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쾰른시의 야경
쾰른
Köln
위치Lage_der_Stadt_K%C3%B6ln_in_Deutschland.png
문장
국가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시간대UTC+1 (서머타임 준수)
서울까지9시간 40분
8593킬로미터
한국과의 시차-8시간
Köln (독일어) [1][2][3][4]
Cologne (영어, 프랑스어)

1 개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5] 프로이센이 존재했을 때는 프로이센 제2의 도시였다.[6] 근 20년 가까이 인구가 90만명대에 정체되어 있다가 2010년에 인구가 100만을 돌파했다. 도시의 상징으로 크고 아름다운 쾰른 대성당이 유명하다.[7]

2 역사

게르만족의 한 일파인 우비족이 이 일대에 거주하였으나 서기 1세기 무렵 로마 제국이 국경선을 라인강 일대로 확정짓는 과정에서 이 일대에 군사 기지를 세웠고 이것이 오늘날 쾰른이라는 도시의 출발점이 된다.[8] 라인강 국경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도시는 빠르게 성장해나갔고, 로마가 이 일대에 설립한 속주인 저지 게르마니아의 주도로 지정되기도 했다.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 지역은 프랑크 왕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9세기 프랑크 왕국의 분할 당시에 체결된 베르됭 조약에 의해 동프랑크 왕국의 영토로 넘어간다. 라인강의 수운을 이용한 동서간 무역의 거점지 역할을 차지한 쾰른은 중세 시기에도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중의 하나로 살아남는다. 서기 13세기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일곱 선제후 중 하나이기도 한 쾰른 주교를 몰아내고 자유 도시로 지정받으면서 자치권을 획득했고, 이후 한자동맹에 가입하면서 더더욱 번성해나간다. 무역의 거점지였던만큼 각종 상공업도 빠르게 성장해나갔고, 장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길드를 형성했던 것도 이 시기 얘기.[9]

이런 자치권은 거의 600년간 유지되다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프랑스 제1공화국의 의용군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패배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 측은 라인강 이서 지방을 모두 프랑스에게 넘겨줘야 했고 이 과정에서 쾰른도 프랑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프랑스는 부르봉 왕가 시절부터 꿈꿔왔던 라인강 국경선 확보 성공 이후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의 정식 영토로 편입된다.[10]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빈 회의를 통하여 쾰른과 그 일대는 프로이센 왕국의 통치를 받기로 결정된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세력이 강성했던 쾰른 지방과 프로테스탄트가 우세한 프로이센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았고, 1837년에는 쾰른의 주교가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 사이의 결혼을 인정할 것을 거부하다가 체포되기도 했으며 1870년대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가톨릭 탄압 운동인 문화투쟁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 터져나오면서 이 일대에서는 프로이센에 대한 반감이 뿌리깊게 자리잡는다.[11]

어쨌든 프로이센의 통치 하에서 쾰른 일대는 빠르게 산업화를 받아들이면서 1900년대 초반에 이미 인구 70만의 도시로 성장한다. 프랑스와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상 1차대전 시기에 폭격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당시 공군이 워낙 원시적인 수준이어서 피해는 경미한 수준에 그쳤다. 1차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라인강 서안 지방은 연합군이 진주하게 되면서 쾰른 역시 20년대 후반까지 영국군의 지배를 받는다. 이 시기 쾰른의 시장이었던 아데나워는 연합군 측과의 효율적인 의견 조율 및 그린벨트 조성 등을 통해 안정적인 행정을 펼쳤지만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망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폭격기 사령부 지휘관이였던 아서 해리스가 밀레니엄 작전을 통해 1,046대의 폭격기를 동원하면서 쾰른 일대는 말 그대로 쑥을 재배(...)[12]

