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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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은 남학교, 빨간색은 여학교이다. 글자색이 빨간색인 학교는 나무위키에 아직 문서가 개설되지 않은 것이다.

학교법인 중동학원
고등학교중동고등학교
중학교중동중학교

교표

엠블럼
삼성라이온즈가 아니다
한글중동고등학교
한자中東高等學校
영문명Joongdong[1] High School
개교1906년 4월 2일
교훈정직, 근면, 청결
교화목련
교목은행나무
성별남자고등학교
상징동물사자
유형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운영형태사립
학교법인중동학원
주소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로 7
(일원1동 618번지)
홈페이지

1 개요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2 역사

1906년 4월 2일 관립외국어학교 내에 오규신, 유광렬, 김원배 선생이 한어, 산술 두 과의 야학당을 설립하였고, 초대 교장으로 오세창 선생이 취임하였다.
1907년 1월 22일 중동야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09년 5월 10일 중동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1914년 2월 15일 종로구 수송동 85번지로 이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중동중학교로 개칭하였다.
1948년 7월 31일 재단법인 중동학원을 설립하였다.
1951년 8월 25일에 중동고등학교로 인가되었다.
1984년 3월 1일 강남구 일원동의 신축교사로 이전하였다.
1994년 6월 1일 삼성그룹이 중동고등학교를 인수하였다.
2006년 5월 13일 개교 100주년 기념식이 진행되었다.
2009년 7월 17일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3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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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부지는 총 21,686m2 (6575평). 참고로 사진에서 가까운 쪽 건물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영희초등학교. 왼쪽 가운데 건물이 중동고등학교 건물이다.

파일:MWbB1Twl.jpg

3.1 백주년 기념관

창조관, 컨퍼런스룸, 체육관이 모두 여기 속한다. 위 사진에서 제일 앞에 있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두 건물.

3.1.1 창조관

15.jpg

중동고등학교 신입생 대상 진로프로그램 中

대강당. 학교 정문에 들어가서 왼쪽 문으로 들어가 바로 옆에 있는 돌계단을 두 번 올라가면 나온다. 시설 자체는 오른쪽 건물에 있긴 한데 오른쪽 건물에 있는 계단은 바로 연단으로 들어가는 것과 귀빈이 쓰는 것밖에 없다. 본관 기준으로 3층 복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수용인원은 350~400명[2]. 축제 때 주요 공연 등을 한다. 분명히 많아봤자 400명 정도 입장할 수 있는데 축제나 입학설명회 때는 600명은 들어간 것 같다(…). 2013년 축제때는 계단에도 2~3명씩 앉아서 꽉꽉 채웠다

3.1.2 컨퍼런스룸

소강당. 창조관과 같은 건물에 있지만 1층에 있다. 오른쪽 건물로 바로 들어가면 왼편에 있다. 수용인원은 100명 정도. 임원 전체 소집, 동문 선후배 멘토링, 자치법정, 이공계 프런티어등 중소규모 행사에 이용된다.

3.1.3 체육관

교문 바로 앞의 넓은 공터 바로 왼쪽에 있는 것. 입장시에는 위에 나온 창조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특수할 때에는 공터로 열린 문을 개방한다. 조명장치와 음향시설, 연단이 갖추어져 있어 필요시 강당으로 쓸 수 있다. 주 쓰임새는 축제 시 동아리 부스 설치,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 행사장, 비오는 날 체육수업, 그리고 검도수업

3.2 성큰 가든(Sunken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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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된 사진입니다 저게 조명이었어?[3]

창조관 다리 밑으로 지나가면 나오는, 쑥 들어간 지대. 내려가면 매점과 식당,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문이 나온다. 점심시간에는 여기로 줄을 선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성큰가든으로 불리우고 있다. [4]. 성큰 콜로니와는 관계 없다

아이스크림이 판매되면서 쓰레기 처리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지역임을 표시하는 팻말을 붙혔는데 거기에 성큰가든이라고 적혀있었다. 그전에는 다들 아고라라고 불렀다.

