤은 되어야 한다고 전망.
피오렌티나전에서 교체 출전하였다. 하지만 팀은 지고 말았고 선두까지 유벤투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도 이후 경기 출전하면서 점점 기량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새 국가대표팀 감독 체사레 프란델리에 의해 이탈리아 대표팀에 발탁되어 유로 2012에서도 활약했다. 스페인전에서도 비록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클래스는 죽지 않았다는 듯이 스페인의 수비진을 적절히 뒤흔들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다른 선수들의 공격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아, 반대로 멘탈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발로텔리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줬다. 역시 발로텔리도 장가가야 할 듯. 그리고 2차전을 지나 결국 3차전, 전반 35분에 세트피스 상황에서 피를로가 어시스트해준 공을 백헤딩으로 넣어 이탈리아의 선제골을 기록하는 데 성공[10], 이탈리아의 8강 진출을 견인한 주역의 한 명이 되었다.
이어서 8강전에서는 조용했으나, 준결승전에서 독일 수비수 2명을 농락하는 턴 직후에 정교한 크로스를 날려 발로텔리의 헤딩골을 어시스트, 이탈리아 팀이 우승후보로까지 꼽히던 독일을 2:1로 완파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2).
4강전 끝나고 팬들한테 상/하의 벗어서 주는 장면(왼쪽 사진). '악동클럽'(?) 아니랄까 봐, 얘네들이...
다만, 아직까진 '60분짜리 공격수'(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 풀타임 출장이 힘들어서)라느니, 발로텔리와 함께 언제 팀 말아먹을지 모르는 '폭탄'이란 평이 남아있는 등 우려도 남아있었고, 불행히도 하필 결승전에서, 이 우려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본인도 스페인의 파상공세에 휩쓸려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11], 특히 풀타임 출장이 어려웠던 탓에 항상 교체 카드 1장을 잡아먹고 시작하던 것이 경기 당시 수비수들의 잇따른 부상 때문에 부상당했는데 교체를 해줄 수가 없는 어이없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화룡점정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폭탄'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대회 전의 부정적인 예상에 비하면 훨씬 많은 활약을 보여준 셈.
대회 종료 후, 이적설이 나왔다. 이제 나이도 나이이고 해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아내의 고향 팀인 제노아에서 보내고 싶어한다는 것으로, 밀란도 그를 정리하고 제노아에서 마티아 데스트로 등의 유망주를 데려오고 싶어하며, 또한 제노아와 밀란의 관계가 좋은 것 등이 이번 이적설에 힘을 실어넣어주고 있었으나...
2.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2년 8월 22일 인테르의 지암파올로 파치니와의 트레이드로 인테르로 이적했다. 정확히는 카사노 + 7M 유로와 지암파올로 파치니의 트레이드.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트레이드라는 반응이 많다. 파치니가 분명 나쁘지 않은 공격수이기는 하지만 카사노에 비해서는 리그나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카사노에 7M 유로를 더 얹어줬으니. 이 트레이드의 배경으로는 2012년 여름 이적 시장 동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치아구 시우바 등 고액 주급자들을 처리해온 AC 밀란의 행보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로써 카사노는 2012년부터는 네라주리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과거 카사노의 중거리 슛 때문에 챔스 진출 좌절을 맛봤던 인테르였기에, 다소 묘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로쏘네리 팬들에게는 심장병 재활 때까지 기다려줬더니 홀랑 라이벌 팀으로 이적했다면서 그를 이적시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함께 세트로 온갖 욕을 처먹게 된다.
평소 인테리스타였던 카사노는 입단식에서 "밀란 위엔 하늘만 있다. 그리고 하늘 위엔 인테르가 있다."란 인터뷰로 많은 환영을 받았다. 시즌 초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체력에 한계가 오고 부상도 겹쳤다. 그럼에도 36경기(29선발 7교체) 8골 12도움이란 기록을 남겼는데, 팀이 전체적으로 부상으로 시망하는 가운데 그나마 공격 루트를 만들어내던 선수였다.
그러나 시즌 후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마짜리가 카사노를 쓰지 않을 것을 천명하여 결국 FC 파르마로 이적했다. 이에 카사노는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를 비롯한 수뇌부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마짜리는 아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마짜리에게 계속 안 좋은 감정을 드러냈는데 마침 마짜리가 인테르에서 무재배하면서 유망주는 쓰지도 않자 '역시 인테리스타'라며 환호를 받았던 건 함정...
