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데스테

1 이탈리아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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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onso I d'Este, 1476년 7월 21일 - 1534년 10월 31일

르네상스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페라라의 공작.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를 대표하는 대포덕후엔지니어이자 마키아벨리의 국민개병제를 이해하는 몇안되는 식자" 라고 평하고 있다.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의 마지막 남편이기도 하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체자레 보르지아가 몰락하고 죽은 후에도 루크레치아를 내치지 않고 보호했다.

2 트리니티 블러드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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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유래는 1. 성우는 故 타니구치 타카시/김태훈.

작중 직함은 쾰른 대주교로[1] 전 교황 그레고리오 30세의 동생이자 알렉산드로 18세카테리나 스포르차, 프란시스코 디 메디치의 숙부이다. 즉, 교황청 내에서의 위치가 매우 막강한 고위 성직자. 나이는 50대 초반이지만, 아래에서 설명할 5년간의 고생한 탓인지 노인이나 다름없는 외관이라는 묘사가 있다.

선대 교황 시대의 알폰소는 자신에게 엄하고, 타인에게는 그 이상으로 엄격하여, 성직자의 부정이나 세속 제후의 불경에 일편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고위 성직자나 세속 제후가 알폰소에 의해 숙청당해, 그 용서 없음에서 준열공(일 프리오리조)의 이명이 붙었다.

선대 교황 시절에는 추기경 단장,[2] 이단심문국 국장, 국무성성 장관 등 요직을 겸임하고 교황청의 개혁에 가차없는 철퇴를 가했다. 형이자 398대 교황 그레고리오 30세가 사망한 이후 대내외적으로 차기교황으로 유력시되었으나, 조카인 프란치스코와 카테리나가 물밑에서 손잡고 그레고리오 30세의 적자인 알렉산드로를 내세운 바람에 콘클라베에서 패하고 실각한다.[3]

결국 일개 대주교로 좌천당해 추방이나 다름없이 오지인 쾰른에서 칩거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현재의 교황청에 불만을 품은 자들을 규합하고 기사단과 손까지 잡은 알폰소는 침묵의 목소리 사건을 발판으로 신교황청(노이에 비티칸)을 설립해 로마 붕괴를 획책한다.

이를 위해 100여년 전 무너진 성 베드로 광장오벨리스크를 대신할 새로운 오벨리스크를 로마 방문 기념으로 기증하면서 그 안에 사일런트 노이즈를 설치했다. 아벨 나이트로드바르셀로나에서 사일런트 노이즈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종에 설치된 것을 봤기 때문에 알폰소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 기증한 종을 타종하려 하자 카테리나까지 내세워 극구 반대하나, 알폰소는 종을 치고는 아무 일도 없지 않느냐며 아벨과 카테리나를 엿먹인다.

이 일로 카테리나가 부하를 잘못 관리한 책임을 뒤집어써 욕먹고 Ax도 함부로 활동할 수 없게 되는데, 운좋게 알폰소가 음모를 꾸민다는 결정적 증거를 잡아 상황을 역전시키고 침묵의 목소리 작전은 저지당한다. 이후 교황청에 의해 반역자로 낙인찍혀 도망치는 신세로 전락, 신교황청에 가담한 바츨라프 하벨을 이용하여 알렉산드로의 납치에 성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단숨에 브루노에서 역전의 기회를 노리지만 또다시 Ax에 의해 실패 - 신교황청의 잔당과 함께 멀리 달아난 북 에스토니아에서 안토니오의 손에 의하여 체포된다.

참고로 알폰소는 안토니오의 엄청난 인맥을 등에 엎으려고 그를 포섭했다가 거절 당한적이 있는데, 사실 안토니오야말로 알폰소를 체포한 공으로 고위성직자로 출세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한마디로 안토니오의 술수에 역으로 걸려서 이용당한셈.

이후 바티칸에서 워즈워스 박사의 집중조사를 받던 와중 기사단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터라 카스파르에게 암살당한다.

첫 등장 때는 부패한 작중의 교황청을 꾸짖는 등 준열공이란 이명답게 카리스마가 넘쳤으나, 조카들에게 당한 걸 앙갚음 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갈수록 찌질한 악당으로 전락하더니 출세 셔틀로 써먹으려는 안토니오에게 뒤통수를 맞고 최후에는 비밀 누설을 우려한 기사단에게 살해당하는 등 처음과 끝의 갭이 엄청났다.

  1. 공식 번역판에선 대사교로 나와있지만, 이건 일본 가톨릭에 한정해 쓰이는 단어이고, 국내 가톨릭 표기 규칙상 대주교로 번역하는게 맞다.
  2. 라틴어론 Decanus Sacri Collegii라 표기한다. 로마 가톨릭교회 추기경단의 의장을 말하며, 보통 주교급 추기경들 가운데 수석 추기경이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출방식은 로마 인근 교구들을 관할하는 가장 장기간 봉직한 주교급 추기경 여섯 명이 투표로 정한다고. 추기경들을 움직일 권한은 없지만, 원로급 대접을 해주는터라 교황 선종 후 열리는 콘클라베 때 차기교황이 정해지면 추기경 단장이 대표로 선출된 사람의 동의를 구하는게 관례다. 한마디로 알폰소 테스테가 많은 추기경들 사이에서도 경력은 물론이고 권력상 최고로 불렸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3. 처음에 프란치스코와 카테리나는 알폰소를 지지하는 척 연기하면서 그를 지지하는 고위 성직자들을 포섭하여 표를 돌렸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건 알폰소의 교황 즉위시 사생아 출신인 자신들의 입지가 대폭 줄어들어 언제든지 숙청당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 게다가 다른 추기경들도 자비 없는 알폰소의 스타일이 두려워 마음속으론 이미 등을 돌렸다는 의미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