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축구 해외파 선수들
수원 삼성 블루윙즈 No.66 | |
오장은 (吳章銀 / Oh Jang-Eun) | |
생년월일 | 1985년 7월 24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
신체조건 | 175cm / 73kg |
프로입단 | 2002년 FC 도쿄 |
소속팀 | FC 도쿄 (2002~2004) 대구 FC (2005~2006) 울산 현대 (2007~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현재) |
국가대표 | 14경기 / 0골 |
1 상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의 대한민국 축구선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출신으로 서귀포초등학교와 조천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축구 입문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였다고 한다. 조천중학교 시절에는 벨기에로 축구유학로 시도하였으나 성과가 좋지 않았다.
2 클럽
2.1 FC 도쿄
벨기에 축구유학이 실패하고 국내로 돌아온 오장은은 서귀포고 시절 연습도중에 당시 수원의 코치였던 윤성효 코치 눈에 띄어 서귀포고를 중퇴하고 수원 2군에서 훈련하였다. 그러는 도중 2001 8월에 FC 도쿄의 입단테스트에 참가했고 연습생의 조건이지만 FC 도쿄의 유니폼을 입게되었다. 2002년에는 아마추어 계약을 체결했고, 2004년에 비로소 정식 프로계약을 맺었다.
2004년에 프로계약을 맺었으나 2002년 연습생 신분으로 2002년 4월 13일 J리그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J리그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다.[1] 하지만 외국인 용병 제한으로 3시즌간 13경기에 출장하였으나 2003년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친선전에서 데이비드 베컴을 꽁꽁 묶어 많은 스포트라이트 받고 U-19 대표팀에 승전하는 등 당시 최고 유망주라는 찬사를 받았다.
2.2 대구 FC
2005년 김근철과 같이 대구 FC에 입단하여 국내 복귀를 하였다. 당시 오장은을 원하는 구단이 많았는데 노상래, 오주포의 은퇴로 중원이 약화되었던 대구가 강하게 오장은을 영입하기를 원했고, 대구의 끈질긴 구애로 오장은은 대구에 입단하였다. 입단 초기에는 U-20 월드컵 멤버로 뽑혀 많은 활약을 못하였다. 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2005 시즌 25경기 3골 2도움을 올린 오장은은 잠시나마 대구가 리그 1위에 오르는 이변에 주인공이 되고, 2006 시즌에는 36경기 4골 기록하게 된다. 9월 24일에는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생애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물오른 기량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약에 핌 베어벡 감독의 눈에 띄어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 시절의 별명이 대장은이었다.
2.3 울산 현대
2006년 대구와의 계약 만료로 FA로 풀린 오장은은 여러팀에게 구애를 받았는데, 이에 적극적이게 구애한 울산 현대로 입단하였다. 이 때 당시 울산은 김정우의 대체자를 찾고 있었고, 이적료로 대구는 28억 원이라는 이적료를 받았다.[2] 당시 울산 감독이었던 김정남감독은 오장은을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오장은도 이에 보답하듯이 27경기 1골을 기록하여 울산의 리그 컵 우승과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하였다. 2008년에도 36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불박이 주전이 되어 플레이오프로 이끌었고, 2009년에는 32경기 6골을 기록하여 자신의 커리어 사상 최다골을 기록하였다. 2010년에는 35경기 3골로 울산 현대의 미드필더의 핵심이 자리잡게 되었고, 국가대표 발탁도 되었다.
2.4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보내자 수원의 신임 감독이었던 윤성효 감독의 구애로 수원으로 이적하였다. 개막전에서 FC 서울경기에서 데뷔골을 터트린 오장은은 이후 수원의 주전으로 도약하였다. 팀사정에 따라 다른 포지션으로 활약하는 등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있다.고 쓰고 혹사당한다고 읽는다 심지어 2014 시즌에는 라이트백까지 보게 될 정도. 2014년 월드컵 휴식기 중 무릎 부상을 당해 시즌 말 회복하는 듯 했으나 끝내 시즌이 끝날 때까지 출전하지 못했다. 절치부심한 오장은은 동계 전지훈련 중 부상이 재발해 새 시즌에도 2014년 후반기와 마찬가지로 팀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했다. 4월 8일에 있었던 AFC 챔피언스 리그 브리즈번 로어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무난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 경기를 끝으로 오장은은 또다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후 5월, 부상 부위 악화로 인한 무릎 수술을 결정하면서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어느 시즌보다 숨막히는 일정을 소화하는 수원으로서는 큰 타격을 입은 셈.이관우와 백지훈을 이어 수원의 미드필더 고인 라인 추가요
2016년 1월 14일, 결국 수원을 떠나게 되었다. 높은 주급에 비해서 꾸준하지 못한 출전시간이 그 이유. 결국 이렇게 수원을 떠나나 싶었는데... 2월 말에 재계약이 확정되었다! 재활이 얼추 끝났는지 그동안 컨디션이 상당히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3 에피소드
FC 도쿄 시절 재일 교포인 이충성과 친하게 지냈으며, 2004년 청소년 대표팀 테스트에서 이충성을 소개시켜주었다. 그러나 이충성이 청소년 대표팀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이후 다큐멘터리에서 테스트 탈락과 일본으로 귀화 이유가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의 차별이라 말했는데, 이에 오장은의 반응은 매우 섭섭하다고 하였다.
유치원 때 외할아버지댁에 갔다가 벽이 무너져 왼발의 집게와 엄지발가락이 으깨져서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인간 승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