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레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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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Leyland Motor Corporation, Ltd (1968~1975년)
British Leyland Limited (1975~1979년 국영화 시기)
British Leyland Public Limited Company (1982년, 흔히 BL 공사 무슨 공사?라고 줄여 부른다)



1975년 그룹 CF. 이 역시 광고는 좋았다의 예시일 것이다.

1 개요

1960~1980년대까지 존속한 영국자동차 회사. 이 회사가 있는 동안의 행동이 너무나 막장이어서 공기업 실패와 영국병의 표본이 되었으며, 흑역사가 되었다. 적기조례의 병크를 딛고 간신히 되살아나려 하던 영국의 자동차 산업 자체가 완전히 끝장나버리게 만든 주범. 일종의 의도는 좋았다겠고, 이미 막장인 걸 살려 보려고 난리를 친 것에 속하긴 했다.

2 통합의 시작

1960년대의 영국 자동차 메이커들은 다양한 소형차 모델을 내놓으며 나름대로 잘나가고 있었지만, 영국의 자동차 시장은 다양한 메이커들에 비해 시장이 좁았기 때문에 툭하면 출혈 경쟁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특히 모리스를 합병시킨 오스틴, 즉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1]은 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부터 적자를 기록했고, 차를 만들어 팔 때마다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 정부 지원을 자주 받는 상황이었다.

결국 1968년 영국 노동당 정부가 과당(過當) 경쟁으로 인한 회사의 경쟁력 상실을 막고자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의 부도위기를 계기로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였던(1907년 증기화차에서 재창업. 1968년 당시에는 상용차 및 로버/트라이엄프 고급차와 랜드로버를 소유하고 있었다.) 레일랜드라는 상용차 회사를 설득, 포드GM에 속해있던 복스홀, 그리고 크라이슬러에 소속되어있던 루츠 그룹(Rootes Group)과 가족 경영 기업이었던[2] 모건, 삼륜차 전문업체 릴라이언트 등을 제외한 대다수 영국 자동차 메이커들을 레일랜드의 이름 아래 통합시키게 되었고, 회사명도 브리티시 레일랜드로 개명했다.

당시 브리티시 레일랜드에 통합되었던 메이커들은 다음과 같다. (통합의 주축을 담당했던 레일랜드 제외)

  • 오스틴 (Austin)
  • 모리스 (Morris)
  • 울즐리 (Wolseley)
  • 란체스터 (Lanchester)
  • 다임러 (Daimler)[3]
  • 라일리 (Riley)
  • 스탠더드 (Standard)[4]
  • 반덴 플라스 (Vanden Plas)
  • 알비스 (Alvis)엘비스?
  • MG
  • 로버/랜드로버 (Rover/Land Rover)
  • 트라이엄프 (Triumph)
  • 재규어 (Jaguar)

[5]
이렇게 수많은 메이커들을 통합한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영국 자동차 시장의 36%를 차지하는 메이저 업체로 거듭나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장밋빛 미래를 점치곤 했었다.

3 불협화음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메이커들을 합병했던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출범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메이커들 간의 판매 간섭은 기본이었고, 이로 인해서 차기 자동차 개발계획 때 판매 간섭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물어뜯는 개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재규어 XJ 시리즈를 밀어주기 위한 재규어 경영진의 횡포 때문에 개발 계획을 접어야만 했던 로버의 P8은 그야말로 안습의 극치. 링크

더군다나 회사 분위기도 보수적이라 전 뒷바퀴굴림 차종에 걸친 플랫폼 공용화를 구상했던 로이 헤인즈나, 미니의 아버지였던 알렉 이시고니스 등의 인재들이 이탈하는 일도 생겼다. 그나마 있던 경영진들도 무능하다는 평가가 다수였는데, 가령 1970년대에 불어닥치게 되는 해치백 붐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 알렉 이시고니스가 설계한 해치백 오스틴 맥시를 밀어주고자 한동안 차기 차종들 대다수에 해치백 구조를 확대 적용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었고, 또한 저렴하고 단순한 뒷바퀴굴림 중형차를 의도한 모리스 마리나의 개발비가 앞바퀴굴림과 유압 서스펜션 등의 "첨단" 구성으로 무장한 준중형차 오스틴 알레그로의 그것을 뛰어넘었던 사실은 BL의 비용 관리가 매우 부실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되기도 했다.[6]

