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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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팬들에게 신나게 까이던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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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할아버지가 다 되셨다.[1]

이름Frank Robinson
생년월일1935년 8월 31일
국적미국
출신지텍사스주 보몬트
포지션외야수, 1루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53년 신시내티 레즈 자유계약
소속팀신시내티 레즈(1956~1965)
볼티모어 오리올스(1966~197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72)
캘리포니아 에인절스(1973~1974)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74~1976)
감독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75~197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81~1984)
볼티모어 오리올스(1988~1991)
몬트리올 엑스포스/워싱턴 내셔널스(2002~2006)
신시내티 레즈의 영구결번
1 5 8 10 11 13
프레드 허친슨자니 벤치조 모건스파키 앤더슨배리 라킨데이브 콘셉시온
14 18 20 24 42
피트 로즈테드 클루스제프스키프랭크 로빈슨토니 페레즈재키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영구결번
4 5 8 20
얼 위버브룩스 로빈슨칼 립켄 주니어프랭크 로빈슨
22 33 42
짐 파머에디 머레이재키 로빈슨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프랭크 로빈슨
헌액 연도1982년
헌액 방식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89.1% (1회)
195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빌 버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프랭크 로빈슨
(신시내티 레즈
)
잭 샌포드
(필라델피아 필리스)
196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딕 그로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프랭크 로빈슨
(신시내티 레즈
)
모리 윌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66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조일로 베르사예스
(미네소타 트윈스)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
칼 야스트렘스키
(보스턴 레드삭스)
1966년 월드 시리즈 MVP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7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칼 야스트렘스키
(보스턴 레드삭스)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조 모건
(신시내티 레즈)

1 개요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한 양대리그 MVP 수상자[2]이자 1966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 중 한명. 선수로서는 신시내티 레즈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모두 존경받으며 영구결번된 레전드. 다만 지도자가 되고 나서 감독으로서는 김선우에게 영 좋지 않은 대접을 한 것 때문에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지만,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감독이기 때문에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인물이기도 하다.

통산 성적은 21시즌 동안 타율 .294, 출루율 .389, 장타율 .537, OPS .926, 순장타율 .243, 586홈런, 2943안타, BB/K 0.93, wRC+ 153, 1829타점을 기록했다.

2 선수 커리어

2.1 신시내티 레즈 시절

신시내티에서 대학을 나와 자유계약으로 레즈에 입단한 로빈슨은 20세의 나이에 레즈의 외야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 시즌 38홈런으로 역대 루키 최다 홈런 기록에 타이를 이룬다.[3] 당연히 그 해 내셔널리그 신인왕은 로빈슨의 차지. 이후 레즈의 클럽하우스 리더가 되면서 The Judge(판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1961년에는 37홈런 124타점에 고의사구 23개[4]라는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이고 팀도 월드시리즈에 나가자, 생애 첫 MVP를 수상한다.[5] 이듬해에는 39홈런 136타점이라는 MVP 시즌보다 더한 성적을 찍지만 104도루를 기록한 모리 윌스[6]에게 MVP를 헌납.

하지만 그는 버림받고 말았다. 3년간 MVP급이라기에는 2% 부족한 성적을 거둔 것도 있었지만, 프런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격이었던 로빈슨이 아니꼬웠던 빌 드윗 단장이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그를 트레이드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이 딜은 희대의 조공딜이 되어버렸고, 드윗 단장은 곧 해고되었다.

2.2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과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그는 다시금 분노의 맹타를 휘둘렀다. 그 결과 .316 - 49홈런 - 122타점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7]했고, 역대 최초의 양대리그 MVP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이룩, 쿠퍼스타운행을 예약한다. 더불어 그 해 월드시리즈에서도 샌디 코팩스돈 드라이스데일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스윕하며 우승을 차지하고 자신은 WS MVP[8]를 수상, 볼티모어의 본격적인 리즈시절을 연다.

이듬해에도 부상으로 30경기 넘게 결장하고도 트리플 크라운급 페이스를 보인 로빈슨은 자신을 버린 신시내티를 꺾고 볼티모어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으며, 36세 시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연평균 30홈런씩을 때리며 리즈시절을 열었다. 이에 감복한 오리올스 구단은 은퇴하기도 전에 팀 최초의 영구결번을 선사한다.

