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이름한국어조선 왕릉
영어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프랑스어Tombes royales de la
dynastie Joseon
국가·위치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경기도, 강원도

등재유형문화유산
등재연도2009년
등재기준(ⅲ)[1], (ⅳ)[2], (ⅵ)[3]
지정번호1319

1 개요

조선(1392~1897 : 대한제국 포함시 ~1910)의 역대 국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가 묻힌 능(陵)을 통틀어 일컫는 말. 왕과 왕비가 묻힌 곳이라는 점 때문에 조선왕릉을 "'신들의 정원"' 이란 은유적 표현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총 42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태조의 추존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그 왕비들의 능까지 포함하면 총 50기. 그러나 일반적으론 42기의 능만을 조선왕릉으로 표현하고 있다.

2009년 6월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개최된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여기에는 40기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데, 나머지 2기인 제릉후릉이 현재 북한에 위치해 있기 때문. 그리고 폐위되어 임금의 능이 아닌 왕자의 묘가 된 연산군광해군의 무덤도 여기서 제외됐다.

일반적으로 방문 관람시 성인 기준 입장료 1,000원[4]이며, 해당 왕릉이 위치한 지역민의 경우 50% 할인이 적용된다. (단 신분증 필참) 간혹 특정일(예를 들면 광복절과 같은 특정공휴일이나 명절 등)이나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의 문화가 있는 날에는 무료개방행사가 진행되므로 이 점을 참고해두면 좋다. 그러나 2016 설 연휴에는 무료입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몇몇 능역의 경우는 여타 사유로 인해 비공개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삼릉의 효릉.[5] 따라서 비공개 능역을 관람하고 싶으면 한시적으로 공개되는 시기를 고르던가, 또는 문화재청에 별도로 문의해야 관람이 가능하므로 답사할 생각이 있다면 잘 알아보고 답사하도록 하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거창한 수식어 때문에 뭔가 대단한 것으로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막상 가보면 별로 볼 게 없다. 만약 당신이 역사에 흥미 있는 사람이거나 이 부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이는 조선이란 국가가 기본적으로 사치를 멀리하고 검약을 강조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옆나라의 왕릉과 같은 웅대함이나 화려함 같은 건 별로 없다.[6] 그나마 능의 중심인 능침과 봉분의 경우 바로 앞에서 보면 제법 웅장하다 느낄만하기는 한데... 몇몇 능을 제외한 대부분은 보존상의 이유로 능침 앞부터 출입을 금하고 있어 이 또한 멀리서 관람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래도 왕릉들은 왕실의 능역인만큼 숲(일반적으로 소나무) 보존이 잘 되어 있고 경관도 매우 좋기 때문에 왕릉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왕이나 왕비를 참배한다는 목적보다는 대개 산림욕이나 가벼운 산책, 그리고 커플들의 데이트 관광 목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으며 아예 능역 코스를 산책로나 수목원[7]으로 구성해 놓은 곳도 있다. 특히 사릉의 경우는 권역내에 전통수목양묘장과 자연생태전시관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본격 왕릉의 산림욕장화 덕분에 낮은 확률로 딱따구리 같은 보기 어려운 조류나 쉽게 보기 힘든 식물을 찾을 수도 있어서 이런 희귀한 동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 방문해도 좋은 곳이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은 선릉은 도심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으며, 지하철로 찾아갈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

그 외 사진 촬영이 취미인 사람들도 많이 찾으며, 능이 있는 인근 지역의 학생들이 사생대회 백일장나 소풍 같은 학교 행사 때문에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

조선왕릉의 경우, 다른 왕조의 능과는 달리 아직까지 무덤 내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이는 왕릉 제례를 맡은 전주 이씨 종약원에서 발굴에 동의해 주지 않기 때문.[8] 아무리 건전한 학술 연구라고 해도 무덤을 완전히 파헤쳐야 하니 예법상 매우 꺼려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조선 왕릉의 내부 구조는 조선왕조실록 등 왕릉 축조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다만 관련 자료들[9]이 풍부하게 남아있는 편이라 굳이 발굴하지 않아도 내부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일수도.

