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中國漫畵
참고로 서양권에서는 중국만화는 Manhua로 지칭해서 한국의 Manhwa나 일본의 Manga와 따로 구별하여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홍콩 만화는 따로 분류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홍콩 쪽은 서구의 코믹스 스타일과 결합한 독특한 만화풍이 따로 있고 정체자에다 세로쓰기이기 때문이다. 홍콩 만화는 대만과 같은 출판사에서 항대판(港台版, 홍콩대만판)으로 출간되는 게 일반적이기에 오히려 대만 만화와 같이 엮이는 일이 많다.
2 상세
중국만화는 19세기 중후반의 풍자만화로부터 시작되고, 당시 풍자만화의 내용은 부패한 관료들을 꼬집거나 외세에 의해 침탈당하는 청나라의 현실을 한탄조로 비꼬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으며 이후에도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이런 풍자 만화가들은 지속적으로 당대의 권력층들의 행태를 풍자하였지만, 1950년대 들어 이들 만화가들은 계몽운동에 동원되어가며 점차 쇠퇴되어가기 시작하더니 1957년 백가쟁명과 반우파운동,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며 탄압을 받는 동안 풍자성은 옅어졌다. 그러나 풍자성이 옅어졌다고 해도 아주 사라진 거까지는 아니며 이후의 유머만화로 계보가 이어진다.
한편 192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중국만화를 이끈 축이었던 연환화는 소설 삽화를 이야기 그림책 형식으로 발달시킨 것이며(물론 만화의 의미에는 부합되기는 한다.) 연환화의 원류는 10세기 송나라 시절로까지 이어져 내려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연환화가 출판되기 시작한건 석판인쇄술이 도입된 1910년대이다. 이 당시 연환화는 주로 잡지에 연재되었으며, 인기가 높은 연환화는 포켓북 형식으로 출간되었다. 이 연환화는 당시 빈민층이 많아 문맹률이 높았던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어서 만화노점이 대거 생겨났고 만화노점에서 연환화를 사들인 다음 연환화를 푼돈을 받고 고객들에게 연환화를 값싸게 보여주는 문화가 정착되었고(딱 1950-70년대 한국 만화방을 생각하면 된다.) 1980년대까지 중국 만화의 한축을 당담하게 된다.국내에도 변역된 연환화 삼국지
그러나 애들이 많이 봤다는 점 때문에 당대 중국에서 연환화를 애들이나 문맹들이나 보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연환화에 대한 당대 중국인들의 인식은 그리 좋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다.(이 역시도 1960-80년대 당시의 한국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으로 인해서 문맹 층들에게 쉽게 계몽사상을 전파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당대 중국 혁명가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연환화와 풍자만화를 계몽매체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당대 중국의 대문호인 루쉰도 해외소설을 연환화하는 작업에 뛰어들기도 했고, 중일전쟁 당시에는 중국 애국주의를 강조하거나 일본제국의 야욕과 만행을 고발하는 작품들도 많이 발행되었다. 물론 당시 연환화는 장르면에서 통속소설이나 고전소설을 연환화한 것이 주를 이루웠고, 영화를 연환화한 작품들도 많았지만, 공산화 이후에 대장정등 공산당의 역사를 그린 연환화나 캠페인 연환화가 대거 등장하였다. 이는 중국 공산당에서 연환화를 중요한 선전매체이자 인민들을 교양시키는 교육매체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당시까지만 해도 통제는 이루어졌을지는 언정 연환화의 발전이 계속 이루어지고, 문맹률이 낮아지고, 전국 방방곡곡에 대여점이 만들어짐에 따라서 연환화의 판매량도 급속히 증가하였지만, 동시에 소재의 제한도 부분적으로 시행되어서, 통속소설의 연환화화는 전면적으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에 문화대혁명 시기에 연환화는 계속 발행되긴 했지만 소재의 제한으로 연환화의 질이 급속히 저하되며 단순 선전물 일색의 작품이 양산되었고, 연환화에 실린 그림 한가운데에 반드시 주인공이 등장해야한다는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조치도 발표하면서 표현기법도 쇠퇴하였다.