3.3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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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관 1층
교장실, 행정실, 인쇄실, 방송실, 도서관, 숙직실, 3학년 1~5반
  • 본관 2층
컴퓨터실[5], 전산실, 프런티어실[6], 보건실, 3학년 6~12반, 체육부실
  • 본관 3층
제1교무실, 학생지도실, 학생회실, 영어교실, 음악실, 2학년 1~8반
  • 본관 4층
제2교무실, 미술실, 다용도실, 1학년 1~4반, 2학년 9~12반, 세미나실 1학년 4반은 2학년 반과 유일하게 같은 복도를 쓰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본관 5층
물리실, 화학실, 생물실, 지과실, 각각의 준비실, 과학조교실, 1학년 5~12반

3.4 엘리베이터

체육관 건물에 설치되어 있다. 1~5층까지 운행하지만 왠지 학교에서는 타지 말라는 분위기. 대놓고 매 층마다 장애 학생을 위한 시설이라며 이용을 자제하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물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 다들 선생님들이 없으면 타고 다닌다. 아예 선생님이 보여도 문이 먼저 닫히면 된다(...)는 마인드로 타고 올라간다. 딱히 선생님들이 단속하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한편 학교에서 타지 말라는 건 그렇다 치고, 왠지 학생회와 선배들이 학생들 엘리베이터 타는 걸 막는 경우가 있다. 물론 자기들도 다들 타고 다닌다. 일화로는 2학년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승한 1학년들한테 눈치를 주다가 같이 자리하고 있던 3학년한테 데꿀멍한 일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그냥 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선생님한테 걸리면 선생님들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무 말 안하시는 분도 계시고 즉각 벌점부여하는 선생님도 계신다.

3.5 기타

운동장, 테니스장, 농구장, 체육창고, 수위실, 목공실, 기계실

4 중동고등학교의 학생문화

  • 경례가 존재하는데, 구호는 '정직'이다. 다만 경례구호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학교에 경례가 있다는 게 전혀 좋은 일이 아니라서(...)게다가 모르고 들으면 당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하겠다 정식? 정신? 1년 내내 별로 쓰지도 않는다대체로 학생회장 유세 때 사용하지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사용하기도 하고 체육 시간에 일부 선생님들에 한해 사용하기도 한다.[7] 70년대에도 쓰던 역사 깊은 구호. 고집도 지지리도 세다
  • 명찰이 한자[8]로 적혀 있다. 주변 학교들과는 차이가 있는 모습. 노란 한자가 쓰여져 있는 검은 명찰은 한창 쌈질하던 시절 근처 학교 학생들에게 중동의 상징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덕분에 새학기의 중동인들은 서로의 이름을 물어봐야 해서 쉽게 친해진다 카더라 사실 학생들의 인권과 사생활 보호를 위한 선생님들의 뜻 깊은 방책이라는 드립도 존재. 이 때문에 잃어버린 교복을 찾아도 주인한테 줄 수 없는 웃지 못할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특히나 이름에 복잡한 한자가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선생님들도 못 읽는 경우가 나온다(...) 명찰의 테두리 색깔은 학년에 따라 구분되는데 원래는 진남색-녹색-흑색이었으나 흑색과 진남색이 구분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진남색이 적색으로 대체되어 적색-녹색-흑색으로 바뀌었다. 한 3학년 학생이 성큰가든 위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또다른 3학년을 1학년인줄 착각하고 눈치줬다가 뻘쭘한 상황이 있었던 사례도 있다. 당시 바로 옆에서 봤는데 지금보다는 권위주의적 문화에 젖어있던 시절이긴 했지만 해당 학생이 워넉 그런 쪽으로 민감한 부류였던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 수능 전날이면 '수능 출정식'이란 걸 한다. 나름 유명한지 매해 수능 당일날 저녁 뉴스를 보면 자료 화면으로 뜨기도 한다. 수능 전날 3학년은 일찍 끝나는데, 1, 2학년 학생들이 학교 마당에서 교문까지 늘어서서 박수를 치거나 응원가를 연호하며 재수기깃발[9]을 펄럭이고 3학년은 그 사이를 걸어 교문을 나가는 것.그리고 그 길로 바로 수능시험장을 답사하러 간다교문 쪽에는 선생님들이 나와서 격려해 주신다. 당연하지만, 매년 행사 때마다 바로 길 건너 앞에 아파트에서는 민원이 폭주한다고(...) 그리고 그날 밤 11시, 몇몇 동아리 소속 1,2학년들은 현장수능응원을 위해[10] 각자 소속된 동아리가 모이는 학교 앞으로 가서 노숙을 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목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응원가 부르기, 경례하기, 절하기 등을 하고 시험 시작하면 해산한다. 방송사나 신문사의 기자가 응원 장면을 촬영하고 인터뷰하기도 하는데 높은 확률로 당일 지상파 방송의 메인 뉴스에 등장한다. 이때 복장 원칙은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만이다. 그래서 응원이 끝나면 몸이 굳어버리는 참사가 발생한다. 응원 끝나고 땀에 젖었다면 감기는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학교 내부응원. 일부 가사가 검열삭제되어있다.
수능당일 현장응원
  • 권위주의적 선후배 관계가 은근히 최근까지도 유지되었다. 지금도 유지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것은 대표적인 금기 중 하나.[11] 근데 그건 지금도 그렇다 특히 일부 역사가 깊은 동아리에서 그런 모습이 심했다. 모 동아리의 경우 후배가 선배를 볼 경우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를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동아리 신입 후배 기수가 말을 안 듣는다고 얼차려를 주자고 하는 모습도 보였다.
현재는 상당히 완화된 모습이라지만 학교 차원에서 경례를 유지시키는 모습 등을 보면 이런 쪽으로 예민한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불편할 수 있다. 애초에 타파되어야 할 현상이기도 하고. 물론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금방 적응하고 선배랑 잘 지내기도 한다. 다만 2010년 자율형 사립고 전환 이후 매년 빠르게 완화되고 있고,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그래도 요즘도 한 해에 한두 번씩은 선후배간에 갈등이 발생한다. [12]사실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웬만해선 선배 볼 일도 없다