또한 각 회사의 경영진과 노조, 그리고 다른 자회사들 간의 싱크로율은 거의 0에 수렴했고, 이로 인해서 회사 간의 감정싸움 같은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작업복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파업을 할 정도로 악명 높았던 영국의 노사문제로 인해서 개발에 들어가야 할 시간과 비용은 노조를 설득하는 데 들어가기 일쑤였다. 당시 독일(서독)차 업체들은 노조를 설득하는 데 매년 5%의 시간만 쓰면 됐지만,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무려 60% 이상을 노조를 설득하는 데 써야만 했고, 고로 자동차 업계에서의 최신의 트렌드와 디자인을 분석하는 데 실패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당시 영국이 파업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절이라고는 하나, 루츠 그룹과 영국 포드와 같은 다른 업체들과 비교해도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노사 관계는 영국 전체를 통틀어 최악이었다.

결국 이렇게 개발 시간과 비용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똑같은 차에 메이커만 바꿔 파는 뱃지 엔지니어링[7]을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했고, 당연히 자회사들의 개성 따윈 이미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상태. 게다가 오스틴 알레그로, 모리스 마리나와 같이 당시에 개발된 차들은 처음부터 다른 경쟁 차종들에 비해서 저질에 품질마저도 형편없었으며, 한 모델을 만들면 개발 비용과 시간 문제로 인해서 10년 이상을 우려먹기 일쑤였다. 다른 회사들이 새로운 모델을 줄기차게 내놓을 때, 브리티시 레일랜드에서는 한두 세대 전에 개발된 모델을 당시 트렌드에 맞게 쬐끔 손봐서 내놓을 정도로 막장가도를 달렸으며, 그나마 회사 내부에서 개발했던 차기 프로젝트들도 브랜드 간의 간섭이나 부족한 예산을 이유로 많은 수가 줄줄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4 국유화

그렇게 막장플래그를 선사하던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70년대 이후 오일쇼크와 지속적인 파업으로 채산성 악화가 발생, 부도 직전의 상황으로 치닫다가 1974년 12월에 파산했고, 이를 보다못한 영국정부는 돈 라이더 경의 제안인 "라이더 리포트"를 받아들여 마침내 1975년 국유화를 결정했다. 국유화된 후에는 회사 경영진들의 전반적인 개편과 함께 로버 SD1을 비롯해 굉장한 품질디자인을 자랑하는 모델들을 만들어내는 등 노력이 있었고, 마거릿 대처 정부가 들어선 1970년대 말에도 마이클 에드워즈 신임 회장의 과감한 관리 하에 절반 이상의 공장과 인원을 감축하고 채산성이 적은 수많은 브랜드들을 폐기했으며 품질과 성능 항상을 위해 일본의 혼다와 기술제휴를 맺은 뒤 살아있는 메이커들도 특성에 따라 재분류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한동안 제대로 된 경영을 받지 못한 체 품질불량 등의 막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오스틴 메트로 등의 일부 차종을 제외한 대부분 라인업의 판매량은 바닥을 기었다.

결국 보수당이 집권한 1979년에는 마거릿 대처 정부에 168억 상당의 지원금을 요청, 보수당 정권도 나름 사실상 망했어요 상태의 이 회사를 살리려고 노력했음에도 캐리어가도 소용없었던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막장상황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영국정부는 (일종의 민영화신자유주의의 시범타로서) 마침내 이 돈먹는 하마를 분해시키기 시작한다.

