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파실 탈출작전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사건. 우주력 788년, 제국력 479년 5월에 발생했다. 원작 1권이나 외전 5권 <나선미궁>에서도 간략하게 나온다. 외전 <나선미궁>의 시작이 엘 파실 탈출 작전 직후에 양 웬리대위로, 거기서 다시 소령으로 승진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세세한 스토리는 전부 애니메이션의 설정이다.

2 발단

자유행성동맹 외곽에 위치한 엘 파실 성계에 제국 함대가 침입하여 성계에 주둔하던 동맹 수비함대가 출격, 양측이 충돌하였다.

양측의 병력은 각기 약 1천 척 정도로 거의 동일했다. 전투가 진행되며 서로 약 2할 가량의 손실을 내자 제국군 함대가 차츰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동맹측 사령관, 아서 린치 소장은 굳이 무리하게 추격하지 않고 제국군의 후퇴에 맞춰 함대를 철군시켰다. 그런데 엘 파실로 돌아가려는 동맹 함대의 후방에 갑자기 제국 함대가 나타나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제국군의 후퇴는 처음부터 계획된 바였던 것이다. 거기에 넘어가 피해가 발생하긴 했으나 아직 패배가 확실시 되지는 않는 상황에서 린치 소장은 반격을 지시하지 않고, 어떠한 지시도 없이 자신이 탑승한 함대 기함만을 엘 파실 본성으로 도주시켰다.

수 백여척의 아군 함선이 독자적으로 반격하는 와중에 지휘관이 기함과 함께 도망쳐버리자 남은 동맹군은 전의를 상실, 반격 중 격침되거나 제국군에 항복했고 일부 함선은 도주로를 찾아 엘 파실 성계를 탈출했다. 린치를 따라 엘 파실 행성으로 복귀한 동맹군은 약 200척, 병력 약 5만여명. 무려 병력의 8할을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대승을 거둔 제국군은 2천여척의 지원함대가 증원되어, 무력해진 엘 파실 행성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행성의 거주중인 약 3백 만명의 자유행성동맹 시민이 제국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엘 파실이 함락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3 전개

자유행성동맹과의 백여 년을 넘어가는 오랜 전쟁기간동안 은하제국은 불손한 반란군의 마수로부터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자유행성동맹 시민의 신병을 확보될 경우 무차별적인 학살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으나 불손한 반란군의 공화주의 사상에 찌든 민중을 재교육시킨다는 이유로 척박하고 가혹한 변경 성계로 추방해 사실상 노예 신분으로 강제노역에 동원시켰다. 기적적으로 탈출해 조국으로 돌아오거나 포로교환식을 통해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으로 소위 '재교육'이라 불리는 노예생활이 자유행성동맹에서 널리 알려진 바, 엘 파실에 거주하던 약 3백만 명의 민간인들이 공포에 휩싸여 행성 전역이 대 혼란에 빠졌다.

불안감에 매우 혼란해진 시민들은 탈출을 위해 우주공항으로 몰려들었으나 린치가 엘 파실로 도망친 시점에서 이미 다른 성계로 빠져나가는 길이 은하제국군에게 봉쇄되었다. 즉, 탈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엘 파실 행정부는 상황이 파악된 즉시, 성계 방위를 책임지는 경비함대 사령부측에 민간인 탈출계획의 입안 및 수행을 요구했으나 엘 파실 주둔동맹군의 최고지휘관은 전장에서 도망친 아서 린치 소장이었다. 자기 부하들도 버리고 도망친 작자가 시민 보호에 신경 쓸 리는 없다, 결국 사령부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한 장교에게 작전 입안을 떠넘겼다.[1]

대규모 혼란상태에 빠진 3백만 시민들 앞에 나선것은 사령관도, 참모장도 아닌 일개 중위였다. 양 웬리의 인물됨이 전혀 군인답지 않아 보인다는 점은 그렇다고 쳐도 자신들의 탈출을 책임져줄 사람이 고작 중위라는 사실에 시민들은 매우 실망, 큰 불신을 품게된다.[2] 그러나 양 중위는 시민들의 무시와 사령부의 무관심속에서도 군 수송함, 개인 화물선 등 사용 가능한 모든 배를 모아 3백만 명의 탈출계획을 완성하여 사령관 린치 소장에게 보고했으나 린치는 측근 참모들과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계획안을 읽지도 않고 나중에 보겠으니 책상에 두고가라는 직무 방기에 가까운 발언을 한다.

사령부에서 승인을 기다리는 와중에 갑자기 무단으로 일부 군함들의 상당량의 물자를 적재하고 항구에서 이륙하는 일이 발생한다. 무려 사령관 린치 소장이 측근 참모와 일부 부하들에게 은밀하게 명령하여 3백 만의 시민과 다른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우주 공항에 몰려들어 이 경악스러운 광경을 목격한 시민들은 즉각 사령관으로부터 버려진 양 웬리 이하 몇몇 군인들에게 몰려왔고 양 웬리는 담담히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탈출 작전을 실행한다.