2.7 파르마 FC
노장은 죽지 않았다.
82년생이므로 이제 30줄을 넘긴 선수임에도 루카 토니와 함께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노장은 왕창 모았는데 다 별로인 AC 밀란은 뭐했는가 세리에A 34라운드 종료기준 11골 6어시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며, 그 활약을 디딤돌삼아 국대 승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평소에 인터뷰라면 자뻑 내지 이상한 소리가 대부분이던 젊은 시절과 대비되게 "살을 뺐다고 해서 대표팀 멤버에 뽑힐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체사레 프란델리 대표팀 감독님께서 살을 뺀 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까 싶다. 만약 월드컵에 간다면 난 행복할 것이다"라는 매우 겸손한 인터뷰를 남겼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에도 나와 있듯 과식의 상징인 그가 무려 체중 감량까지... 욕이란 욕만 골라 먹던 그가 선수로써는 황혼의 나이에 갑자기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정작 국대 감독 프란델리는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쓰겠지
그런데 결국 월드컵 갔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아무것도 못했다(...). 코스타리카의 압박 때문이라고는 해도, 세월은 속일 수 없는 듯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다.
한편 14-15 시즌에는 그럭저럭 활약은 하였으나 구단 매각이 풀리지 않아 연봉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생겨 구단과 트러블이 생긴 듯하다. 결국 1월 27일자로 자유계약 상태가 되었다.
2.8 무적기간
오스발도가 떠난 자리에 카사노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이 되었으나 인테르의 만치니 감독이 자유 계약 신분인 카사노의 영입을 거절하며 인테르 이적은 무산되었다.
2.9 다시 삼프도리아로...
무적 신분으로 팀이 없었던 카사노는 2015년 8월 9일 삼프도리아와 2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15-16 시즌엔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25경기출전 2골 5도움을 기록했다. 별 사고 없이 지내나 했지만 시즌 막판 제노아와의 더비 매치에서 3대0으로 완패한 후 구단 회장 대리인과 충돌하며 계약 해지 직전까지 갈 뻔했다고 한다. 다행히 방출은 안 됐지만 이탈리아 언론들은 여전히 카사노의 방출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후 16-17시즌에는 페레로 회장과 불화설이 생겼고 더 높은 주급을 요구하면서 결국 페레로 회장과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최근에는 라커룸도 출입금지를 받았다고 한다.
3 기타
아니, 애초에 그의 자서전을 보면 할 말이 없다. 그냥 본능에 충실한 인간인 듯.[12] 이 자서전을 출판한 후 관련 인터뷰를 했을 때 "나는 전 세계에서 읽은 책보다 쓴 책이 더 많은 유일한 사람이다."라는 굴지의 명언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이탈리아 대표팀을 감독할 때 두 차례의 월드컵 명단에 그의 이름을 넣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개과천선한 뒤로 별 문제없이 축구에만 전념해서 그런지 리피 감독 이후 임명된 새로운 감독인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 체제에서는 이탈리아의 핵심이자 에이스로 활약하였다. 프란델리 감독도 그를 신임하여, 유로 2012 선수단 명단에 그의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렸을 정도다. 사실 대표팀 공격수 마리오 발로텔리가 워낙에 캣또라이라서...[13] 2014 월드컵 예선 명단에 이어 본선 명단에서도 1차 탈락했으며 또한 초반과는 달리 프란델리 감독도 그의 기용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어서 이제는 마음이 떠나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으나 결국 승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월드컵 첫 출전인 코스타리카 전에서 교체 출장했으나 코스타리카의 압박을 뚫지 못하고 패배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종종 이천수와 비교가 되고 있다. 물론 이천수의 재능이 아깝기는 하고 좌충우돌 멘탈이 비슷한 점이긴 하지만, 다시 갱생하여 이탈리아 국가 대표 팀과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 중 하나에서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와 비교하는 건 좀...
