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앵란

대한민국연예인. 일명 엄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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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앵란(嚴鶯蘭).[1] 본명은 엄인기.

1 기본 정보

본명엄인기
출생1936년 3월 20일, 서울특별시
가족아버지 엄재근, 어머니 노재신의 장녀.
배우자신성일, 슬하 1남 2녀
데뷔1956년 '단종애사'
종교불교

2 소개

아버지 엄재근(嚴在槿)은 색소폰 연주자, 어머니 노재신(盧載信)은 배우이며 삼촌 엄토미는 재즈연주가로 유명하다. 1956년 영화 '단종애사'로 데뷔하였다 신성일과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아들 강석현도 8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하였다.

3 연예인 활동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배우로 활동했으며, 요새는 각종 떼토크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나온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청춘영화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최초의 학사[2] 출신 배우로 풋풋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내세워 신성일과 콤비를 이루어 많은 청춘 영화에 출연하였다. 지금의 나이든 모습만 봐온 세대에겐 상상이 잘 안 가겠지만 엄앵란의 젊은 시절 영화를 보면 날씬한 몸매에 외모도 상당히 곱다.

가족영화에서는 주로 막내딸같은 발랄한 역할이나, 액션영화에도 간간히 출연하였다. 활동 당시는 하루에도 영화를 몇편씩 겹치기로 찍던 시절이라 그가 도대체 몇 편의 영화에 나왔는지 정확하게 모를 정도로 인기있는 배우였으나 1964년 신성일과의 세기의 결혼[3] 이후 영화배우로의 삶을 정리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이후 내조에 전념하였으나 남편의 국회의원 낙선으로 가계가 곤궁해져 식당을 운영하거나 영화사에서 일하는 등 배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다 90년대 주부 대상 아침 프로그램에 부부문제 상담코너 패널로 활동을 시작,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현재는 각종 프로그램 패널로, 심지어 모 결혼정보회사의 컨설턴트로도 활동중이다. 동시대 여배우들 중에서 미모나 연기력이 월등하지는 않았으나 유명세나 인지도만으로 본다면 21세기 기준으로도 한국배우중 TOP에 들 정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다만 연기력으로 본다면 평론가들도 썩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한다.신성일항목에서도 같은 내용을 봤다면 기분탓 입니다. 얼굴에 반흔이 있어 평생 맨얼굴을 남편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배우자인 강신성일이혼한 줄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실제로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절대 이혼을 못하겠더라는 이야기도 하는 등 맘고생이 심했지만 이를 모두 참아낸 말 그대로 보살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나 바람 핀 남편을 용서하라거나, 본인도 이혼을 하지않고 살았으니 심각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이혼을 하지 말고 버텨야한다는 내용의 충고로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4]

참고로 그녀의 목소리가 실제 나이보다 너무 들어서인지 젊은 시절에는 성우 고은정이 목소리 대역을 담당했다. [5]

채널A한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서 검진을 받다가 유방암을 발견했다고 한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돼 부분 절제로 치료를 받을수 있다고 한다. 허나 실제로는 유선 전이 문제가 발견된 관계로 한쪽 유방을 완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정작 본인은 80에 가까운 고령이라 암이 생길수 있단 발언으로 주위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대인배...# 뱀발로 수술 및 치료과정을 담은 단독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는데, 남편 신성일의 정성어린 뒷바라지가 잠시나마 주목을 받았다.

4 기타

과거에 아침마당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던 임요환을 거진 백수, 게임중독자 취급을 하여 비판을 받았다. 그 나이 대 어르신들의 인식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겠지만 정도도 심했고, 하필이면 대상이 황제여서...세상 물정을 모르는 무식한 노인이라고 볼 수밖에. 결국 아침마당 게시판 항의문 2만건의 장본인 중 하나가 되었다.
  1. 이름 한자의 압박. 엄할 엄 꾀꼬리 앵 난초 란 20+22+18획, 총 60획이나 된다.
  2. 숙명여자대학교 가정학사.
  3. 96년 출간된 자서전 '뜨거운 가슴에 좌절이란 없다'에 따르면 결혼식 이후 한국에 신부가 부케를 던지는 유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로선 드물게 결혼식장면을 녹화하기도 했다. 드레스는 절친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제작, 식장 역시 현재까지도 고급 예식장소로 손꼽히는 워커힐이다.
  4. 당시 여인들에겐 이 쪽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2016년 현재도 이혼 경력은 흉이 되는 판에, 60년대부터 결혼 생활을 한 노년층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세태가 바뀌었어도 예전 생각을 고수하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니나, 그렇게 배우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니 뭐라고 할 일만은 아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성격이 보살같아서 그렇다기보다 "원래 그런 건 줄 알고" 사는 세대니, 바람둥이 남편을 용서하고 사는 게 꼭 칭찬할 일도 아니다.
  5. 성우를 기용한 경우는 엄앵란만이 아니다. 엄앵란이 배우로 활동하던 60-70년대 당시는 동시 녹음을 할수 있는 장비나 기술이 없었다. 어쩔수 없이 대사를 포함한 모든 음성 음향은 후시 녹음이었고, 목소리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았고 비싼 몸값에 스케줄이 바쁜 배우보다 출연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더빙이 전문인 성우를 쓰는 쪽이 여러 모로 나았기 때문. 신성일 같은 경우는 연기력도 그랬지만 경상도 사투리가 심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