조선왕릉들은 주변의 지명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잦다. 특히 아예 지명화되어버린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 문정왕후 윤씨의 태릉, 세조의 광릉 등이 그러하다. 그 외에도 조선왕릉에서 역명을 따온 철도역인 선릉역, 선정릉역, 태릉입구역, 온릉역, 사릉역, 세종대왕릉역 등이나 서오릉 앞을 흐르는 창릉천, 태종의 능침 앞을 지나는 도로인 헌릉로 등의 지명이 그 예이다.

2 형식

조선왕릉은 풍수와 지형에 따라서 6가지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 단릉 - 한 언덕 위 하나의 능에 한 사람이 안장되어 있는 왕릉.
  • 쌍릉 - 한 언덕 위에 단릉이 나란히 두 개 있는 것.
  • 합장릉 - 한 언덕 위 하나의 능에 두 사람이 함께 안장되어 있는 것.
  • 동원이강릉 -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두 개의 언덕에 각각 두개의 단릉이 있는 것.
  • 삼연릉 - 한 언덕 위에 세개의 단릉이 있는 것.
  • 동원상하릉 - 하나의 언덕 위에 단릉이 위아래로 배치된 것.

3 능(陵)

3.1 왕과 왕비의 능

능호피장자승하봉릉소재지형식사적비고
건원릉(健元陵)태조고황제14081408경기 구리단릉193호(동구릉)1409 신도비 건립
제릉(齊陵)신의고황후1391.9.231392경기 개풍단릉[10] [11]1404 신도비 건립
1744 신도비 재건립
정릉(貞陵)신덕고황후1396.8.131396.9.28서울 성북단릉208호1409 천장
1669 재건
후릉(厚陵)정종
정안왕후
1419.9.25
1412.6.25
1412.7.20경기 개풍쌍릉[12] [13][14]
헌릉(獻陵)태종
원경왕후
1422.5.10
1420.7.10
1420서울 서초쌍릉194호(헌인릉)1424 신도비 건립
영릉(英陵)세종
소헌왕후
1450.2.17
1446.7.24
1446경기 여주합장릉195호(영녕릉)1450 신도비 건립
1469 천장
현릉(顯陵)문종
현덕왕후
1452.5.14
1441.7.24
1452.6.17경기 구리동원이강릉193호(동구릉)1450.7.1 소릉(昭陵)
1452 합장
장릉(莊陵)단종1457.12.241698.11.8강원 영월단릉196호[15]
사릉(思陵)정순왕후1521.6.41698.11.8경기 남양주단릉209호[16]
광릉(光陵)세조
정희왕후
1468.9.8
1483.7.24
1468.9.25경기 남양주동원이강릉197호
창릉(昌陵)예종
안순왕후
1469.11.28
1498.12.23
1469.12.18경기 고양동원이강릉198호(서오릉)
공릉(恭陵)장순왕후1461.12.51470.1.22경기 파주단릉205호(파주삼릉)
선릉(宣陵)성종
정현왕후
1494.12.24
1530.8.22
1495.1.14서울 강남동원이강릉199호(선정릉)
순릉(順陵)공혜왕후1474.4.151474.4.19경기 파주단릉205호(파주삼릉)
정릉(靖陵)중종1544.11.151544서울 강남단릉199호(선정릉)1562 천장
온릉(溫陵)단경왕후15571739.3.28경기 양주단릉210호
희릉(禧陵)장경왕후1515.3.21515.3.7경기 고양단릉200호(서삼릉)
태릉(泰陵)문정왕후1565.4.61565.6.4서울 노원단릉201호(태강릉)
효릉(孝陵)인종
인성왕후
1545.7.1
1577.11.29
1545.7.12경기 고양쌍릉200호(서삼릉)
강릉(康陵)명종
인순왕후
1567.6.28
1575.1.2
1567서울 노원쌍릉201호(태강릉)
목릉(穆陵)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
1608.2.1
1600.6.27
1632.6.28
1608.5.19경기 구리동원이강릉193호(동구릉)
1600 유릉(裕陵)
1632 혜릉(惠陵)
장릉(長陵)인조
인열왕후
1649.5.8
1635.12.9
1635.12.17경기 파주합장릉203호1731 천장
휘릉(徽陵)장렬왕후1688.8.261688.9.2경기 구리단릉193호(동구릉)
영릉(寧陵)효종
인선왕후
1659.5.4
1674.2.23
1659.5.9경기 여주동원상하릉195호(영녕릉)1673 천장
숭릉(崇陵)현종
명성왕후
1674.8.18
1683.12.5
1674.8.24경기 구리쌍릉195호(동구릉)
명릉(明陵)숙종
인현왕후
인원왕후
1720.6.8
1701.8.14
1757.3.26
1701.8.20경기 고양동원이강릉198호(서오릉)[17]
익릉(翼陵)인경왕후1680.10.261680.11.2경기 고양단릉198호(서오릉)
의릉(懿陵)경종
선의왕후
1724.8.25
1730.6.27
1720.7.6서울 성북동원상하릉204호
혜릉(惠陵)단의왕후1718.2.71718경기 구리단릉193호(동구릉)
원릉(元陵)영조
정순왕후
1776.3.5
1805.1.12
1776.3.10경기 구리쌍릉193호(동구릉)
홍릉(弘陵)정성왕후1757.2.151757.2.21경기 고양단릉[18]198호(서오릉)
건릉(健陵)정조선황제
효의선황후
1800.6.28
1821.3.9
1800.7.6경기 화성합장릉206호(융건릉)1821 천장
인릉(仁陵)순조숙황제
순원숙황후
1834.11.13
1857.8.4
1834.11.19서울 서초합장릉194호(헌인릉)1856 천장
1857.8.10 문릉(文陵)
경릉(景陵)헌종성황제
효현성황후
효정성황후
1849.6.6
1843.8.25
1903.1.2
1843.9.2경기 구리삼연릉193호(동구릉)1849.6.14 숙릉(肅陵)