원래는 신입생 들어오고 동아리 선발하고 하는 3-4월경에는 점심시간그래 신문부 너네 말이야나 방과 후에 경례구호가 교내를 울렸는데 2016년 이후로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동아리 면접 폐지로 인한 효과인 듯.

  • 이렇게 옛날부터 단결력을 자랑하다보니 싸움 잘 하는 학교 이미지가 있었다. 근데 그거 안 좋은 건데... 가끔씩 옛날 중동고가 싸움 붙은 내용의 신문기사가 돌기도 한다.[13] 실제로 잘 싸우긴 잘 싸웠는지, 1970년대 중앙고등학교 재학생 증언에 따르면, 학교 간 패싸움이 벌어질 때 "중동 모여라!" 소리만 들리면 서로 싸우던 다른 학교들이 즉시 연합해서 중동을 상대해야 했을 정도라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들은 바로는 자신이 학교에 부임한지 몇 년 안 되었을때 수학여행에서 패싸움이 붙었는데, 옆에 한 50대 중년 아저씨가 겉옷을 벗으시면서 "내가 중동 00회다!" 하며 무리 속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겁을 먹었다고 한다.

사실 싸움 잘하는 데는 역사가 길고 규율이 강한 전통도 있엇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축구부, 레슬링부, 역도부, 아이스하키부(!)등이 전국 수위권일 정도로 운동을 잘 했고 운동부원들 결속력도 강해서이고, 두 번째 이유는 야간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간부는 일찍 하교하는 중학교와 같은 교실을 썼는데, 주경야독하는 건실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중학교때부터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해서 온 학생들, 가정 형편 때문에 몇 살이나 나이 더 먹고 느지막히 들어온, 거칠게 살다 온 학생도 많아서 주먹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포동 이전 전까지, 학교가 있던 서울 중심가 종로 세종로 등지에서는 중동 학교 뱃지나 검은 명찰, 교표인 사자가 그려진 버클을 차고 있으면 타 학교 불량 학생들도 잘 건드리지 않았다. 해당 학생은 혹시 약할수 있지만, 곧 그 친구나 선후배들이 몰려와서 개박살을 낼수도 있었기 때문. 학교 역사가 깊다 보니 교사들도 거의 다 동문 선배들이었는데, 학교 밖에서 싸움질을 했어도 타 학교에서 맞고 온 친구를 도와주러 가서 패주고 왔을 경우라면 대충 간단한 기합만 주고 무마해 주기도 했었으니...

  • 70-80년대엔 중동 아이스하키부, 축구부가 강력하여 중동 출신 국가 대표, 프로 선수가 꽤 있었다. 축구협회 회장을 지낸 조중연, 동 시대의 조영증 등이 그 예.
  • 축제는 백농축전이라는 이름 하에 2학기 말, 12월에 열린다. 원래는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난 이후였는데[14], 2014년부터 옮겨졌다. 3학년의 축제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지만, 수능이 끝난 시점이라 3학년은 그때 그냥 다른 데서 논다. 아니, 애초에 학교도 잘 안 나온다. 축제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며, 첫째날은 본교 학생들끼리, 둘쨋날은 다른 학교들까지 함께 축제를 진행한다. 2016년 기준으로 백농축전은 하루로 축소되었다. 동아리가 뺑뺑이로 바뀐 것과 같은 해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이상한 부분. 교장 선생님: 공부나 해라. 빙과 실사판일지도
  • 위 시설 항목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특이하게도 1주일에 1시간 검도수업이 존재한다. 학생들은 검도수업을 대체로 싫어하는 분위기지만 칼 갖고 논다고(...) 재미있어하는 모습도 가끔 보인다.걸리면 오리걸음으로 농구코트 한바퀴 원래는 2012년까지는 2학년까지 대상이었지만, 학생들이 싫어해서인지 108기부터 1학년만으로 대상이 축소되었다. 물론 체육시간 때는 여느 남고가 그렇듯이 축구와 농구로 갈리지만 가끔씩 테니스 코트를 개방해 테니스를 치거나 족구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몇몇은 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한다. 야구공과 글러브를 가져와서 캐치볼을 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어떤 학생이 비품으로 있던 소프트볼로 운동장쪽 유리를 날려먹고 사람까지 다친 뒤엔. 인쇄물로 제발 하지 말라고 하면서 금지했으니 적당히 봐가면서 하자.
  • 학생회장 선거는 2학년 회장, 부회장과 1학년 부회장이 한 팀을 이루는 런닝메이트 제도이다.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선거철이면 등교시간에 교문이 떠나가라 선거구호를 외쳐댄다(...). 선거구호라고 만드는 것들이 어째 매년 꽤나 유치해서 오히려 학생들이 민망해한다.
  • 1학년들의 경우 2학기 기말고사까지 다 끝나고 나면 학생회 주최로 축구대회를 열었다. 겨울철에 하다 보니 정신없이 축구하다가 미끄러져(...)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눈 좀 치워라 불미스러운 사고 이후 109기부터는 더이상 겨울에 하지 않는다. 2016년 입학생인 112기의 경우, 아예 축구대회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 한편 2학년들은 축제기간 즈음에 농구대회를 열였다. 전통적으로 이과에서 우승반이 나왔지만 108기 때는 문과에서 우승반이 나왔다.

