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무종

몽골 제국의 역대 대칸
6대 테무르 울제이 칸7대 카이샨 퀼리그 칸8대 아유르바르와다 칸
원의 역대 황제
2대 성종 테무르3대 무종 카이샨4대 인종 아유르바르와다
묘호무종(武宗)
시호인혜선효황제(仁惠宣孝皇帝)
칸호카이산 퀼리그 칸(ᠬᠠᠢᠰᠠᠨ ᠬᠦᠯᠦᠭ ᠬᠠᠭᠠᠨ)
(海山 曲律汗 / 해산 곡율한)
보르지긴(ᠪᠣᠷᠵᠢᠭᠢᠨ)
(孛兒只斤 / 패아지근)
카이산(ᠬᠠᠶᠢᠰᠠᠩ)
(海山 / 해산)
연호지대(至大) : 1308년 ~ 1311년
생몰기간1281년 8월 4일 ~ 1311년 1월 27일
재위기간1307년 6월 21일 ~ 1311년 1월 27일

몽골 제국의 제7대 카간(또는 대칸)이자 원의 제3대 황제. 시호는 인혜선효황제(仁惠宣孝皇帝). 쿠빌라이 칸의 장남 칭킴의 차남인 다르마발라의 차남이다. 휘는 카이샨(海山)[1].

생몰연도는 1281년~1311년, 재위연도는 1307년~1311년.

1307년 성종이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죽자 후계자 쟁탈전이 시작된다. 이 정쟁의 중심에는 오랫동안 외척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한 곤기라트 부족[2]이 있었다. 테무르의 황후 브르간은 곤기라트 부족과 이 부족을 지지하는 귀족들의 힘을 억누르기 위해 테무르의 종제인 안서왕 아난다를 차기 황제로 삼았지만, 방계 즉위에 의해 기득권을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한 중신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브르간과 아난다를 살해했다. 이들은 다르마발라와 곤기라트 부족 출신의 다기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뛰어난 장수로서 우구데이 칸국의 카이두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등 큰 공로를 세운 카이샨을 황제로 추대했다. 이 무렵 잠시 왕위에서 물러나 원나라에 있던 고려의 충선왕도 카이샨을 지지함으로써 훗날 무종이 즉위했을 때 심양왕 자리를 얻게 된다.

차가타이 칸국두아가 1307년에 사망한 뒤에 내란에 휩싸였는데, 이걸 기회라고 본 차파르는 1310년에 반란을 일으킨다[3]. 그러나 알말리크 근처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크게 패배해, 차파르는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원나라로 망명한다. 이로서 오고타이 칸국의 세력은 완전히 원나라에 흡수되었다.

무종은 즉위한지 4년 만에 사망했는데, 이 때 그의 아들들은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의 동생 아유르바르와다가 즉위한다.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무종의 차남이 8대 황제로, 장남이 9대 황제로 즉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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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몽골어 이름을 한역한 표기가 海山이다.
  2. 칭기즈 칸의 아내 보르테의 부족. 몽골제국이 설립된 후 칭기즈 칸의 후손들이 계속 이 집안과 혼사를 맺으면서 원나라의 대표적인 외척 가문이 된다.
  3. 차파르는 본래 오고타이 칸국의 칸이었다. 1306년에 원나라와 차가타이 칸국의 협공을 받자 차가타이 칸국에게 항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