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친왕

完親王, 생몰년 1868~1880.

조선왕자이자 (사후) 대한제국의 황족. 이름은 선(墡)이며)[1] 생전에 받았던 군호는 완화군(完和君). 시호가 효헌(孝憲)이기 때문에 완효헌왕(完孝憲王) 혹은 완왕이라고도 한다.

대한제국 고종의 첫 아들이었지만 서자였다. 고종은 명성황후와 가례를 올렸을 때 이미 9살이나 연상인 궁녀 출신 이씨[2]를 총애하는 중이었고, 그래서 명성황후와는 신혼 때 서먹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이씨에게서 얻은 첫 아들이 바로 완화군이다.

고종 바로 전 임금인 철종 때 여러 왕자가 태어났지만 모두 요절했기 때문에(그래서 방계왕족인 고종이 즉위할 수 있었음), 실로 오랜만에 왕손이 탄생하자 온 조정과 왕실이 기뻐했다. 특히 흥선 대원군은 완화군을 정말로 귀여워하며 육아에 적극 참여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3년 뒤 중전 민씨가 아들을 낳자 대원군이 자신이 아끼는 완화군을 세자로 삼겠답시고 명성황후의 아들을 인삼을 보내 독살했다는 야사까지 생겼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 구라니 속지 말자. 세상에 어떤 멍청이가 서자를 후계로 세우겠답시고 자신의 적장손을 죽인단 말인가. 훗날 명성황후와 흥선 대원군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정적이 된 것 때문에 생긴 소문일 뿐이다. 정사에는 분명히 항문 기형(선천적으로 항문이 없었는데 묘안 증후군으로 추정됨)으로 출생 4일만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원군이 물러난 직후인 1874년 적통 원자인 원자 척이 태어나자(당시 완친왕은 7살), 원자의 입지를 위해서였는지 궁 밖에 나가살게 되었다. 1880년에 열병을 앓다 13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명성황후가 완친왕 모자를 꺼려했던 것 때문에 시중에는 명성황후가 완화군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제대로 된 근거는 없다. 심지어 완화군 생모인 영보당 이씨마저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후로 50년 가까이 생존해서 일제강점기인 1928년 12월 19일자 동아일보에는 이틀전인 17일에 영보당 이씨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실려있다.

구한말 궁궐에서 지냈던 상궁들의 증언에 따르면 완화군이 죽자 조 대비가 매우 애통해하며 완화군의 제삿상에 생전에 좋아했던 군밤을 올리도록 했으며, 행여 군밤이 식기 전에 영전에 올리라고 상궁들에게 성화를 냈다고 한다. 고종 군밤 루머의 진짜 주인공은 완화군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도 야사라서.

그뒤 1898년 대한제국이 성립되자 친왕으로 추존되어 완친왕이 되었다.
  1. 고종의 아들들 중 이름을 하사받은 선(墡), 척(坧), 강(堈), 은(垠), 육(堉), 우(堣)는 모두 휘에 흙 토(土)변을 공유한다. 대개 같은 왕의 아들들은 이름자에 같은 부수를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고종의 사가(私家) 일원인 흥선대원군과 그 형제들의 손자 이름도 항렬자를 제외한 이름 글자에 흙 토(土)변이나 흙 토가 들어간 글자를 공유한다. 흥녕군의 손자 이기용(李鎔), 흥완군의 손자 이달용(李鎔)과 이규용(李鎔), 그리고 흥인군의 손자 이지용(李鎔),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李鎔)과 이문용(李𪣢鎔).
  2. 명성황후(드라마)에서 정선경이 연기한 영보당 이씨로 나오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