4 기록
4.1 대회 실적
- AS 로마 (2001/02 - 2005)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 : 2001
- 레알 마드리드 (2005 - 2007/08)
- 스페인 라 리가 (1) : 2006/07
- AC 밀란 (2011 - 2011/12)
- 이탈리아 세리에 A (1) :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 : 2011
4.2 개인 수상
- 세리에 A 올해의 유망주 상 (2) : 2001, 2003
4.3 득점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9/00 | AS 바리 | 세리에 A | 21 | 3 | - | - | - | - |
2000/01 | AS 바리 | 세리에 A | 27 | 3 | 2 | 0 | - | - |
2001/02 | AS 로마 | 세리에 A | 22 | 5 | 3 | 1 | 5 | 0 |
2002/03 | AS 로마 | 세리에 A | 27 | 9 | 5 | 1 | 11 | 4 |
2003/04 | AS 로마 | 세리에 A | 33 | 14 | 0 | 0 | 6 | 4 |
2004/05 | AS 로마 | 세리에 A | 31 | 9 | 8 | 1 | 3 | 1 |
2005/06 | AS 로마 | 세리에 A | 5 | 2 | 0 | 0 | 2 | 1 |
2005/06 | 레알 마드리드 C.F. | 라 리가 | 12 | 1 | 4 | 1 | 1 | 0 |
2006/07 | 레알 마드리드 C.F. | 라 리가 | 7 | 1 | 1 | 1 | 4 | 0 |
2007/08 | UC 삼프도리아 | 세리에 A | 22 | 10 | 2 | 0 | 1 | 0 |
2008/09 | UC 삼프도리아 | 세리에 A | 35 | 12 | 4 | 1 | 6 | 2 |
2009/10 | UC 삼프도리아 | 세리에 A | 32 | 9 | 1 | 2 | - | - |
2010/11 | UC 삼프도리아 | 세리에 A | 7 | 4 | 0 | 0 | 3 | 1 |
2010/11 | AC 밀란 | 세리에 A | 17 | 4 | 4 | 0 | - | - |
2011/12 | AC 밀란 | 세리에 A | 16 | 3 | 0 | 0 | 3 | 1 |
2012/13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세리에 A | 28 | 7 | 2 | 1 | 9 | 1 |
2013/14 | 파르마 FC | 세리에 A | 34 | 12 | 2 | 1 | - | - |
2014/15 | 파르마 FC | 세리에 A | 19 | 5 | 1 | 0 | - | - |
- ↑ 한국의 해외 축구 팬들이 부르는 별명이다.
- ↑ 평소 폭식에 탐닉하는 버릇 때문인지, 자주 살찐 모습을 보여 줘서(...) 붙은 별명이다.
- ↑ 당시 수비수가 최상급의 수비수라 불리던 크리스티안 파누치와 로랑 블랑이었고, 블랑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황금세대로 불렸던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우승 멤버였다. 파누치는 알다시피 이탈리아전에서 설기현이 골을 넣기 전에 손에 볼이 맞은 선수다.
- ↑ 당시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좋지는 않아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관계이다. 당시 이적하면서 절친이었던 토티에게 인사 한 마디 안 하고 가서 토티가 삐졌다고(...).
- ↑ 다만 당시에 맨유, 리버풀 등의 오퍼가 15M을 상회하던 멕세를 7M에 데려와놓고 그것도 제때 돈을 못 줘서 영입금지 먹었던 재정상태를 생각하면...
- ↑ 하지만 새 구단주 디 베네데토의 부임 이후 그냥 센시가 운영을 개떡같이 해서 돈이 없던것으로 드러났다.
- ↑
지단 : 야 애한테 뭘 가르친 거야이 사진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지단의 마지막 홈경기였기 때문에 호비뉴가 골을 넣고 싶어했지만 그러질 못해서 우울해하는 것. - ↑ 그리고 이 둘은 2010/11 시즌 AC밀란에서 다시 재회했다(...).
- ↑ 별명이 수구계의 젠나로 가투소였다고 한다.
- ↑ 좀 애매하게 들어간 모양새였지만, 골라인 안으로 넘어간 것이 분명해서 골로 인정되었다.
- ↑ 그래도 몇 번 날카로운 슈팅을 날리기도 했지만, 하필 상대가 카시야神이라서...
- ↑ 자서전에 쓰인 말을 요악하자면 '섹스 좋아! 밥 좋아! 나 경기 제대로 안 뛰었당! 걱정마셈 자식교육은 잘 할 거임' 정도.
- ↑ 과거 카사노조차도 "제가 은퇴한대도, 앞으로 발로텔리가 10년은 족히 사고 칠 테지요."라고 말한 바 있다.
...발로텔리 무서운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