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이 요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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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에서 카메오로 출현할 때의 오너캐 모습.

1 소개

臼井儀人. 일본만화가. 본명은 우스이 요시토(臼井義人, Usui yoshito[2]). 1958년 4월 21일생. 2009년 9월 11일 타계. 시즈오카시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때 사이타마카스카베시로 이주해 쭉 살았다.

크레용 신짱의 원작자이다. 그는 그의 둥글둥글한 그림체에 어울리지 않게도 스포츠지 등에서 성인 취향의 4컷 만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카투니스트였다. 사실 크레용 신짱도 성인을 위한 개그 만화에서 아동 만화로 방향을 전환한 작품이며,[3] 신짱 이외의 작품은 전부다 성인 취향 개그 만화다. 크레용 신짱의 인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우스이 요시토의 다른 작품이 번역되었는데...

크레용 신짱의 빅 히트에 힘입어 일본의 거액 납세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만화가로서의 자신의 직업이 꿈을 판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던 모양이다.

2 친한

그는 한국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여러 번 방한했다. 한국에 그가 즐겨 찾던 음식점이 있다고 한다. 더불어 그의 부인도 대단한 한류 팬이라고 한다. 그의 작중 짱구의 엄마 노하라 미사에가 열심히 보는 드라마 겨울 찬장은 드라마 겨울 연가의 패러디이다. 그리고 미사에가 한국의 인기 배우인 장동건이 일본에 온다고 하자 애들을 데리고 냅다 공항으로 달려갔다. 또한, 작중에는 노하라 일가가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4]

김혁의 글에 의하면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방에서 열렸던 애니 관련 페스티벌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다른 만화작가들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스이 씨는 참석을 하셨는데, 그 분 덕에 그 행사가 실속을 차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덕분에 관계자들이 숙식에 드는 비용을 전액 부담하여 사례하였다고 한다.

황미나 씨가 쓴 글에 의하면 행사가 진행될 때 그는 어설프게나마 한국말로 우스겟 소리를 하기도 하였으며, 잘 웃어주었다고 한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황미나씨는 그때를 회고하며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려 그의 명복을 빌었다.

투니버스에서도 그의 사망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3 그외

  • 원고 작업을 어시스트를 쓰지 않고 부인과 두 딸과 함께 하는 것으로 유명. 가끔 극장판에 젊은 미청년의 모습으로 작가 본인(?)이 등장하기도 한다.[5]
  • 아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여서 기부를 꽤 했다고 한다. 본인은 아니었는지 정확하진 않으나 니코니코 대백과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되어 있으며, 위키페디아에선 언급이 안 되어있다. 하지만 넷상에선 여호와의 증인으로 알려져 있다. 여호와의 증인 항목의 보수성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같은 신도끼리만 결혼 할 수 있어 우스이 요시토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일 가능성이 높다.짱구말고는 전부 성인취향만화인데 여호와의 증인이 그런걸 허용하지는 않을텐데
  • 사잔 올 스타즈 팬이여서 가끔 만화에서 사잔 올 스타즈 언급이 등장하기도 했다. 애니판에서도 사잔 곡을 쓴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6]

4 실종 후 사망확인까지

2009년 9월 11일 등산을 가겠다고 출발한 뒤 실종.

실종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경찰측은 사건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고자 주변인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아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음이 밝혀졌고 작가 본인도 상당히 우호적이라고 알려졌다. 작가의 모친은 정체불명의 신흥종교에 대해 안 좋게 바라보아 작가와 작가의 모친이 싸운 적도 있다고. 하지만 단순히 등산을 가서 실종된 만큼 종교단체와의 연관성은 적은 것으로 보는 분위기.

그런 가운데 8일만인 9월 19일 가파른 절벽 아래(현장 사진)(시체가 보이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 절벽의 사진이니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에서 본인으로 추정되는 시체가 발견. 현장 사정상 이튿날인 20일에 확인작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본인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사이에 몇몇 언론에서는 사람들을 낚으려는 듯 "짱구 작가 사체 발견" 이라는 제목으로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기도.

결국 치형대조 결과와 가족의 확인절차를 통해 신원불명의 시체가 우스이 요시토 본인으로 판명되었다.

현재 밝혀진 사인은 소지품인 카메라에 찍힌 사진에 의하면 벼랑 밑의 풍경을 찍다가 실족사한 걸로 보고 있다고 한다. 등산로 자체는 완만한 편인데 사진을 찍으려고 험한 곳에 가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방송에서도 해당 사건이 위기탈출 넘버원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재연극에서의 지나친 희화화 때문에 사고 자체의 안타까움이 굉장히 변질됐다. 팬들이 보면 기분 나쁠 정도. 반면 애니메이션을 정식방영하는 투니버스에서는 9기 첫회에서 해당 사건을 추모하는 소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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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이후 픽시브에는 우스이 작가를 추모하는 그림들이 올라왔으며 天国へ漫画を描きに行った男(천국으로 만화를 그리러 간 남자)라는 태그가 생겼다.
  1. 참고로 왼쪽 사진은 2007년경 김혁이 도쿄에서 찍은 사진이다. 출처
  2. 우스이 요시히토라고 읽혀지기도 한다. 참고로 살아생전 한국의 영화감독이자 테마파크 기획자인 김혁과 만난 자리에서 이름을 요시히토라고 불러달라고 언급한 바 있다.
  3. 크레용 신짱도 성인적이라고 한국에서 비판을 받았는데 우스이 요시토의 진짜 성인물에 비하면 신짱은 아동만화가 맞다... 우스이의 다른 만화에 흔히 등장하는 SM이나 검열삭제 암시 부분은 신짱에서도 나오지만 수간, 혼전임신, 3P, 풍속업소 등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4. 그런데 한국판에서는 반대로 짱구가 '일본에' 여행을 간 것으로 되어있다. (…) 신짱이 김치를 먹고 맵다고 기차가 되는 장면이 있는데 한국판에서는 일본 음식을 먹다가 맵다고 난리를 치는... 아마도 와사비? 물론 서울문화사 발매본 기준의 이야기이다. 나중에 재발간된 학산문화사 판에서는 이 부분이 제대로 수정되었다.
  5. 작중 TV의 형사 드라마에서 극장판의 모습으로 등장했다.참고로 이때 개그만화표절죄(...)로 형사들에게 쫒겼다.
  6.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331화의 마츠자카 선생의 사랑의 결말 편인데(국내에서는 6기 에피소드) 이 때 나온 노래가 希望の轍(Kibouno Wadachi) 라는 곡이다.
  7. 도라에몽 작가 역시 만화 연재 중 96년 병으로 타계하였다.
  8. 두 만화 모두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고, 작가가 도중 사망하였으며 애니메이션 송출 방송국이 같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