사실 양 웬리는 이미 이전부터 린치 소장과 측근 참모들의 행동에서 수상함을 느끼고 혹 사령관이 혼자만 도망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였다. 그렇기에 작전을 입안할 당시부터 사령관과 참모들의 도망을 자신과 시민들의 안전한 탈출을 위해 이용하려 했고[3] 린치와 참모들이 제국군의 관심을 끄는 사이 자신과 시민들은 반대 방향으로 이륙, 태양풍을 타고 엘 파실을 빠져나갔다. 은하제국군은 행성을 포위하며 주요 지점에 레이더 감지함들을 배치하여 혹 탈출을 시도하는 자가 없는지 철저히 감시했으나 레이더에 발각되지 않기 위한 모든 장비들을 정지시켜 오히려 레이더에 매우 선명하게 감지되게 하였고 어떠한 이상 징후도 없이 감지된 물체를 확인한 제국군은 탈출 함대라면 이렇게 선명하게 감지될 리가 없으니 단순한 운석군이라 판단하여 내버려두었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기적을 바라던 상황에서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약 3백 만의 시민들이 어떠한 피해도 없이, 제국군의 포위를 뚫고 탈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시민과 부하들을 내버리고 도망친 철면피 아서 린치 소장은 행성을 벗어나고 얼마 안되 제국군의 공격을 받아 기함 엔진부가 파손되며 탈출이 불가능해지자 그 자리에서 항복해버렸다.

제국군은 함대전 승리, 적 사령관 체포 등 엄청난 성과에 도취되어 축배를 들었으나 약 3백 만명이 포위망을 간단하게 돌파하여 탈출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자 축배를 내던지며 크게 분노했다.[4]

4 결말

분명 그것은 한 사람의 젊은 영웅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위대한 영웅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었지만….

이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 임관 2년차 21세의 양 웬리 중위는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훈장 수여와 함께 소령으로 2계급 특진되었다. 다만 전사한 경우도 아니고 산 사람에게 2계급 특진이 전례가 없는 불문율이라 우주력 788년 9월 19일 10시 25분에 대위로 승진했고, 같은 날 16시 30분에는 소령으로 승진했다. 양 웬리 대위의 재임기간은 6시간 5분으로 동맹군 건국 이래 최단기록이 되었다.

정부, 군부, 언론이 하나되어 젊은 영웅의 탄생을 칭송하였고 동맹 시민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5 후일담

양 웬리 중위의 소령 특진, 훈장, 시민들의 큰 관심은 양 웬리의 공적이 인정된 면도 있으나 아서 린치 소장이 군인으로써의 직무도 책임도 다 내버리고 목숨을 걸고 보호해야할 시민들조차 버리고 도망치다 포로로 붙잡힌 충격적인 추태를 가리기 위한 정부와 군부의 의중이 매우 크게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엘 파실에서의 추태 이전까지 '유능한 군인'이라는 인물평을 받던 린치 소장은 단 한순간의 돌이킬 수 없는 판단으로 삽시간에 사회에서 매장되었다[5]

6 그 외

소설상에서 '엘 파실의 기적'이라고 지칭되며 자주 거론되는 이 사건은, 실은 태평양 전쟁 도중의 일본 해군 제독 기무라 마사토미 중장의 '키스카의 기적'이란 일화와 매우 흡사하다. 요약하자면 압도적인 적군, 무능한 아군, 기적 같은 탈출, 암초로 적의 레이더를 속인 점 등이 소설의 내용과 똑같다.

이 일화의 주인공인 기무라 마사토미는 자부심이나 용맹이 결핍된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고, 도무지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다거나, 함교에서 낮잠이나 낚시를 즐기는 등, 게으르고 군인답지 않은 군인[6]이었다는 점에서 엘 파실의 기적을 일으킨 게으른 마술사 양과 유사하다.

  1. OVA판에서는 "한가로운 놈을 하나 찾아서 시켜라" 라는 말을 들은 부하장교가 사령부를 둘러보다 정말 할 일 없이 벽에 기대어 멍 때리고 있었던 양 웬리를 보고 명령을 전달한다. 만약에 이때 양이 뭔가 일이라도 하는 척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수도..? 코믹스판의 경우에는 린치 소장이 처음부터 민간인을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묘사되었고, 탐탁하지 않게 여기던 양을 일부러 지적해 임무를 맡긴 것으로 나온다.
  2. 소설판에서는 불신 정도가 아니라, 군대가 시민을 저버렸다며 크게 분노하며 양 웬리를 무시했다. 다만 이 와중에도 탈출 작전을 준비하는 양 웬리에게 한 소녀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가져다주며 격려해준 일도 있었다.
  3. 탈출할 당시 시민 대표들이 "그럼 양 중위, 당신은 사령관이 우릴 버릴 걸 알고 되려 그를 미끼로 썼던 거요?" 라고 놀라워하자 양은 그냥 말없이 미소만 보였다.
  4. 3백만 명 체포라는 엄청난 군공을 얻을 기회를 과도한 기계 맹신으로 비롯된 자업자득으로 놓쳤으니 그럴만 했다.
  5. 상세한 결말은 아서 린치 항목 참조. 본인의 그릇된 판단으로 본인 뿐만 아닌, 가족과 친척 모두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6. 또한 이 분도 본편의 양 웬리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게으름 피워도 자기 할 일에 대해선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