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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와 레이솔 시절
나라 클럽 No.32 | |
오카야마 카즈나리 (Okayama Kazunari / 岡山 一成) | |
생년월일 | 1978년 4월 24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오사카 부 사카이 시 미나미 구 |
포지션 | 센터백 / 포워드 |
키 | 187cm |
소속팀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1997~2000) 오미야 아르디자 (임대) (1999) 세레소 오사카 (2001)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2~2005) 아비스파 후쿠오카 (임대) (2005) 가시와 레이솔 (2006~2007) 베갈타 센다이 (2007~2008) 포항 스틸러스(2009~2010) 콘사도레 삿포로 (2011~2012) 나라 클럽 (2013~ ) |
재일교포 3세 축구선수로 한국명은 강일성(康一成).
여러 구단을 전전한 저니맨으로 J2리그에서 팀을 승격시키고 J리그에서는 벤치멤버로 대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선수가 유명한 이유가 따로 있으니 바로 오카야마 타임이다. 자신이 경기 엔트리에 없으면 관중석으로 들어가 서포터들을 독려해 응원을 지휘하기도 하고 경기가 없을때는 손수 구단 홍보물과 경기 홍보물을 돌린다.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면서 그는 그 해 K리그 2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나 챔피언스 리그 결승은 도쿄에서 치뤄졌던지라 굉장히 감회가 남달랐다고...(다만, 아쉽게도 경기는 뛰지 못했다. 팬들은 모두 마지막 교체 카드로 오카야마를 예상했지만...)
2010 시즌 초에는 반짝 활약을 하면서 회춘하는가 싶더니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려버렸다. 시즌 종료 후 이뤄질 선수 정리에서 설기현과 함께 1순위로 꼽혔고 2010년 12월 1일부로 계약 만료.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했다.
하지만, 2011년 리그 5경기, 천황배 1경기, 2012년에 리그 5경기, 천황배 1경기, 리그 컵경기 2경기를 뛴 후, 나라 클럽에 이적했다.
팀을 떠난 후에도 포항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었는지 2013년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히로시마 원정을 직관했다. 이를 본 포항빠들은 오카야마의 의리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기사 본인의 커리어 하이가 포항 시절이란 걸 감안해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이후에도 포항과 J리그팀의 경기가 있으면 홈,원정 가리지 않고 직관을 한다. 포항이란 팀을 어지간히 사랑하는 듯.
참고로 그는 K리그 데뷔전에서 엉뚱하게도 본래 포지션인 센터백이 아닌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어찌된 사연이냐면 에이전트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활약상을 담은 비디오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이 친구가 엉뚱하게도 헤딩골, 공중볼 경합 장면을 주로 편집해서 담아버렸다.
이를 눈여겨 본 파리아스 감독이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써먹어도 좋겠구나 라고 판단했던 것. 그래서 가끔씩 제공권 장악이 필요할때면 스트라이커로 써먹기도 했고, 실제로 2009 리그컵 4강 FC 서울 전에서는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쓰겠다고 교체했는데 교체하자마자 수비수인 김형일이 퇴장.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런 이유로 이후 포항이 앞서나가자 오카야마 카즈나리는 본연의 업무(?)인 수비자리로 내려가서 경기를 마무리 했다.(...) 이 날 경기를 본 해설진과 포항 관계자들은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을 보고 "정말로 돗자리 하나 깔고 점쟁이 하셔도 될 듯(...)"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