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태자

반파국의 역대국왕
8대 혹은 9대 이뇌왕 ???10대 월광태자 혹은 16대 도설지왕11대 알수없음
왕명미상
태자책봉명월광태자(月光太子)
생몰년도522~529년 사이에 출생 ~ ?
재위기간알수없음, 혹은 도설지왕과 동일
아득한 풍경소리 어느 시절 무너지고

태자가 놀던달빛 쌍탑 위에 물이들어
모듬내 맑은 물줄기 새아침을 열었네
-월광사 비(碑)[1]

대가야의 태자. 16대 왕인 도설지왕과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존재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월광태자라는 이름은 시호가 아니다.

1 소개

석순응전(釋順應傳)에는 대가야국 월광태자(月光太子)는 곧 정견모주의 십세손으로 부는 이뇌왕이라 하는데 신라에 구혼하여 이찬 비지배의 딸을 맞아 태자를 낳았는데 이뇌왕은 뇌질주일의 팔세손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령현(高靈縣)

반파국 9대왕인 이뇌왕의 아들이다. 신라와의 혼인동맹을 체결하며 맞이한 양화부인이 월광태자의 모(母). 월광은 석가모니가 과거 세상에서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을때의 이름이다.

2 생애

그가 태어난 시기는 522년~529년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본기 법흥왕 9년의 기사에는 "9년(522년) 봄 3월에 가야국 왕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으므로, 왕이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누이를 그에게 보냈다."라고 적혀 있으며, 《일본서기》계체기 23년(529년) 3월 기사에서는 "가라왕(加羅王)이 신라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드디어 아이를 가졌다."라고 기록 되어 있기 때문.

차기 왕위 계승자였지만 이뇌왕대의 신라와의 갈등과 가야연맹의 친(親)백제 정책으로 인해 신라와의 적대 관계에서 신라인의 피가 섞여있는 월광태자는 왕위에 쉽게 오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도설지왕과 다른 인물이라고 한다면, 왕위에 오르지 못했던 강력한 이유일 것이고 도설지왕과 동일인물이라면 왕위에 오를때 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順應)이 월광태자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순응의 일대기를 담은 《석순응전(釋順應傳)》에 정견모주, 이뇌왕, 월광태자 등 대가야의 왕계가 소개되어 있는 이유는 단순히 대가야의 건국 신화나 가야산과 관련된 내력을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3 반파국 멸망후

반파국이 신라 진흥왕대에 멸망하자[2], 월광 태자는 거적사(擧德寺)에가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월광사(月光寺)에서 망국의 설움을 안고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져오는데 정확한 것은 알수가 없다.

또 진흥왕 12년, 반파국이 멸망하고 월광태자가 그의 어머니 양화공주[3]와 함께 지금의 고령으로 피난 가던 도중 신라의 군대를 만나 다시 합천으로 이동했으나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전승도 전해진다.

어찌됐건 망국의 왕족으로서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4 도설지왕과의 관계

기록상으로 도설지 왕은 반파국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져 있고 월광태자와 관련된 기록들도 반파국의 멸망 이후 행적들에 대해 전승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공통점이 많다. 그리고 도설지왕의 이름으로 알려진 도설지(道設智)라는 이름이 "달(月)지"로 풀이가 되기 때문이다. [4]

월광태자가 10세손으로 기록되어 있고, 도설지왕은 16대 왕이라고 기록 되어 있지만 10을 16으로 잘못 기록하였거나, 10대는 직계이며 16대라는 수를 왕계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 도설지왕과 월광태자가 동일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반파국의 왕은 총 대수가 16대이지만, 도설지왕은 이진아시왕의 10세손이 될수 있다.

5 관련 유적

거덕사(擧德寺) 절터는 해인사 서쪽 5리에 있다.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에, “그 서쪽 산 두 시냇물이 합치는 곳에 거덕사라는 절이 있는데, 옛 대가야국(大伽倻國) 태자 월광(月光)이 결연(結緣)한 곳이다.”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제 30권 합천군(陜川郡)

월광태자가 불교에 입문한 절이라고 알려져 있는 거적사는 현재 합천 해인사 주차장 입구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정학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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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는 월광사는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후기 양식의 3층석탑 2기만이 남아 있다. 건물들은 모두 현대식 건물. 맨위에 언급된 월광사 비 또한 월광사에 위치해 있다.

고령군에 가면 태자가 걸었다는 달빛길이 있다.

6 관련 항목

  1. 월광사 내에 있는 비석에 새겨져 있다. 전승에 의하면 이 문구는 월광태자가 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2. 진흥왕 순수비 중 창녕비에 월광태자가 등장한다. 신라계인 월광태자는 신라군 장군으로서 대가야 멸망에 한 축을 담당했을 수도 있다.
  3. 양화공주란 이름은 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4. 어미에 붙은 지(智) 혹은 지(知)등은 신라도 사용한 마한어에서 "~님"이라는 존칭어이기 때문에 진짜 이름은 이들을 빼야 된다. 고로 도설 = 달이라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