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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의 유래 | ||||||||||
마련현 (麻漣縣) | → | 연천현 (漣川縣) | → | 연천군 (漣川郡) |
1 삼국시대
본래 백제의 영토였으나 고구려의 남진정책이 진행되면서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는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이 지역을 요새로 삼았는데, 현무암 절벽이 있고 좌우로 긴 지형이라 요새가 들어설 좋은 조건이 되었다. 당포성, 은대리 성, 특히 호로고루 성이 그 중심이었는데 남한에서 잘 볼 수 없는 고구려 유적이 다량으로 발굴되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크다.
특히 호로고루는 강안평지성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기도 하다. 최근 성곽이 일부 복원되기도 하였다.
이 후 이 지역은 진흥왕이 한강 유역으로 영토 확장을 하면서 신라가 주인이 되었으며 나당전쟁 시기에는 청산면 대전리에서 최대 격전이던 매소성 전투가 있었다.#
하여튼 통일신라 전까지는 시세에 따라 바람 잘 날 없던 곳. 과연 군대, 군인과는 뗄수 없는 유구한 관계인듯
2 고려
말기에 공성현(功城縣)으로 불렸고 1310년에 연주(漣州), 혹은 연천으로 개칭되면서 연천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3 조선
마전현과 병합되어 마련현(麻漣縣)이 되었다가 곧 재분할되어 연천현(漣川縣)이 되었고 1895년에 연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당시 연천군의 영역은 현재의 연천읍, 군남면, 중면에 해당된다.
한편 이때 재분할 되었던 마전현은 지금의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를 중심으로 미산면과 왕징면, 백학면에 해당된다.
4 일제강점기
1914년 조선총독부의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마전군과 적성군의 전역, 삭녕군 일부, 양주군 영근면을 연천군에 병합하였다. 1941년 영근면을 전곡면으로 개칭하였다.
5 미군정, 대한민국
해방 직후 38선이 설정되면서 적성면, 남면, 전곡면 및 백학면의 일부를 제외한 연천군의 전역이 소군정(북한) 치하로 넘어갔다. 이에 미군정(남한) 치하로 남은 위의 지역들은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이 중 적성면은 현재까지 파주시 관할로 남아 있으며, 남면은 1946년 양주군에 편입되었고, 전곡면과 백학면은 6.25 전쟁 휴전 이후 연천군으로 환원되었다.
1963년 철원군 신서면을 편입하였고 적성면 눌목리를 전곡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연천면이 연천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포천군에 관인면을 넘겨 주고 대신 청산면을 흡수하였다. 1985년 전곡면이 전곡읍으로 승격하였다. 1989년 옛 장단군 소속이었던 원당출장소를 장남면으로 승격하였다.
여담으로, 옛 삭녕군은 일부[1]가 북한으로 넘어갔고, 그나마 남은 곳은 전 지역이 DMZ 이하 GOP와 민통선 내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거주하는 민간인은 단 1명도 없는 다소 슬픈 곳이다. 통일 이후에도 DMZ 내의 미확인 지뢰지대로 인한 그린벨트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 내문면·마장면·삭녕면 일부·인목면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