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천전리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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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름 그대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위치한 길이 9.5m, 높이 2.7m의 암각화. 선사 시대부터 신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기록되었다. 태화강 상류에 위치한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147호이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도 바로 옆은 아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1]

2 명칭

다만 명칭은 원래는 각석(刻石 : 새긴 돌) 이라고 이름붙여졌으나, 이후 서석(書石 : 글을 쓴 돌)이라고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서석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역사학계에서는 엄연히 새겨진 금석문 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암각화[2]라고 부르는 것을 권하고 있다.

물론 울산광역시는 각석이라는 명칭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여(...) 각석, 서석, 암각화가 통용되고 있다. 이 항목에서는 금석문 외의 가치도 고려하는 역사학계의 주장을 고려하여 암각화로 표기한다.

3 내용

명문은 여러가지가 새겨져 있으나, 1차적으로는 신라 법흥왕 12년에 사탁부를 다스리던 사부지 갈문왕(사서에는 입종 갈문왕)과 그 누이 어사추여랑왕을 비롯한 여럿이서 놀러를 왔는데 돌도 참 좋고 해서 여기다 방명록 남기고 가염~ 이라는 내용이다(...) 같이 온 사람들과 사냥을 즐긴 사람, 음식을 한 사람과 명문을 새긴 사람까지 모두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사부지 갈문왕은 법흥왕의 동생이자 진흥왕의 부친. 이상의 내용이 원래 새긴 것이라 하여 원명(原銘)이라고 한다.

그 후 새긴 추명(追銘)은 1차 내용, 즉 원명을 새긴 것이 법흥왕 12년 6월 18일 새벽이었으며(...) 그 후 세월이 흘러 사부지 갈문왕과 당시 같이 놀러왔던 누이 어사추여랑왕이 죽었고, 이에 법흥왕 26년 7월 3일 지소태후가 어린 삼맥종(훗날의 진흥왕) 등을 데리고 옛날에 남편과 같이 새겼던 글을 기념하려 왔다는 것이 그 내용. 역시 이번에도 총책임자, 예를 드리러 온 사람, 음식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이름을 단순히 나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디의 누구, 누구의 부인 누구 라는 식으로 정확히 적어놓았지만 이 중에 누구인지 확인이 안되는 사람도 있다.[3]

이상 원명과 추명은 사각형의 테두리를 그어놓고 매우 공들여 조각한 내용이고, 그 외 기타명이라고 하여 엉망진창으로 새겨놓은(...) 것들이 많은데 이 역시 화랑 등이 놀러와서 자기들 이름이나 메세지를 새겨놓고 간 것으로 알려져있다. 예를 들면 무오유월이일 영랑성업(戊午六月二日 永郞成業)으로 추정되는 기타명의 경우 무오년[4] 6월 2일 영랑이 업적을 달성하다 라는 의미로 '영랑'이라는 화랑이 어떤 목표를 달성한 것을 기념하여 새긴 것으로 보인다.성지순례 왔습니다 의 오랜 역사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원래 명문이 새겨지기 전 부터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 근처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나 다른 선사시대 암각화들이 주로 동물이나 일상생활, 기원 등을 묘사한 것과 다르게 마름모 혹은 정사각형, , 꽈배기 모양 등의 기하학적인 도형 등이 다양하게 새겨져 있으며, 대부분의 도형을 이중선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신라시대 사람들은 석기시대 그림 밑에다 글을 새긴 것이다. 이것들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4 관람

울산광역시에서도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울산 버스 304를 이용하면 갈 수 있는데 계곡 안쪽에 있어 자가용을 이용하던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어느 정도는 걸어야 한다. 반구대 암각화와 달리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1.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둘을 세트로 묶어서 둘러본다.
  2. 다만 엄밀히는 암각화 라기보다는 암각(돌에 새김)이라는 명칭 만으로 충분하지만, 울진 반구대 암각화 등의 명칭과 통일성을 고려하였다고 한다.
  3. 사부지 갈문왕의 누이라고 언급되는 어사추여랑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법흥왕의 왕비, 갈문왕의 왕비가 추명에서 언급되기 때문에 법흥왕과 사부지 갈문왕에게 여자형제가 있었던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4. 위 원명 추명이 새겨진 시기(법흥왕~진흥왕 재위기) 비슷한 시기의 무오년은 538년, 598년, 658년, 718년, 838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