5 비극의 끝

결국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공중분해되기 시작했다. 재규어1984년포드에 매각되었으며, 같은 해에 모리스는 마리나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인 이탈(Ital)을, 트라이엄프어클레임(Acclaim)이라는 혼다 시빅과의 플랫폼 공유 모델을 마지막으로 자동차 사업을 접었다. 통합의 중심이었던 레일랜드는 1986년DAF(다프)라는 네덜란드의 트럭회사에 매각되었고, 그나마 경쟁력이 있었던 오스틴로버, 그리고 MG오스틴 로버 그룹아래 국영으로 운영되다가 마침내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에 매각, 다시한번 재기의 기회를 노리려 했지만 이마저도 여러 차례 인수되는 과정에서 사실상 붕괴되었다.

결국 재규어와 로버 및 랜드로버[8]는 두 차례의 매각 끝에 옛 식민지 기업인 타타역관광, 미니는 독일 BMW에, 오스틴을 비롯한 대다수의 브리티시 레일랜드 소속 브랜드들과 브리티시 레일랜드/오스틴 로버 그룹/로버 그룹/MG로버 그룹의 본체는 최종적으로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에 분할 인수되어 2015년 기준으로 순수한 영국 소유의 자동차 회사는 모건 하나만 남게 되었다.

한때 세계 최고의 자동차 산업을 가졌었으나, 몰락해버린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과거 현대와 대우, 기아, 쌍용 등 다수 국내업체들이 존재하다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내 업체가 사실상 현대차그룹 하나만을 중심으로 재편된 오늘날의 한국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로,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이사였던 조지 턴불은, 이후 현대차에 의해 스카웃돼서 훗날 현대자동차 부사장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는 현대차의 첫 고유 모델 포니의 개발에 기여하였다.[9]

6 관련 문서

생산 차종들. 브리티시 레일랜드 때는 뱃지 엔지니어링을 억제하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프린세스 외에는 뱃지 엔지니어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용차 라인. 레일랜드 산하에서 건너온 차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부터는 BMC와 레일랜드 시절부터 만들던 차들로, 이때 출시된 차들까지만 뱃지 엔지니어링이 용인되었다.

구조조정 및 매각 이후.