1903.1.7 정릉(正陵)
예릉(睿陵)철종장황제
철인장황후
1863.12.8
1878.5.12
1863.12.15경기 고양쌍릉200호(서삼릉)
홍릉(洪陵)고종태황제
명성태황후
1919.1.21
1895.8.20
1897.1.6경기 남양주합장릉207호(홍유릉)1895.10.22 숙릉(肅陵)
1919 천장[19]
유릉(裕陵)순종효황제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1926.4.25
1904.11.5
1966.1.13
1907.8.26경기 남양주합장릉207호(홍유릉)1926 천장
1904 유강원(裕康園)
1966 합장

3.2 추존된 왕과 왕비의 능

능호피장자승하봉릉소재지형식사적비고
덕릉(德陵)목조12741392.8.8함남 신흥쌍릉-1410 천장
안릉(安陵)효공왕후?-
지릉(智陵)익조?1392.8.8함남 안변단릉-
숙릉(淑陵)정숙왕후?1392.8.8함남 문천단릉-
의릉(義陵)도조13421392.8.8함남 함흥단릉-
순릉(純陵)경순왕후?1392.8.8함남 흥남단릉-
정릉(定陵)환조13611392.8.8함남 함흥쌍릉-
화릉(和陵)의혜왕후?-
경릉(敬陵)덕종
소혜왕후
1457.9.20
1504.4.27
14711.22경기 고양동원이강릉198호(서오릉)
장릉(章陵)원종
인헌왕후
1619.12.29
1626.1.14
1632.3.11경기 김포쌍릉202호1626.4.1 흥경원(興慶園)
1626.3.15 육경원(毓慶園)
1731 천장
영릉(永陵)진종소황제
효순소황후
1728.11.16
1751.11.14
1776.3.19경기 파주쌍릉205호(파주삼릉)
융릉(隆陵)장조의황제
헌경의황후
1762.5.21
1815.12.15
1899.9.1경기 화성합장릉206호(융건릉)1776.3.20 영우원(永祐園)
수릉(綏陵)문조익황제
신정익황후
1830.5.6
1890.4.17
1834.11.19경기 구리합장릉193호(동구릉)

3.3 폐위된 왕과 왕비의 묘

구분상 왕릉이 아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되었다.