이후 로빈슨은 다저스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거쳤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뛰면서 역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에 등극했다.

3 HOF 헌액과 감독 커리어

그러나 /게일로드 페리 형제와 싸우면서 이들을 트레이드하게 되는 촌극을 빚기도 했고, 타격 성적이 부진할 때는 자신의 성적을 위해 직권남용으로 출전한다는 억지스러운 욕을 듣기도 했다. 결국 3000안타와 600홈런이라는 윌리 메이스급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2943안타 - 586홈런에서 선수로서 은퇴를 선언[9]한 그는 감독 일에 집중하게 되지만 인디언스로부터 해고 처분을 받는다.

1982년 로빈슨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첫 투표 대상자가 되어 89.1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한번만에 입성한다. 투표율이 역대급 레전드 치고는 좀 낮아보이는데, 하필이면 올타임 홈런왕에 등극한 행크 애런이 그 해에 같이 투표 대상자가 되는 바람에 관심을 좀 나눠가지긴 했다. HOF에는 신시내티로부터 버림받은 기억 때문인지 볼티모어 오리올스 모자를 쓰고 갔다.[10]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과 볼티모어 오리올스 코치로 일하다 1988년 오리올스의 감독직을 맡게 된 그는 첫 스타트부터 감독 부임 전 6연패 뒤 부임 후 15연패, 도합 21연패라는 영 좋지 않은 기록을 세우며 출발하지만, 이듬해에는 54승 팀을 잘 정비하여 87승 팀으로 변모시킨 공로로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한다.

하지만 명선수는 감독으로서 대성하긴 힘들다는 징크스 때문일까, 아니면 감독으로서 중간에 긴 공백기를 가졌기 때문일까. 그는 젊은 감독으로서는 올해의 감독상도 수상하긴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호평을 받지 못했다. 몬트리올 엑스포스 감독 시절에는 골프나 치러 다닌다고 까이기도 했고 선수 기용에 있어 스탯에 대해 너무 무신경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선수들이 집단으로 항명하는 사태도 빚어졌으며, 국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선수기용으로 김선우의 커리어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많이 까였다.[11]

결국 2006년을 끝으로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그는 다시 감독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은퇴하였다.

2012년에는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즈의 개장 20주년 행사에서 그의 동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4 여담

  • 오클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NBA반지의 제왕 빌 러셀과 함께 농구팀에서 뛰었다고 한다. 한편 빌 러셀 역시 NBA에서 최초의 흑인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1. 우측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명예의 전당 헌액 레전드 투수이자 현재 오리올스 중계 해설자인 짐 파머.
  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3차례 MVP를 먹고 10년 계약으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으로 이적한 알버트 푸홀스는 노쇠화로 인해 성적이 폭락하고 있고, 조이 보토라이언 브론 같은 MVP급 강타자들이 대부분 장기계약으로 한 팀에서 커리어를 보내게 생겼음을 생각하면 양대리그 MVP의 기록은 먼 미래에나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 2010년대 후반 들어 MVP를 지낸 타자들 중 전성기 수준 기량을 유지하면서 다른 리그 팀으로 옮길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끽해야 미겔 카브레라 뿐.
  3. 1987년 마크 맥과이어가 49홈런으로 이 기록을 뛰어넘는다.
  4. 이후 4년간 리그에서 고의사구 1위를 먹는다.
  5. 미키 맨틀로저 매리스가 홈런 레이스를 펼친 시즌이라 딱히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결국 월드시리즈에서도 M&M 듀오의 뉴욕 양키스에게 패퇴.
  6. 올타임 싱글시즌 도루 기록에 도전 중이었다.
  7. 이듬해 칼 야스트렘스키가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뒤 45년이 지나서야 미겔 카브레라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다.
  8. 1971년에는 올스타 MVP도 수상했는데, 이로서 그는 신인왕/정규시즌 MVP/월드시리즈 MVP/올스타 MVP를 모두 수상한 전무후무한 선수가 되었다.
  9. 은퇴 시점에서 행크 애런 - 베이브 루스 - 윌리 메이스에 이은 역대 4위 기록이었다. 2012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는 약쟁이들 때문에 순위가 많이 밀려서 역대 9위를 기록 중.
  10. 1998년에야 레즈는 로빈슨의 2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한다.
  11. 어쩌다 한번 김선우를 칭찬하면 대서특필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