5 동아리

동아리의 신설이 자유로운 편이다. 다만 학사과정상 1학기 동아리 선택 이전까지는 만들어야 한다. 일정이 상대적으로 빠듯하고 잘 모르기 때문에 별로 없는 케이스지만 신입생들도 동아리를 만들 수 있다.

2015년까지는 일부 동아리 신입생 선발 때 면접을 봤고 이 중 몇몇 곳은 2차 면접까지 실시하는 곳도 있었다.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은 이후에 나머지 동아리 중 지망 동아리를 제출하고 배정을 받아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문헌정보부, 방송부, 신문부, 영자신문부 4대 동아리가 먼저 선발하고 이후에 일반 선발반 동아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선발 동아리 및 일반 선발동아리의 결원을 추첨으로 뽑았는데 2015년 이전부터도 면접이 계속 축소되는 추세였고 매년 신학기마다 동아리 면접이 폐지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그러다 2016년에 들어서부터 모든 동아리는 뺑뺑이로 선발한다고 동아리 선발 일주일 전에 확정되었다. 1,2,3지망 동아리를 종이에 써서 제출하면 그 내용을 일일히 직접 컴퓨터로 입력해서 뽑는다. 랜덤이기 때문에 생각지도 않던 동아리에 붙게 될 수도 있고, 3지망까지 한 군데도 안 붙을 수 있는데, 이럴 땐 추가적으로 4,5,6지망을 쓴다. 이 때도 뺑뺑이로 뽑는다. 드물게는 7지망까지 떨어져 무려 8지망까지 가서야 붙은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은 변화에는 오래 전부터 면접으로 뽑는 것에 대한 학부모들의 항의가 많았던 등의 이유가 있었다는 학교 측의 설명이 있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갈리는 듯.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동아리 선발철마다 경례구호로 학교가 시끄러워지거나 매년 면접장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등 문제가 있는 방식이어서 언젠가는 없어져야 했던 일이라고 찬성하며,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특성에 맞는 신입생을 선발할 수 없게 되어서 손해라고 한다.

실제 4대 동아리 소속 110기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파일:Facebook com 20160521 115015.jpg

면접으로 뽑던 일부 동아리들에서는 추첨으로 배정된 학생들은 제대로 된 마음가짐이 갖춰지지 않은 학생들이 뽑히며 기존 면접으로 뽑힌 학생들은 뺑뺑이로 들어온 신입생들을 싫어하며 동아리에 애정이 없다고 한다. 일례로 얼굴을 많이 보는 동아리인 문헌정보부는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동아리 학생들을 받게 되어 현재 1학년들을 아주 싫어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정책에 반발한 학생회가 몇 번을 교장실에 찾아갔지만 교장선생님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도 한다.

학교에서는 이런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몇몇 학생들이 반발해도 2년만 있으면 면접으로 뽑히던 학년은 다 졸업하게 될 테니 이래저래 그냥 정착될 듯.

