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과 한음

1 소개

조선 중기의 재상이자 명 개그콤비인 이항복이덕형을 이르는 말. 오성은 이항복의 작위명(오성부원군)[1]이고 한음은 이덕형의 호이다.

두 사람과 얽힌 코믹한 에피소드가 민담, 전래동화 등으로 많이 다뤄졌으며 두 사람이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것은 서기 1578년으로 두 사람이 과거시험을 볼 때 처음 만났다. 이항복이 23세, 이덕형이 18세 정도.

  • 만력 6년(1578년), 이때 비로소 백사 이상국 항복과 교분을 맺었다. - <한음문고>
  • 신의 선조와 오성은 과거장에서 서로 사귀게 되었는데, 한 번 보고 매우 친밀해졌습니다. 이는 사적에 실려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서로 사귀었다고 하는 것은 민간에서 속되게 전하는 바입니다. 나이는 오성이 신의 선조보다 다섯 살 많습니다. - 이덕형의 후손인 참찬관 이명교의 말. <승정원일기> 고종 10년(1873년) 9월 14일

이덕형의 문집인 한음문고와 그의 후손 이명교가 밝혔듯이 둘은 과거장에서 처음 만났고, 이항복이 이덕형보다 5살이나 더 많다. [2] 이명교가 이렇게 밝히기 전에 고종은 이명교에게 "오성과 한음이 소꿉친구라는 게 정말인가? 그 사람들 장난친 일이 아직도 전설로 전해지니 매우 멋진 일인듯. 나이는 누가 많고 적은지 모르겠네?"라고 물었다고 한다. 고종이 태어나서 즉위할 때까지 궐 밖에서 살았던 인물이었던만큼 거리의 이야기꾼이나 여러 야담집을 통해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접해 알고 있었으며, 오성과 한음이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는 이야기는 이때에도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조선 후기 백성들 중에서는 이항복의 본명이 '오성'인줄 알고 성을 오씨로 알았던 사람도 있었다고 전한다. .

역사상의 이항복, 이덕형의 본모습보다 민담 속에서 그려진 이야기가 더 유명해진 케이스지만[3] 이 두 사람이 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걸친 각별한 우정을 나눈 남다른 관계였던 것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이덕형의 문집인 한음문고를 보면 이덕형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총 110여통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이항복에게 보낸 편지만 무려 77통에 이른다. 특히 이덕형은 이항복을 형(兄)이라는 매우 격식 없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으며 "형도 내 마음 몰라요"라고 징징대는 편지도 남아 있다. 그런데 정작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에는 이덕형을 위해 지어준 시가 몇 수 남아 있지만, 이덕형에게 보낸 편지는 한 통도 실려 있지 않다. 아놔 항복이형 카톡 보냈는데 확인 안했어요?

그러나 이것만 보고 이항복이 이덕형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게 이덕형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항복이 묘지명을 쓸 때 "내가 명보(이덕형의 자)를 그르쳤구나. 한스럽다."는 식으로 애통해 하고 있으며 이덕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시에서도 "목소리 죽여 남몰래 한원군(이덕형)을 곡하노라."는 구절이 남아 있다. 이항복이 꽤 인간관계가 폭넓었던 것에 비해 이덕형은 비교적 인간관계가 협소한 편이었지만 벼슬도 짝을 이뤄 한 경우도 있었고 실록에서도 이항복과 이덕형이 서로를 배려하는 기록도 남아 있던 만큼 두 사람이 매우 특별한 우정을 나눴던 것 자체는 분명하다.

1.1 사족

조선조 말썽으로 유명했던 실존인물로 영조대의 영중추부사 이천보의 양자인 속칭 '말썽괴수' 이문원이 있다. 오성과 한음의 말썽은 후세의 창작이지만 이분의 말썽은 사실이다!#

2 만화

위 두 사람을 소재로 한 박수동 화백의 만화제목. 1970년대에 소년 중앙에서 연재되었다. 이하 신판 오성과 한음 참조.

또 비디오판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사자성어 한자공부용 비디오 만화이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다양한 사자성어를 알수있다.

3 오성X한음

팬텀 하록으로 알려진 유승진이 한섬세대에 이어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한 웹툰. 항목 참조.

4 고전게임

1993년 에이플러스(A+)라는 교육출판사업체에서 만들고 금성소프트(현재 LG그룹)에서 배급한 어드벤처 게임. 오성과 한음을 조종하여 여러가지 임무를 맡는 게임. 방식은 물론 캐릭터 등의 그래픽 스타일마저 미국 어드벤처 게임 고블린의 영향이 상당히 짙게 드러난다. 이젠 레어가 된 정품 구성. 풀 플레이

이제는 도스박스로 실행해야 한다.

5 개그 콘서트의 전 코너

오성과 한음(개그 콘서트) 문서로.
  1. 이항복의 호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이항복의 호 중 대표적인 것은 백사(白沙)이다. 젊은 시절에는 필운(弼雲)이라는 호를 쓰기도 했으며, 조선시대 문인들이 다 그렇듯 이항복은 그 외에도 호가 많았다.
  2.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15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 않으면 굳이 서열을 나누고 하지 않았다. 유성룡과 이순신의 경우도 유성룡이 나이가 더 많았고. 해동역사를 저술한 한치윤과 그 서문을 써준 유득공 역시 15세 이상 차이가 났지만 친구 관계였다. 정몽주와 정도전도 정몽주가 5살이 더 많다. 사실 나이로 서열을 매기는건 일제시대 풍토로 실제 조선시대 풍토와는 거리가 있다.
  3. 비슷한 케이스를 들자면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