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 ||||
▲ 87~113위 | ||||
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비고 |
116위 | 헬무트 메르텐스 | 독일 | 97대 | |
헤르만 슐라인헤게 | 독일 | |||
118위 | 디트헬름 폰 아이헬-슈트라이버 | 독일 | 96대 | |
하인리히 회페마이어 | 독일 | |||
지크프리트 렘케 | 독일 | |||
121위 | 레오폴트 뮌스터 | 독일 | 95대 | |
122위 | 에이노 일마리 유틸라이넨 | 핀란드 | 94대 | 비독일계 1위 비공인 격추까지 합하면 126기 |
루돌프 뮐러 | 독일 | 101기를 격추했다는 기록도 있음 | ||
124위 | 루돌프 레슈 | 독일 | 93대 | 스페인 내전에서 1기 격추 |
하인리히 클뢰퍼 | 독일 | |||
헬무트 베네만 | 독일 | |||
에트문트 로스만 | 독일 | |||
지크프리트 슈넬 | 독일 | |||
129위 | 게르하르트 로스 | 독일 | 92대 | |
오스카르 롬 | 독일 | |||
131위 | 안톤 레슈 | 독일 | 91대 | |
게오르크 셴트케 | 독일 | |||
133위 | 하인츠 케메트뮐러 | 독일 | 89대 | |
134위 | 요제프 예네바인 | 독일 | 86대 | |
안톤 마더 | 독일 | |||
울리히 뵈네르트 | 독일 | |||
137위 | 게르하르트 쾨펜 | 독일 | 85대 | |
발터 첼로트 | 독일 | |||
139위 | 하인츠 에발트 | 독일 | 84대 | |
페터 칼덴 | 독일 | |||
베르너 크바스트 | 독일 | |||
▼ 142~177위 |
Eino Ilmari Juutilainen
1914년 2월 21일생이고 1999년 2월 21일에 사망. 정확히 86세 생일날 죽었다.시모 하이하도 그렇고 핀란드 전투종족들은 장수한다.
1 개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핀란드 공군의 에이스. 상대적으로 스폿라이트를 받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 이 사람, 공인격추수 94기(!)[1]를 기록한 울트라 에이스다. 시모 하이하와 함께 핀란드인은 전투종족일 것이란 추측을 뒷받침하는 인물. 독일을 빼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비행기를 격추시킨 사람이기도 하다.[2]
게다가 경력도 독특해서 미제 전투기인 F2A 버팔로부터 시작해서 독일제 Bf-109까지 다양한 기종을 몰아본 흔치않은 파일럿이기도 하다. "버팔로는 신사지만 Bf-109는 살인기계."라는 말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2 생애
아버지가 철도 노동자였는데 아버지가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후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기에 1932년, 18살의 나이에 군에 입대하게 된다. 처음 군대에서의 보직은 무전병!!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전투기 조종사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열심히 노력하여 복무도중 민간 항공 조종사 공부를 하였고 3년만에 조종사 자격을 취득, 조종사 자격을 취득함에 따라 비행사관으로 재임용되어 35년부터 중사 계급을 달고 핀란드 공군으로 복무 했다. 1936년엔 전투 조종사로 지원해 전투기 조종사로 제 24 비행 대대에 배치되었다.
전세계를 휩쓸어버린 2차 세계대전 기간중 소련의 핀란드 침공으로 발발한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서 활약하며 최고 등급의 무공 훈장인 만네르하임 십자장을 서훈 받는등 전쟁 영웅으로 이름 날렸고, 장교 진급을 제안 받았으나 전투 비행 임무에서 제외될 것을 우려하여 장교로의 임관을 거부, 결국 전역 당시 까지 하사관 신분을 유지 했다.[3]
종전후에도 47년까지 군인신분을 유지 했으며 전역후에는 군용으로 쓰이다 민간에 불하된 구닥다리 비행기 한대를 사들여 56년에 은퇴하기 전까지 민간 항공사로 활동하며 계속 비행기에 올랐다.
최후의 비행은 1997년 당시 핀란드 공군 최신예기였던 F/A-18 호넷의 후방석에 탑승해 비행한 것으로, '핀란드 공군의 살아있는 전설'이나 다름 없는 유틸라이넨이 군 기념 행사에 초청되어 이벤트 성으로 행해졌던 것.
은퇴후에는 별다른 활동 없이 조용히 노후를 즐기다 85세 생일인 1999년 2월 21일 투술라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3 겨울전쟁에서의 활약상
겨울전쟁 발발 당시 24 전투 비행대대에 배속되어 있던 유틸라이넨은 1939년 12월 19일 네덜란드제 전투기인 포커 D.XXI에 탑승해 DB-3 폭격기 1격추. 2기 공동 격추의 전과를 올림으로서 최고의 격추를 기록했다. 이후 겨울전쟁 기간 내내 115회의 출격을 기록하며 총 3기 격추, 공동격추 6기의 전과를 올렸다.
4 계속전쟁에서의 활약상
겨울전쟁은 종전되었지만 핀란드는 겨울전쟁의 전훈으로,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고, 또 언제 소련이 재침공 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군 전력을 증강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공군도 이런 사정은 마찮가지여서 그나마 우호적이였던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의 국가로 부터 구형 복엽기나 아직 성능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시험기나 다름 없는 전투기도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고 있었는데, 그중엔 미국제 버팔로 전투기도 포함되어 있었다.[4] 핀란드는 이 전투기들에 브류스터사를 뜻하는 'BW' 라는 코드를 부여하고 뒤에 일련 번호를 붙여 운용했는데, 유틸라이넨의 애기는 BW-364라는 고유 번호의 기체 였다고 한다.