종전 이후에도 쾰른은 여전히 베스트팔렌 일대에서 최대도시로 남아있었지만 신설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주도로 뒤셀도르프가 선정.. 거기에 서독의 수도로는 뜬금없이 이 선정되며 쾰른은 망했나 싶었는데, 새옹지마로 뒤셀도르프와 본 사이의 위치해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십분활용하면서 오늘날까지도 굳건히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3 여담

  • 라이벌 도시는 뒤셀도르프. 인지도, 인구, 기타 등등을 따져봐도 주도 간판 단 뒤셀도르프보다는 쾰른이 확실히 앞서간다.그런데 쾰른-본 국제공항뒤셀도르프 국제공항에 쳐발린다. 안습 맥주는 이게 30분거리에 있는 동네인가 싶을 정도로 다르지만. 둘 다 박람회가 유명하고 카니발이 유명하다. 밖에서 보면 다 고만고만한 동네인건 모르는 모양이다 이레봐도 뒤셀도르프는 패션의 도시!
  • 정치적으로는 사민당과 녹색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기민당이 강세를 보이는 뒤셀도르프와는 정반대. 괜히 라이벌이겠냐만.. 그런데 뒤셀도르프 북쪽인 루어지역은 전통적인 사민당 텃밭이다.. 뒤셀도르프가 왕따인거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은 전통적인 공업지역인 만큼 노조가 강력하고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라 대부분은 사민당 텃밭인데 뒤셀도르프가 이질적인건 맞다.
  • 쾰른 중앙역 근처가 모두 구도심이라 걸어다니면 아기자기하고 호프집도 많고 라인강변에 앉아서 맥주 마셔도 되고 좋다. 다만 2차세계대전 때 드레스덴 다음으로 가장 처참하게 폭격맞은 도시이기 때문에 성당들 말곤 전통적인 건축물은 남아있는게 거의 없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시청인 쾰른 시청(Rathaus)도 근처에 있고, 특산품인 쾰른의 자존심 쾰쉬 맥주를 파는 집과 18세기에 만들어져 나폴레옹도 애용했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향수인 Farina 1709는 구시청 바로 맞은편에, Eau de Cologne (오 드 콜로뉴 : 쾰른의 물) 《4711》 본점은 오페라 하우스 옆에 있다. 오 드 콜로뉴는 부향도가 낮은 향수 제품군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사실상 보통명사화되었다.
  • 쾰른의 중심쇼핑가 쉴더가세 (Schildergasse)는 독일에서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쇼핑가이다. 서울의 명동? 농담이 아니라 간판 도배가 된 거리 모습을 보면 왠지 한국에 온듯한 향수가 느껴질 수도 그런데 정작 예쁜 옷들을 파는 가게들은 Ehrenstrasse에 있다. 참고로 TV에서 독일에서 가장 못생긴 거리 투표하기를 하면 쉴더가세가 늘 1등
  • 한국에서는 카니발 하면 브라질을 떠오르는데, 카니발 축제의 기원은 바로 쾰른이다. 유럽 최대 축제이며, 옥토버페스트보다 몇배는 규모가 크다. 매년 11월 11일 11시 11분에 빼빼로? 카니발 시작을 알리는데, 이날부터 노는게 아니고,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로젠몬탁(퍼레이드)은 2월 초중순에 열린다. 미국의 할로윈을 방불케하는 코스튬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관중이고 행렬이고 쾰른 시내 전체를 매운다. 퍼레이드 행렬 구경하며 Kölle Alaaf!(쾰른 만세)를 부르면 사탕과 초콜릿등을 뿌려준다. 이 날은 숙박값이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니 주의.
  •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박람회인 ART COLOGNE가 열리는 도시라 그런지, 볼만한 미술관이 많다. 중세미술에서 인상파까지 다루고 있는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루드비히 현대미술관, 독일 사실주의화가인 케테 콜빗츠 미술관, 아시아미술관 등(한국고미술도 소장되어 있음)이 있다.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 제일 큰 초콜렛미술관이 있다.
