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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윤후덕(尹厚德) |
출생일 | 1957년 1월 9일 |
출생지 | 경기도 파주시 |
최종 학력 | 경기대학교 정치학 박사 |
소속 정당 | 더불어민주당 |
종교 | 개신교 |
좋아하는 문구 | "정의가 강물처럼" "우리는 하나다" |
약력 | 현) 제20대 국회의원 노무현재단 자문위원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금촌초등학교 총동문회장 파주발전시민연합회 비대위 자문위원 파주 GTX추진연대 자문위원 야당역 조기착공추진위원회 자문위원 전) 민주통합당 파주지역위원장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노무현정부 국무총리 비서실장(차관급) 노무현대통령비서실 5개 비서관 역임 |
외부 링크 | 블로그 |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 19대, 20대 국회의원(경기 파주시 갑)이다.
2 생애
파주 금촌초등학교, 서울 서대문중학교,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훗날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76학번으로 연세대 운동권 내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긴급조치 9호에 대항한 연세대 운동권의 활동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특히 사회과학대 내부의 운동권 조직을 만들었던 인물이었다. 이 당시 같이 운동권으로 활약했던 인물이 김영환, 노영민, 우원식 같은 인물로 모두 실무 선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운동권 이력으로 인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기는 어려워졌고, 1984년부터 출판사 세계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987년 <<강좌철학>>과 <<경제사학습>>이라는 책을 출판한 혐의로 국가보안법 상 이적표현물 출판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1988년 사면복권되었고, 1990년 다시 <<노동해방철학>>과 <<한국민족민주의 쟁점>>이라는 책을 출판한 혐의로 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1993년에 이르러서야 복권되는 등, 책을 냈다가 3년간 3번이나 구속될 정도로 고초를 겪었다. 사실 이 책을 펴냈다는(윤후덕은 저자가 아니라 출판사 대표로 책을 펴낸 것이다!) 이유로 감옥을 갈 정도는 절대 아니긴 했던, 그야말로 군사정권 시절의 상징적인 에피소드였다.
감옥 살이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고, 사회과학 출판이 퇴조하기 시작하자, 1991년 출판사를 청년사에 매각한 후, 정계에 투신하게 된다. 그가 보좌관으로 같이 하게 된 의원은 김원길 의원. 재경위 소속의 김원길을 따라 김원길의 14대부터 16대까지 의원 생활 모두를 보좌하면서 그의 최측근으로 활약한다. 2001년 김원길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하자, 장관 특별 보좌관으로 바로 임용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 두 사람은 그러나 2002년 결별한다. 김원길이 노무현을 지지하는 대신에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것을 선언하자, 윤후덕은 끝까지 반대하다가 사표를 내고 민주당 잔류를 선언한 것. 한창 보수적 성향의 의원들이 한나라당으로 옮기면서 골머리를 앓던 민주당은 윤후덕의 잔류 선언에 고무되어 그에게 선대위 부대변인 자리를 내준다. 그리고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되자, 윤후덕의 앞날에 서광이 비치게 되었다. 인수위 재경분과 전문위원 선임을 시작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정무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 정책기획비서관, 국무총리 비서실장까지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총선에 고향격인 파주 출마를 선언하고, 출마했지만 이 당시에는 민주당 쪽이 전멸하던 시절이라 한나라당 황진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대신 지역위원장 자리를 지키고, 정책위 부의장을 지내는 등 당 내에서 입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9대 총선에서는 파주 지역이 분구되면서 운정신도시 중심의 파주 갑 지역 출마를 선택해 정성근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이 때부터 친문재인 계열의 핵심 의원으로 분류되었다.
대선 종료 후에는 평범한 의정 활동을 보내다가 아래 딸의 취업 청탁 논란에 휘말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실제로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1차 컷오프 되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지역 관리를 잘 하면서 지역 내 대안도 없었던 것에다가 청탁 논란이 상대적으로 과장되었다는 점 때문에 극적으로 구제를 받으면서 출마, 19대 총선에 비해 약간 지지율이 줄었지만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며 정치적 위기를 넘겼다.
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파주) | 통합민주당 | 27,764 (28.73%) | 낙선 (2위)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파주 갑) | 민주통합당 | 43,456 (57.45%) | 당선 (1위)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파주 갑) | 더불어민주당 | 53,030 (51.6%) | 당선 (1위) |
4 논란
로스쿨 졸업자인 딸[1]을 취업시켜달라며 대기업에 청탁한 의혹이 2015년 8월에 제기되었다. 윤후덕 의원의 지역구인 파주에 대규모 디스플레이 공장을 갖고 있는 LG디스플레이의 한상범 대표에게 부탁하여 딸을 법무팀 직원으로 채용시킨 혐의를 받은 것.
이에 대해 윤후덕 의원은 “부탁한 것은 아니고 딸의 지원 사실을 알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화는 했지만 청탁은 아니고, 청탁일 수는 있겠지만 외압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LG디스플레이 측은 윤후덕 의원의 딸이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을 수석졸업했기에 선발했다고 해명하였지만, 팩트를 확인한 결과 윤후덕의 딸은 이대 로스쿨 수석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