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ish Rail
1947년에 세워져 1997년까지 영업한 영국의 국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들어선 노동당 정부는, 기존의 4대 사철 체제로도 부족해서 이걸 죄다 국유화 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사철 좆까를 외치며 1947년에 철도법을 개정하여 정부의 교통위원회가 4대 사철의 자산과 노선, 고용 일체를 승계하며 그 이름도 찬란한 영국 국유철도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일단은 전후 경제 재건에 필수적인 철도의 국유화를 통해 빠른 경제개발과 철도 근대화를 수행할 수 있었다. 증기기관차의 퇴역과 주요 간선의 전철화, 디젤 기관차와 전기 기관차의 대량 도입, 사고만 났다 하면 종잇장처럼 구겨지던 Mk1을 대체할 Mk2, Mk3 도입 등은 국철의 순기능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철의 병크가 터지기 시작한다.
그중 상병크는 수익이 나지 않는 중복노선을 폐선하면서 수익성이 애매한 각지의 지선과 소규모 역들도 무자비하게 폐선, 폐역한 것. 어떤 나라에서 하는 짓과 비슷하다 이는 국철 출범 이후부터 계속되던 것이었지만 리처드 비칭의 철도 개혁 보고서의 포스가 너무나 강력했고 또 말도 안되는 주요 간선의 폐선을 주장하는 헛소리까지 지껄여서 Beeching Axe라고도 한다.[1] 이 Beeching Axe로 당시 영국국철 철도 총연장의 3분의 1이 날아갔다.[2] 지선의 철도운행을 버스로 대체하자 도로가 미어 터지기 시작했고(...) 불편하게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다니느니 다들 차를 사기 시작하면서 안 그래도 미어 터지던 도로가 결국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올레! [3]
여기에 항공교통의 발달, 자동차의 보급 등이 겹치면서 철도의 수송분담률은 국철 출범 이후로 계속 떨어졌고, 유일하게 고속철도[4]인 InterCity 125만이 선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게 장사가 안 되다 보니까 운임을 올리고, 정부에서는 지원을 줄이고, 그러니까 운임을 또 올리는 악순환을 반복하다가 1980년대 들어서 경영 정상화 방안으로 섹터화를 시작한다. 일본국유철도식의 지역별 섹터화가 아니라 사업 분야별 섹터화로, 다분히 민영화를 염두에 둔 작업이었다. 그리고 마가렛 대처가 수많은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하기도 했고(...) 말년의 영국 국철은 장거리 여객, 단거리 여객, 화물 등을 모두 별도의 사업분야로 운영했으며,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정부는 각 분야별로 다시 지역분할 등을 해서 민간에 매각했다(...)
그리고 온갖 흑역사와 사고를 뒤로한 채 1997년 모든 국유철도 노선의 프랜차이징과 상하분리를 완료하고 영국의 여객철도는 내셔널 레일 체제로 들어섰다. 그렇다고 흑역사가 끝난 건 아니고, 이후에는 인프라 관리 담당 회사였던 레일트랙 그 자체가 흑역사가 되었다. 2012년에는 WCML 사업권 재선정을 두고 똥물을 튀기면서 흑역사를 물려받고 있다.
비슷한 영국 국유화의 흑역사로 자동차 제조업체인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영국의 국영 버스업체인 내셔널 버스가 있다.
영국국유철도의 섹터분할 | ||||
여객 | 인터시티 | 네트워크 사우스이스트 | 지방철도 | 스콧레일 |
화물 | 철도화물 (일반/유통) | 트레인로드 (석탄/건설/금속/석유) |
- ↑ 물론 주요 간선들은 당연하게도 살아남았다. 이때 폐선된 노선 중 다수는 민영화 과정에서 부활한 것도 있다.
- ↑ 영국은 철도 초창기 철도 버블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철도회사가 난립하여 중복노선, 과소노선의 폐해가 심각하긴 했다. 너도나도 철도회사를 세워서 주식을 팔아서 돈을 벌었고, 심지어 해당 지역의 영주가 "와 기차 짱 멋있는 듯? 나도 하나 깔아야지ㅋ"해서 부설된 노선도 있다. 심지어 자기 돈으로 노선을 부설하고, 빅토리아 여왕이 자기 영지에 놀러온다고 하자 직접 기관차를 운전해서 집앞 역까지 모시고 온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성공한 덕후? - ↑ 결국 민영화 이후 폐역이 부활하고 폐선이 재개통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운임이 그렇게 올랐어도 차 몰고 다니는 것보다 기차 정기권이 싸서 오히려 사람들이 몰리는 경우도 있다.
- ↑ 그나마도 디젤틸팅으로 속도개선한 짝퉁 고속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