독특하게도 가족 묘 형태로 조성되어 있는데 가장 상단에 연산군 부부가, 중단에는 의정궁주 조씨, 그리고 하단에는 연산군 사위인 구문경과 휘순공주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20]
독특하게 모 교회 공원묘지 안에 위치해 있어 접근이 용이하지가 않다.
원래는 동대문구 회기동 인근에 위치해 있었으나 1960년대 지역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4 원(園)

원 또는 원소(園所)는 왕세자, 왕세자빈 또는 임금의 사친(私親)[24]의 묘소에 붙이는 이름이다. 원소는 세계유산에 등재되지 않았다.

원소피장자사망봉원소재지형식사적비고
순창원(順昌園)순회세자
공회빈
1563.10.6
1592.4.14
1870.12.10경기 고양합장분198호(서오릉)[25]
순강원(順康園)경혜인빈1613.10.291755.6.2경기 남양주단분356호[26]
소경원(昭慶園)소현세자1645.5.211870.12.10경기 고양단분200호(서삼릉)[27]
영회원(永懷園)민회빈1646.4.301870.12.10경기 광명단분357호[28]
소령원(昭寧園)화경숙빈1718.4.91744.3.7경기 파주단분-[29]
수길원(綏吉園)온희정빈17211778.3.18경기 파주단분-[30]
소령원(昭寧園)화경숙빈1718.4.91744.3.7경기 파주단분-[31]
의령원(懿寧園)의소세손1752.4.171870.12.10경기 고양단분-[32]
인명원(仁明園)인숙원빈1779.5.71779.5경기 고양단분200호(서삼릉)1786 혁파[33]
1950 천장[34]
효창원(孝昌園)문효세자1786.6.61870.12.10경기 고양단분-1944 천장 [35]
휘경원(徽慶園)현목유비1822.12.261822.12.29경기 남양주단분-1863 천장[36]
흥원(興園)헌의대원왕
순목대원비
1898.2.22
1898.1.8
1908.1.29경기 남양주합장분-1966 천장[37]
영휘원(永徽園)순헌황귀비1911.7.201911.7.27서울 동대문단분361호[38]
숭인원(崇仁園)이진1922.5.111922.5.15서울 동대문단분361호[39]
영원(英園)의민태자
의민태자비
1970.5.1
1989.4.30
-경기 남양주합장분207호(홍유릉)[40]
회인원(懷仁園)회은황세손2005.7.16-경기 남양주단분207호(홍유릉)[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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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4. 여주시의 영녕릉(세종, 효종의 능)은 500원이며 드물게 외부인도 똑같시 받는다.
  5.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으로, 이곳은 서삼릉 경내이면서 동시에 농협 젖소개량사업소 영역이기 때문에 일반에는 비공개가 된 능이다.
  6. 대한제국 선포 후에 조성되어 제후국이 아닌 황제국 양식으로 만든 홍유릉이 비교적 외관이 화려한 편이다. 다만 중국의 황제릉들은 무덤이라기보다는 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거대하며, 조선이 존속하던 시기와 겹쳤던 중국왕조인 명, 청의 황릉은 말이 무덤이지 거의 작은 궁전 수준이다.
  7. 대표적으로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 옆에 위치한 광릉수목원이 있다.
  8. 사실 조선왕릉 이외에도 천마총 같은 신라 왕릉급 고분들을 과거 발굴했던 것도 예전 권위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지 지금 와서 추가 발굴은 경주 김씨 등 문중의 반대가 강해 훨씬 어렵다.
  9. 조선시대 왕릉의 기본적인 조성 규정을 담은 국조오례의를 포함해 능의 주요 사항을 담은 능지, 국장 과정과 택지 정보 및 능침 조영 등의 자료를 담은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와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 등이 대표적인 자료.
  10. 북한 보존급문화재 556호
  11. 북한에 위치해 있어 조선왕릉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됐다.
  12. 북한 보존급문화재 551호
  13. 제릉과 함께 북한에 위치한 왕릉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됐다.