5.1 동아리 목록

가나다순으로 정리

  • 경영경제연구부 (PLUTUS) 프로토스 블루투스 플루투스
  • 그린스카우트(GS)
  • 농구부(안타레스)
  • 독도아리
  • 모의유엔부 (MUN) 모유
  • 문예부
  • 문화비평부
  • 문헌정보부(METIS)
  • 물리부
  • 미술부
  • 방송부 (JBS)
  • 배드민턴부
  • 밴드부 이그니션
  • 사진부
  • 산악부
  • 생명과학부
  • 소설창작부
  • 심리부
  • 수학연구부 (Polaris)
  • 신문부 (JDNP)
  • 역사탐방부
  • 앱개발부
  • 야생조류연구부 (새처럼)
  • 영자신문부 (Lion's Pride)
  • 인터랙트 (INTERACT)
  • 중동국제협력부 (JOICA)
  • 중동반크 (JDVANK)
  • 중동오케스트라
  • 테드부(Ted)
  • 토론부 (Veritas)
  • 풋살부
  • 학교홍보부 (HERMES)
  • 화학부
  • RCY
  • 영화제작부(MASK) 2014년 폐부존속기간 1년
  • 모형부(CMC) 2008년 폐부
  • 다도회 2006년 폐부
  • 댄스부(CBR) 2005년 폐부
추가바람.

6 출신 인물

7 트리비아

  • 위에서 스치고 지나간중동고 학생들과 개포고 학생들과 큰 싸움이 유명하다. 경과는 다음과 같았다.원문 출처
5월 11일 : 중동고생이 개포고 담벼락에 축제 포스터를 붙이려다 개포고생들에게 집단 폭행당함. 이후 양교 학생들 사이 수차례 시비, 폭행 발발 (오락실, 아파트단지 등에서 집단폭행)
5월 18일: 개포고 운동장에 들어선 중동학생 60명이 "비겁자 개포고" 구호 외침. 그러자 개포고 여학생들이 창문으로 야유를 부림. 중동고 학생들 각목들고 올라가 4개 여학생반 유리창 깨뜨리는 등 난동을 부렸으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도망침.
뉴스기사 내용에 덧붙여 실제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개포고 복도에서 갑자기 누군가 '중동만세~~!' 하면서 지나갔고

이후 중동고 학생들이 위의 설명처럼 운동장에 등장 나머지 사건 전개는 기사와 같다.

이 사건 이후 중동고와 개포고 사이에서 마찰이 끊이질 않았고 어떤경우는 중동고생과 개포고생이 서로 싸우다 결국 두 학생의 부모가 만났더니 서로 회사 동료인 상황까지 가서 계속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개포고에서 개포고 학교 깃발을 들고 사과하러 왔고 중동측에서도 사과를 했었다.개포고는 왜 사과를 하지?
이때 경찰이 중동고에서 사건의 주동자를 잡으러 왔었는데, 결국 잡지 못했다고 한다.[15]

경찰이 처음에 사건의 주동자가 있으면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경찰은 경찰대로 운동장에서 계속 나오라고 하자 갑자기 처음에 누군가가 나오고 이후 또 누군가가 나오고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결국엔 중동 학생 전부가 다 나오자 경찰도 누굴 잡을 수가 없어서 결국 돌아갔다고 한다.참고로 수서경찰서가 걸어서 5분 거리