버팔로에 탑승한 유틸라이넨은 1941년 7월 21일, 핀란드 지상군을 공습하던 폴리카르포프 I-153 한 대를 격추해 에이스로 인정 받았고, 이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스코어를 쌓아올려 1942년 4월엔 22기의 격추를 기록해 전공을 인정 받아 첫번째 만네르하임 십자장을 서훈하게 된다. 42년 11월 까지 버팔로를 타고 무려 34기를 격추하며 총합 36기 격추를 기록했는데, 그중엔 1회의 출격에서 3기이상의 적기를 격추한 기록이 세번이나 포함되어 있다.
1943년 2월부터는 제 34 비행대대로 전속되어 독일이 제공한 신형 전투기 Bf 109 G-2형[5]에 탑승했는데, 이때 남긴 말이 바로 그 유명한 "브류스터가 신사라면 메셔슈미트는 살인기계다.".
유틸라이넨이 주로 탑승했던 기체는 MT-212와 MT-222번이였다고 하며 이 기체들에 탑승해 1944년 6월, 총 격추수 75기를 기록해 두번째 만네르하임 십자장을 서훈받았으며, 1944년 9월 까지 Bf 109만으로 무려 58기를 격추. 최종 전과 격추 94기, 동공격추 7기로 종전을 맞이 했다.
5 여담
유틸라이넨 본인이 무척 신중한 성격인데다가 어린 시절부터 사냥개와 함께 설원을 달리며, 엽총 사냥을 자주 했기에 이때 몸에 밴 사냥 습관이 그대로 전투기 조종과 연결되면서 94기라는 격추수를 기록한 원동력이 되었다.시모 하이하도 그랬다
금욕적이고 겸손한 성품의 유틸라이넨은 자신이 격추한 것이 거의 확실한 적기조차도 다른 동료가 자신의 격추 임을 주장하고 나서면 기꺼이 전과를 양보하거나 공동 격추로 기록되도록 배려했고[6], 적기가 전투불능에 빠지면 그들을 그냥 보내줬으며,[7] 이 덕에 적인 소련 공군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이런 점이 돋보이는 일화로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 휴전 협정이 맺어지자 핀란드를 방문한 한 소련 공군 장성은 다른 사람들을 다 제쳐두고 유틸라이넨에게 다가가며 "가장 위대한 파일럿을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군의 에이스들이 온갖 수난을 다 겪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천지차이의 대우다.
또 하나의 재밌는 기록이라면 그는 단 한번도 적에게 피탄당한 적이 없다! 유일한 피탄기록이 하나 있는데, 이건 아군 대공포의 오인사격(…)을 받은 것. 그나마도 큰 피해를 본 건 아니라 멀쩡히 돌아왔다.[8]
그런데 이런 놀라운 기록 들에고 불구하고 유틸라이넨 본인이 가장 자랑스러워 했던 기록은 바로 '단 한번도 전투에서 요기(윙맨)를 잃지 않았다.'는 것.
이건 그가 아무리 완벽한 격추 기회를 잡았더라도 요기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공격을 포기하거나 요기가 위험에 처한것이 보이면 스스로가 격추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라도 돌진해 요기를 구해 냈기 때문.이러고도 공중전에서 피탄기록 전무한걸 보면 이사람 뉴타입인게 확실하다
이런 점 때문에 유틸라이넨의 윙맨이 된다는 것은 '생환의 보증 수표'와도 같은 취급을 받아, 그의 윙맨 자리를 두고 동료들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한 가지 일화로, 기지에 침투하는 적 게릴라 때문에 다들 신경이 곤두섰던 어느날 밤, 초병 한명이 사우나에 가던 유틸라이넨을 실수로 쏜 적이 있는데, 오인 사격을 한 것을 알고 다들 놀랐지만 유틸라이넨은 웃으면서 "맞을 일이 없어! 난 바위 뒤에 있거든!"이라고 한 적이 있다. 전투기도 안 탔는데도 총알을 피하다니, 이건 뭐 뉴타입도 아니고
형인 아르네 유틸라이넨도 전투종족이다.
- ↑ 비공인 격추수 34기를 더한다면 도합 128기
- ↑ 위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유틸라이넨 위로는 전부 독일인이다!
- ↑ 최종 계급은 Sotilasmestari로 우리나라의 준위에 해당.
- ↑ 사실 핀란드에서는 겨울 전쟁 기간중에 지원을 요청했고 미국도 이례적으로 자국에도 10여기 남짓 밖에 배치 되지 않은 최신형기를 무려 44대나 원조해 주기로 하는 배포를 보였지만, 미국에서 이걸 수송해 오는 동안 겨울전쟁이 끝나버렸다.(...)
- ↑ 1944년 5월엔 조금더 신형의 G-6형에 탑승했다.
- ↑ 이 때문에 실제 격추 수는 기록된 격추수를 훨씬 넘어서는 120기 이상이라는 설이 따라다닌다. 늘상 따라붙는 '격추수 과장 논란'에 시달리는 독일의 슈퍼 에이스 들과는 정 반대의 사례.
- ↑ 이 사람과 반대되는 인물로는 영국의 더글러스 베이더가 있다. 이 사람은 "탈출하는 독일놈도 쏴버려라"고 외쳤던 사람이다. 실제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 조종사라면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격추시켰을 것이다.
연합군도? - ↑ 이 사람과 반대되는 인물로는 엄청난 불운을 몰고다니던 핀란드의 에이스 파일럿 닐스 에드바드 카타야이넨이 있다. 하지만 악운은 강해서 말도 안되는 숱한 사고(…)를 경험하고, 심지어 인생중대사라는 결혼식도 병원에서 치뤘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78세까지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