  • 독일의 가장 큰 공영방송 서부독일방송이 쾰른에 소재해있다. ARD이 사실상 서부독일방송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독일 공영방송의 중심도 쾰른인 셈. 또한 독일의 제일 큰 민영방송사인 RTL의 본사가 있다.[13] 미니멀틱한 테크노, 하우스음악을 만드는 레코드사로 유명한 KOMPAKT가 있다. 그래서인지 Intel Extreme Masters의 개최지 중 하나이기도 한데, 쾰른이 독일의 미디어 수도라고도 하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또한 루프트한자의 본사도 있다.
  • 독일의 게이 수도라 불리며 쾰른 남자의 반은 게이라는 농담도 있다고 한다. 게이들의 올림픽이라는 게이 게임즈도 쾰른에서 열렸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CSD(크리스토퍼 스트릿 데이) 퍼레이드는 가희 카니발 급 규모다.
  • 경전철과 이어져 있는데, 이걸 타고 본에 가다간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S반 다닌다고 이걸 타고 뒤셀도르프부퍼탈에 가다간 지겨워 죽을지도 모른다. RE도 자주 다니는데 꼭 경전철이나 S반 타고 갔다가 지겨워 죽을 뻔했다는 사람이 꼭 나오는게 미스터리.
  • 울프럼알파에 따르면 쾰른의 평균 해발고도는 43미터로 서울과 같다. 주변에 산이 없는 평야지대이다. 가장 가까운 산은 남쪽으로 약 35km 떨어진 지벤게비르게.[14] 의 라인강 건너편 남쪽이다. 쾰른 대성당 건설에 필요한 석재도 이 산에서 캐온 것.
  • 크라우트록의 전설인 캔(밴드)도 여기서 결성되었다.
  1. 독일어 발음으로는 "쾨-욀-ㄴ"을 1초안에 빠르게 발음하는 것에 가깝다
  2. 가끔씩 른이라고 발음하거나 표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심히 곤란하다. 그리고 현지 사투리"쾰쉬"로는 꾈른(...)처럼 들린다고 한다.
  3.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리푸리아 사투리(Ripuarische Dialekte)는 표준독일어와 다르게 무성파열음이 된소리처럼 들리기 때문(...) 사투리 들어보기
  4. 이 명칭은 쾰른 밖의 교외지역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는 거고 실제로는 맥주 이름과 비슷한 쾰쉬이다. 그래서 관련 농담도 있다(...)
  5.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다음이다.
  6. 1위는 당연히 베를린.
  7. 1.FC 쾰른의 로고에 솟아있는 탑이 바로 쾰른 대성당의 첨탑이다.
  8. 오늘날까지도 로마시대의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 2007년에는 서기 1~2 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로마인들의 선적이 발굴되어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다.
  9. 14세기 무렵 인구수가 당시 도시로서는 최고 수준이었던 5만명 가량이었다.
  10. 나폴레옹 헌법 도입 등을 통해 중세적 봉건 신분 구조가 철폐되는 계기가 되었던 점에서는 어찌보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11. 이 시기 쾰른 지방 사람들이 프로이센에 대해 지닌 반감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초대 독일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이다. 현대 독일의 모태라고도 볼 수 있는 동프로이센을 2차 대전 종료 후 그리 순순히 연합국 측에게 양도해준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프로이센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지닌 아데나워가 일부러 프로이센을 엿먹이려고(...) 그런 거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할 정도, 일단 아데나워 본인이 공공연하게 프로이센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다니기도 했고.
  12.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5호 전차 판터 vs M26 퍼싱의 격돌이 벌어진곳도 이곳의 대성당 앞.
  13. 쾰른메세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SUPER RTL의 건물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을 정도
  14. 봉우리가 3개라 붙여진 이름
  15. 정확히는 쾰른 근교의 소도시 랑엔펠트 태생인데 워낙 작고 인지도가 낮은 도시다 보니 그냥 이야기하기 편하게 잘 알려진 쾰른 출신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