훗날에 한 선생님이 동문회에서 어떻게 그때 전부 나올 생각을 했냐고 묻자 3학년이 당시 운동장에 나가면서 당시 2학년을 끌고 나오고 2학년들도 나가게 되니 1학년들도 나가게 되었고 그 결과 모두가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 1992년 8월에 사립중고등학교 법인으로써는 이례적인 학교법인 중동학원 부도 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다. # 하지만 아래에 서술된 것 처럼 2년도 채 안된 1994년 초에 삼성그룹이 인수하면서 중동학원 부도 사태는 이례적으로 재빠르게 조기진압 되었다.
  • 1994년에 삼성그룹에 인수되었다. 삼성그룹의 설립자 이병철 회장의 모교라서 인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세계적인 명문고등학교를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리모델링, 해외탐방 등 804억원을 들여서 후원했지만, 썩어빠진교육부와 다른 커리큘럼을 고집하려는 삼성의 이견 때문에 2011년 삼성그룹에서 나가게 되었다. 사실 삼성그룹은 중동고등학교에 삼성 임직원 자녀 전형을 신설하고 싶었는데,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절대로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결국 중동학원에서 손을 떼었다는 설이 정설이다. 그래도 삼성은 삼성인지 상당한 규모의 돈을 재단에 때려박고 나갔다. 그리고 아직 그돈 까먹고 살고 있다(...). [16]. 팬택 회장이 중동출신이라 재단을 인수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팬택 망했잖아. 안될거야 아마.
  • 위와 같은 역사를 거친 중동학원은 현재는 딱히 불미스러운 소식을 들려오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학생들한테 너무 존재감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 몰라도(...) 이사들끼리 싸우느라 바쁘다 그치만 중동고 사이트에 있는 법인회의록을 보면 그 사이에 이사장이 바뀌고 이사 선임을 놓고 싸우는 등 문제가 많다 삼성 나가고 멘붕 실제로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어지간한 경우 재단이 있다는 것도 딱히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 뭐 몇몇 다른 학교들의 재단들이 횡포를 부리는 뉴스를 보면 이런 쪽이 훨씬 좋을지도? 다만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는지 강남으로 이전해 왔던 시점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재단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 벽에 재단 퇴진하라는 낙서가 나오고 학교측에서는 또 그거 잡겠다고 나서는 일이 종종 있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삼성이 인수하면서 상황종료
  • 참고로 교통편이 상당히 좋다. 교문 바로 옆이 서울시 지하철 3호선 대청역이고, 그 반대편으로 비슷한 거리에는 3호선 학여울역과 2호선 삼성역으로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런가 오히려 학교 바로 앞에 사는 학생들이 더 지각을 자주 한다. 졸업했어도 지각이 잦은 걸 보면 다 성격 탓이다.
  • 위의 이유로 1990년대 중후반 졸업생88~93기들에게는 "시내버스 288"이라는 괴랄한 노래가 구전되어 내려온다.[17] 2004년 서울 시내버스 대개편 이전의 288번에 빗댄 노래.
    • 109기 기준으로 들어본 바 없음.
    • 108기 기준으로 들어본 바 없음.
    • 105기 기준으로 들어본 바 없음.
    • 103기 기준으로 1학년 때 들어본적 있는 듯.
    • 100기 기준으로 일부 동아리에서 불렀다. 당시 신문부와 모형부는 지하에 있는 2중 구조로 된 문이 있는 동아리실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하인 특징으로 인 신입부원들이 이러한 응원가나 경례구호를 목터지게 했어야 했었다.
    • 94기 기준으로 들어본 적이 없다. 들었어도 별로 신경을 안썼던 듯.
    • 89기 기준으로 들어봤다. 수학여행가서도 떼창했었으니까. 근데 가사는 정확히 기억안남.
아무래도 실전된 듯 하다
  • 같은 재단 학교로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중동중학교가 있다. 많은 중동고 학생들의 출신 학교이기도 하다. 이쪽도 강남으로 이사올 때 같이 왔다는 모양.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원래 두 학교는 한 학교였었다. 1951년 학제개정에 따라 두 학교로 분리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행사를 함께 진행한다.
  • 강남 8학군의 고등학교 중 하나이다. 그리고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인 덕분에 학부모님들한테 관심이 많은 편이다. 당연히 내신 점수는 따기 어렵다는 말이다. 뭐 이 근처 동네에서 내신 따기 쉬운 학교가 어디 있겠냐만...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내신은 상관 없다. 나의 길은 오직 논술정시'라는 태도로 시험에 임하지만... 매번 학교성적표를 받아보고 눈물을 흘리는 건 어쩔 수 없다.(...)
  • 휘문고등학교와 함께 강남구에 있는 두 개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중 하나이다.그리고 둘다 남고이다 묘하게 휘문고와 비교되며 '휘문은 이과, 중동은 문과'라는 인식이 있으며, 서로 경쟁적인 분위기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중동고도 2015년 현재 2학년중 문과4반 VS 이과8반으로 이초(?)현상이 심각하다. 3학년의 경우는 문과5반 VS 이과 7반으로 주위의 다른 남고들에 비해 문과 반이 많은 편인 것은 사실이다. 2016년 또한 2학년은 문과 4반, 이과 8반으로 여전히 이초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18]
  • 전통 행사인 홈커밍데이가 있다. 졸업한지 30년이 되는 기수가 주체가 되어 5월에 열리는데, 선배들은 돈을 모아서 후배들에게 무언가를 사주는 게 전통이다. 양말이나 줄 꺼면 차라리 그 돈을 재단에 기부하시는게(...) 이병헌선배님 기대합니다.
  • 월드컵이 남고에 미치는 영향이란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사진은 중동고 사진이다. 2010년 104기에 찍은 사진.