  14. 조선왕조실록 세종 2년(1420) 1월 3일자 기사의 지문(誌文), 애책문(哀冊文)을 통해 능 조성 당시 신도비가 설립됐음을 추측할 수 있다.
  15. 유일하게 강원도에 위치한 왕릉. 단종은 폐서인이 된 상태로 사망했기 때문에 노산군묘였으나, 숙종 때 복위되면서 장릉으로 승격되었다. 특이한 점은 장릉은 영월 엄씨 선산에 조성됐기 때문에 인근에는 엄씨 가문의 묘가 많이 위치해 있다.
  16. 정순왕후가 사망하던 당시의 임금인 중종의 배려로 처음에는 부부인의 예로 묘가 만들어졌으나, 숙종 때 단종과 함께 복위되면서 사릉으로 승격되었다. 특이한 점은 장릉처럼 이곳 또한 정순왕후의 시매부(단종의 누이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 집안인 해주 정씨 선산이기 때문에 인근에는 해주 정씨의 묘가 많이 위치해 있다.
  17. 희빈 장씨가 묻힌 대빈묘가 명릉 근처에 있다.
  18. 단릉이지만 독특하게 우측(봉분에서 바라보는 위치)에 봉분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실제로는 쌍릉의 규모이다.
  19. 고종이 1896년 대한제국을 선포함에 따라 고종과 순종의 능은 제후국이 아닌 황제릉의 격식에 따라 조성되었다.
  20. 원래 여기는 세종의 4남 임영대군의 봉토였는데 세종의 명으로 의정궁주 조씨(태종의 후궁)의 봉사손이 되면서 의정궁주의 묘가 처음으로 자리하게 됐다. 이후 임영대군의 외손녀인 거창군부인 신씨의 요청을 중종이 들어주면서 연산군 가족의 묘가 함께 자리하게 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21. 연산군 재위시 제헌왕후로 복위되어 '회릉'으로 승격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다시 묘로 격하되었다. 다만 무덤의 양식 자체는 왕릉의 형태 그대로이다.
  22. 광해군 재위시 공성왕후로 추존되어 '성릉'으로 승격되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다시 묘로 격하되었다. 회묘와 마찬가지로 석물은 왕릉의 제도를 갖추고 있다.
  23. 엄밀히 말하자면 장희빈은 폐위되지 않았지만 사사당했기 때문에 원자를 생산한 후궁의 묘소에 붙는 '원(園)'이란 명칭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24. 임금을 낳은 선왕의 후궁
  25. 13대 명종의 장남과 며느리이다.
  26. 14대 선조의 후궁으로, 추존왕 원종의 생모이며 16대 인조의 할머니이다.
  27. 16대 인조의 장남이다.
  28. 소현세자의 부인으로, 16대 인조의 맏며느리이다.
  29. 19대 숙종의 후궁으로, 21대 영조의 생모이다.
  30. 21대 영조의 후궁으로, 추존왕 진종(효장세자)의 생모이다.
  31. 19대 숙종의 후궁으로, 21대 영조의 생모이다.
  32. 추존왕 장조와 헌경왕후 홍씨(혜경궁 홍씨)의 장남으로 일찍 요절했다.
  33. 22대 정조의 후궁으로, 홍국영이 몰락한 뒤 후사도 낳지 못한 후궁에게 궁호와 원호를 올린 것은 참람된 처사라 하여 모두 혁파되었다.
  34. 처음에는 서울시 성북구(지금의 고려대학교 자연계 캠퍼스)에 있었으나 1950년 서삼릉 후궁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35. 22대 정조의 장남으로 일찍 요절했다. 이곳에는 정조의 후궁이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의 무덤도 함께 위치해 있다.
  36. 22대 정조의 후궁으로, 23대 순조의 생모이다.
  37. 흥선대원군의 묘는 처음에는 고양군 공덕리(현재 공덕동)에 위치했으나 일제에 의해 1906년 파주군 대덕리로 이장, 1966년에는 미군 부지 확보를 위해 다시 남양주군 창현리로 이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38. 26대 고종의 후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황귀비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39. 영친왕(의민황태자)의 장남으로 생후 8개월만에 요절했다.
  40. 26대 고종과 순헌귀비 엄씨의 아들. 동시에 자녀가 없는 이복형 순종의 황태자이기도 하다.
  41. 영친왕의 차남. 1910년 조선왕조(대한제국 포함)가 멸망한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공식적인 '원(園)'은 아니며 일반적으로는 '이구 묘'로 불리운다.