이외에도 1975년 국유화 이후부터는 농기계와 냉장고, 지계차, 인쇄업, 소방펌프 등의 기타 제품들을 생산하는 업체들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는 차후 추가바람. 링크[20]
  1. 미니의 극초기 모델을 만든 회사로도 유명하며 밑의 오스틴과 모리스가 합병 직전까지 이 회사 산하 브랜드였었다.
  2. 지금도 모건 모터 컴퍼니는 100% 모건 가문의 소유이다. 현 회장은 모건 가문은 아니지만 안면이 있는 지인이다.
  3. 다임러 벤츠와는 다른 회사. 다임러 벤츠는 '다임-러'로 읽는데 반해 BL의 다임러는 '대임-러'로 읽는다. 한때는 꽤 잘 나가던 고급차 제조사였지만 BL 해체라던가 이래저래 거치면서 2008년까지 재규어사의 고급 브랜드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예전의 쌍눈이 재규어 중 매우 크고 고급스러운 모델의 뒤를 보면 Daimler 로고가 붙어있다. 이 로고. 2008년 재규어를 타타 자동차가 인수하면서 안 쓰이고 있다.
  4. 트라이엄프 시절에 이미 폐기된 브랜드지만, 상표권은 보유중이었다.
  5. 의외로 그 유명한 롤스로이스-벤틀리는 없는데, 이들은 비커스 중공업 소유였기 때문. 1971년 잠깐 국영화되었다가 1973년 비커스 중공업에 인수된다. 1998년 매각되며, 이때 3개의 회사로 나뉜다. 롤스로이스 로고를 사용할 수 있는 항공기 엔진 제조사 롤스로이스 plc, 롤스로이스 로고와 환희의 여신상, 파르테논 신전 그릴을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 제조사 롤스로이스 모터스, 롤스로이스 공장인 크루 공장과 롤스로이스 특유의 6.75L V8엔진 L410을 가져간 그니까 롤스로이스 상표권 빼고 죄다 가져간 벤틀리. RR plc는 혼자 남았고 RR 모터스는 BMW에, 벤틀리는 폭스바겐 그룹에 매각된다.
  6.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성립되었을 당시엔, 전신 시절에 차 하나를 개발해 손해를 보는 구조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영국 포드에서 인력들이 많이 건너와 비용절감 시도를 했었지만, 그럼에도 차를 팔 때마다 손해를 보는 기존의 구조는 여전히 변하질 않았다.
  7. 뱃지 엔지니어링이나 플랫폼 공유 자체는 그렇게 해괴한 게 아니고,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많이 하는 마케팅이긴 하지만 1970년대 BL은 저런 뒷배경이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다만 한 차종이 디자인만 살짝 바뀌어 2~3개 이상의 브랜드로 출시되는 일이 기본이였던 BMC 시절에 비하면 브리티시 레일랜드 시절은 뱃지 엔지니어링의 규모가 많이 줄어든 편이었고, 그나마 있던 뱃지 엔지니어링도 BMC 시절 개발된 차들에 거의 다 한정되어있었다.
  8. 2000년 이후 로버 브랜드는 BMW에게 상표권이 있었으나, 상하이자동차가 MG로버 그룹을 인수한 뒤 로버 75를 재생산하려 하자 랜드로버 브랜드를 이유로 당시 모회사가 로버 브랜드의 상표권을 사들여 이를 저지하려고 했다.
  9. # "...그 무렵 때마침 영국 유수의 자동차 회사인 BLMC(British Leyland Motors Corporation) 부사장 조지 턴불이 회사를 그만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정주영은 설득의 천재였다. 그는 턴불과 엔진, 액셀러레이터, 트랜스미션 등 주요 부품 제작 기술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1974년 7월부터 1억 달러의 공사비를 들여 연산 5만6000대 규모의 종합 자동차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포드사와 완전 결별한 후 3년이 지난 1976년 1월, 현대자동차는 최초의 국산차 ‘포니’를 탄생시켰다."(기사 발췌)
  10. 이쪽은 BMC 시절부터 개발되었으나, 출시는 브리티시 레일랜드 때인 1969년에 이루어졌다. 사실상 BMC 산하에서 개발된 마지막 차로, 1978년부터 단종 때까지는 “레일랜드 맥시“로 판매되었다.
  11. 이때 나온 프린세스는 오스틴, 모리스, 울즐리의 3개 브랜드로 리뱃징되었으나, 얼마 안가 프린세스라는 단일 브랜드로 통합되었다.
  12. 영국 아이콘인 AEC 루트마스터 2층버스를 만든 그 회사의 차량으로, 브리티시 레일랜드 성립 전의 AEC는 레일랜드 소속 업체였다.
  13. 스캐멜 역시 레일랜드 소속의 상용차 회사이다.
  14. 알비온도 레일랜드 산하 상용차 업체이다. 여기서의 리버는 "Reiver"로 표기.
  15. 이때부터 미니가 독립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16. 여담으로 기아 니로의 광고에서, 견인되어 가는 스포츠카로 나왔다.
  17. 레일랜드의 트럭 부서. 지금은 DAF 트럭의 생산기지로 운영되고 있다.
  18. 레일랜드의 버스 부서. 1987년 민영화된 지 1년 만에 볼보가 인수, 1993년까지 존속했다.
  19. 중국 상하이자동차 산하에 있으며, 브리티시 레일랜드/오스틴 로버/로버/MG로버 그룹의 본체를 난징자동차가 인수한 뒤 상하이자동차가 다시 인수했다.
  20. 당시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중장비 제조업체는 트럭 및 버스 부서와 분리된 이후, 2007년에 핀란드 측의 모회사와 같이 두산에 인수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