파일:A/oy8Iy.jpg

  • 2012년 입학생부터 교복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남색 상의에 갈색 바지였지만 이후 정장식의 하얀 와이셔츠에 검정 바지와 마의로 바뀌었다. 적용 대상은 자사고 3기, 즉 108기부터였으며, 2014년 110기가 입학함으로써 완전히 교체되었다. 여담으로 신형 교복의 바지가 아무 수선을 하지 않아도 상당히 다리에 달라붙는다. 이 때문에 가끔 외부인이 보면 바지 줄였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 한창 자사고로 지정받기 위해 경쟁할 때, 남녀공학이 아니라서 불리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진지하게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려는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만일 자사고 지정을 위해서 남녀공학으로 전환됐다면 아마 자사고 첫 입학생인 106기쯤부터 적용되었을 것이다. 물론, 다들 알겠지만 자사고 지정받는 데에 성공했고, 중동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 되는 경우는 일어나지 않았다(...)혹시 아쉬운 사람이라도? 네가 딸 있으면 중동처럼 남자 분위기 철철 넘치는 학교에 보내겠냐?
  • 중동이 남녀공학을 고려했던 것이 이 때가 처음은 아니다. 84년 수송동에서 대치동으로 이전했을 당시, 강남 8학군에 남학교는 2개 늘어난데 반하여 (중동고 이전, 단대부고 신설) 여학교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8학군 전체적으로 남고 정원은 남아돌고 여고 정원은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대치동 이전 직후 입학한 80기의 경우 3월에 입학한 학생수는 15학급 정원에 겨우 9학급 ... 전학생들을 받아들여 몇 달 후에는 12학급이 되었지만, 나머지 3학급은 여전히 충원이 불가능했고, 정부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여 남은 3학급을 충원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딸 가진 부모라면 중동고에서 3년을 보내느니 차라리 자퇴하고 검정고시 쳐서 대학 갈거라는 비관적인 예상(때마침 내신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교 중퇴 후 검정고시를 치는게 유행이던 시절이다) 탓에 결국 남녀공학 전환을 거절하고 80기는 12학급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81기부터는 다시 15학급 완충.
  • 강남구에 있는 학교지만 묘하게 송파구민이 많다. 1/3~40%정도. 이는 송파구에 자사고가 보인고등학교가 있지만 강남 3구 에서 탈 송파를 지향하는 송파 친구들이 대체재로 다니는 것이다.[19]
  • 위 역사 단락에서 볼 수 있듯이 84년부로 현 위치인 강남 일원동로 이전했다. 기존 위치는 종로구 수송동이었다.[20] 기존 학생들은 통학버스로 다녔다고 한다. 이전할 당시엔 학교 근처가 개발되지 않아 허허벌판이거나 농경지였다고 한다. 당시 여러 학교들이 도심에서 강남으로 이전했는데, 중동, 숙명, 경기, 휘문 등이 해당 학교들이다. 이들은 모두 설립 100년이 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참고로 앞에 나온 권위주의적 선후배 문화가 이 때 기원했다는 말도 있다. 기존 학생들과 이전 후의 신입생들이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21]
  • 학교 역사가 111년에 달해 부자가 동문인 경우도 존재하고, 선생님들 중에서도 중동고등학교 출신이신 분들도 종종 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3대가 동문인 경우도 있다고도 한다.
  • 매년 1학년들을 대상으로 <백농 최규동>이라는 학교 설립자 최규동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책을 나눠준다. ~~여담이지만, 왠지 내용이 괴랄하다. 건질 건 뒤에 학교연표밖에 없다
  • 학교 이름이 '중동'이라 중동(middle east)이랑 자주 엮어서 드립의 대상으로 쓰이기도 한다. 참고로 한자도 동일.
  • 이사장실이 찾기 더럽게 어렵다(...) 학생들이 찾을 일은 없지만 신경쓰자면 은근히 신경쓰이는 부분.사실 이사장도 보기 힘들다 사족으로 위치는 백주년기념관 1층에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는 방이다 공 잘못차면 이사장실
  • 학교에서 남쪽으로 가까운 거리(도보 10여분)에 삼성서울병원이 있다. 학교에서도 잘 보이며 가끔 의료헬기가 이착륙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위의 중동 드립과 엮여 흥겨운 드립이 쏟아졌다.
  • 각 동아리의 상징으로 뱃지가 있다. 구글링해서 찾을 수 있는 뱃지들. 다른 배지들은 추가바람.[22] 참고로 대부분 업체에서 100개 단위부터 주문이 가능한데, 100개에 20만원쯤 한다. 초반 100개 물량을 다 못 채우고 동아리가 폭파되는 경우 그건 죄다 학생들간 뒷거래의 대상이 되거나 이런저런 교실들에서 압정(...)으로 쓰거나 한다. 대부분은 그냥 부장네 집 서랍 속으로

