隆健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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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융릉과 건릉을 합쳐 부르는 말로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에 위치한 조선 왕릉이다.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의 효성을 엿볼 수 있는 왕릉으로 1970년 5월 26일에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다.
2015년 10월 7일 기준 24세 이하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2 융릉
융릉(隆陵)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의황제와 그의 부인 헌경의황후 홍씨의 합장릉이다.
사도세자는 본래 현재 동대문구 휘경동 일대인 양주 배봉산 아래에 묻혔고 묘의 명칭을 수은묘라 했었다. 그러던 것을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격을 올려 영우원으로 고쳐 부르게 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시호도 사도에서 장헌으로 새로 개칭한다. 이후 정조는 1789년 능의 위치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서 현륭원이라 부르게 하였고,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1816년에 합장되었다.
대한제국이 세워진 이후 1899년 11월에 호적상 고손이 되는 고종에 의해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고, 장종이란 묘호를 올리고 현륭원도 왕의 예에 따라 융릉으로 격상되었고 한달뒤엔 묘호가 장조로 바뀐다. 곧이어 사도세자가 장조의황제로 추존됨에 따라 황제의 능이 되었다.
융릉의 특징으로는 일반적으로 왕릉의 홍살문과 정자각, 봉분은 일직선으로 배치되기 마련인데, 융릉은 정자각과 봉분의 축이 약간 틀어져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지금 봉분 자리가 좀더 명당이라서 방향을 틀어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3 건릉
건릉(健陵)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선황제와 그 부인 효의선황후 김씨의 합장릉이다.
정조가 승하하자 유언대로 1800년 11월 6일 융릉의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안장되었고, 21년 후 효의왕후가 승하하자 효의왕후를 건릉 부근에 안장하려고 하였으나 영돈령부사 김조순이 현재 건릉이 풍수지리에 좋지 않다고 하자 건릉을 현륭원 서쪽 언덕으로 바꿔서 매장하게 되었고, 효의왕후도 합장하게 되었다.
4 정조대왕 첫 왕릉터 발굴(?)
2011년 11월 경에(정확한 날짜를 아시는 분은 추가 바람) 정조대왕의 첫 왕릉터로 추정되는 곳이 발굴 되었다.
발굴지에서는 다수의 유물이 출토 되었는데, 백자명기, 백자호류, 칠기함과 궁중제례악에서만 사용하던 편경과 편종이 출토되었다. 이 중 뚜껑이 있는 단지는 18세기 백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