1970년대 말 문화대혁명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소재와 표현기법의 제한이 풀려 연환화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예술성이 높은 연환화가 대거 출판되었으며, 한국 고전 설화나 소설을 주제로 한 연환화[1]도 나오기도 하였다. 당시 연환화의 출판량은 어마어마해서[2]당시 중국 내 전체 도서 발매량의 1/4을 차지할 정도였으며 덕택에 당시 중국은 발행량으로 따진다면 세계 최대의 만화시장이었고, 전체 출판비율로 따져도 당대의 일본이 결코 부럽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당대 연환화 가운데서 1쇄에 100만부를 찍어내는 경우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경제력이 열악한데다가 저작권 개념이 확립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연환화 작가들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이 적었고, 덕택에 인기 많은 연환화를 그린다고해서 부자가 된다거나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TV가 대중화된 1980년대 말부터 세인트 세이야, 드래곤볼, 도라에몽 등 일본만화,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일본만화 해적판이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어나가자, 상업성에서 일본만화에게 크게 밀린 연환화는 청소년층과 젊은 층들에게 인기를 잃고 연환화 작가들도 돈이 안 되는 연환화 대신 사실주의적 화풍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전업하여 돈을 버는 경우가 많아져가며 연환화를 그리던 작가 층들도 대거 이탈하며 연환화는 쇠퇴되어갔다. 그리하여 중국만화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가, 1990년대 중순부터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은 만화가들이 대세를 이루며 일본식 망가스타일이 대세를 이루게 되며 현재까지 일본만화의 문법을 중국적인 소재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연환화 자체가 오랜 기간 동안 중국 만화계의 대세를 차지하다보니 중년층 이상에서는 연환화가 익숙하고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은 만화작품들의 그림체와 형식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연환화 마니아층 또한 두터워서 고전 연환화를 수집하는 만화수집가들도 있으며 발행수가 적거나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들이 고가에 거래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만화도서관이 있는 것처럼 중국에서 연환화를 전시하는 박물관도 있기도 하며. 연환화가 아예 사장 된 것도 아니라서 그림체를 업그레이드화(?)한 연환화도 발매되고 있다.
한편으로 인터넷 보급 초창기에는 해적판 만화가 판을 쳤지만 2000년대 중반기부터 유요기 등의 등장으로 온라인 만화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고, 한국보다 시기가 조금 늦은편이지만 2010년대 와서는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 주목받고 있는 시장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점에서는 한국 만화와 닮은꼴을 찾을 수 있다. 다만 2010년대에도 일본만화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해서 독창적인 색체가 비교적 약하다는 점과 함께 만화계에도 TV나 영화에 적용되는 검열에 비하면 수준이 덜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는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막대한 인터넷 이용인구에 힘입어 중국적인 색체를 지닌 질이 괜찮은 웹코믹들이 속속 나오고 있으며 그에 반해 기존의 신만화를 싣는 만화잡지들의 판매부수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라 기존 신만화 장기적으로는 한국과 비슷하게 온라인 만화를 위주로 만화시장이 재편될것으로 보인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다른 중국의 문화들처럼 중화권 밖의 시장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안 갖고 있어서 해외로 번역되거나 알려지는 일이 정말 없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일본의 영향을 받은 만화(연환화에 대한 인식은 좋았기는 했지만)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인식을 갖지 않고 있고, 중국의 낮은 저작권 인식 때문에 해적판 만화들이 판을 쳐서 기본적인 수익도 내기 힘들 정도로 중국의 만화 작가들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앞으로 중국만화 시장이 성장할려면 온라인 만화시장이 어느정도까지 성장하느냐와 안정적인 수익모델의 정착 이 두가지에 달려있는 듯 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이 괜히 세계의 공장이 아닌 건지 단행본 단가가 굉장히 저렴한데도 전채색 만화가 상당히 많고 미디어 믹스에 대한 개방성이 활발하다는 장점을 눈여겨본 게다가 동아시아 덕후인 프랑스에서 중국만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작품성은 높지만 중국에서 빛을 못 보는 작가의 작품을 불어로 번역해서 출판하는 일도 많으며. 프랑스에서는 중국만화 전문 출판사도 있다. 또한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와 중국 작화가의 합작도 생기는 추세라고 한다. 중국내에서도 불중만화(佛中漫畵)라는 명칭까지 생길 정도로 많은 중국 작가들이 프랑스 시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연환화에 대한 추억이 있는 조선족이나 NHN, 다음카카오, 레진코믹스, 탑툰 같은 웹툰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를 제외하면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201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으로 수출되는 작품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3 작품
- 그들의 이야기
- 렌치소년(扳手少年)
- 배견여황폐하(拜見女皇陛下)
- 싼마오(三毛)
- 옆집네는 만화 그리는 아요(鄰居家是畫漫畫的阿幺)
- 유원경몽 (游園驚夢)
- 아무도 모르는(子不語)
- 장가행(長歌行)
- 장백의 아들[3]
- 점각장망(踮脚張望)
- 투성구월천(偷星九月天)
- 흑백무쌍(黑白無雙)
- 연환화 삼국지
4 작가
5 관련 항목
- ↑ 수요가 없을 거 같지만 연변등지에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다가 남한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을 때라서 당대에는 조선어로 된 창작 연환화나 한국설화나 소설을 연환화화한 책들이 꽤 출판되었고, 일부 연환화는 현재도 만화수집가들에게 고가에 팔린다고 한다.
- ↑ 물론 이전에도 발매량이 어마어마한 건 마찬가지였는데 1951년부터 1956년 사이에 10억 부가 넘게 출간되었고, 작품도로 따져도 1만개에 달했을 지경이었다. 물론 당대 경제사정상 연환화를 돌려서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해도 가히 어마어마한 수준인건 맞다.
- ↑ 소설 <장백의 아들>을 연환화한 건데 연변지역에서만 출판한지라 휘귀본 취급을 받아서 중국내 만화수집가들에게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