수학연구부 POLARIS 뱃지

신문부 JDNP 뱃지

밴드부 뱃지

축구부 JFC 뱃지

RCY 뱃지

기업가정신동아리 J:ent 뱃지[23]
  • 2016학년도 신입생 지원 경쟁률이 2.66대 1을 돌파하였다... 다만 이는 2015년도 부터는 신입생 지원시 이전과 달리 중학교 내신 50% 이내에 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사라지고 대신 면접만으로 학생들을 뽑게 된 것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 예전에는 Chung Dong이라는 표기도 쓰였지만 지금은 Joongdong으로 통합한듯 하다. 이때문에 산악부 등의 오래된 동아리는 약자로 CD를 쓴다던가 구호에도 CD가들어가는등 그 잔재가 남아있다.
  2. 한 학년 전체에다가 담임+교장,교감,부장들까지 합하면 딱 맞는다
  3. 설명회나 외부인 방문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켜지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을 위해 켜주는 경우는 결코 없다
  4. 설계시부터 성큰가든으로 부르라 했다는 선생님들의 증언이 있다. 사실관계 확인 바람
  5. 현재 프런티어실로 교체되었다. 덕분에 갈길 잃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부원들은 4층 세미나실로 이전
  6. 상위권 학생들이 자습하는 곳. 일반 독서실 같은 듀오백 의자와 칸막이 책상이 설치되어있다.
  7. 가끔씩 선배들이 시킬 땐 정말 악을 써서 경례를 해야 한다. 소리가 크지 않으면 계속 다시 시킨다.(...)
  8. 이는 일제시대엔 한자로 이름을 박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60-70년대 한글 전용과 국어순화운동 대 대부분 학교에서 한글로 명찰을 바꿀 때도 안 바꾸었던 것이 무려 60년 이상 쭉 유지된 것이다. 잠시 한글 명찰로 바뀌기도 했다. 카드 형태로서 학생 본인의 사진이 붙어있고, 이름은 한글로 표기되어 있었다. 2002년 1학년(현재 98회 졸업생)들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적용되었다가 어느 시점에서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9. 이 깃발을 휘두른 사람은 대부분 재수한다는3년된 전설이 있다.
  10. 필수는 아니고동아리마다 다르다. 대부분 소속 동아리 부장이 참가한다 했으면 1학년들은 필참해야 한다. 2학년들은 선택, 3학년들도 미리 나오기 싫으면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왠지 분위기상 나가야 할 것만 같고, 친구들과 밤새고 추위에 떨놀 수 있다는 점에서 대개는 참가한다.
  11. 과거에 대치역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가 선배에게 정강이를 차였다는 소문이 있다. 또, 어떤 학생은 똑같은 이유로 선배한테 뺨을 맞아서 고막이 나갔다는 얘기도 있다. 103기 까지만 해도 교무실 뒷편에 있었던(식당 쪽으로 이전되었지만) 매점 앞에서 있었던 일이고, 양재 시민의 숲으로 사생대회 가서 있었던 일도 있고 많았다. 학교 홈페이지 민원게시판의 옛 글들을 보다 보면 간간히 선배가 때렸다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올라온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12. 1학년은 먼지, 2학년은 인간, 3학년은 신이라는 농담도 존재한다.
  13. 제일 유명한 건 개포고 관련 신문기사.
  14. 이때가 장마 즈음이라 자주(항상) 비가 내려, 기우제니 뭐니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15. 109기 기준 은퇴한 선생님이 출처.
  16. 카더라에 의하면 실은 창조관 건설 비용으로 350억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 마당에 있는 파고다 기둥 하나당 1억이라고 한다
  17. 버스가 어둠을 헤치고 중동고에 닿으면/288 정류장에 학생들이 쏟아지네/힘차게 달려라 시내버스 288.. 어쩌고 하는.. 가물가물
  18. 다만 상위권의 상당수가 문과이며, 한때는 이과를 별볼일없다는 식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는 107기 문과에서 만점자를 두 명 배출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던 모양.
  19. 여학생들이나 이곳에 지원하지 않은 학생은 한강 건너(...) 한대부고에 다녀야 한다.
  20. 지금은 그 위치에 비석으로 옛 중동고 위치임을 표기하고 있다. 참고로 그 비석에서 3m거리에는 옛 숙명여고 부지 비석이 있다. 옛날 두 학교가 붙어있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21. 다만 이 부분의 해석은 잘못됐다. 중동고는 대치동으로 옮겨오기 이전에도 일제시대부터 이미 강력한 선후배 문화와 막강한 주먹(...)으로 악명명성이 자자했다. 오히려 대치동으로 옮긴 후부터 선후배 문화나 주먹질(...)이 예전같지 않게 약화된 편이다. 이 부분에서 말하는 건 정확히는 권위주의적 문화의 기원이 아니라 그냥 그때 선배들이 후배 까는 데 이유가 하나 보태진 정도?
  22. 동아리 뱃지 외에도 모범학생 뱃지, 학생회 뱃지, 100주년 기념 배지 등등이 있으며, 예전에는 학년배지도 있었지만 108기 신입생부터는 교복이 교체되어서 착용하지 않는다. 109기 입학 이후로는 명찰 색을 통해 학년을 구분한다.
  23. 정규 동아리가 아닌 자율 동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